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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이 망해도 외톨이는 아웃사이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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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작품등록일 :
2022.05.11 12:46
최근연재일 :
2022.09.02 16:4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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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8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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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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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4. 원소의 숲

DUMMY

'빛을 잃은 날'.


세상이 멸망한 이후, 지구라는 행성은 강제성 시스템에 의해 철저히 그 모습을 바꾸었다.


첫 번째 법칙 조정에서, 만물의 영장이자 지구의 지배자였던 인간은 가졌던 모든 기반을 잃어버렸고 그에 대응하듯 새로운 힘을 얻었으며 새로이 등장한 괴생명체와 다투며 생존을 구가하게 되었다.


두 번째 법칙 조정에서, 괴물을 피해 살아가던 인간은 코인 시스템과 상인의 등장으로 적극적으로 괴물을 배제해야 할 이유가 생겨났으며.


세 번째 법칙 조정에서, 인간은 잠시나마 익숙해진 생태계의 격변을 몸소 체험하며 강대한 진화체와 마주하는 동시에, 기존 무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이템과 자기 수련에 한정되어 있던 상황이 보옥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어진 네 번째 법칙 조정.


인간은 기어코 살아온 땅마저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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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 조정 적용!]


지각에 가려 숨겨져있던 지형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구의 영역이 확대됩니다.


필드에 자연 던전과 특수 던전, 마법적 공간이 생성됩니다.

─────────────────────────

----------------------------------------------------------------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네 번째 법칙 조정이 이런 걸 의미할 줄은 몰랐는데.


한 달 전, 그러니까 제4 강제성 직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도시의 풍경은 어디 갔는지.


그냥 던전이 나타난다는 식인 줄 알았다.


게임처럼 포탈을 타고 넘어가든, 아니면 갑작스레 도심에 생겨난 동굴에 있든 환경 자체에 큰 변화는 없을 거라고 당연하게 인식하고 있었는데 도시가 사라지고 떡하니 숲이 나타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어째 하나같이 평범하지가 않네."


나는 다시 쇼핑몰로 돌아왔다.


수련과 훈련을 거듭하며 기술과 힘을 키웠지만 아무 대책 없이 미지의 숲을 탐험하는 건 성격에 맞지 않는다.


나는 구멍 숭숭 뚫린 쇼핑몰의 외벽과 내벽을 오가며 쇼핑몰 옥상으로 올라왔다.


아공간에서 망원경을 꺼내 주변을 살핀다.


흐음.


어두워서 시야는 좁지만, 미세먼지 하나 없는 창공의 달빛이 지상을 밝혀준다. 사위를 분간할 정도는 된다.


내가 있는 쇼핑몰은 낮게 솟은 언덕 위에 유적처럼 서 있다.


언덕 사방으론 온통 숲이다.


신기한 점은 숲 사이사이에 도시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거였다.


도시를 구성하던 요소들이 멀쩡하게 남겨져 있었는데, 숲과 조금도 조화되지 않은 모습은 마치 또 다른 세계에 던져진 것처럼 어색하다.


마치 그 사이사이 간격이 확장되며 숲이 갑자기 솟아난 것 같은 느낌이다.


광활한 숲 한가운데 멀뚱히 서 있는 가로등이나 망가진 자동차, 덩그러니 남겨진 건물, 숲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 도로 등은 어쩐지 낭만적이다.


숲에 잡아먹힌 도시, 복구되어가는 자연에 상처처럼 남은 인간의 흔적.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풍경이지.


뭐. 그래도 아포칼립스에서 포스트가 붙었다고 삶의 장르가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극한의 서바이벌인 것은 숲 사이사이로 보이는 괴물들 때문에라도 똑같다.


나무 그늘이나 바위 틈새에 숨은 트릿, 어슬렁거리는 팔 수집가, 나무 위를 쏜살같이 날아가는 위스퍼러, 평화롭게 나무뿌리를 삼키는 밈이나 그늘에서 몸을 뉘인 바위 거북 등등, 이제까지 피해 다녀야만 했던 괴물 놈들이 눈에 띈다."...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를 거다."


나는 조용히 이를 간다.


물론 아예 처음 보는 괴물도 있었다. 아니. 괴물은 맞나?


4개의 앞발과 2개의 뒷발을 가지고 뛰어다니는 다람쥐나 번개를 쏘아대는 다람쥐나 화염이 일렁이는 붉은 털 다람쥐, 작은 연못에서 헤엄치는 청록색 다람쥐, 열몇 살 아이만 한 거대 다람쥐까지.


온통 다람쥐 천지였다!


녀석들은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 숲에 덩그러니 놓인 건물을 들쑤시거나, 혹은 태평하게 망가진 자동차 안 시트에 몸을 눕히고 잠을 자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람쥐 외에도, 나름 평범해 보이는 귀가 엄청 큰 토끼나, 뿔에서 정전기를 튀기는 사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종달새 등, 외형만큼은 능히 동물이라 부를 만한 생명체도 서식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정황에 약간에 추측을 더하자면, 저들은 이 숲의 원주인들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강제성에 의해 숲이 전이되면서 함께 이곳에 나났을 것이고.


거기까지 추리했을 즈음, 알림이 울린다.


-띠링!-


------------------------------------------------------------------

──────────────────────────

[제4-1 추가 강제성 발현!]


새로이 등장한 지형은 저마다 특별한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서 있는 이곳은 [원소의 숲]입니다.

──────────────────────────

[원소의 숲]


분류 : 자연 던전


지형 효과

순수 원소의 힘 증폭 2단계

순수 원소 외 다른 속성 마력의 소모량 증가 1단계

──────────────────────────

목표 : 숲의 주인을 만나세요.


제한 시간 : 3개월


실패 시 : 추방


보상 : 상인 이용권, 업적에 따라 보상 등급 조정 및 추가 보상


추신 : 각 지형마다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비밀을 해결하고 특별 보상을 획득하세요.

──────────────────────────

-----------------------------------------------------------------


내가 있는 이곳은 '원소의 숲'이라는 자연던전인 모양이다.


"분명 던전이 아닌 지형도 있을 텐데 말이지."


쇼핑몰에서 개고생하고 간신히 살아나왔더니 자연던전 한가운데에 떨어졌다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운이 지지리도 없다.


후. 신세 한탄한다고 바뀌는 건 없으니 나는 다시 알림에 집중한다.


흠. 추가 강제성인데 제한 시간이 꽤 길다. 3개월이라.


강제성이 시작되고 아직 석 달이 채 안 흘렀는데 일반 강제성도 아니고 추가 강제성의 기간이 석 달이라는 건 조금 놀랍다.


역시 지금까진 튜토리얼, 본 게임은 이제부터란 거겠지.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 일을 겪은 것 같다만.


나는 언덕에 가만히 앉아 바람을 쐬며 추가 강제성을 노려본다.


텍스트를 오래 보며 곱씹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며, 집중력과 유추 능력을 기르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현 상황에 대한 고민과 잡다한 생각이 뒤섞이듯 이어진 상념의 결과, 나는 결정했다.


"서울 중심으로 향하려던 계획은 취소."


이 안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우선, 이 숲. 꽤 방대하다.


나름 고지대에 있음에도 쇼핑몰 입구에서는 지평선 끝까지 온통 초록 물결이었다.


옥상에 오르고 나니 그제야 저 멀리 숲의 가장자리가 보인다.


망원경으로 살폈을 때, 확실하진 않지만 가장 먼 서쪽 부분이 대략 30km쯤, 가장 가까운 동쪽 부분은 20km쯤으로 보인다.


가장 가까운 가장자리 방향으로 대략 10~15km 거리 즈음에 폐허가 있다.


처음엔 너무 멀어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는데, 망원경 줌을 당겨 오랫동안 자세하게 살펴보니 확실하다.


내가 삭풍의 보옥으로 대규모 웨이브를 깨부쉈던 그 폐허다.


몇백 미터, 길어도 1~2km 정도의 거리가 최소 10배는 불어났다.


숲의 모양을 반지름이 25km 안 원형으로 가정, 숲의 면적은 무려 1,963제곱 킬로미터.


서울의 면적이 600제곱 킬로미터 언저리인 것을 생각하면 이 숲의 넓이만 해도 서울보다 3배는 넓다.


서울 모든 지역의 거리가 10배 이상 길어졌다면 면적은 원형으로 가정 시 30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모든 거리가 균일하게 넓어진 것은 아닐 테지만 단순히 계산해도 서울의 넓이가 한반도 본래 크기에 필적하는 건데, 상식적으로 횡단할 만한 거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꾸준히 체력을 키워왔다지만 그래봐야 일반인 평균을 간신히 웃도는 수준,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더라도 서울 중심부까지 가는 데에는 목숨을 걸어야 할 거다.


이런 현실적 이유도 있지만, 욕심 그득 담긴 이유도 있다.


네 번째 조정 전, 거리를 돌아다니는 생존자가 꽤나 있었던 것처럼, 이 숲에도 꽤나 많은 생존자가 숨어있다.


일단, 이 쇼핑몰에서 빠져나간 생존자들이 주변에 널리 퍼져있었다.


익숙한 얼굴도 볼 수 있었는데 두 군인과 보검을 쓰는 남자가 남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절대 저쪽으로는 가지 말아야지.


한 달 만에 봐도 반갑다는 느낌은 전혀, 무조건 피해 다닐 거다. 암암.


혜서라던가, 혜서라던가, 해서라던가 하는 여자는 몸을 숨기고 있는지 위치를 특정지을 수 없었지만, 부상의 회복이란 이유로 나 바로 직전에 나갔을 테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 외 쇼핑몰 밖에서 생존을 이어가던 이들 역시 이 일대에 퍼져 있었다.


숲을 돌아다니며 일대를 탐사하는 인간들이 간간히 눈에 들어왔었다.


그리고, 숲은 건물의 틈이나 내부에 숨을 수 있던 도시와는 다르다.

분신으로 정찰을 선행한다고 하여도 결국 다른 인간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겠지.


난 그게 싫어 귀찮고 복잡한 방법으로 인간들을 숲에서 쫒아낸다던가, 혹은 모습을 철저히 숨길 수밖에 없겠지.


어느 쪽이든 불가능하지는 않다.


본래대로라면 말이다.


그런데, 추가 강제성의 텍스트를 읽던 나에게 아주 인상 깊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추가 강제성의 실패 페널티는 '추방'.


숲에서의 추방을 의미한다.


즉, 누구보다 먼저 숲의 주인을 찾아낸 후, 그 누구도 숲의 주인을 발견할 수 없도록 모종의 조치, 즉 묻어버린다면?


내 머릿속 행복회로가 띠리리리리링─! 돌아간다.


띠리링~


빠칭코가 맞춰지듯 탁! 탁! 탁! 모두 '추방'으로 맞춰진다.


럭키!


3개월 후 모두 추방!


성공만 한다면 이 숲 안에서 더는 다른 인간과 마주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이 숲에도 동물이나 괴물들도 살아가고, 개중엔 식용 가능한 생명체가 있을 거다.


식물 중에도 분명 있을 터, 제대로 자리만 잡으면 인간이 없다는 가정하에 자유로운 생존이 가능할 터였다


무엇보다, 추가 강제성 보상으로 상인을 이용할 수 있다면 절반이나 썼음에도 넘쳐나는 코인으로 식량을 잔뜩 구비해도 좋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계획을 구상한다.


최우선적으로, 지도를 만들자.


나는 쇼핑몰 안으로 들어가 고객센터로 향했다.


내 기억상, 이곳엔 큰 종이가 많았다.


"빙고."


대부분 이면지지만 A4 크기부터 내 키만 한 종이도 있다.


발견한 종이를 모조리 챙겨 옥상으로 향해 바닥에 넓게 늘어뜨린다.


망원경으로 일대에서 나무 사이로 나 있는 사잇길이나 특이한 지형지물, 혹은 괴물의 위치까지 파악해 스킬「붙여넣기」로 그림을 그려 넣는다.


본래는 글씨 정도만 간신히였다만, 본격적으로 마력을 연마하여 발전시킨 붙여넣기의 응용이다.


내 머릿속 생각이나 심상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니 붙여넣기를 통하면 실제보다도 더 정확한 지도를 제작할 수 있다.


다만, 한번 그리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지형지물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서식하는 괴물의 종류와 영역을 표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무려 닷새에 걸쳐 괴물의 위치를 그려 넣는다.


그렇게 완성된 지도를 나는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식량, 식수, 위험지역과 사잇길, 숲의 주인이 있으리라 추측되는 수상한 장소까지, 5일이라는 시간 동안 관측한 모든 것이 담긴 지도.


숲이라는 특성상 나무나 바위로 가려진 부분도 있고, 거리, 면적 상 그리 멀리까지 표기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이것이 있다면 이 일대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탐색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워후~~──!


멀리서 들려오는 하울링에 하늘을 본다.


둥근 달이 떠 있다.


음... 오늘은 자고 내일 시작하자.


작가의말

왠 연참이냐구요? 왜긴요. 시험이 끝났거든요. ㅎㅎ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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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8. 나는 너완 다르다 22.07.30 49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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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6. 조우 22.07.23 48 0 18쪽
55 55. 고민은 짧아야 한다 22.07.20 42 0 13쪽
54 54. 22.07.15 53 1 11쪽
53 53. 짱돌이나 맞아라 22.07.11 56 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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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 대공원 그룹의 사정 22.07.02 65 1 17쪽
50 50. 22.06.30 63 1 21쪽
49 49. 22.06.27 64 0 13쪽
48 48. 장사꾼 올렉 +2 22.06.25 68 2 18쪽
47 47. 숲의 생태 22.06.24 65 1 13쪽
46 46. 야차 22.06.24 71 1 20쪽
45 45. +3 22.06.20 76 2 18쪽
» 44. 원소의 숲 22.06.16 81 0 12쪽
43 43. 22.06.16 74 0 18쪽
42 42. 세계의 아이 22.06.13 87 2 11쪽
41 41. 22.06.09 87 1 15쪽
40 40. 이상한 인간 22.06.08 93 2 14쪽
39 39. 언제나와 같다 22.06.05 104 2 21쪽
38 38. +2 22.06.04 106 1 19쪽
37 37. 22.06.03 100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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