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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이 망해도 외톨이는 아웃사이드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시적
작품등록일 :
2022.05.11 12:46
최근연재일 :
2022.09.02 16:49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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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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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8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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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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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43.

DUMMY

인간이 건설한 거대한 건축물이자 통칭 '거미 둥지'였던, 이제는 '주인 잃은 둥지'로 불리는 장소 한 가운데 모든 게 박살 나고 부서진 잔해 속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말끔한 침대 위에 누워있던 나는 다가오는 인기척에 눈을 가린 손을 약간 들었다.


그래도 꽤 오래 쉰 덕에 기분은 꽤나 나아졌다.


분신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쓸만한 물건 위치도 기억하고는 본격적으로 쉬었거든.


다가온 아테나가 나를 부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두 보상을 수령하고 떠나갔습니다.]


아테나의 고운 미성에 그와는 상반된, 먼지를 들이쉬어 칼칼한 목에서 쇳소리가 튀어나왔다.


"두 사람은?"


[걱정하시던 두 분도 치료를 모두 마치고 이곳을 떠났습니다. 이제 이 공간엔 비공식 랭킹 2위와 저뿐입니다.]


나와는 대조적으로 고운 음향이었다.


미녀가 잠을 깨워주는 누군가에겐 꿈 같은 상황이겠지만 나는 몸을 반대쪽으로 돌리며 베개로 얼굴을 가렸다.


"5분만 더."


잠을 얼마든 잘 수 있던 때에는 잠을 소홀히 했지만, 쉽게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 오니 이제서야 나는 잠과 휴식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대로 질식사시켜 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거짓말."


원리원칙을 목숨처럼 지키는 아테나가 나를 죽일 리 없다.


규정 위반이거든.


[왠지 당신을 위해서라면 규정을 어길 수 있을 것 같군요.]


"빌어먹게 영광이군."


섬뜩한 소릴 아무렇지 않게 하는구먼.


반쯤 자다 깨어 몽롱한 정신을 억지로 잡아당겨 몸을 일으킨다.


아테나의 포션 세례와 푹신한 침대로 숙면을 취한 덕에 몸의 컨디션은 최고조였지만 나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아아아아─암


늘어지는 하품을 거하게 한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역시 일어나기 싫은데. 이거 주면 안 돼?"


큼큼, 육성을 잘 안 쓰다 보니 여전히 어색하다. 아공간에서 생수 하나 꺼내 목을 축인다.


[안됩니다.]


마지못해 일어나자 아테나는 온갖 마법과 신력을 총동원해 침대에 남은 이물질을 털어낸다.


「클린즈」, 「이물질 제거」, 「멸균」····.


거참 많이도 건다.


"바이러스 취급이군."


[자기성찰은 좋은 겁니다.]


어이가 없어 코웃음이나 치련다.


침대를 아공간 속으로 집어넣은 아테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용건이 뭐야?"


[보상 지급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지랄, 내가 바본 줄 알아?"


솔직히 나는 아무리 관리자 측 실수로 발생한 사건이래도 순수하게 보상을 선뜻 내미는 상상을 못 하겠다.


특히 아테나라면 더 그렇다.


[알아채실 줄 알았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구렁이처럼 꼬인 마음을 가진 아테나가 순수한 의도라니. 그런게 있을 리 없지.


아테나는 진작 이곳에 도착했었다. 자칭 고위 초월자라는 여신이니 마음먹었으면 삼옥수가 벌인 학살을 원천 봉쇄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서지 않은 것은 충분히 죽일 수 있으리라 여겼거나, 혹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개입하려는 속셈이었겠지. 아까 혜서와 지혜를 곧바로 치료하지 않고 시간을 끈 것과 같은 이치다. 강도를 만나자마자 구해주는 것보다 칼에 찔리고 죽기 직전에 구해지는 게 더 극적인 것처럼.


많은 양의 보옥을 가진 나와 강한 힘을 가진 생존자 집단이 있으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었을까.


그 결과, 절대 적다고 말할 수 없는 수의 인간들이 폭주한 묵빛사신의 손에 최후를 맞았다.


물론 관리자란 놈들은 눈 하나 깜빡 안 할 거다.


너무 많은 희생은 지양한다지만, 초월의 가능성 있는 존재를 성장시키기 위한 희생이라면 언제든 저지르는 놈들이 관리자니까.


[당연한 사실이지만, 전투는 존재를 강하게 만듭니다.]


아테나의 담담한 말투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섞여 있었다. 사람의 죽음을 방관해놓고 아쉽다니, 역시 초월자란 족속은 사이코패스다. 거리를 두자.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아테나는 또다시 익숙한 테이블과 의자를 꺼냈다. 허공에서 찻잔과 주전자가 날아온다.


[이 강제성 내에서 저희 관리자들이 눈여겨보고 있는 생존자들은 많습니다. 적어도 비공식 랭킹에 책정된 십만 명 모두에게 나름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만 명 중 충분한 전투 경험을 가진 이는 적습니다. 당신을 포함해 생존자 유미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싸움을 중간부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여차하면 아까처럼 개입할 요량이었습니다. 고위 초월자의 보호 아래 절대 이길 수 없는 강대한 적과 생사투를 벌인 것이죠. ]


아테나가 말하는 '전투' 한번 한번에 생사가 오가는 피해자의 심경과 어딘가 어긋난 아테나의 의도를 제외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던 인간 중 전투는커녕 평범한 패싸움 정도의 경험조차 없는 사람이 태반이고 이런 세상에서 경험의 유무는 때로 역량의 격차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준다.


[그래도 오해는 마십시오. 이상을 눈치채자마자 저도 저 나름 할일 다 내팽개치고 달려온 겁니다. 합리적인 판단하에 랭킹 상위권에 계신 몇몇 분께 기회를 드리기 위해 개입을 최소화했을 뿐입니다.]


결국 저게 그녀가 굳이 이곳에 늦게라도 나타나 모습을 드러낸 의도라는 것이다. 거기에 이런식으로 조금씩 강제성에 관여해 관리자의 존재를 랭커 이외 인간들에게도 인식시켜 차후 있을 초월자의 등장을 좀더 매끄럽게 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있겠지만.


"어쩌라고."


이러나저러나 내 관심 대상은 아니다. 내가 분노했던 것은 순전히 같은 무리로부터 버려진 두 사람의 처지와 관리자의 홀대가 짜증 났을 뿐이지 얼마나 많은 인간이 죽었는지는 솔직히 내 관심사가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여전히 안타깝지만, 생존자 몇 죽어 나간다고 눈 깜빡하기엔 좀 멀리 왔지.


만약 나에게도 누군가의 죽음이 꼭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망설임은 길지 않을 테니까.


내가 당하기 직전에 나타난 건 조금 아니꼽지만.


만약 '심연에 도사린 괴물'마저도 물리칠 가능성이 존재했다면, 아테나는 완전히 상황이 종료된 이후 모습을 드러냈겠지


악질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학살을 방관하고 불합리한 전투를 종용하는 저들이 악질이라면 저들의 행동에 큰 감정의 동요 없이, 혹은 약간의 동조까지 하는 나 역시도 악질 일일까?...나도 악질인가 보지 뭐. 쿨하게 인정하자.


"다른 용건은?"


[역시나 보상입니다.]


"믿어줄게."


[받아나 주십쇼.]


"뭔데."


[뭐가 필요하십니까?]


"뭐?"


자연스러운 문답에 이상함을 느낀다.


이렇게 순순히 원하는 보상을 준다고?


저번에는 그냥 툭 던지고 가버렸는데?


그녀가 건네준 보상들은 나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들이긴 했지만, 선택권은 없었다.


나는 아까보다 더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아테나를 쳐다봤다.


[이번 보상은 순전히 제 재량하에 드리기에 가능합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지나친 의심도 병이다.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아테나가 딴지 걸게 뻔하거든.


[지나친 의심은 병입니다.]


제길. 읽혔다. 누가 초월자 아니랄까 봐 눈치도 초월적이다.


"범위는?"


[그것 역시 제 재량입니다.]


그렇다라. 나는 큰 고민 없이 바로 말했다.


"그럼 나를 강화체로 만들 수 있나?"


강화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상위종의 진화체는 흔치 않다. 이유는 그들이 진화하는데 필요한 마력이 일반종보다 많기 때문이겠지.


군자에 나타난 대형종 괴물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내가 직접 겪은 괴물 중 가장 상위종에 어울리던 게 바로 아라크로멘툴라다. 강화체가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그런 놈을 단번에 삼옥수로 만들었다. 엄청난 가능성을 지녔다는 뜻.


[불가합니다.]


아테나는 한숨 쉬며 말을 이었다.


[강화체가 무엇인지부터 설명드리자면, 정확한 명칭은 '강제 마력 주입형 생체 강화체.' 줄여서 강화체라고 부릅니다만, 지독한 방식의 생체병기입니다.]


생명체가 가진 수명과 잠재력을 재물로 능력을 강화, 편차에 따라 다르나 최소 세 배에서 최대 수십 배의 힘을 내게 해주는 대신 99.999% 확률로 자폭 혹은 폭주로 자멸하게 되는 불안정의 산물이란다. 이렇게 들으니 섬짓하군.


[제조법도 까다롭고 복잡한 공정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강제성은 강화체의 존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차원 역시 마찬가지죠. 강화체는 금기된 진화의 일종입니다.]


"그럼 아까 그놈은 0.001%의 확률로 발생한 완성형이란 뜻?"


[놀랍게도 그렇더군요. 보통은 강화체 한 소대를 만들기 위해 대략 십만 마리의 생명체를 동시 제조하는데 운이 좋아야 10마리, 나쁘면 단 한 마리도 성공하지 못하곤 합니다. 거기에 놈은 그렇게 탄생한 10마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증폭률을 가졌더군요. 아무리 상위종을 사용하더라도 잘 되어야 이옥수일 텐데, 놈은 무려 삼옥 강화체였습니다.]


즉, 나는 말도 안 되는 적을 상대한 거로군. 젠장.


[단 완성형 강화체라도 한계는 명확합니다. 강화체로서 능력이 증폭된다 하여도 초월은 불가능하며 수명과 잠력을 크게 소모하기 때문에 얼마지 않아 산화해버립니다. 통상 1년 내외, 아무리 완성도가 높아도 3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월자는 중간계에 관여하지 못한다고 했으니, 저것들은 중간계 정복용 병사쯤 되겠군."


[정확합니다. 이렇듯 금기시되는 시술인 만큼 랭킹 2위의 요청은 규정 위반으로 불가합니다.]


"부작용이 그리 심하면 공짜로 해준다고 해도 안 할 거야."


사실은 안될거 알면서 물어본거다. '강화체가 뭐냐' 그냥 물어보면 또 왠 트집이란 트집은 다 잡으면서 보상을 깎으려 할게 뻔하거든. 내가 뭘 믿고 초월자에게 내 몸을 맡기겠어? 지금 현 지구상에서 가장 못믿을 것들이 쟤네인데.


속으로 픽 웃으며 고민한다.


그럼 뭐가 좋으려나.


골똘히 생각하던 내 머리에 꽤 괜찮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그게 좋겠다.


이어진 나의 발언에 아테나는 고개를 저었다.


또 규정을 탓한다.


"드릅게 깐깐하네. 고무줄 같은 규정,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냐? 그러면, 이러면?"


다시 이어진 나의 말에 아테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요청은 분명 '규정 위반'이었지만 뭐, 원래 법이든 규칙이든 구멍은 있다.


[하아.... 이번 쇼핑몰에서 일어난 사건은 전적으로 관리자 측 실수인 것에 더해 요청자이신 비공식 랭킹 2위께서는 이번 사건 해결에 가장 높은 기여를 하셨으니 약간의 편의 차 가능은 하겠습니다만, 요구하신 3개월은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그래도 원하신다면... 음. 한 달이라면 적당할 듯싶습니다. 또한, 이 합숙은 당신에 대한 정보를 습득한다는 의미도 있으니 관찰 및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신다는 가정하에 지배자께 요청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쁘지 않군. 무려 삼옥수 강화체를 처치한 것이다. 더구나 놈을 잡기 위해 보옥을 무더기로 소모한 것에 더해 삼옥까지 써버렸다. 이 정도는 돼야 수지가 맞지.


정보 수집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최소한의 희생이라 생각하자.


[대신 중도 포기는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팔다리가 부러지도록 굴릴 겁니다.]


"죽이지만 말라고."


스스스─


공간이 변화한다.


언젠가 본 적 있던 보상 스테이지.


공간의 한 가운데에서, 아테나는 창을 잡았다.


나 역시 손에 쥔 검은 파편에 힘을 더하며 무장『고독한 인격』을 발동한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하죠.]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


내가 아테나에게 요구한 보상은 바로 약 한 달간의 합숙 수련.


그것도 전쟁의 여신이자 고위 초월자인 아테나로부터 직접 사사(師事) 받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테나에게 바로 거절당했고 그래서 조건이 붙었는데, 어디까지나 아테나의 도움은 기초적인 부분까지이며 사사는 최소한, 가르침 받는 입장에서 어떠한 요구도 불가능하고 배움의 범위에 내 사견 없이 오직 아테나 맘대로다.


어떻게든 아테나가 말하는 '규정'의 수용 한계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랄까.


때문에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한 달이란 시간 동안 마력에 대한 기초지식과 기초적인 운용법만 익힐 수만 있다 하여도 만족이다.


아테나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가진 것들을 다듬는 것에 중점을 둔다.


보상 스테이지에서는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으니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 어떤 보상보다도 귀중하다.


인간이 아닌 존재라 하여도 한 달이나 같이 생활해야 하는 건 상상만 해도 재수 옴 붙지만, 개인적 핑계에 연연하기에 나는 너무 약하다.


비장의 수였던 삼옥도 써버리고 보옥의 개수도 줄어든 지금, 나는 시간이 갈수록 힘이 빠질 게 분명하다.


쩝, 묵빛 사신의 보옥을 심연의 괴물이 집어삼키지만 않았더라면 한시름 덜었을 텐데.


지나간 건 지나간 것. 앞으로 한 달. 강해지는 데 전념한다.











한 달.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흘렀다.


아니, 솔직히 길었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아주 감정을 담아서 빡세게 굴리더라고. 망할 초월자. 대련이랍시고 패는 손길이 어찌나 매섭던지.


물론 아테나에게만 의존하지는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나 스스로를 혹사시켰다.


근육이 끊어져라 움직이고 실제로 몇 번 끊어졌다. 아테나를 통해 포션을 구입하고(상인이 파는 값보다 비싸게 받았다. 더러운 초월자), 치료에 혹사를 반복했고, 마력이 몸에 남아있을 새 없이 끊임없이 소모했다. 뿐만 아니라 성장에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물 쓰듯 사용했다. 덕분에 포션 값으로만 가진 코인의 절반을 써버렸다.


수천의 괴물을 처치하고 삼옥수에 강화체까지 살해하였던 것까지 하여 자력으로 가장 많은 코인을 벌었던 인간이 나였다. 아테나 보증이다.


아, 참고로 강화체를 처치하고 나는 보옥을 얻지 못했다. 챙기려 했는데 아테나가 [배후를 밝히기 위해 저희 측에서 구매하겠습니다] 라며 강제로 사버렸다. 쩝. 가격은 나름 꽤 쳐주었지만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화가 절절히 난다. 나쁜 초월자. 배후 규명은 핑계고, 엄청난 완성도를 가진 강화법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겠지. 뻔하다. 성과가 나면 나한테 일언반구 없이 다른 신의 사회에 홀라당 팔아버릴걸? 어휴.


아무튼, 그렇게 모인 코인의 절반이니 내가 얼마나 포션을 남용했는지 상상이 가겠지.


덕분에 확실한 성장을 거두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침대에 누워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이라는 감각을 만끽하고 있었다.


평화롭다.


오랜만에 즐기는 휴식에 몸이 늘어진다.


근 한 달 동안 침대에 누울 수 있던 것은 기절했을 때밖에 없었었다. 아테나는 내가 기절하면 교육 끝이랍시고 자기 일하러 휙 날라버렸기 때문에 기절 안 하려고 안간임을 썼다. 지금의 휴식이 아주 오랜만이란 거지.


아테나의 침대에 누워 으그극- 기지개를 킨다.


"진짜 이거 나 주면 안 돼?"


너무 편한데. 폭신한 촉감은 물론이고 온갖 회복 효과로 덕지덕지 발려있으니 탐이 무럭무럭 난다.


[가진 코인을 전부 주셔도 안 됩니다.]


거참 깐깐하게 구네. 쟤는 얼굴을 아무리 오래 봐도 정이 안 들어 정이.


[고작 한 달이 '아무리 오래'인 당신 기준이 이상한 겁니다만 당신이니,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누구 얼굴을 한 달이나 봤겠냐고 비꼬는 거지? 빌어먹을 초월자."


[그리고 당신에게 누군가에게 정든다는 개념이 적용되는지부터 논의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흠. 힘들겠군요. 논문 수십 장으로도 밝혀낼 수 없을 테니까요.]


한 달 동안 나에 대해 속속히 파악해 비꼬는 실력만 늘어난 아테나였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기만 빨리는 것 같다.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금 직전까지 훈련하느라 과열된 마력 회로와 뭉친 근육도 침대의 힘으로 꽤 진정되었고, 무엇보다 여긴 보상 스테이지가 아니니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툭툭 털고 일어나자 아테나가 침대에 온갖 마법으로 청결히 청소하고 있다.


저것도 병이라니까.


"이만 가시지."


어느새 침대를 집어넣은 아테나는 관리자들의 통신수단인 은빛 구체를 확인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아테나의 표정인 조금 심각하다. 그래봐야 무표정이지만 조금 더 굳은 무표정이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모양.


[말 안 해도 갈 겁니다. 하아. 덕분에 할 일이 쌓였습니다. 그럼 비공식 랭킹 2위.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길 기원하겠습니다.]


"또 만날 일 없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 같은데."


[저를 보기 싫으시면 죽으십시오. 게임에서 탈락하면 영영 볼 수 없거니와, 결국 생존한다면 다시 만날 수밖에 없으니. 혹, 제가 도와드릴까요? 당신의 자살이라면 기꺼이 거들 의향 있습니다]


"안 정중히 거부할게."


내가 뻗은 중지에 피식 웃은 아테나는 가볍게 땅을 박차 하늘 위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쇼핑몰 천장의 구멍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을 바라본다.


묵빛 사신과 사투를 벌였던 그때도 보았던 어두운 하늘이다.


정말 시간이 흐르지 않았구나.


오랜만에 보는 밤하늘이 사뭇 어색하다.


나는 시선을 떼고, 바닥을 훑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반쯤 녹거나 잘린 거미줄, 거대한 다리에 짓눌린 자취 같은, 나의 기준에선 한 달이 지난 전투의 흔적을 곱씹으며 지금까지 배운 지식을 복기하다 보니 어느덧 쇼핑몰 입구가 보인다.


지반이 가라앉아서 그런지 쇼핑몰 입구는 한두 층 위에 있다.


읏차.


한 번의 도약으로 입구에 도달했다. 마력 두르는 법을 제대로 익혔다는 반증이지. 아무리 운동에 열심이었어도 기본이 워낙 최악이어서 신체 능력은 아직 범인 그 이상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마력을 두르면 영화 속 쫄쫄이 입은 히어로 뺨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박살 난 유리문을 걷어내며 한 걸음 한 걸음 터벅터벅 지나가자 파란 하늘과 초록 빛깔 숲이 눈에 들어온다.


응?


"숲?"


나는 순간 당황해 눈을 비볐다 다시 떴다.


숲이다.


여길 봐도 나무, 저길 봐도 나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무심코 새어 나온 허무한 외침이 광활한 숲 위로 메아리친다.


작가의말

예. 한 편 더 올릴게요.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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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8. 나는 너완 다르다 22.07.30 49 1 21쪽
57 57. 22.07.26 50 1 19쪽
56 56. 조우 22.07.23 48 0 18쪽
55 55. 고민은 짧아야 한다 22.07.20 42 0 13쪽
54 54. 22.07.15 53 1 11쪽
53 53. 짱돌이나 맞아라 22.07.11 56 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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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50. 22.06.30 63 1 21쪽
49 49. 22.06.27 64 0 13쪽
48 48. 장사꾼 올렉 +2 22.06.25 68 2 18쪽
47 47. 숲의 생태 22.06.24 65 1 13쪽
46 46. 야차 22.06.24 71 1 20쪽
45 45. +3 22.06.20 76 2 18쪽
44 44. 원소의 숲 22.06.16 81 0 12쪽
» 43. 22.06.16 75 0 18쪽
42 42. 세계의 아이 22.06.13 87 2 11쪽
41 41. 22.06.09 87 1 15쪽
40 40. 이상한 인간 22.06.08 93 2 14쪽
39 39. 언제나와 같다 22.06.05 104 2 21쪽
38 38. +2 22.06.04 106 1 19쪽
37 37. 22.06.03 100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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