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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한 님의 서재입니다.

전여친과 헤어진 날, 좀비가 나타났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송도한
작품등록일 :
2019.11.02 09:53
최근연재일 :
2019.11.13 12:40
연재수 :
6 회
조회수 :
448
추천수 :
31
글자수 :
25,184

작성
19.11.13 12:40
조회
43
추천
4
글자
10쪽

또 다른 생존자

DUMMY

좀비 두 마리가 그녀에게 달려드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 순간을 막진 못 한다고.

내가 그녀에게 달려가 그녀를 구하는데 걸리는 시간 보다 저 좀비 두 마리의 이빨이 그녀를 덮치는 시간이 더 빠를 것이다.

그녀가 믹서기 창의 스위치를 켜는 시간보다 좀비 두 마리가 그녀의 팔 다리를 물어 뜯는 시간이 더 빠를 것이다.

보호구가 그녀를 잠시 지켜줄테지만 좀비는 두 마리.

그녀가 하나를 막는 동안 또 다른 하나가 그녀를 뒤에서 노릴 것이다.

나는 그녀와의 마지막을 직감하며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만 간직하고 싶었다.

그녀의 목덜미가 뜯겨지고 피를 분수처럼 쏟으며 살이 찢어지는 모습을 본다면 이번엔 구토로 그치지 않고 기절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녀를 따라 가겠지.

그래서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그 모습을 볼 순 없었기에.


푹! 데구르르...

푹! 데구르르...


뭔가 부딪히는 소리와 구르는 소리가 연이어 두 번 들렸다.

그녀의 머리가 먼저 굴러 떨어지고 그녀의 몸이 넘어지며 구른 걸까?

아니면 기적적으로 그녀가 손날치기 넥슬라이스를 써서 좀비 두 마리의 머리를 싹뚝 잘라버린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내 손에 닿은 이 물건 두 개는 뭘까...

나는 꼭 감은 두 눈을 뜨기가 너무 무서웠지만 누군가의 외침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뛰어!"


눈을 떴을 때 내 눈 앞에 보인 것은 피 묻은 야구공 두 개 였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쓰러져있는 좀비 두 마리.

그녀는 놀란 눈으로 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맞은 편 빌라 옥상에서 우리를 향해 외치고 있는 방독면을 쓴 한 사람.

방독면을 쓴 사람은 또 한 번 투구자세를 취하더니 야구공을 이쪽으로 날렸다.

순식간에 날아오는 야구공에 몸을 최대한 빨리 웅크렸다.

야구공은 내 바로 뒤에 우리를 향해 다가오던 좀비의 머리를 정확히 맞췄고 좀비는 퍽 소리와 함께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도하야, 지금이야!"


그녀는 넘어진 나를 일으켜 질질 끌 듯이 내 옷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빌라 골목을 나가자마자 우리는 골목 곳곳에서 먹잇감을 찾는 좀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좀비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우리를 향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아... 얼른... 달려!"


바깥에는 생각보다 좀비들이 많이 있었다.

조용히 움직이는 건 이미 물 건너간 상황.

골목 너머로 보이는 대로에는 이미 수 십 마리의 좀비들이 무리 지어 무언가를 뜯고 씹고 맛보고 있었다.

좀비의 무서움은 힘이나 지능의 강함이 아니다.

바로 쪽수, 이성을 잃은 식욕의 덩어리들이 죽여도 죽여도 계속 나타나는 쪽수의 무서움이다.

우리는 최대한 대로변에 있는 좀비들에게 들키지 않게 요리조리 피해갔다.

그렇게 숨을 죽이고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역을 향하던 그녀가 갑자기 멈춰서는 바람에 그녀의 등에 얼굴을 부딪히며 멈춰섰다.

악 소리와 함께 코를 감싸쥐고 그녀의 어깨 너머를 보니 우리 앞을 좀비 세 마리가 막고 있었다.


"돌아가자."

"안돼, 여기 바로 너머가 지하철역이야."


그녀는 믹서기의 스위치 손을 가져다 댔다.


"잠깐."


나는 눈짓으로 옆을 가리켰다.

멀지 않은 곳에 다섯 마리의 좀비가 음식물 쓰레기 통을 뒤지고 있었다.


"내가 할게."


나는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 식칼 창을 강하게 잡아 쥐었다.

한 번 해봤는데 두 번을 못 할까.

물론 움직이지 못 하던 좀비 하나와 움직이는 좀비 셋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좀비의 목을 노리면 쓰러트리기 쉽다는 정보를 알았으니 승산이 있었다.

재빨리 세 번만 휘두르면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도하야..."


그녀는 음식물 쓰레기 좀비들을 가리켰다.

그들 중 하나가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달려오는 동안 주의를 끌었던 좀비들이 무리로 커져 다가오고 있었다.

좀비 세 마리의 머리를 자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만이 유일한 생존길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머릿속 고민은 사라졌다.

곧바로 맨 앞에 있는 좀비에게 달려들어 창을 강하게 휘둘렀다.

식칼 창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좀비가 된 지 몇 시간이 되지도 않았을 텐데 빠르게 부패한 목덜미는 날카로운 식칼이 지나가자 가차없이 잘려 나갔다.

한 마리를 처치 하자 자신감이 붙었다.

나는 곧바로 또 창을 휘둘렀고 두 번째 좀비의 머리도 이른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이제 마지막, 세 번째 좀비만 남았다.

다시 창을 고쳐 잡고 마지막 좀비의 목을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손이 울렸다.

좀비의 목이 잘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반대쪽으로 창을 휘둘렀다.


탁!


역시나 잘리지 않았다.

단단한 무언가가 식칼을 계속 튕겨냈다.

나는 좀비의 목을 유심히 쳐다봤다.

이 좀비는 살아 생전 목이 안 좋았나보다.

아마 목 디스크였겠지.

좀비는 목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왼쪽 귀가 없어진 것을 보아 보호대 덕분에 목을 물어뜯기는 것은 피했으나 뒤에서 오는 좀비를 뒤돌아 보지 못해 죽었을 것이다.


위이이이이이이잉


커다란 소리를 내며 그녀가 다가왔다.


"비켜."


그녀는 믹서기 창을 좀비의 얼굴에 쑤셔박았다.

믹서기는 스무디를 만들기 위해 넣은 얼음을 가는 듯 탁탁탁 거리는 소리를 내며 좀비의 얼굴을 갈았다.

갈린 피가 튀는 것이 딸기 스무디 같기도 했다.

우리 쪽을 향해서 피가 무수히 튀었고 눈이나 입에 들어가지 않게 우리는 얼굴을 반대쪽으로 최대한 돌렸다.

결국 딸기 스무디 좀비는 뒤로 넘어지며 쓰러졌다.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며 일어서 주위를 돌아보니 믹서기의 효과는 대단했다.

주위의 모든 좀비들이 우리를 향해 돌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믹서기 날을 확인했다.

믹서기 날이 다 부러져 더는 사용할 수 없는 듯 했다.

그녀는 믹서기 창을 켜놓은 채로 우리 뒤의 좀비 너머로 창 던지기를 하 듯 던졌다.

그 소리에 몇몇 좀비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많은 좀비들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지하철 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젠 소리가 나든 말든 신경 쓸 수 없었다.

들어가지 못 하면 죽음 뿐이었다.

골목을 지나 지하철 역이 있는 큰 대로로 빠져나왔다.

실수였다.

사실은 멍청한 생각이었다.

지하철 역에 사람이 없을 리가.

살 수 있으리란 희망과 지기 싫은 자존심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출근 시간이 지난 후라 사람이 없을 것이란 예측은 멋지게 빗나갔다.

우리가 여태까지 달려오며 본 좀비들의 곱절은 되는 좀비들이 지하철 역 주변에 서성이고 있었다.

떼.

맞다, 이건 좀비 무리도 아닌 좀비 떼였다.

그녀와 나는 재빨리 급제동을 하며 멈춰섰다.

뒤에선 좀비 무리가, 앞에는 좀비 떼가 우리를 샌드위치처럼 감싸있었다.

이젠 진짜 끝일까.

나도 티비 속 앵커처럼 살이 뜯겨 나가며 죽겠지.

그리고 저 좀비처럼 다른 사람들의 살을 뜯어 먹으며 다니겠지.

그녀와 나는 등을 마주 대고 양쪽에서 우리를 먹기 위해 점점 조여오는 좀비들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죽는 단 생각에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내 인생의 마지막을 헤어진 여자친구 옆에서 죽어야 한다니.

그냥 집에 내려갈 걸.

무슨 미련이 남아서 사실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받으러 여기 왔을까.

왜 이렇게 쓸 데 없는 것에 얽매여 바보 같이 살았을까.

나는 소리 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좀비들은 더 신이 나서 스탭을 밟으며 다가오는 듯 했다.


"멍청아, 울긴 왜 울어!"

"미...미안해..."

"뚝 그쳐, 더 모이잖아!"

"어...어차피... 죽을 거야..."

"죽긴 누가 죽어!"


그녀는 등을 돌려 나를 돌려 세웠다.

위로 해줘...

마지막 그녀의 위로를 받으면 마음이 좀 나아질까...

그래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우리 두 사람.

마지막은 아름답게 끝-


퍽!


그녀는 나를 옆으로 강하게 밀어냈고 그 바람에 벽에 얼굴을 제대로 부딪혔다.

이젠 눈물 뿐만 아니라 코피까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를 잡고 벽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큰 엔진 소리와 함께 SUV 차량 하나가 우리가 있던 도로를 향해 돌진했다.

수 많은 좀비들이 차에 치여 터지고 날아가며 쓰러져 갔다.

차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우리 앞에 멈춰섰다.


"얼른 타렴!"


조수석에 있던 아주머니가 창문을 내리고 우리에게 외쳤다.

우리는 재빨리 문을 열고 뒷좌석에 타는데 성공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얼른 여기서 나가자. 여보!"


부부로 보이는 두 중년의 부부가 앞좌석에 타고 있었다.

남편분은 후진기어를 넣고 차를 세게 밟았다.

그러나 차는 조금 가는 듯 하더니 바퀴가 헛돌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차가 안 가!"

"아까 죽은 좀비들에 끼였나봐요."


좀비 시체들이 바퀴에 걸려 헛돌기 시작한 것이다.

주위의 좀비들은 자동차 엔진 소리에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안돼..."


그때였다.

우리의 앞에 나타난 아까 우리를 도와줬던 방독면을 쓴 사람.

어느샌가 나타난 방독면은 힘껏 차량을 밀어주기 시작했다.

그 덕에 차량은 조금씩 뒤로 가기 시작했다.


"간다! 간다!"


힘껏 밀어준 덕에 끼인 좀비들을 넘어 바퀴가 지면에 닿았다.

차는 성공적으로 도로로 빠져 나왔다.

나는 문을 열고 방독면 쓴 사람을 향해 외쳤다.


"어서 여기로! 달려요!"


방독면은 우리를 향해 달려오려 했지만 이미 수 십마리의 좀비에 둘러 쌓이고 말았다.


"아저씨! 아까 처럼 차로 밀어버려요."

"너무 위험해. 아까처럼 끼이면? 미안하다."


아저씨는 엑셀을 밟았고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방독면을 쓴 사람도 우리의 선택을 이해해줬는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둘러 싼 좀비들 때문에 시선에서 그가 가려졌다.

우리를 태운 차는 유유히 도로를 향해 달릴 뿐이었다.


작가의말

업로드가 늦어졌네요 죄송합니다 ㅠㅅ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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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떻게든 쓰인다 19.11.07 57 5 10쪽
3 일용할 양식 +2 19.11.06 81 5 7쪽
2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10계명 19.11.05 80 6 9쪽
1 지분 나누기 +2 19.11.02 132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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