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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한 님의 서재입니다.

전여친과 헤어진 날, 좀비가 나타났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송도한
작품등록일 :
2019.11.02 09:53
최근연재일 :
2019.11.13 12:40
연재수 :
6 회
조회수 :
444
추천수 :
31
글자수 :
25,184

작성
19.11.02 11:03
조회
131
추천
6
글자
8쪽

지분 나누기

DUMMY

엿같다...


나도 모르게 생각만 했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만원버스 안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왜냐면 진심 엿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와 헤어지면 후련할 줄 알았다.

자유의 날개가 내 등에 달려 날아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상상을 겸비한 예상과는 다르게 상황은 흘러갔다.

먼저, 내가 먼저 차인 것. 이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나는 하늘에 맹세코 절대 내가 헤어짐의 원인 제공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피해자면 피해자였고 그녀와의 만남을 지탱해오던 버팀목이었다.

그런데 내가 왜. 참고 참았던 건 난데 왜.

항상 자기 멋대로던 그녀는 이별도 자기 멋대로였다.

동거도 그랬다. 오고 가는 시간이 아깝다고 함께 살자고 했던 것도 그녀였다.

그녀의 말에 부모님과 학교 동기와 함께 산다며 거짓말까지 하며 잘 살고 있던

원룸 계약도 해지했다.

그런데 그녀는 내게 이별을 통보하고 퇴거 명령을 내렸다.

멍청하고 바보 같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치욕스럽고 분이 차서 손이 떨렸다.

또 찌질하게 눈에는 눈물이 조금씩 맺혀오기 시작했다.

동거할 때 가져갔던 내 물건, 그리고 내 자본이 묻은 공용물건들을 나누기 위해 그녀의 집에 가는 길이다.

오늘은 당당하게 말하리라.

차갑고 냉철하게 주장하리라.


"엄마, 저 아저씨 울어..."


씨발... 정말 엿같다.

.

.

.


"2시에 온다더니 늦었네?"

"길이 좀 막혀서..."


사고 때문에 차가 막힌 탓인지 20분 거리를 한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집에선 묶은 머리에 파자마 차림이 교복이던 그녀는 나는 본 적도 없는 원피스에 풀 메이크업을 한 상태였다.

왜 꾸몄냐고 묻는 것이 단순하게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 있는 호기심인지 아니면 전남친이 달라진 전여친에게 가지는 질투심인지 계속해서 고민하다가 그냥 묻지 않기로 했다.


"나 바빠, 여기 니 물건들은 넣어놨어."

"어? 응."


우리집, 아니 이젠 그녀의 집에는 항상 택배 상자가 넘쳤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지 않아도 그냥 몸에 베인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맥시멈 라이프였다. 필요한 건 물론이고 필요해 보이는 것, 필요 없는 것 무엇이든 그녀의 관심 레이더에 포착되면 구매버튼을 누르기 일쑤였다.

그렇게 배달온 택배상자 중 뜯어 보지도 않은 것만 해도 스무개 남짓 되었다. 그래서 인지 우리집, 아니 그녀의 집에는 택배상자가 정말 많았다.

그런 쓰고 남은 택배 상자 안에 아무렇게나 넣어 놓은 내 물건들.

나는 상자 앞에 쭈그리고 앉아 물건들을 확인했다.


"내 칫솔은?"

"칫솔? 그거 이제 안쓰는 줄 알고 화장실 청소할 때 썼는데."


거짓말. 니가 화장실 청소를 한다고?

이건 일부러 나를 긁으려고 하는 소리다.

이 집의 모든 청소는 내 몫이었다. 설거지, 빨래, 정리 모두 내가 도맡아했다.

왜냐? 내가 하지 않으면 평생 안 하고 살 사람이었으니까.

그걸 제외하고는 옷, 책, 화장품, 모두 잘 들어가 있었다.

이제 지분 나누기 시간이다.


"어떻게 하기로 했는 지 기억하지?"

"중고나라 검색해서 가격 책정. 매물 없을 경우는 정가에서 반값으로"

"좋아. 먼저, 밥솥."

"너 밥 안 해먹잖아. 내가 가져가. 중고나라 4만5천원이네."

"2만2천5백원."


나는 핸드폰을 꺼내 메모장에 그녀의 이름을 적고 22500원을 적었다.


"다음, 캡슐커피머신. 저건 내가 가져갈래."

"저거 너 마시긴 해?"

"가끔."


개뿔. 그냥 유행따라 예쁘다고 산 거다.

나는 커피를 안 마신다.

장에서 안 받아줘서 커피만 마시면 화장실을 무조건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코코아도 되고 아이스티도 가능하다며 이런 저런 꼬드김 후에 돈을 뜯어가듯 가져가 '함께' 산 캡슐커피머신이다.

그녀도 머신을 사고 일주일은 같이 동봉된 캡슐의 커피를 매일 아침마다 뽑아 마셨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그 이후로 추가 커피 캡슐을 산 기억이 없다.


"그래, 그럼. 너 가져가. 삼만원 줘."

"그럼 나 받을 거 빼서 칠천오백원 줄게."

"그러던가."


커피머신 이후에도 여러 물건들을 중고나라에 검색해가며 지분을 나눴다.

그리고 모든 계산이 끝나고 난 후, 내 메모장엔 내가 받을 3만5천5백원이 적혀있었다.

이 35500원만 받으면 그녀와 나의 관계는 깔끔하게 정리된다.

더는 그녀에게 받을 것도 줄 것도 없다.

이제 정말로 끝인 것이다.

박스 안에 가득 찬 그녀의 흔적이 담긴 나의 물건들...

그리고 이 집에 남은 나의 흔적이 담긴 그녀의 물건들...

따뜻한 봄날의 꽃 같던 우리도 한겨울 시베리아발 북서풍처럼 차갑게 변했다.

아... 또 울면 안 되는데...

차갑고 냉철해지자고 했던 아까의 다짐을 잠시 잊고 감성에 젖어버린 나였다.


"이제 끝이네."

"그렇네."

"... 마지막으로 한 번 안고 끝낼까?"


이 말은 했으면 안 됐다. 말이 끝나기도 전, 아니 입에서 꺼내는 와중에도 후회를 했고 오늘 저녁 잠자리에 누워 이불킥을 수차례 할 것이란 예상도 했다.


"뭐래 병신같이... 야 김도하. 좆까응 소리하지 마."


그녀의 루틴이다. 그녀는 항상 욕을 하기 전, '좆까응 소리하지 마' 라고 말한다.

구수한 발음의 찰진 아저씨 같은 욕도 사실 내가 그녀에게 빠졌던 매력 중 하나였다.

이게 좆같은 인지 좆까는 인지는 항상 궁금했지만 그녀가 이 말을 꺼낸 순간은 그걸 궁금하다고 물어볼 수 있는 순간이 아니란 것 쯤은 내 눈치로 알고 있었다.


"아, 알았어..."


마지막까지 찌질해 보였다. 나는 그냥 우리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끝내고 싶었을 뿐인데 그녀는 나를 어떻게 봤을까. 아직 자신을 못 잊고 미련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병신 같이 왜 그런 말을 했지?

너무 부끄럽다.

다시 손이 벌벌 떨려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돌아가기 싫다.

이렇게 진 거 같은 기분은 너무 싫다.

마지막으로라도... 그래. 마지막으로라도 시원하게 욕 한바가지 퍼붓고 나가고 싶다.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쌍욕을 한 번 하고 나가자.

내 마음이라도 후련하게.


"왜?"


나는 아직 무슨 할 말이 남았냐는 듯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보는 그녀를 노려보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쉰 후 상상했던 말을 내뱉었다.


"야, 넌 진짜 나쁜 애야. 알아? 이 씨ㅃ-"


그때였다.


위이이이잉-

삐-용-삐-용-


거의 동시에 나와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디 지진이라도 난 건가? 요 근래 지진이 잦아졌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갑작스레 울린 문자에 하고 싶은 욕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나는 타이밍을 놓친 탓에 다시 그냥 욕을 하고 가기도 뭐한 것 같아서 그냥 물건이 담긴 상자를 들고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도하야..."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나를 쳐다봤다.

이제 벌벌 떨리는 손은 그녀의 손이었다.

그녀는 리모콘을 찾았다.

아, 티비도 나눴어야 하는데.

내가 경품으로 받은 중소기업 40인치 티비. 그녀의 아이디로 게임하다가 이벤트에 당첨 되서 받은 건데 이 경우는 어떻게 나눠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 티비가 켜졌다.


"현재 원인 모를 바이러스로 인하여 전국에 대규모 전염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신체 접촉으로 인해 전염이 되며 전염 되었을 시, 이성을 잃고 주변의 생물을 물어 뜯으려는 행동을 보입니다. 영화 속 좀비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외부에 계신 분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다른 이와의 접촉을 사전 차단해주시고 밖으로 절대 나가지 마십쇼.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다른 이와의 접촉을 차단해주시고 밖으로 절대 나가지 마십쇼. 전국에 원인 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으아아아아아!"


작가의말

첫작품입니다. 재밌게 봐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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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친과 헤어진 날, 좀비가 나타났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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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또 다른 생존자 +2 19.11.13 43 4 10쪽
5 세상에 남겨진 이들 +1 19.11.08 54 5 12쪽
4 어떻게든 쓰인다 19.11.07 57 5 10쪽
3 일용할 양식 +2 19.11.06 80 5 7쪽
2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10계명 19.11.05 79 6 9쪽
» 지분 나누기 +2 19.11.02 132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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