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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한 님의 서재입니다.

전여친과 헤어진 날, 좀비가 나타났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송도한
작품등록일 :
2019.11.02 09:53
최근연재일 :
2019.11.13 12:40
연재수 :
6 회
조회수 :
447
추천수 :
31
글자수 :
25,184

작성
19.11.08 12:05
조회
54
추천
5
글자
12쪽

세상에 남겨진 이들

DUMMY

고양이들의 소리를 듣고 좀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천천히, 내려가는 좀비와의 거리를 유지한 채 계단을 내려왔다.

손에 가득 찬 땀 때문에 난간을 잡은 손이 미끌거려 넘어질 뻔도 했지만 무사히 3층에 도착해 집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이마에는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아까 문을 닫을 때 난 퍽 소리가 그녀의 이마가 문에 부딪히는 소리였나 보다.


"이마 괜찮아?"

"너야말로 괜찮아? 안 물렸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그제야 좀비가 잡았던 발목을 요리조리 살폈다.

너무 강하게 눌러서 살짝 멍이 들긴 했지만 물리거나 긁힌 자국은 없었다.


"안 물렸어. 다행이다. 작전이 통했어. 좀비들 다 내려갔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나를 안아준 것이다.

그 와중에도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문을 재빨리 닫은 건 인간으로서 가지는 희생정신일까 아니면 아직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일까.

그녀 또한 내가 걱정이 되었었는지 무사히 돌아온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


"음..."


그녀와 나는 언제 이 포옹을 풀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에 알맞은 타이밍을 놓쳐 어색한 순간을 맞이했다.

어정쩡한 자세로 다시 포옹을 푼 우리.


"피!"

"어?"


내 무릎에선 바지 면을 뚫고 붉은 자국이 번지고 있었다.

아까 넘어지면서 무릎이 깨진 듯 했다.

참 희안한게 아프다고 느끼지도 않았었는데 다친 상처를 보니 아파오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방금 전에 나를 안아줬던 그녀는 몇 발자국이나 떨어진 상태에서 나를 주의경계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야, 아까 넘어져서 다친 거야. 물린게 아니라!"

"그..그래?"


역시 그렇지.

저 눈빛.

언제나 나를 경멸하는 듯 쳐다보던 그 시선.

입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눈으로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

잠깐 뭉클했던 마음이 다시금 싸그리 뭉게졌다.


"어서 나갈 준비 해."


그녀와 나는 운동화로 갈아 신은 후, 택배상자를 잘라 팔과 다리에 대고 테이프를 감았다.

좀비가 물 수 있을 만한 곳은 다 감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집에는 의외로 쓸만한 물건들이 많았다.

그녀는 1년에 두 번은 쓸까말까한 자전거 헬멧으로 머리를 보호했고, 여행갈 때 쓸거라며 사놓고 정작 여행은 간 적도 없어 쓰지 못 한 휴대용 목베게를 목에 감아 목을 감췄다.

나는 그녀의 목도리를 빌려 목에 감은 후, 모자를 쓰고 스키용 고글을 써 얼굴을 보호했다.

거울을 통해 본 우리의 모습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전사의 모습이었다. 매드 맥스, 아키라, 워킹 데드, 메트로 2033 등등.

뭔가 코드를 맞춘 할로윈 분장 같기도 하고 양평에 오토바이를 타러 나가는 커플 바이커룩 같기도 했다.

빈 가방도 각자 하나씩 맸다.

이 집에서 가져갈 것은 별로 없었지만 식량도 넣어야하고 생존에 필요한 것들도 줍는 대로 챙겨야 했기 떄문이다.

새로운 무기도 필요했다.

칼은 리치가 짧아서 너무 위험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좀비가 내 눈 앞 가까이 왔을 때나 써야지 그 전에는 되도록이면 쓰는 걸 자제해야 한다.

나는 커튼을 뜯어낸 후 커튼 봉과 장미칼을 테이프로 묶어 마치 창처럼 만들었다.

이리저리 찌르고 휘둘러보니 어느정도 제 역할은 해줄 것 같았다.

그녀도 저편에서 뭔가 뚝딱뚝딱 거리며 만들고 있길래 조용히 다가가 무엇을 만드는 지 어깨 너머로 관찰했다.

그녀가 고른 무기는 바로 무선 믹서기였다.

시중에서 도깨비 방망이로 쓰는 핸디형 믹서기.

거기다 무선이어서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사용할 수 있어 야외, 캠핑이나 피서 갔을 때도 손쉽게 쓸 수 있는, 직장 다니는 남편, 공부하는 자녀, 건강식품이 필요한 부모님을 위한 간편한 과채음료를 만들 수 있는데다 가격도 저렴해 3만 9천 8백원에 파는 홈쇼핑 산 믹서기였다.

역시나 봄에 딸기를 몇번 갈아 마시고는 어딘가 쳐박아뒀던 믹서기.

그녀는 무선 믹서기를 운동 한다고 사뒀던 간이 철봉틀에 테이프로 고정 시킨 후, 스위치를 켰다.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믹서기는 그야말로 위협적인 무기였다.

그녀는 벽에 대고 그녀의 무기를 시험해 보았다.

그녀의 무기가 벽을 스윽 훑자 벽지가 뜯기고 콘크리트 가루가 날리며 벽에 큰 자국을 남겼다.


"어때? 이정도면 될까?"

"...나쁘지 않네."


모든 준비를 다 마쳤다.

이제 우리는 좀비들을 피해 지하철역으로 도착해야 한다.

그리고 교외로 나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자.

안전한 곳.

지금 이 상황에서 안전한 곳은 어딜까.

사람이 많은 곳? 전염된 사람이 숨어있을지도 모르고, 갑자기 좀비로 변하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사람이 없는 곳? 식량을 구하기도 쉬울 거고 좀비들을 피해 움직이는 데도 용이할 것이다.

혹시 그녀와 내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인류라면 어떡하지?

아담과 이브처럼 그녀와 내가 인류의 계보를 다시 이어나가야 할까?

그녀가 다시 나를 받아줄까?

뭐, 종말의 상황에서 종족 보존이 가장 중요한 일 아니겠는가.

번식은 생명체의 본능이니까.


"왜?"

"어? 아니야..."


나도 모르게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이런 저런 상상을 하고 있었다.


"자, 준비 됐지?"

"응."

"내가 먼저 나갈게, 조심히 따라와."

"알겠어."

"아까처럼 넘어지기만 해봐, 그땐 너 버리고 갈테니까."

"응."


그녀는 나가기 전 집을 한 번 스윽 둘러보았다.

그녀가 5년을 살았던 곳.

나와는 2년을 함께 지냈던 곳.

이곳에서의 추억을 조금이라도 더 눈으로 담아두려는 그녀가 느껴져서 나는 어서 나가자고 재촉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지금 담고 있는 추억 속에는 나도 분명 있을테니까.


"가자."


그녀는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천천히 천천히 몸을 내밀어 좀비들이 있는 지 확인했다.

다행히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좀비가 없었다.

그녀는 뒤돌아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계단을 통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숨막히는 고요함 그리고 긴장감...

신발과 바닥이 닿는 소리라도 날까봐 조심히 걸었지만 옷에 한껏 달아놓은 상자 방어구와 길고 긴 무기 때문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벽면에는 우리가 던졌던 츄르가 사방팔방에 묻어있었고 츄르를 먹으러 올라왔던 고양이들이 츄르를 밟고 뛰어다닌 발자국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좀비들 것으로 보이는 질질 끌린 발자국들 또한 볼 수 있었다.

나는 손에서 나는 땀을 바지에 닦은 후 다시 무기를 고쳐 쥐었다.

이제 곧 1층.

저녁이 아니면 관리하는 아줌마가 입구 자동문을 항상 꺼놓고 열어놨기에 고양이들도 들어올 수 있었고 좀비들도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툭- 툭- 툭- 툭-


반계단만 내려가면 1층인데 아래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툭, 툭, 하며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소리.

그녀는 손을 들어 잠시 멈추자는 사인을 보냈다.

나는 창을 높게 들어 그녀 너머에 무언가 튀어나온다면 찌를 수 있게 준비했다.

하지만 실수로 그녀를 베면 어떡하지...

그녀도 믹서기의 스위치에 손을 갖다대어 곧바로 믹서기를 켤 수 있게 준비를 했다.

우리는 다시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발을 뗐다.


툭- 툭- 툭- 툭-


무사히 일층으로 내려온 우리가 목격한 것은 자동문에 걸쳐 쓰러져있는 좀비 한마리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좀비가 밟고 넘어졌는지 냄비가 살짝 찌그러진 채로 놓여있었다.

좀비는 넘어지면서 바닥에 입부분을 강하게 부딪혔는지 턱이 완전히 부러져 너덜거리고 있었고 허리도 다쳤는지 일어나지 못하고 그냥 그자리에 누운 상태로 팔, 다릴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좀비가 넘어지면서 자동문을 건들였는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자동문이 닫히면 그 사이에 있는 좀비에게 부딪혀 다시 열리고, 또 얼마 있다가 다시 닫히다 좀비에게 부딪혀 열리고를 반복하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녀는 슬쩍 자동문 너머를 확인해보았다.


"다른 좀비들은 없어. 다 나갔나봐."

"그럼 쟤 혼자 남은 거네?"

"응."


우리는 다시 넘어져있는 좀비를 쳐다봤다.

마치 너무 싱싱해서 조금씩 움직이는 횟감처럼 좀비는 계속해서 팔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책에서 배운대로, 머리를 자르면 될 거야."

"그냥 네 믹서기로 갈아버리면 안 될까?"

"바보야, 소리가 나잖아."


소리가 나서 안 쓸거면 너도 칼을 달지 그랬니.


"그 칼로 머리를 찔러. 뇌를 찔러야 해."

"으응.."


나는 창의 가장 끄트머리를 잡아 최대한 좀비와의 거리를 멀게 한 후, 창에 달린 칼을 이용해 좀비의 머리를 밀듯이 찔렀다.


툭!


말 그대로 툭이었다.

사람의 뇌를 보호하는 두개골은 뼈중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는 아니지만 왠만한 힘으로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특히 지금 내가 창을 잡은 자세로는 내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좀비의 머리를 뚫을 리 만무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찔러."

"너가 찌를래?"

"이런 것도 못 해? 그냥 누워있는 좀비잖아."


그녀는 또 다시 한심한 듯 날 쳐다봤다.

오기가 생기게 만드는 그녀의 저 재수없는 눈빛.

나는 다시 창을 올려 잡았다.

그리고 조금 더 좀비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누워있는 좀비의 모습이 더 자세히 보였다.

좀비로 변한 지 얼마 안 됐을 터인데 몸에서는 썩은내가 진동을 했고 부러진 턱에서는 고름 같은 누런 물이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먹은 게 있었다면 아까 앵커를 봤을 때처럼 시원하게 토를 한바탕 했을 거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힘을 주어 창을 잡았다.

그리고 창을 밀었다 당겼다하며 속으로 계속해서 되새겼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당구공 치듯이. 안 어려워. 정확하게... 한방에...'


나는 마음속으로 셋...둘...을 세고 마지막으로 하나를 외친 후 창으로 좀비의 머리를 강하게 찔렀다.

많은 매체에서 좀비를 봤었으니 알겠지만 좀비는 살이 썩어있다.

피부는 매우 약한 상태다.

이번에는 너무 강하게 찌른 탓일까, 좀비 머리의 두개골을 뚫고 칼을 뇌까지 집어넣는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힘을 너무 준 나머지 약해진 좀비의 목덜미가 뜯겨져 나갔고 창이 꽂힌 머리는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나 역시 내가 힘껏 힘을 준 방향으로 발사하듯 날아갔다.

앞으로 쏠린 나는 좀비를 밟은 후, 균형을 유지하려다 다시 앞으로 굴러 넘어지며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빌라 밖으로 탈출한 것이다.

모양새는 좀... 별로였지만.

그냥 평소였다면 팔꿈치며 손바닥이며 까져서 피가 났을테지만 이 종이상자 방어구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나는 앉은 채로 몸 여기저기를 털며 말했다.


"봐-봤지? 할 수 있다니까. 이제 나와."


뒤이어 그녀가 머리가 잘린 좀비를 넘어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바로 양 옆에는 내가 굴러나오며 미처 확인하지 못 했던 좀비 두마리가 그녀를 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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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또 다른 생존자 +2 19.11.13 43 4 10쪽
» 세상에 남겨진 이들 +1 19.11.08 55 5 12쪽
4 어떻게든 쓰인다 19.11.07 57 5 10쪽
3 일용할 양식 +2 19.11.06 81 5 7쪽
2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10계명 19.11.05 80 6 9쪽
1 지분 나누기 +2 19.11.02 132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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