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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한 님의 서재입니다.

전여친과 헤어진 날, 좀비가 나타났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송도한
작품등록일 :
2019.11.02 09:53
최근연재일 :
2019.11.13 12:40
연재수 :
6 회
조회수 :
449
추천수 :
31
글자수 :
25,184

작성
19.11.07 12:05
조회
57
추천
5
글자
10쪽

어떻게든 쓰인다

DUMMY

츄르.

고양이들의 간식이다.

어감도 그렇고 간식이기 때문에 츄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달달한 맛이 아닐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츄르는 고양이들 간식이다.

고양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뭔가, 바로 생선이다.

고양이들이 츄르를 보면 미쳐 날뛰는 것도 지들이 좋아하는 생선 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다, 츄르는 굉장히 비린 생선맛이 난다.

그런 츄르의 엄청난 사실을 나는 내 입으로 직접 먹고서야 알았다.


"우웩"


반쯤 먹다 헛구역질이 나서 도저히 더는 삼키지 못 하였다.

생선을 갈아서 만든 요거트가 있다면 분명 이런 맛일 거다.

내 반응을 보더니 그녀는 뜯었던 츄르 한 봉지를 슬며시 상자에 다시 넣었다.


"고양이도 없으면서 츄르는 왜 산 거야?"

"가끔 집 앞에 길고양이들이 울잖아, 저 번에 편의점에서 몇 개 사줬더니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걔네 주려고 사놨지."


차라리 참치캔을 샀다면, 마른 오징어나 육포를 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늘에서 내려온 줄 만 알았던 츄르도 그냥 썩은 동앗줄이었다.

나는 다시 베란다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옷을 묶어서 내려가면 되지 않을까?

나는 재빨리 그녀의 옷장으로 가 옷장문을 열었다.


"뭐해?"

"셔츠를 묶어서 로프로 써볼까해서."


옷장에서 묶을 수 있는 소재의 옷들을 다 꺼내보았다.

총 여섯 벌.

바닥까지 닿진 않겠지만 1층 정도까진 내려갈 듯 했다.

그정도에서 뛰면 다치진 않을 것이다.

다시 거리를 재기 위해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에는 그녀가 이미 바닥을 내려다보며 무언갈 보고 있었다.


"뭐 봐?"

"야옹이. 저기 또 왔어."


그녀가 보는 곳을 나도 내려다 봤다.

그곳에는 검은 고양이가 자동차 본네트 위에 올라가 우리를 보며 앉아 있었다.


"좀비는 없지?"

"응, 안보여. 냐옹아~"


그녀가 고양이를 부르자 고양이도 그녀를 보고 냐옹 소리를 내며 화답하였다.


"소리 듣고 좀비 올라, 조용히 해."


나는 다시 돌아가 옷들을 묶었다.

생각보다 길이가 짧아 마지막 부분은 약하더라도 목도리를 추가로 묶었다.

일단 내가 먼저 내려가야겠지? 내려가서 주변을 살핀 후, 그녀가 잘 내려오게 도와주면 되겠지? 대로변은 위험하니 골목으로 다니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조용히 움직이라 그랬으니, 맞아, 신발도 운동화로 갈아신어야지.

이런저런 탈출 플랜들을 이미지화 시키며 준비를 하던 와중, 베란다 바깥에서 나는 소리가 안방까지 들려왔다.


냐옹~ 냐옹~ 냐옹~


이건 독주가 아니었다. 적어도 삼중창, 합창단은 될 듯 했다.

베란다로 돌아갔을 때, 그녀는 계속해서 베란다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고양이가 많아졌는데?"


재빨리 내려다 보니 아까의 검은 고양이 말고도 얼룩이, 하양이, 노랑이 등등 대여섯 마리의 고양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울고 있었다.

츄르의 힘이었다.


"츄르 달라고 우나봐."

"저러다 좀비오면-"

"좀비다!"


어째서 불안한 느낌은 틀리지 않는 걸까.

고양이의 합주 소리를 듣고 세 네 마리의 좀비들이 어슬렁대며 고양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냐옹아 도망쳐!"


그녀가 소리를 지르자 고양이들은 좀비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한 때 집사였던 좀비들에게서 집사의 모습이 보이질 않자 캭 소리를 한 번 내고는 뿔뿔히 흩어졌다.

목표를 잃은 좀비들은 두리번 거리다 고양이가 올려다보던 위를 쳐다봤고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이제 베란다로 내려가긴 글렀다.

그놈의 츄르는 왜 줘가지고.

나는 절망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젠 여기서 구조대가 오길 기다리다 죽던가, 츄르를 먹으며 연명하던가, 아니면 문을 열고 나가다 좀비 밥이 되던가, 셋 중 하나일테다.

문 앞에 좀비들도 츄르를 좋아했었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츄르 한 봉지를 뜯어 베란다 밖으로 던져보았다.

한 좀비 머리에 정통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머리에 츄르를 맞은 좀비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다시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나를 올려다 보았다.


냐옹~


아까 그 검은 고양이였다.

츄르가 떨어지는 걸 보고 다시 찾아왔다가 좀비를 보고는 재빨리 사라졌다.

츄르라면 귀신 같이 알고 달려오는 듯 했다.


"츄르..."


내 머릿속에 스파크가 튀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츄르라면...

나는 재빨리 츄르상자로 달려가 상자를 엎어 츄르를 쏟아냈다.

수 십 봉지의 츄르들이 바닥에 촤르르 떨어졌다.


"츄르. 이거로 나갈 수 있어!"


나는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더미를 덮어뒀던 냄비를 가져왔다.

그리고 냄비에 츄르를 잘라 짜내기 시작했다.


"이걸 왜 짜?"

내 모습을 보고 있던 그녀도 어느새 내 옆으로 와서 츄르를 짜내며 물었다.

이럴 때는 참 호흡이 잘 맞았다.

일단 행동부터 하고 뒤에 생각하는 그녀.

추진력이 있는 타입이랄까?


"미끼야. 이걸로 좀비를 유인할 거야."

"좀비는 츄르를 안 먹잖아."

"좀비는 츄르를 안 먹지. 츄르는 고양이가 먹지."

"그럼?"

"츄르는 고양이가 먹고, 고양이는?"

"고양이는... 너 지금 저 고양이들을-"


그렇다. 츄르를 가득 담은 냄비를 계단 아래로 굴려 보내면 츄르를 먹으러 고양이가 올 것이고 모여든 고양이를 먹으러 좀비가 내려갈 것이다.

그 틈을 타서 좀비를 피해 집을 나간다.

이게 내 플랜이었다.

먹지 못 할 츄르라도 쓰일 곳은 있었다.


"알아서 잘 도망칠 거야. 아까도 봤잖아."


그녀는 나를 야만인처럼 쳐다봤지만 그녀도 이 방법이 최선이라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모든 츄르를 냄비에 다 쏟아냈고, 대문 앞에 서서 냄비를 던질 준비를 했다.


"셋 둘 하나 하고 문을 열어. 그러면 내가 이걸 계단 쪽으로 던질게."

"내가 던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녀의 제안에 잠시 곰곰히 생각해봤다.

확실히 운동을 잘하는 그녀가 던지는 것이 성공률이 높을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냄비를 건네고 문손잡이를 잡았다.


"자, 준비 됐지?"

"응. 계단 난간 쪽으로, 최대한 아래까지 떨어지게."

"간다. 셋. 둘."


그녀와 나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숫자를 셋다.

생사를 앞둔 긴장감과는 다른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최근에 그녀의 눈을 이렇게 집중해서 바라봤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뭐해."

"어? 미안."

"야, 김도하. 집중해."

"알았어. 다시 셀게. 셋, 둘, 하나!"


나는 이번엔 문고리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숫자를 센 후 대문을 힘차게 열었다.

우리가 문을 열자 문 앞에 서 있던 좀비 셋이 문에 부딪히며 우어어 거리는 소리와 함께 넘어졌다.

좀비가 넘어지는 건 예상 밖이었다.


"어?"


순간, 몸이 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문을 열고, 그녀가 던지고, 문을 닫는다'를 계속해서 되뇌였다.

내 다리는 시뮬레이션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 한 상황이 벌어졌다.

좀비 세 마리가 도미노처럼 줄줄이 넘어질 줄이야.

좀비가 넘어지는 걸 보고 그냥 이 틈을 타서 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찰나의 순간에 들었다.

이 생각은 뇌까지 오지도 않고 척수만 거친 후에 몸의 반응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왜냐면 내 상체는 계단을 바라보며 아래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순간 속에서도 그녀가 던진 냄비는 정확히 계단과 계단 사이 틈을 향해 날아가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츄르를 사방에 뿌려대고 있었다.

갑작스런 사고를 겪었을 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낀 적이 있는가?

지금 내가 그렇다.

나는 상반된 상하체의 움직임 때문에 몸의 중심을 잡지 못 하고 넘어지며 집 밖으로 구른 채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도하야!"


한 순간의 용기였다.

좀비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고 그녀는 다시 문을 열고 나오려 하고 있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세 마리의 좀비가 있었다.

최소한 누구 하나는 물리고 말 것이다.

아까의 앵커처럼 살점이 뜯겨 나가고 저 좀비들처럼 이성을 잃고 돌아다니게 되겠지.

나는 넘어진 채로 재빨리 문을 발로 차서 닫는 데 성공했다.

문이 닫기며 무언가 퍽 하고 부딪힌 소리가 나긴 했는데... 일단 지금 중요한 일부터 헤쳐나가야 한다.

거의 네 발로 걷다시피 해서 계단을 향했다.

그때, 좀비 하나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나머지 두 좀비는 완전히 일어나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문에 내려가는 방향이 막혀버려 내려갈 수는 없었다.

나는 다른 발로 좀비의 팔을 걷어차고 일어나 계단을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가며 문들을 두드리고 고리를 돌려봤지만 모두 출근을 했는 지 아니면 무서워서 숨어있는지 문 너머에선 아무런 답이 없었다.

5층이 최고층인 저층 빌라였기에 끝까지 올라 오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옥상에 옥탑방이 있었지만 주인이 외출 중인지 문고리는 잠겨있었다.


"씨발..."


계단을 내려다보니 좀비가 올라오는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열심히 살 걸, 부모님한테 잘해드릴 걸 같은 평소에도 가끔은 하지만 다음에 하지 라며 넘겼던 후회들이 지금은 간절하게 느껴졌다.


"부처님예수님알라공자선생님. 제발 부탁입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믿지도 않는 신들을 나열하며 숨 죽여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지만 신들이 있었다면 이딴 좀비들이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두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고 식은땀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지린 것인지 입고 있던 옷은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두 젖어 있었다.

나는 이내 두 눈을 감고 마지막 기도를 했다.

그냥 아프지만 않게 끝내 달라고.

그때 였다.

나에게 들려오는 희망의 소리.

천사들의 세레나데.

저 아래 어디선가 울려오는 거룩한 찬송가.


냐옹~


츄르 냄새를 맡고 고양이들이 모였다.


작가의말

고양이 귀여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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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든 쓰인다 19.11.07 58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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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10계명 19.11.05 80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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