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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한 님의 서재입니다.

전여친과 헤어진 날, 좀비가 나타났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송도한
작품등록일 :
2019.11.02 09:53
최근연재일 :
2019.11.13 12:40
연재수 :
6 회
조회수 :
445
추천수 :
31
글자수 :
25,184

작성
19.11.06 12:05
조회
80
추천
5
글자
7쪽

일용할 양식

DUMMY

꼬르륵...


뱃가죽이 등에 닿는 소리가 정적을 뚫고 내 귀에까지 들렸다.

3시간...

그녀와 나는 아무 말 없이 3시간을 대문만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혹시 저 문을 부수고 좀비가 쳐들어올까봐...

너무 배가 고프다...

몸을 천천히 일으키자 뭉쳐있던 피가 돌며 살짝 현기증과 함께 쥐가 왔지만 입술을 깨물고 억지로 참았다.


"어디가?"

"먹을 것 좀 있나 보게."


부엌으로 가려고 하자 그녀가 내 앞을 막아섰다.


"안 돼."

"왜?"

"그냥 안 돼."

"뭐라도 먹어야 할 거 아냐."

"없어..."

"없다니?"


나는 그녀를 요리조리 피해 부엌에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부엌 근처에 가자마자 이상한 하수구 냄새가 내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내가 이 집에서 나간 건 5일 전 저녁.

갑작스런 이별과 퇴거 통보에 만들어 놨던 볶음밥도 제대로 다 먹지도 못하고 집을 나오고 말았다.

그때 썼던 후라이팬과 식기가 싱크대에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거 내가 나갈 때 있던 거 아냐?"

"내일 대청소하면서 설거지도 하려고 했지."

"아니 그래도 그렇지..."


하얀 그릇에 담긴 물기 위에는 기름기와 함께 시꺼먼 곰팡이도 둥둥 떠다녔다.

가까이서 살짝 들쳐보니 썩은내가 아니라 토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까 그녀의 소파에 토를 했던 게 미안했었는데 이를 보니 그냥 이 집에서는 토냄새가 계속 나고 있었다.


"우엑..."


나는 설거지더미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려고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었지만 물은 나오지 않았다.

안 쓴 냄비 하나를 덮어 냄새를 막은 후 곧바로 냉장고를 열었다.

피자 시켜 먹을 때 왔던 피클, 치킨 먹을 때 안 먹은 치킨무, 햄버거랑 같이 온 케챱...

그것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았지, 먹다 남은 걸 넣어둬서 다 쉬고 곰팡이가 펴있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곤 이 집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3일 전 금요일이 장보는 날이었으니까, 장도 내가 봤었고 요리도 내가 주로 했었으니까.

내가 없는 사이엔 나가서 사먹거나 배달을 시켜 먹었을 것이다.


"그럼 먹을 게 하나도 없는 거야?"

"배고파?"


그녀가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무슨 알약이 담긴 통이었다.


"이거 다이어트 할 때 먹는 건데 공복감을 없애줘서 덜 배고프게 만드는 거야. 이거라도 먹을래?"


상상속으론 저 알약통을 뺏어 땅바닥에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배고픔을 없애준다니 속는 셈 치고 손을 슬쩍 내밀었다.

물도 안 나오고 마실 물도 없어 계속 생레몬을 한 입 베어무는 상상을 하며 침을 모았고 어느 정도 침이 모이자 그걸 물 삼아 알약 두 알을 삼켰다.

조그마한 알약 두 알이라도 들어가서 인지 아니면 그냥 필라시보 효과 같은 기분 탓인지 조금의 배고픔은 덜어낸 듯 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다이어트 알약만 먹을 수는 없었기에 식료품을 구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죽을 끓이면 먹을 수 있다던데 가죽으로 된 신발이나 옷이 있었나?"

"다 인조가죽인데 괜찮아?"

"아... 인조가죽은 못 먹나?"

"아니면 창문 밖으로 나가서 몰래 빠져나갈까?"


나는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집은 3층, 오늘 따라 저 땅이 엄청나게 낮아보였다.

계속 내려다보고 있으니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듯이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려가다 다치기라도 하면 끝장이야."

"바로 앞이 편의점인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발견한 그녀의 택배상자들.

가끔 그녀는 건강식품들도 주문했었다.

물에 타먹으면 좋다고 과일식초를 시키거나 요리하기 귀찮을 때 먹을 거라며 레토르트 식품들을 사곤 했다.


"저긴 뭐 없어?"

"옷이랑 뭐 그런 것 밖에 없을 건데."


나는 상자로 가까이가 털썩 앉아 택배 상자를 뜯기 시작했다.

그녀도 내 옆으로 와 같이 상자를 뜯었다.

대체로 옷이나 책, 그리고 펀딩 사이트에서 공동구매한 예쁜 쓰레기들이었다.

캠핑은 가본 적도 없는 애가 도대체 왜 캠핑세트를 샀는 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이해는 예전에 포기했었다.

한심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자전거 헬멧을 이리저리 만지작 거리며 머리에 써보고 있었다.

내 표정을 그녀가 못 본 것이 다행이었다.

봤다면 저 헬멧이 내 머리로 날라올 것이 뻔했으니까.

그녀는 나와 달리 외향적이었다.

운동을 좋아했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했다.

가입한 동호회도 많았고 이걸로 다툰 적도 많았다.

사람들도 그녀를 좋아했다.

낯도 안 가리고 털털하고 운동도 좋아하고 밝은 성격을 가진 사람을 안 좋아할 리 있겠는가.

나도 그런 그녀의 밝은 면들을 보고 그녀를 좋아하게 됐었으니까.

우리가 처음 만난 것도 사실 동아리였다.

친구 따라 들어가게 됐던 연극 동아리에서 그녀를 처음 보게 되었다.

풋풋했던 그때, 우리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조명을 담당했었고 그녀는 주인공 배우를 맡았었다.

그녀의 당당하고 멋진 모습을 조명으로 비춰주길 몇 개월, 나는 그녀에게 빠지고 말았었다.

물론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친구의 멱살을 잡고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을 말릴테지만.

그렇다고 바로 연애를 한 것은 아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군대를 갔고 제대하고 왔더니 그녀가 휴학을 했다.

그렇게 몇년을 우리는 빙글빙글 돌다가 졸업을 하고서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연극동아리 공연에서.

동아리에서 공연을 할 때는 선배들에게 문자를 보내 초청한다.

몇 년을 안 가다가 같이 동아리를 다니던 친구가 한 번 가보자고 해서 갔던 그 자리였다.

그 곳에서 그녀와 다시 몇 년만에 재회했다.

그녀는 더 아름다웠고 나는 더 늠름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찾았어!"


추억에 잠겨 멍하니 있다가 그녀의 외침에 내 정신은 다시 현실로 복귀하였다.

그녀는 기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보니 그때 나를 처음 보고 웃어주던 그 얼굴이 떠오르는 것도 같았다.


"우리 먹을 수 있어!"

"정말? 뭔데?"


그녀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상자 안에서 무언가를 집어 나에게 내밀었다.

눈을 꿈뻑이며 그녀가 내민 것을 쳐다보려는데 내 얼굴에 너무 가까이 내밀어서 초점이 잡히지 않아 한 눈에 그 물체를 볼 수가 없었다.

눈이 잠시 초점을 맞출 시간을 가지자 그녀가 내민 손에 잡혀있는 물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민 우리의 일용할 양식, 우리의 배고픔을 잊게 해줄 선물, 여기서 버틸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은 바로...


"츄르!"


츄르였다.


작가의말

츄르는 고양이들 간식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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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친과 헤어진 날, 좀비가 나타났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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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또 다른 생존자 +2 19.11.13 43 4 10쪽
5 세상에 남겨진 이들 +1 19.11.08 54 5 12쪽
4 어떻게든 쓰인다 19.11.07 57 5 10쪽
» 일용할 양식 +2 19.11.06 81 5 7쪽
2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10계명 19.11.05 79 6 9쪽
1 지분 나누기 +2 19.11.02 132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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