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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더 님의 서재입니다.

어나더 월드(Another world)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발라더
작품등록일 :
2021.05.12 16:16
최근연재일 :
2021.07.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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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1.06.0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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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40화

DUMMY

세 마리의 코하믄이 전부 쓰러지는 순간 여성은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였다.

"괜찮아요?"

내 말에 움찔 놀라던 여성이 이번에는 앉은자리에서 지팡이를 양손으로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다가오지 마!"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창백해진 얼굴에 땀이 연신 흐르는 것만 봐도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작은 불의 구 하나를 만들어내면서까지 경계하는 모습에,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치료해 드리려는 거니까. 공격하지 마요."

이어서 적대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주려 해왕의 창을 창집에 집어넣고는 말을이었다.

"바투아 저 여성 좀 치료해줘."

그 순간 그레이트 힐링 마법의 녹색 빛과 큐어 마법의 푸른 빛이 몸에 맺혀 들자 몸을 한차례 움찔 떨고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는 그녀다.

"어...?"

잠시 뒤에 고개를 다시 든 여성은 서서히 지팡이를 내리면서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경황이 없었던 탓에 머리 위에 딱 붙어 있는 바투아를 뒤늦게 인지했는지, 바투아를 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정령 바투아?"

이 여성이 나스탈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바투아는 혼잣말 같은 여성의 중얼거림에 자신이 바투아가 맞다고 답해주었다.

"응. 난 바투아야."


여성의 시선은 한동안 바투아와 내게 머물렀다가, 그다음 서서히 흐려져 가는 코하믄의 사체와 주변 일대를 훑어보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내게 닿았다.

약간 경계를 누그러뜨리던 것도 잠시.

"형님!"

천가휘가 불의 벽을 뛰어넘어오며 내는 외침에 그녀도 나도 동시에 벽을 넘어오는 천가휘를 찾아보게 되었다. 문제는 그녀는 천가휘를 모른다는 것이다.


천가휘는 얼추 5m가 넘어 보이는 불의 벽을 뛰어넘어온 것임에도 흡사 나비처럼 살포시 내려앉아 여성을 놀라게 했다. 놀란 여성은 다시 지팡이를 들어 올려 천가휘와 나를 왔다 갔다 가리켰다. 누가 봐도 경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행동이었다.

우리는 미리 짠 것이 아닌데도 같이 뒷걸음질 치면서 양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적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는데,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는 해도 이런 기본적인 몸짓은 말을 하지 않아도 통했다.

"동료에요!?"

여성이 버럭 내지르는 소리에 냉큼 고개를 끄덕여 동료라는 사실을 인정했던 나다. 머리 위에 누워있던 바투아는 그 순간 머리끄덩이를 잡고는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다른 세계의 사람이 섞여 활동하는 곳에서 이런 상황을 겪으면, 아무리 치료해주는 사람이라고 해도 경계하는 건 이해 가능한 행동의 범주에 들었다.

경계하는 여성의 지팡이를 내리게 만든 것은 바투아의 한 마디였다.

"우리 용왕이랑 저기 가오리랑 나쁜 인간 아니야. 그러니 그렇게 적대하지 않아도 돼 여자 인간."


용왕이란 별칭은 이름 용환에서 따온 별칭이라면, 가오리는 가휘에서 따온 별칭.

천가휘는 또 가오리라 부르는 바투아에게 다른 별칭을 만들어달라 투덜대어보지만 바투아는 가오리라는 별칭이 마음에 든다면서 내 머리를 툭툭 치며 웃었다. 꼭 물방울이 머리 위에 툭툭 떨어지는 미세한 느낌이라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성은 정령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지, 아니면 중급 정령인 바투아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몰라도.

바투아의 말에 어느 정도 경계를 풀고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 여성에게 최대한 짧게 사목령에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조언해주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 코하믄이라는 몬스터는 이곳 사목령에 자라는 나무 가시에 독을 발라놓고 인간이든 동물이든 사냥해요. 땅에 솟은 가시를 밟지 않게 주의하시고 좁은 길을 지날 때 나무 가시에 긁히지 않게 주의해야 해요. 그리고 바람총으로 독침을 쏘기도 하니 사목령에서 사냥하실 때는 항상 주변을 경계하셔야 하구요."


여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알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때 천가휘는 허공에다가 손을 까딱까딱 거리면서 여성과 내 시선을 끌었다. 갑자기 허공에서 생겨나는 알록달록한 `케이프 망토`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아이템이었다. 조금 전까지 여성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더니만, 아무래도 여성이 입은 상의 옷이 쇄골 라인 쪽과 복부 쪽에 베이고 조금 타들어 가 맨살이 보였기 때문인 거로 보였다. 지구에서는 일부러 저거보다 더한 옷들도 만들어 입고는 했으니 크게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천가휘는 쭈뼛거리는 몸짓으로 여성에게 다가가 알록달록한 케이프 망토를 내밀었다.

입어요 라는 어색한 말투에 여성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하고는 받아들었다.

방금 건넨 케이프 망토는 어제 타룽을 사냥하고 얻은 일반 아이템.

어제 무슨 이런 희안한 옷이 다 있느냐며 너털웃던 천가휘가 떠올라 웃음이 났다. 천가휘의 성격상 저게 매직 아이템이라 해도 주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더 오랫동안 미소는 머물렀던 것이다.

모든 치료는 그로부터 2분 뒤에 끝이 나게 된다.

케이프 망토를 입고 상처가 있었던 자리를 더듬더듬 만져보던 여성은 말없이 돌아서는 우리를 짧은 말로 불러세웠다.

"저기.....감사합니다."

그녀의 감사인사에 천가휘와 난 옅은 미소와 작은 고갯짓으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짧은 대화는 그것이 끝이었다. 곧장 천가휘와 함께 돌아서서 다시 사목령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코하믄은 우리들에게 그저 걸어 다니는 경험치 같은 존재라 사목령을 지나가는 일은 편안하기만 했다.

조금 전 여성이 불의 벽을 만들어 요란하게 코하믄을 사냥했던 덕분에 꽤 많은 코하믄이 주변에 몰려와 잠복해있었다.


역시 선행에는 언제나 복이 따르는 법이다.

만약 여성을 치료해주지 않고 움직였다면 이렇게 많은 경험치를 한 번에 얻지 못했을 것 같아 드는 생각. 숫자가 서른 마리 가까이 되었는데도 상처하나 입지 않았을 정도로 수준 차이가 나는 몬스터가 코하믄이라는 몬스터였다.

한곳에 모여서 기다려준 경험치를 수확하는 일은 시간과 마력만 조금 드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떼거리로 몬스터가 나타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사냥은 한 번씩 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맡아 이어갔다.

강한 천가휘가 합류한 이후부터는 확실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겨서 좋았다.


사목령 지대의 규모는 꽤 넓었다. 그렇다 해도 오후가 넘어가기 전에는 일월산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예상되었다. 일월산은 팔란투라 산맥 북쪽 외곽에 있는 산으로 산꼭대기에는 거대한 나무 `천계수`가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천계수는 수고 250m에 달하는 데다가 둘레는 큰 빌딩만 해서, 게시판에는 팔란투라 산맥에 들리면 꼭 한 번은 가서 구경해보라고 남긴 글이 많았었다.

천계수에 서식하는 원숭이과 몬스터 `함룽`은 특이하게 밤에는 절대로 천계수 위에서 내려오지 않아 많은 사람이 추천했던 장소였다.

이곳에서도 천계수는 보여서 굳이 지도를 보면서 갈 필요는 없었다.


"나무가 저렇게 큰 것도 신기하긴 하지만 딱 저 나무만 저렇게 큰 게 더 신기한 거 같네요. 형님."

천가휘에게 일월산에 관해 설명해주면서 가던 난 옆을 힐끔거리는 천가휘를 보며 따라 시선을 옮겼다.

옆쪽 먼 곳에서 달려오는 한 마리의 코하믄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든 몬스터든 다가오면 귀신같이 알아채 알려주는 천가휘였다.

이번에는 내 차례라 쥐고 있던 해왕의 창을 고쳐잡고는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 코하믄 역시 달려오다 말고는 다른 쪽을 쳐다보더니 큰 고민 없이 이내 그쪽으로 달려가는 행동을 취했다.


코하믄이 달려가는 방향에는 아까 구해준 여성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무작정 우리 뒤를 따라오는 게 아니라 여성도 천계수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여성은 달려드는 코하믄의 숫자가 한두 마리 정도면 화구를 만들어내어 사냥했고, 그 이상일 때는 불꽃 다발을 만들어내어 사냥을 했다. 대충 패턴을 봐선 아까는 코하믄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광역마법을 사용한 게 아닐까 싶었다.

여성이 다른 방향으로 가서 안 보이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계속 보이는 상황이라 신경을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었다. 우리는 거리를 벌릴 수 있었음에도 여성이 걱정되어 일부러 걷는 속도를 천천히 해 맞춰주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여성이 코하믄을 사냥하는 중에 다른 코하믄이 다가가는 게 보이면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다.

일일이 찾아가서 죽일 필요 없이 바투아의 마법으로 저격하면 되어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영악한 코하믄들은 확실히 남자 두 명보다는 여자 한 명을 노리고 몰려드는 경우가 많아,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굉장히 기분이 언짢았다. 더 적극적으로 도와준 이유는 그 때문이다.


미묘한 동행 관계는 앞서가던 우리가 피로도 조절을 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할 때 달라지게 되었다. 여성이 먼저 다가와 바위 위에 앉아있는 천가휘와 날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어디 사람이에요?"


지구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천가휘가 토란이라는 말에 이번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은 세계의 사람이 아니네요?"


혁신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지금, 다른 세계사람끼리 친해져서 같이 다니는 게 신기해서 하는 질문 같았다. 천가휘도 대충 그렇게 받아들였는지, 웃으며 말했다.


"형님이랑 가는 목적지가 우연히 같다는 걸 알게 되어 제가 동행을 부탁했습니다."


천가휘의 시선이 여성에게서 내 쪽으로 옮겨지니 여성의 시선 또한 따라와 내게 닿는다.


"저는 나스탈에 사는 프레체스 이레니언이에요. 혹시 목적지가 같다면 저도 동행에 껴도 될까요? 불의 사막이라는 곳에 있는 뱅가오그 마을로 가는 길이에요."


불의 사막은 일월산 너머에 있는 곳.

불의 사막에는 세이프티 존인 오아시스 마을이 외곽에만 존재해서 횡단해가려면, 마을에서 정비하고 움직이는 것은 필수였다. 움직이기 불편한 모래지대의 특성과 불이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특이한 환경, 이것 말고도 위험한 것들은 많이 있어서 오아시스 마을에서 하루를 쉬었다가 갈 계획이었다. 며칠 동안 잠을 자지도 못해서 불의 사막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방금 여성이 말한 뱅가오그 마을은 우리가 쉬어가기로 정한 마을이다.


"저희도 뱅가오그 마을로 가는 중이기는 한데...."


혼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먼저 옆에 있던 천가휘에게 의사를 물어보았다.

괜찮겠냐는 내 말에 천가휘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전 형님의 뜻에 따를게요."


이곳까지 오면서 계속 여성이 있는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았던 천가휘였다. 그건 머리 위에 엎드려 있는 바투아와 나도 마찬가지다. 바투아는 내가 먼저 말하기도 전에 여성에게 말을 걸며 머리를 쓱쓱 비벼댔다.


"용왕도 가오리도 아까부터 프레체스 이레니언 걱정했어."

이번에 여성이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면 스쳐 지나갈 때 어디까지 가는지 물어보려고 했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투아의 말에 미소를 띠는 여성에게 말했다.


"함께 가시죠."


밝아져 가는 여성의 표정은 바투아의 다음 말에 약간 어색해져 간다.


"프레체스 이레니언, 이름이 너무 길고 부르기 불편해. 괜찮으면 내가 별칭 하나 지어줘도 될까?"


용왕. 그리고 가오리.

용왕은 그렇다 치더라도 잘생긴 천가휘에게 가오리라는 별칭이 붙여진 걸 보면 지극히 주관적으로 지어진 별칭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


프레체스 역시 마력만큼은 나보다 더 높았다. 그러나 신체능력은 일반인 여성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이라 행군속도는 둘이 다닐 때보다 조금 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예상보다 더 늦게 일월산 초입에 도착해,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휴식을 취한 뒤 산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월산은 지금까지 지나온 어떤 산보다도 경사가 급한 곳도 많고 산세도 험해, 프레체스는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힘들게 뒤를 따라붙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내 머리 위에 앉아 있던 바투아는 프레체스의 머리 위로 자리를 옮겨 열기를 식혀주기도 했다.


"잉어도 용왕처럼 열심히 사냥하면 강해질 수 있을 거야."


잉어는 바투아가 프레체스에게 붙여준 별칭.

프레체스가 불의 사막으로 가는 이유는 도우미를 통해 다양한 불 계열 마법 스킬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되어서라고 했다. 그런데 조금 전 쉴 때 천가휘와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 가는 건지를 듣고 나서부터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앞장서서 천가휘와 프레체스를 인도해 가던 중.


"정말 리커버리 마법을, 후! 스킬서만 구해서 배우는 것으로 사용할 수 있단 말이지?"


뒤편에서 들려오는 프레체스와 바투아의 말소리에 힐금 쳐다보았다.


"그렇대."


둘의 대화를 듣다가 알게 된 사실은 옛날에는 나스탈에 리커버리 마법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실전되어 배울 수 없는 8서클 마법이 리커버리라고 한다.

무려 8서클 마법을 스킬서를 구해 배우는 것만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프레체스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가쁘게 숨을 쉬던 와중에 탄성을 내뱉으려다 보니,

결국 사레가 들리고만 프레체스가 멈춰 서서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보고 있던 천가휘와 난 동시에 멈춰 서서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녀는 자신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호흡이 안정될 때쯤에 허리를 꾸벅 숙여 감사인사를 전해왔다.


"감사해요."


프레체스의 머리카락을 붙들고 있는 바투아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지금처럼 웃음이 났다.

같이 가기로 정한 상황에 딱히 감사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미소로 인사를 받아넘겼다.

천가휘도 미소로 인사를 대신했다.

프레체스의 나이는 25살.

다시 돌아서서 등산을 시작하려던 그때였다.


"저도 암흑의 성지라는 곳에 데려가 주세요."


등을 돌리다 말고 다시 프레체스를 보았다. 그녀는 바투아가 호감을 보이는 여성이다. 위력적인 불 계열 마법만 보면 짐이 될 여성도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은 함께 이곳에 있어도 사는 현실은 서로 다르다는 점이었는데.

현실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무작정 기다려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 암흑의 성지에 도착할 때까지 현실에 안 가고 이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데 괜찮으시겠어요?"

"뱅가오그 마을에서 하루 묵는다고 하셨죠? 그때 현실에 가서 몇 가지 볼일만 보고 올게요."


그렇다면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천가휘도 이번에 뱅가오그 마을에 들렀을 때 현실에 잠시 들려 볼일을 보고 온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슬쩍 천가휘를 보니 이번에도 형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해 결정은 그 자리에서 났다.


"그럼 문제 될 건 없네요."


프레체스와의 암흑의 성지까지 동행은 그렇게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일월산은 알려진 그대로 고릴라와 똑같이 생긴 몬스터 함룽과 함룽이 주식으로 먹는 대형바나나들이 나무 곳곳에 열려 눈길을 끌었다.

사람 팔뚝만 한 바나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광경과 그런 바나나를 먹다가 우리를 발견하면 미친 듯이 나무를 타고 다가오는 함룽들, 거기에 몇십 분 간격으로 산 전체가 울리는 기묘한 떨림까지.

이 모든 요소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요소들이었다.

땅울림은 일월산 지하에 있는 대형종 몬스터 `반구`가 움직이면서 내는 진동이었다. 반구는 지렁이과 몬스터로 천계수를 보호하는 몬스터였다.


예전에 밤에는 함룽이 천계수 위에 올라간다는 습성을 이용해, 천계수를 태워 광렙을 꿈꿨던 한 유저가 있었다.

그 유저는 하보룬의 오른쪽 눈을 낀 채 천계수에 불을 질렀고 하보룬의 왼쪽 눈을 낀 그의 동생 유저는 현실에서 실시간으로 방송해 관심을 모았었다.

그날 방송분은 지금도 너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불을 지른 유저는 갑자기 땅을 뚫고 올라온 거대한 `반구`에게 잡아 먹히게되어 그날 뉴스에도 나와 잊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그 이후로는 그런 짓을 벌이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천가휘와 프레체스에게 해주자 둘은 땅에 진동이 울릴 때마다 움찔 놀라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처럼 에덴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알려주면서 이동하다 보니 시간은 훌쩍 흘러 어느덧 날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산속에는 또 한 번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죽었다가 리젠된 함룽도, 산속 곳곳에서 바나나를 따 먹던 함룽도, 심지어 공격해오던 함룽도 사냥을 포기하고 천계수가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행동을 취했다. 공격하지만 않으면 함룽들은 쳐다보기만 할 뿐 달려들지 않고 천계수로 돌아가기 바빴다.

사위가 완전히 어둠으로 뒤덮었을 무렵엔 숲은 고요하기만 했다.

일월산의 밤은 안전지대여서 느긋이 밤하늘을 구경하면서 산을 올랐다.

천계수에 다다른 때는 밤이 무르익어가는 9시가 넘어갈 때였다.


산꼭대기 공터에 홀로 우뚝 선 천계수는 물푸레나뭇과 식물과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넓게 뻗은 가지 사이에는 나뭇잎이 빽빽하게 자리해 달빛과 별빛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로 인해 넓은 공터와 꼭대기 인근 전체가 어두컴컴한 그림자로 뒤덮여있는 상태였다.

천계수의 영역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꼭 또 다른 세상의 하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반짝이는 초록색 빛덩이 수백, 수천 개는 천계수 나뭇가지 위를 돌아다니며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저 빛덩이들 모두는 함룽의 눈동자다. 천가휘는 이미 내게 이야기를 들어서 놀라워하는 정도였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감탄하던 프레체스는 뒤늦게 저게 함룽의 눈동자라는 걸 전해 듣고는 기겁하며 놀랐다.


"저게 다 아까 그 원숭이들 눈이ㄹ?!"


말을 하던 도중에 입을 틀어막고는, 눈동자를 굴려 어서 빨리 지나가자는 뜻을 보내는 프레체스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지니 단발머리 사이로 두 개의 보름달이 뜬 것 같아 미소가 지어졌다.

천가휘는 함룽떼가 절대 밤에는 천계수를 내려오지 않는다는 걸 아는 반면 프레체스는 몰라서 나오는 반응이었다.


까치발을 하고 빨리 따라오라 손짓하는 프레체스를 잠시 보다가 말했다.


"재들 밤에는 절대 안 내려오니까 걱정하지 마요."

내 목소리가 꽤 컸던 탓에 프레체스는 불안한 눈동자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진, 진짜, 그 말 진짜예요?"

"네."

답변하는 순간 큰 눈동자는 내게 닿았다가 천가휘에게 닿는다. 태연한 우리들의 행동에 프레체스는 엉거주춤한 자세를 조금씩 조금씩 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그녀를 지나쳐 걸어가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소곤거리는 소리에 사라졌던 미소는 다시 떠올랐다.

"왜 밤에는 안 내려오는 거래요? 그것보다 저 놀리려고 일부러 바로 말 안 해준 거죠? 그쵸?"

100% 확신할 수 없는 게시판의 정보였다면 프레체스처럼 신중하게 행동하며 이곳을 지나갔을 것이다. 자신 있게 확신한 데에는 붉은 곰 보금자리 여관의 주인 퓨레스에게 직접전해들은 정보였기 때문이다.


"말해준다는 걸 깜빡했을 뿐이에요."


당차고 활기찬 프레체스의 모습과 행동은 이렇게 한 번씩 웃게 만들고는 했다. 그녀의 불 계열 마법은 강한 위력을 가진 만큼 요란하기까지 해서 몬스터를 끌어 모이기에는 딱이었다. 천가휘와 내게는 딱 필요한 동료였다.


일월산을 넘어가는 시간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친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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