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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더 님의 서재입니다.

어나더 월드(Anoth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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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더
작품등록일 :
2021.05.12 16:16
최근연재일 :
2021.07.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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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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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35화

DUMMY

정령융합은 바투아의 스킬을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과 무공의 심법처럼 일시적으로 스텟을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것 말고도 정령융합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물속에서 수영하지 않아도 마력을 소모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했다. 물 위를 걸을 수도 있다더니 그 말도 진짜였다. 난 바닷속을 나아가기도, 수면에서 신법을 운용해 달리기도 하면서 프로이안 마을로 향했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미세하긴 하지만 마력이 차는 효과도 있어 지금 마력스텟 26, 즉 26년 마력으로도 프로이안 마을까지 가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33일의 시간은 아이템으로 올라간 스텟과 심법, 정령융합으로 올라가는 스텟에 적응하는 시간도 되었고 무공과 마력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지금 레벨과 아이템으로 상승한 스텟은 이러했다.


레벨:41

근력:40(21)

민첩:35(18)

체력:30(17)

마력:26(16)


절대 레벨 40대의 스텟이라고 볼 수 없는 수치.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에 붙은 스텟 합이 59에 달해서 찍을 수 있었던 수치였다. 마지막에 보스 방을 나오며 들고나온 창은 무려 해왕의 창이라는 레전드 등급 아이템이라 이 무슨 횡재인가 싶었다.


[해왕의 창](legend)

설명:하만사루바의 왕에게 대대로 전해져오던 창. 귀속되는 아이템이기에 사용자가 죽기 전에는 양도가 불가하다.

효과:근+4 민+4 체+3 마+5

효과:일정량의 마력을 지속적으로 소모해 오러 트라이던트를 유지할 수 있다.

효과:(50레벨에 개방됩니다.)

효과:(100레벨에 개방됩니다.)

효과:(200레벨에 개방됩니다.)

효과:(300레벨에 개방됩니다.)


지금 창집에 꽂혀있는 창은 전부 다 일반 등급 이상의 창들.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들 말고도 탐사로 구한 아이템은 인벤토리에 7개나 더 있었다. 이제는 쓰지 않는 무기인 검과 써본 적도 없는 무투계열 건틀릿, 나머지는 가죽 장비를 선호하는 내게는 필요 없는 철제장비들이었다. 에덴을 시작한 데는 돈을 번다는 목적보다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 전부 팔 생각은 없었다.

죽을 때 돈을 싸갈 것도 아니고.

검이랑 건틀릿은 보물창고에 들어가기 전부터 친구 두 명한테 주기로 결정을 내렸었다.

한 명은 1년 전 마수에게 아내와 4살밖에 되지 않는 딸아이를 잃고 레벨업을 시작한 친구에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생계 때문에 3년 전에 레벨업을 시작한 친구였다. 마암병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얼굴을 보았을 정도로 친했던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옆에 있어 준 친구들이어서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두 친구가 원하기만 한다면 쓰지 않는 아이템 중에서 원하는 것을 다 줄 의사도 있었다. 이 생각을 하다 갑자기 웃음이 난 이유는 칼과 건틀릿을 준다고 해도 절대 안 받는다고 거부할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안 받으면 던져주고 도망칠 계획도 세워놓았다.


기분 좋은 여운을 잠시간 만끽하려 물 위를 달리던 발을 멈추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에덴의 세계는 노력한 보람이 그대로 나타나고 느껴지는 세계여서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현실을 떠나 에덴에서 머문 지는 어느덧 4개월째.


에덴에서 워낙 신기한 경험과 기이한 일을 많이 겪다 보니 이제는 손짓과 발짓을 하지 않고도 바닷속을 유영해가는 일도, 물 위를 평지처럼 달리는 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애초에 처음 얻은 스킬인 수중호흡부터가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스킬이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놀랍고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어나더 월드를 준 신에게 감사하고,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게 이끌어준 제린에게 감사하고, 헌신적인 바투아도 고마웠다.


앞으로 세운 계획은 일단 에덴에 어떤 혁신이 일어났는지 확인한 후에, 현실에 가서 친구들에게 검과 건틀릿을 주고 나서, 곧장 암흑의 성지로 향할 계획이었다. 혹 이곳에 있는 동안에 리커버리 마법서를 구한 유저가 나타났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기다리기보다는 암흑의 성지로 가서 사냥을 직접 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짓고 있던 미소는 제린을 떠올리자 더욱 짙어져 간다. 이번엔 프로이안 마을이 있는 방향을 잠시 바라보다 시선을 옮겨 몸에서 피어오르는 옅은 푸른빛을 내려다보았다.


몸에서 은은히 피어오르는 푸른빛은 바투아와 정령융합을 이루면 생겨나는 효과였다. 꼭 옛날 히어로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 같은 효과에 처음에는 우쭐한 기분도 맛보았다. 바투아는 이 상태에서도 거북이 형을 만들어내 또 한 번 놀라게 했었다.


"바투아."

"응?"

"고마워."

내 말에 머리 위에 거북이 형을 만들어낸 바투아는 머리를 탁 치며 인사를 대신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바투아도 눈치채고는 준비되었다는 말과 함께 머리카락을 딱 붙잡았다. 헌신적인 바투아에게 해줄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흔들어주자 바투아는 오늘도 귀여운 소리를 내어 웃게 했다.

"으이- 으아- 으자- 으다다-"


암흑의 성지로 가는 길에 에덴의 세계를 겸사겸사 여행해볼 수 있다는 것에 한편으론 들뜨면서도 아쉬운 점 하나가 있다면.


"요옹와앙 재미따ㅡ!"


제린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점 정도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그리고 자꾸 커지는 마음을 접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녀가 내게 왜 이런 기회를 주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예전에 AON 여성 유저의 말대로 그저 마음이 맞고 악성향이 아니라 베푼 친절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베풀어준 많은 것들을 나쁜 곳에 쓰지 않으면 된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한 시간을 넘는 시간 동안 부지런히 신법을 운용해 달려온 결과는 놀라웠다.


온몸은 땀범벅에 호흡은 거칠어진 대신 신법의 숙련도는 눈에 띄게 오르고 프로이안 마을이 있는 해변을 시야 끝에 놓는 성과를 이루었다. 처음에는 너무 멀어서 들려오지 않던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들려와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해변 사이사이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행색과 해변 뒤로 병풍처럼 자리한 우거진 수풀이 난장판이 된 것 또한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요인들이었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 확실하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달리던 속도를 줄이면서 물 위를 걸었다.


전 세계의 언어를 다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들려오는 언어 중에는 기억 속에서 찾을 수 없는 언어가 더 많았다. 물론 알지 못하는 외국어라고 하더라도 어나더 월드 시스템은 알아듣게 해주었다.


"물 위를 걷는 사람?"

"아까 용과 싸운 용사님이신가?"

"인형 같은 인간들이 마을 밖에는 몬스터라 칭하는 괴물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혹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일지도 모릅니다!"

"아까 이곳이 어디라고 했는지 기억하시는 분 계시오?"

"등평도수?!"

"잠을 자는 것만으로 이런 세계로 올 수 있다니 참으로 놀랍구나."


어리둥절해 하고 놀라는 저 많은 사람을 보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에덴에 또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유입된 게 분명했다.

제린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혁신이 일어나면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전보다 힘들어질 거라는 이야기와 몬스터보다 같은 사람이 더 무섭다고 했던 말은 아마 새로운 유저들의 유입에 대해 언질을 준 거로 보였다.


물 위를 걸어가다가 갑자기 헤엄쳐가는 게 더 이상할 것 같아 그냥 그대로 걸어서 해변으로 향했다. 주변을 경계하는 내 행동에 눈치 빠른 바투아는 보이는 사람들의 마력을 체크해 알려주었다.


"마력을 쌓은 인간들은 많이 없어. 용왕보다 많은 마력을 쌓은 인간도 있기는 한데 적게 쌓은 인간이 더 많아."


바투아가 알려준 정보로 이번에 유입된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는 마력을 쌓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괜히 튀지 않으려, 태연하게 걸어서 해변에 발을 디뎠다. 정령융합을 해제하자 모여들었던 시선은 다시 흩어져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그 틈을 지나 빠르게 프로이안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 들어갔다.


생김새는 지구의 인간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복장은 옛 동양인들이 입을 법한 복장과 옛 서양인들이 입을 법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지구인들이 처음 접속할 때는 허름한 천 옷과 이가 빠진 녹슨 무기들로 통일했었는데, 이번에 유입된 사람들은 제대로 된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숲 중간중간에는 눈에 띄는 길드 마크를 각각의 장비에 새긴 유저들이 뭉쳐서 쑥덕거리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자세한 사정은 제린에게 들으면 된다는 생각에, 사람을 구경하기보다는 바로 마을에 들르는 선택을 했다.

그런데 변화는 마을에도 찾아와 놀라게 했다.


마을의 규모가 커졌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생활했던 만큼, 이것도 모를 수가 없는 변화였다. 마을 안에는 초창기 때처럼 NPC들을 둘러싸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NPC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기계적으로 답하며 에덴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는 중이었다.


혹시나 싶어 열어보았던 지도안에는 빛 뭉치로 빛나는 여관이 두 개나 더 늘어 한순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마을과 성 지도에서 빛 뭉치로 표시되는 곳은 특수 NPC가 머무는 여관만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빛 뭉치가 늘어났다면 특수 NPC가 운영하는 여관이 두 곳이나 더 늘었다는 뜻이었다. 빛 뭉치 세 개를 누르자 여관의 이름은 떠올랐다.

세 곳의 여관 중에서 발견한 익숙한 이름 하나는 구름도 쉬어가는 여관.

바로 내가 찾던 제린이 운영했던 여관의 이름이다.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피해 여관 앞에 도착한 난 문앞에 붙여진 명패에 지구인만 출입가능이라는 글을 보고는 결국 웃고 말았다. 안 그래도 신기한 세계가 더 신기해져서, 이제는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이해할 필요 없이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이번 사건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사건이라 받아들이는데도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가게 문을 열려던 그때였다.

[오셨네요!]

메시지가 먼저 떠올라 깜짝 놀라던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가게 안의 풍경이 드러났다. 제린의 얼굴과 그 뒤로 지구의 유저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앉아 여관 풍경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생기 없는 온갖 보물들 사이에 갇혀 한 달을 보내다 생동감 넘치는 현장에 오니 감회부터가 달랐다.

사람은 역시 여러 경험을 해봐야 자신의 지금의 삶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제린의 화사한 미소가 없었다면 이런 생각이 안들었을 지도 모른다.


제린의 시선이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왕복해서 닿았다가 이내 바투아가 들어있는 벨트 가방에 닿아 멈추었다. 이어 제린이 가방을 툭 건들자 바투아도 안에서 툭 치면서 아는 척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바깥에 이계인이 돌아다니는 판국에 가방 안에 바투아를 꽁꽁 감추고 있는 게 왠지 미안하게 느껴졌다.

길드 가입권유를 해오면 그냥 거절하면 될 일을 가지고 말이다. 거절하는 일이 뭐 그렇게 귀찮은 일이라고.


바투아를 꺼내 머리 위에 앉힌 뒤 제린에게 아주 빠르게 고개를 약간 숙였다가 들어 복귀 인사를 건넸다.

"으아-!"

이건 바투아가 고갯짓에 놀라 머리카락을 붙든 채 내는 소리다.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네요."

점점 밝아지는 제린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함께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했다.


*


4개월 만에 귀환한 현실은 여전히 바뀐 거 없이 평화로웠다.

8년 전과 달리.

블랙 포털 생성 지점을 파악할 수 있는 레이더가 나오고 나서부터는 이전같이 큰 사고는 흔히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포털을 생성해내는 에너지, DK라고 불리는 암흑에너지가 한 곳에 머무는 시간만큼 포털의 유지시간도 정해지는 것이라 그 시간이 짧으면 유저관리국에서 대처하기 전에 열려 가끔 사고가 나고는 했다.


현실로 돌아와 한 일은 친구 두 명에게 연락하면서 오랜만에 TV를 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그러다 4개월 동안 청소하지 않은 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청소할 준비를 하는 일이다. 아이템만 주고 다시 에덴에 접속할 예정이지만, 온 김에 오랜만에 청소도 하고 시청에 가서 유저등록도 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레벨 30이 넘은 유저가 유저등록을 하지 않으면, 그리고 유저등록도 하지 않은 유저가 장비를 현실에서 착용하고 다니다가 걸리면 벌금을 묻게 돼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을 시엔 가중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 해놓는 게 여러모로 좋았다.


현실에서도 웬만하면 아이템을 전부 착용하고 움직여야 아이템으로 인해 상승하는 스텟에 익숙해질 수 있어서 유명 유저들은 항상 착용하고 다니라고 조언을 했었다.


문신을 포함한 아이템 전부를 인벤토리에 넣고 나서 몸을 움직여본 결과는 확실히 느려진 게 체감이 된다는 것이었다. 역시나 앞서간 유저들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신체 스텟이 확 줄어들면 허탈감이 들 법도 하련만, 알려진 대로 그냥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게 다였다. 이 상태로 바투아를 소환했더니 바투아는 한동안 마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에 놀라 몸을 더듬고 다녔었다.

"용왕 죽는 거야?"

설레발치는 바투아에게 난 말했다.

아직 죽으려면 멀었단다. 그러니 그만 좀 더듬어줄래?

"간지럽다고!"

아무리 봐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은데 말이지.


지금 시간은 오전 11시 29분.

그다음 바투아는 이곳이 예전에 내가 말해주었던 현실이라는 것에 놀라 바깥 풍경이 보이는 베란다로 나가 밖을 구경했다. 지금 사는 곳은 아파트 12층이라 강가와 주택가를 내려다보면 경치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베란다 창문에 딱 붙어 있는 바투아를 잠시 보다가 걸래 질을 시작하던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날아온 바투아는 머리 위에 딱 붙으며 말했다.

"용왕 바깥에 나가자! 가까이서 보고 싶어!"

"일단 청소 좀 하고 나가자."

이어 꼼지락거리는 두 발로 머리카락을 비비면서 말을 이었던 바투아다.

"청소 내가 할게!"

재주가 많은 정령이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재주에 청소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바투아의 의지에 생겨난 로봇 청소기 같은 넓적한 둥근 물 8개는 방과 거실 바닥을 돌아다니며 묵은 먼지를 빨아들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형形을 지렁이처럼 변형시켜 침대와 쇼파, 각종 가전제품 위를 기어다니 게 해 집을 깨끗하게 만들어갔다. 집이 깨끗해져 갈수록 바투아가 만들어내었던 맑았던 물은 검게 변해가 집이 얼마나 더러웠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혼자서 했으면 최소 몇십 분은 걸렸을 청소를 바투아는 단 몇 분 만에 끝마치더니 머리를 탁 치며 외쳤다.

"얼른 나가자 용왕!"

얼떨떨한 정신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난 바투아와 함께 집을 나서게 되었다.


얼떨떨해하던 것도 정말 잠시뿐.

바투아가 바깥에 나와 얼마나 즐거워하는 지가, 고스란히 전해져와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웃게 했다. 잔잔한 감정일 때는 잘 느껴지지 않아도 격해지면 바로 전해져와서 가끔은 놀라게 할 때도 있었다.

"용왕 저건 뭐야?"

"자동차라는 거야."

에덴과 한국은 계절만 다른 게 아니었다. 아예 다른 문명과 문물에 바투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전 계약자들이 살았던 세계도 에덴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이어서 더 놀라워했다.

높은 고층 건물과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게 해주는 엘리베이터, 말보다 빠른 철제 자동차, 하늘을 날아다니는 큰 비행기, 본적 없는 옷들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까지.


바투아가 처음 보는 풍경과 사람을 보며 신기해하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 역시도 처음 보는 바투아를 보고 신기해하는 사람은 많았다.

만약 바투아를 본 사람이 마력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유저라면 모를까. 일반인들은 흔히 알려진 소녀 소년 형상과 동물 형상이 아니면 바투아를 보고 정령이라 짐작하기는 힘들었다. 자기가 본 정령의 형이 아니라면 솔직히 정령이라고 예상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에덴에는 희한한 마법과 기예가 많았다. 일반인들은 보통, 화려한 무공과 마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사람들은 특이한 마법을 가진 유저쯤으로 치부하면서 옆을 지나쳐갔다.


시청까지 걸어가는 15분의 시간 동안 바투아는 내 머리 위에서 주변 구경을, 난 휴대폰으로 인터넷과 너튜브를 통해 오늘 새벽부터 접속하기 시작한 이계인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10위는 모두 에덴에 대한 검색어였다. 너튜브에도 유명 스트리머들이 올린 이계인들 동영상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제린이 말하길.

이계인들은 행성 토란과 행성 나스탈 출신의 사람들이라고 했다. 지금은 여관을 각각의 세계 사람들만 쓰도록 나뉘어놓았지만 이 제약은 한 달 뒤에 풀린다고도 말했다.

한 달의 시간은 적응 기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웠다.


가게 안에 있던 유저들은 제린에게 많은 질문을 했고, 제린은 모두가 납득하고 알기 쉽게 풀어 답변을 해주었다. 애초에 어나더 월드를 8년 동안이나 먼저 누린 것은 지구인들에게 정말 큰 축복이었다.


수많은 질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레벨 1인 이계인이 마력이 50인 경우를 보았는데, 그럼 이 유저는 1레벨부터 마력을 찍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질문에 대한 답은 마력이 50이면 레벨 80부터 마력 스텟을 올릴 수 있다는 답변이다.

지구인들이 레벨 30부터 마력 스텟을 찍을 수 있는 것처럼.

만약 이계인 중에 1레벨에 마력이 10이면 레벨 40 때부터, 마력이 24이면 54 때부터, 60이면 90부터, 이처럼 가진 마력 스텟에 30을 더하면 된다는 이해하기 쉬운 답변이었다.


이계인들을 찍은 동영상을 너튜브를 통해 보다 시청을 목전에 두었을 무렵에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예전에 친구들에게 듣기로는 유저로 등록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시청 종합민원실에 들러 직원의 지시대로 서류와 홍채, 지문등록을 끝내고 구석에 있는 예전 스티커 사진 찍는 부스와 비슷한 곳에 들어가 증명사진도 찍어서 건네주었다. 정말 어려울 것도, 오래 걸릴 것도 없는 간단한 절차였다. 그 뒤부터는 잠시 앉아서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때 기다리던 친구에게 메시지는 처음으로 왔다.


`어떻게 4개월 만에 연락을 하냐 넌? 설마 4개월 동안 에덴에서 띵까띵까 놀고 연락하는 거면 문자 답도 하지 마라. 석원이랑 내가 너랑 연락 안 돼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 아무리 바빠도 생존신고는 제때제때하고 사는 게 매너 아니냐?`


가장 친한 두 명의 친구 중의 한 명인 배인수가 보낸 메시지였다. 현재 중소 길드 삼족오 소속 유저로 활동 중인 친구.

`나 지금 석원이랑 같이 마수 사냥 지원 나와 있다.`

정석원 또한 두 명 중에 한자리를 꿰찬 친구로 1년 전 딸아이와 아내를 잃었던 친구였다. 이 친구는 길드에 들지 않고 혼자서 사냥을 즐기는 친구다.


지금 두 친구는 도시 외곽에 있는 수목원에서 유지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블랙 포털를 사수하고 있는 중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 시간 안에 거기로 갈 테니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보내던 순간 유저등록을 도와주던 직원이 내 이름을 불렀다.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짐이 되지 않을 거 같아 내릴 수 있었던 결정이었다.


직원이 주는 유저 등록증을 챙긴 뒤에 문자를 확인해보았지만 바쁜지 답장은 바로 오지 않았다. 일단 친구들 있는 대로 가볼 생각으로 화장실에 들러 인벤토리를 열었다.

입고 있던 청바지와 난방, 티셔츠를 벗고는 장비를 하나씩 꺼내 착용했다. 오히려 입고 있던 현대 복보다 더 편한 느낌이 들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친구들이 있는 수목원은 차를 타고 가면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 시청 뒤편 산을 따라 걸어가면 50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기도 하다. 성장한 지금의 육체면 얼마나 걸릴지 궁금해 산에 난 길을 따라가 볼 생각으로 화장실을 나섰다. 5개의 창은 창집에 깊이 집어넣으면 거의 날만 나와서 길을 지나다녀도 주변에 피해를 줄 염려는 없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거꾸로 집어넣는 방법도 있어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난 시청을 빠져나오고 나서 곧장 수목원이 있는 방향으로 뜀박질을 이어갔다. 가는 길에 바투아와 정령융합해 신체 스텟을 더 늘려, 더 빠르게 산을 타고 달려갔다.


[정령 바투아와 융합을 이룹니다.]

[마력 스텟을 제외한 신체 스텟이 한 시간 동안 +10 상승합니다.]

[일정마력을 소모해 신체 스텟 지속시간을 늘릴 수 있습니다.]

제린은 바투아가 성장할수록 신체 스텟 상승률도 오를 거라고 했다. 신체 스텟은 시간만 있으면 천범신공으로도 올릴 수 있어서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왕의 보물창고에서 온종일 무공을 수련한 보람은 아직 미숙하기는 해도, 곧잘 천기신행의 신법에 따라 뻗어 나가는 발로 나타나 약간의 성취감과 만족감을 주었다.

미숙한 탓에 스텝이 꼬여 넘어질 뻔한 적도 몇 번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꿋꿋이 신법을 이어갔다. 늘어난 체력에 천기신행 신법이 더해지니 십여 분을 넘게 내리 달려도 호흡은 거칠어지지 않았다.


친구들이 달라진 내 모습에 놀랄 걸 생각하며 기분 좋게 등산로를 따라 수목원으로 향하던 중.

한동안 조용하던 산등성이에 총소리와 폭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져왔다. 늘어지는 괴성이 굉음과 뒤섞이면서 산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걸음을 재촉하는 소리에 전심전력을 다 해 발을 뻗어 나아갔다. 수목원이 있는 내리막길에 이른 시간은 산을 타기 시작한 지 20분이 조금 넘던 시간이었다.


수목원 주차장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괴수들을 막아서는 군인과 유저들 다음으로, 수목원 안에서 날쌘 제비마냥 도검류를 휘두르는 유저와 뒤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리케이드를 넘어 군인을 공격하는 괴수들을 보자 손은 본능적으로 창집에서 하나의 창을 빼 들었다. 이처럼 요즘 들어 몸이 먼저 반응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꺼내 든 창은 투창용 창인 린넬레스의 창.

하지만 투창을 하기에는 거리도 먼 데다가 타켓지정을 건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가장 안전하고 확실히 도울 방법은 바투아가 가진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창을 쥐지 않은 왼손을 들어 낮게 마법을 속삭였다.

"워터 스트라이크."

물기둥을 생성할 자리인 하늘 위 허공 한편을 바라보았다. 마력이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하늘에 물기둥 하나가 순식간에 생겨나 형체를 갖추었다. 바닥을 기어서 도망치는 군인을 쫓아가던 외눈박이 거인 괴수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하늘 위를 올려다보며 냅다 괴성을 질러댔다.

이내 떨어져 내리는 물기둥을 막아보려 양손을 머리 위로 뻗어보지만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급수가 낮은 괴수는 4서클 마법의 위력을 가진 워터 스트라이크의 힘을 버티기 힘들었다.

바투아는 말했다.

"저 녀석 못 막을 거야."

바투아가 내린 판단은 여태까지 틀린 적이 없다.

괴수는 워터 스트라이크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손과 함께 머리가 납작 눌린 채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뒤이어 군인에게 다가가던 배가 산만한 뚱뚱한 괴수는 주차장에 도착해 투창한 린넬레스의 창에 꿰뚫리며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작가의말

이번 현실 파트는 다음화에 마무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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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4 21.05.30 1,711 78 20쪽
36 36화 +4 21.05.29 1,696 73 18쪽
» 35화 +2 21.05.29 1,686 7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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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5 21.05.27 1,642 71 17쪽
32 32화 +2 21.05.27 1,644 72 16쪽
31 31화 +4 21.05.26 1,686 7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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