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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The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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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이에너
작품등록일 :
2016.04.01 23:48
최근연재일 :
2016.04.19 22:41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4,298
추천수 :
542
글자수 :
101,705

작성
16.04.16 23:03
조회
179
추천
28
글자
11쪽

[ Chapter2-1 세릴 (1) ]

재밌게 봐주세요 !!




DUMMY

이세라(Ysera)의 남쪽으로, 남매는 계속 남쪽으로 걸었다. 황야 한가운데 내버려진 듯한 몇 개의 작은 돌산을 지나, 추격자의 입김이 닿지 않을 곳으로. 힘든 지형만을 골라다녀서 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추격자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르다와 세릴은 어그러진 일을 몇 번이나 겪었다. 그 중심에는 가난과 굶주림, 인간이 있었다. 연회색의 잿빛모래와 그에 깔을 맞추듯 흐린 색의 하늘, 까마귀가 살을 파먹어도 그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줄 수 밖에 없는 바스러진 인간들.


어울리지도 않게 까맣고 부드러운 깃을 가진, 조악하고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근근하게, 먹이를 섭취하며 살아가는 거조()들.


죽음이란 이런 걸까. 메리웨더에서 나온 여정은 그 느낌이 희미했다. 인상에 남는 일이 없는 증거라고 해야겠지. 아니, 그저 머릿속에 담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고 해야할까.


누나는 밤마다, 심지어 낮에도 구토를 했다. 안색이 변한다 싶으면 아르다는 멀찌감치 서 있거나 근처 산에서 캔 약초를 꺼냈다.


그들에게 마음을 머물게 할 만한 쉼터 같은 곳은 없었다. 철새도 쉬어갈 곳을 만드는데, 그들은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서로를 지켜야 된다, 어쩌면 그 마음이 부른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구해달라...구해주시오."


누가 누구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말라붙은 풀처럼, 들판에 있는 생기빠진 것들처럼, 인간마저도 기근을 이기지 못해 그렇게 메마른 것이 되었다.


남매는 누구도 구할 수 없었다. 아르다가 기억하는 일은, 몰려드는 거지떼에게 누나가 검을 들이댄 것이었다.


"비켜라."


누나는 검 만큼이나 날카롭게 말했다. 그들이 가진 거라곤 약간의 동전 뿐이었다. 그러나 아르다는 생각했다, 자신들이 가진 것이 더 많다 해도 누나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것이라고.


세릴은 마을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애롭고, 자상함을 보였다. 으레 그런 자들은 '밖에서는 존경받고 안에선 아닌' 경우가 많은데도, 누나인 세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손을 나누었고, 나이를 불문하고 고결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아르다는 그런 누나를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나 칼끝을 겨누면서, 인간들이 실망한 모습으로 돌아가면서, 때때로 달려드는 인간들을 제압하면서...


인간은 믿을 수 없다, 그런 작은 부정이 누나의 마음에도 꽃피우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고.


남매는 인간이 두려웠다. 언제고 배신하고, 이해만을 위해 활동할 지 모르는 그들이.


그러나 그건 이들의 잘못일까. 그들을 힐난할 수 있을까?


"가자."


누나의 말을 들으면서 돌고 돈다, 라는 개념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물도 가리지 않고 먹어야지."


숙식은 괴로웠다. 잠은 빈 동굴이나 땅을 파거나, 가지가 튼튼한 나무 위에서 해결했다. 춥고 덥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희번덕거리는 푸른 불빛을 두고 그들은 마주보았다. 세릴은 틈이 나면 검을 붙잡았다. 푸르딩딩한 빛이 동굴 내부를 감싸는 것을 한참이고 바라보다가, 세릴이 끝날 때쯤이면 아르다는 약초를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괜찮아?"


세릴은 항상 고개를 끄덕였고, 불빛 때문에 잠자리가 불편하냐고 물었다. 아르다는 몇 번이고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마을을 떠난지 4일이 지났을 때였다.


"...그래. 결과적으론 어른들의 문제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해.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세릴은 좁쌀만한 바위에 앉았고, 시커먼 동굴벽에 등을 기댔다.


"...결론적으로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해. 국가든, 개인이든, 아니면 그게...우리 부족이든."


"...그래."


아르다는 고갤 끄덕였다. 누나가 일부러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느껴졌다.


"망각은 저주에 가까워. 그 옛날에도 그랬었고..."


"그 옛날?"


"우리 조인족이 메리웨더에 정착한 때부터. 1대 족장이었던 루네레님 때는 이렇지 않았었지."


그건 그리고, 약 700년쯤 전이라고 말해주었다.


"뼈 아픈 교훈이야. 인간은 우릴 침략했지. 그런 침략들은 기억하지 못하는게 당연해. 우린 그 때의 인물들이 아니니까. 하지만 언제고 시간이 지나면 아픈 기억은 무뎌지고 바래져, 끝내는 사라진 것처럼 보여. 사실은 감춰지는 것 뿐이지만 말야."


여기서부터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나의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모래성이 무너지고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가 깨끗해지는 것처럼...언젠가 기억이 빛 바래는 때가 오겠지. 하지만, 아르다."


세릴은 말을 이었다.


"잊어선 안 돼. 평화의 타성에 젖은 그 시점이 비극의 시작이라는 걸. 그러니 아르다."


세릴은 그 부분만큼은, 목에 힘을 주었다.


"너는 잊지 말렴. 넌 네 뜻에 따라 살아. 대신 잊지는 말아라. 종족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된다는 것도. 종족은 없지만...개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야. 너는 벌써 격랑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아르다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아까부터 누나는, 자꾸만 자신을 빼고 이야기하는 걸까, 왜 ‘우리’라고 하지 않지? 주인공 없는 동화를 듣는 느낌이었다.


"...조인이라는게 뭔지 잘 모르겠어. 우리가 새인간이라면, 왜 우리는 날개가 없어?"


세릴은 거기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이렇게 말해주었다.


"700년 전에는 있었다고 하더라."


"그럼...그...날개는 퇴화해버린 거야?"


세릴은 그 부분까지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렇게 무마했다.


“아니, 실은 잘 모르겠어.”


대신 다른 이야기가 이어졌다. 입에서 입으로나, 책으로 전해져왔을 법한 그런 이야기들을, 세릴은 전해주고 있었다. 아르다는 확연히 느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마을 어른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걸.


"...우린 수백년 동안 이어온 인간의 핍박에 공포에 떨면서도, 어느새 순종하는 방법을 배워갔어. 당연시했지. 하지만 그것 아니? 처음 우리는 연유는 모르지만 엄청나게 발전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 이세라의 메리웨더 숲에 정착할 때만 해도 인원은 3천 명이 넘었지."


고작 3천 명...이라고 말하려는 아르다의 표정을 읽은 걸까, 세릴의 말은 또박또박 하면서도 속도가 빨랐다.


"우린 완력이나 시력, 근력등이 모두 인간의 것에 비해 훨씬 강력해. 너도 느꼈지 않니?"


알고 있었다. 그 날, 거구의 사내를 집어던진 날을. 분명 상대는 자신보다 훨씬 거구임에도...


...약했다.


"문명도, 마법력도 우수했지."


아르다는 자꾸만 과거의 영광을 추격하려는 누나의 말이 엿보였다. 평소에 책을 좋아하던 누나다. 말에선 자꾸만 잡을 수 없는 애착이 엿보였다.


"왜 죄다 잃어버렸어?"


세릴은 푸른 눈으로 눈동자와 비슷한,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검을 응시한 채 말했다.


"가두었지, 스스로를. 실체 없는 두려움에 쫒겨서. 거짓된 평화에 젖어버린 거야. 젖으면 다신 마르지 않지."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전염될 것만 같은 슬픈 음색이었다.


"이런 것들을 알려주게 되어서 미안해. 몰랐더라면 좋았을 것을."


일상이라면 절대로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나는 자꾸만 무엇을 남기려는 듯한 말을 하고 있었다. 유언처럼.


세릴은 '아르다'를 몇 번이고 불렀다. 무의식적으로...평소대로의 자신이라면 벌써 누나에게 까불거리며 ‘건망증에 걸린 것 같다’며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세릴이 말하고 있는 주제는 이면이었다. 평화롭던 마을의 이면.

"...언젠가 우리는 이곳에 세 가지 보물을 가지고 정착했어. 이루나야, 루베잘, 바이아드가 있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오백이 안되는 인원인데도 계파가 항상 갈렸어. 수백년 전부터 계속 이어졌지...테사르도 그랬고 렐도 그랬어. 그들은 지르베르를 무능한 지도자라며 욕했고, 율드비안의 뜻을 따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자기들끼리 합심하지도 않았어. 그건 원로들도 마찬가지였지. 어떤 자는 보물을 넘겨주고 이주해야 한다고 말했고,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어. 어떤 자는 아무도 모를 섬으로 떠나자고 했고, 반대로 테사르와 같은 강경파는 우리도 군대를 조직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지...이젠 다 소용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그렇게 말하는 누나의 목소리는 한층 우울해져 있었다.


“지르베르 족장은 여러 인간들에게 종족을 구원해줄 것을 요청했어. 하지만 결국 소용없었어. 두 개를 받아놓고도 황제는 끊임없는 욕심에 불타올랐지. 종국에는 지르베르가 루베잘을 포기할 테니 이주시켜 달라는 이야기를 했지. 마지막 보물을 걸고 말이야. 그로서도 최후의 수단이었겠지. 결국 그것마저 반대에 부딪혔지만...”


누나는 울고 있었다.


"...결국에는 누구도 인간 황제의 압력을 이기지 못했어. 의아했지. 전투가 시작되고 내가 갔을 때, 루베잘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거든. 그래서 내가 가져왔어.“


그건 보지 말아야 할, 더러움이 묻은 동전의 뒷면을 본 느낌이었다. 아르다는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대로 두었어도 그들 종족은, 서서히 가라앉아 결국에는 물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을 거라는 것...


그들이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예견된 운명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에 새겨진 그 웅장한 그림이 무색하도록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은.


"그 이후는 아는 대로야. 우린 도망쳤고, 남은 사람들은..."


뒷말은 하지 않아도 됐다. 아르다는 눈물 흘리는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자신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누나가 울고 있는데...! 그저 힘없이 두 팔 내려놓고 서서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것 밖에는...


"다들...그래도 좋은 사람들이었지."


아르다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죽은 자들 앞에서도, 살아있는 누나의 앞에서도. 누나의 얼굴이 하멜의 얼굴과도 얼마간 겹쳐보였다. 차라리 남의 이야기라면 덜할 텐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일을 귓등 너머로 들은 것이라면, 차라리 덜할 것인데.


그러나 그들은 남이 아니었다. 살아가던 집, 울타리가 감싸고 있는 뒤뜰과 목초...돌담이 감싸고 있는 2층집들과 아르다가 좋아했던 초원들, 그리고 하멜이나 다른 사람들까지도...모두 없어지거나 죽었다. 남김없이.




감사합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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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Chapter2-2 별 밤 아래에서 (1) ] +7 16.04.18 182 22 9쪽
17 [ Chapter2-1 세릴 (3) ] +3 16.04.18 168 21 13쪽
16 [ Chapter2-1 세릴 (2) ] +7 16.04.17 137 26 13쪽
» [ Chapter2-1 세릴 (1) ] +7 16.04.16 180 28 11쪽
14 [ Chapter1-5 항거 (4) ] +3 16.04.15 198 26 13쪽
13 [ Chapter1-5 항거 (3) ] +6 16.04.14 207 31 12쪽
12 [ Chapter1-5 항거 (2) ] +2 16.04.14 206 32 16쪽
11 [ Chapter1-5 항거 (1) ] +4 16.04.13 219 30 7쪽
10 [ Chapter1-4 어둠의 심연 속으로 (3) ] +2 16.04.12 219 31 9쪽
9 [ Chapter1-4 어둠의 심연 속으로 (2) ] +4 16.04.11 199 30 10쪽
8 [ Chapter1-4 어둠의 심연 속으로 (1) ] +6 16.04.10 281 29 13쪽
7 [ Chapter1-3 마을 (3) ] +5 16.04.09 223 29 12쪽
6 [ Chapter1-3 마을 (2) ] +2 16.04.08 324 33 10쪽
5 [ Chapter1-3 마을 (1) ] +3 16.04.07 208 31 9쪽
4 [ Chapter1-2 침입 (2) ] +4 16.04.06 224 32 14쪽
3 [ Chapter1-2 침입 (1) ] +5 16.04.02 223 29 14쪽
2 [ Chapter1-1 숲의 경계와 아치문 (2) ] +6 16.04.02 226 33 18쪽
1 [ Chapter1-1 숲의 경계와 아치문 (1)] +14 16.04.01 335 3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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