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2-2 별 밤 아래에서 (3) ]
재밌게 봐주세요 !!
한참을 기운을 잃지 않고 부딪혀가던 두 개의 검이 서로 떨어지고, 그들은 거리를 두었다.
남자가 말했다.
"결착이 다가오니 아쉽네...우리 기사단에 들였어도 좋았을 법했어. 아쉬워, 이것들보단 일 잘 할 것 같은데."
"...집어치워. 너 따윌 위해 할 일은 없어, 설사 죽는다 해도."
작은 메아리가 울리고 무가치한 것을 볼 때처럼, 세릴은 가넬론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았다. 가넬론은 조소를 지었다. 역시, 만만한 여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애석한 일이야. 하지만 동시에 어리석어. 왜 보물을 두고 도망가지 않았지?"
"이제 와 그런 의미도 없는 소릴..."
"왜 의미가 없어? 보물을 놓고 도망갔더라면, 조금쯤은 더 살았을 텐데. 섬으로 갈 생각이라면 박수라도 쳐주려고 했는데. 아마 꽤 힘들었을 거야."
너무 뻔한 생각이었을까. 그들이 도망치려는 걸 언제 들킨걸까. 세릴이 노려본 눈 속에는 경멸과 증오가 그득히 녹아있었다.
일 대일, 그러나 장정 스무 명 보다 더 위협적이고, 위험한 자.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쫒아올 인간.
아르다는 전투를 보면서 느끼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힘의 기품이랄까. 당차지는 않지만 물이 넘실거리는 듯한, 여유가 있었다. 그건 그만한 실력에서 기인하는 것이겠지.
...강하다. 그게 솔직한 판단이었다. 남자에게는 말로 하기 힘든 압기가 느껴졌다.
"난 윗분들의 뒤를 닦아주는 역할이다. 칼라트라바 기사단장을 맡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직책일 뿐이고...그래서 그런지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신념 따윈 이해 못하겠어. 보물을 들고 사는 인간들이 목숨은 더 아까워하지. 뭐가 됐든 살고 봐야할 것 아닌가? 복수 또한 말이다...너흰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어. 어쩌면 그래서 멸망했지."
"...무슨 뜻이지?"
세릴의 눈빛이 파르르 떨리고, 다시 잦아들었다. 남자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 이어 말했다.
"...너흰 그저 어떻게든 오늘만 넘기면서 살아가면 된다는, 멍청한 종족이었어. 네가 몸담고 있는 종족은 닥쳐올 재난을 준비한 적도 없고, 오직 갖고 있는 것에만 만족했고, 후대를 위해 무언가를 한 적도 없었지. 딱 망국의 수순이 아닌가? 끝은 정해져 있었던 거야. 네놈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가넬론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이제 와서 이런 소릴 왜 하는 건지는 아무 상관없었다. 더 듣고 있기에는 정신이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네가...그 사람들을 죽인 것은...네놈들이 아닌가!"
세릴이 먼저 움직이고, 둘은 다시 격돌했다. 방금 전 스무 명을 자유자재로 도륙할 때보다 정확히 두 배는 빠른 박자였다.
치열했다. 익힌 것들을 한없이 쏟아내는 둘의 검은 뒷목의 혈관을 노리는 짐승의 송곳니와 같았다. 검이 맹렬하게 부딪히는 것은 죄다 불꽃이 튀었다. 어깨에서부터 발목, 그리고 목을 노린 베기까지...
아르다는 중간 중간, 말하는 소릴 들을 수 있었다.
"...루베잘은 네놈들 손에 들어가기엔 가당치도 않은 물건이야! 도망갔다면 목숨은 연장할 수 있었을 것을, 네 동생놈까지 죽여야 정신을 차린단 말이냐?"
세릴은 맞부딪치는 검 사이에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검 너머로 들려오는 건 분노와 또 하나의 감정이었다. 왜 분노하는 걸까, 이 자는. 방금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눈 속에 부러운 듯한 감정이 담겨있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카가강! 카앙!
"...칫"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지만, 힘에 부치는 건 세릴 쪽이었다. 마치 벽이 조금씩 기울어져가듯이, 몇 십 합을 맞딱뜨린 검의 속도는 점점 느려져갔다. 야금야금 떨어져가는 체력이, 검의 빠르기마저 갉아먹고 있었다.
아르다는 세릴이 다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이기길 바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는, 저 기사는 전투를 위해 존재하는 인간일까. 왜 저렇게 강한 걸까.
망연히 구경하면서도 어찌할 줄을 모르는 아르다를 뒤로 한 채,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
순간이라고 부르기도 아쉬울 정도로 번쩍임의 순간, 승부의 결착이 지어질 만한 그 찰나가.
스걱!
피, 푸른 꽃잎위로 몇 방울이고 떨어져 가는, 누나의 피...누나가 몇 번이고 적들의 몸에 남겨왔던 붉은 선, 본래는 살색이어야 할 곳에 남은 선명한 흠집...
"......."
세릴의 몸이 두어 번 짧게 비틀거렸다.
"끝이군."
짧은 말이었다. 누나는 핏방울이 맺혀 떨어지는 목을 부여잡지도, 그렇다고 달리 공격이나 방어를 위한 어떤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 악착같음을 머금고 있던 두 눈이 멍해지는 것을, 그 자신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으아악!"
아르다가 달려들었다.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비명처럼 소리지르는 모습을 본 가넬론은 잘됐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루베잘은 네놈이 가지고 있었지. 먼저 네 쪽에서 와주다니...꼬마야! 그럼 우선 너부터...잘 가거라!"
번개같은 움직임과 함께 번쩍거리는 검이, 시야를 훔쳤다. 어느새 다가온 남자가 두 손으로 내리치는 강렬한 검을 보고 있었다.
죽는 걸까. 언젠가 이런 순간을 한 번 맛본 적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리고 회색 로브가 하늘거리는 것이 보였고, 다음 순간 로브가 찌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피가 튀어오르고...
"누..."
...누나의 팔이 자신을 감쌀 듯이 뻗어왔다...
"...가...거라..."
그 때였다. 누나는, 세릴은 그를 밀었다. 온 힘을 다해서. 그건 일반적인 힘이 아니었다. 두 발이 뜨고도 아르다는 한참을 밀렸다. 밑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흰 구름속에 가려진 절벽아래였다.
"아..."
세릴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안...안 돼!"
아르다는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뒤에서는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목적은 다르지만 그와 똑같이, '안 돼'라고.
슈쉬식, 하는 바람이 뺨을 타고 오르는 소리...그것과 함께 그대로 끝이었다.
몸이 후욱,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밑이 허전한 만큼 싸늘한 땀이 흐르고, 전혀 감도 안오는 높이였다.
거친 암벽이 순식간에 솟아오르고, 모든 것이 멀어져갔다. 바보같긴, 네가 떨어지는 거겠지.
몸도. 그리고 마음도.
물어봐야 되는데...왜 그랬는지...
...혼자두어선 안되는데.
"누...나!"
멀어져가는 절벽위쪽은 점점 어둑해지더니, 아르다는 완전한 암흑 속 저편에 빠져들었다. 몸에서 혼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어둠속에서 한 줄기, 질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느꼈다. 꿈일까.
'어리석은 것들 같으니.'
감사합니다 !!
- 작가의말
&&!! 선작이 19라니. 진심으로 기쁩니다.
글이란 쓰면 쓸수록 재미있네요. 슬픈 날엔 슬픈 글이 더 잘써지고..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