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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순백 연재중입니다.

순백(The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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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이에너
작품등록일 :
2016.04.01 23:48
최근연재일 :
2016.04.19 22:41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4,322
추천수 :
542
글자수 :
101,705

작성
16.04.08 23:35
조회
325
추천
33
글자
10쪽

[ Chapter1-3 마을 (2) ]

재밌게 봐주세요 !!




DUMMY

"대단하구나. 긴 세월을 거쳐 '빛 바랜 자들'이 되어버린 그대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저항이다. 놀라운지고."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는 남자의 말은, 다른 때와 다름 없이 조용했다. 격돌의 시작, 그 이전부터 기세의 저울추는 이미 일방적으로 기울어 있었다. 흰 옷이 붉은 피를 머금어 하나둘씩 스러지는...


침입자들은 기세 좋게, 어쩌면 꿋꿋하게 일들을 끝내갔다.


율드비안은 담담했다. 불길이 타오르면서 동시에 비명소리가 날아다니는 그 와중에서도.


그라고 왜 모를까.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이 절반을 상회한다. 칼을 쥐는 일 따위는 부엌에서나 했을 순박하고 선한, 싸움이라고는 모르는 산자락 틈새에 자리한 부족.


호기롭게 ‘종족의 긍지’를 외친 것과는 달리, 여명을 맞는 새벽이 되어 사라져 가는, 끝내는 죽음을 거쳐 흙으로 돌아갈 것이 틀림없을 미래를, 왜 모르겠는가.


처음에는 그도 어렴풋한 망설임을 느꼈다.


생명과 바꾸더라도 보물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죽을 때는 싸가는 짐이 없을 것이거늘. 지르베르가 없는 지금, 마을의 전멸을 면하는 것이 옳은 길일까를, 처음 은빛 행렬을 본 순간 그는 고민했었다.


그러나 남자의 눈가에 낮게 깔린 어둠은, 그런 한 줌의 마음을 달아나게 해버렸다. 그의 몸에서 부터 쇄도해 오는 압기는, 그들을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설사 루베잘을 순순히 넘겨준다고 해도.


루베잘, 그들의 보물...그러나 동시에 의문이 솟았다. 왜 눈 앞의 남자는 한 가지 보물만을 찾는 것일까. 결계를 뚫고 올 정도의 무력이라면, 세 가지를 요구해야 옳지 않을까. ‘하얀 날개’가 수 백 년의 세월 동안 단단히 움켜쥐고 있던 보물의 소문은 시간이 흘러 인간들의 귀에도 들어 갔을테니.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지 않은가.


율드비안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고함이 터져나오는 소란스러운 사방, 강한 힘으로 쇄도해오는 검 하나를 막아내고 재빠른 속도로 목 앞부분을 찢어낸 그의 앞으로, 남자는 말을 탄 채로 무표정하게 다가왔다.


손에 검은 빛이 적시고 있는 가죽주머니 하나를 들고.


“이것을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지?”


“설마...!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뒤집힌 주머니를 미끄러뜨리듯 바닥에 떨구자, 까만 보석 한 개가 나타났다. 잡티 하나 없는 검은 색이었다, 율드비안의 예상대로.


여태껏 담담하던 그의 표정이 단번에 깨져버린 순간이기도 했다.


"믿을 수가 없다! 네 이놈! 그것을 어떻게..."


"큭큭큭..."


안그래도 사각진 데다 곳곳이 주름져 갈라진 율드비안의 뺨과 입가가 더욱 흉하게 일그러졌다.


“이럴 수가...지르베르인가! 배신한 것은..."


안색이 변한 남자는 키득거렸다. 즐거워 죽겠다는 모양이었다. 날카롭고 거친 독사같은 눈매가 더욱 흉망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흥. 지옥에 따라가 물어보거라. 낄낄. 네놈들의 족장이 친절하게 대답해 주지 않겠느냐?”


왜 남자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도 몰랐다. 보석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분명 가짜가 아닌, 진짜였다. 그가 지르베르의 짓으로 여기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흑석, 이루나야(Irunaya)라면, 그들의 세 보물 중 한 개가 아니던가.


지배자가 사는 집, 그것도 어두컴컴한 지하의 방이자 '비밀의 요람'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족장, 그 뿐이 아니던가.


다시 들려온 남자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


"자신들이 지켜오던 보물에 의해 멸망하는 역사는 어떤가? 흥미롭지 않은가? 역시 보물 따위에 의존하는 종족의 결과는, 이런 것이다. 헛된 것을 따르느라 너희들의 미래는 결핍을 맞았으니. 어리석은 네놈들과는 다르게 인간은 위대하다. 단적인 예로, 너희 종족은 이제 사라지지 않는가."


"......."


남자의 말에 율드비안은 단지 짧막한 검 손잡이만을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이윽고 무엇인가 결심한 눈은 어떤 상념에 고정되어 있었다.


"멸망...세상 도처에 수많은 악이 잠입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헤아릴 수 없는 악 중에서도 뿌린 대로 거둘진저...이것도 우리의 업이라면 업이겠지."


"흐흐. 잠꼬대같은 말은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구나. 연기를 너무 마셔서 맛이 간 모양이군. 그만 죽거라."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둘은 서로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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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그들이 마을에 도착했다고 여겼을 때, 길게 늘어선 집들과 건축물, 성 모양의 건물 대신 나타난 것은 안개와 독성을 지닌 짙은 연기, 눈을 뜨기도 힘들 만큼 무성한 재와 유일하게 생기를 갖고 타오르는 불길이었다.


"......"


실제로 직접 보는 광장은 고요했다. 덜덜 떨리는 팔은 멎었지만 눈동자는 여전히 주변을 빠르게 움직였다. 살아있는 건 없었다. 보이는 것은 엎어진 남자와 여자, 아이들...


이것 보라는 듯 물들어가는 것처럼 번져가며 바닥을 적시는 피.


같이 오던 하멜은 사라져버렸다. ‘먼저 집에 갈게’라고 소리친 뒤, 그대로 안개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르다는 발을 들인 이곳이 처음에는 마을인지도 몰랐다. 분홍빛 블록이 깔린 것을 못 봤다면, 아직도 숲을 해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지독한 잿빛 안개가 적시는 공기는 눅눅하고, 어딘가 축축했다.


"......."


비는 이상하게도 내릴 듯 말 듯 하더니 그쳐버렸지만, 먹구름은 아직 떠나지 않고 하늘 위를 배회했다.


"으으..."


쇠가 부딪히는 소리, 고함치는 소리, 뭉그러진 듯하면서도 귓가를 떠나지 않고 윙윙대는, 간헐적으로 들리는 함성. 소리의 근원은, ㅇ모두 마을 위쪽 부근에서부터 들려왔다.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걸까.


상처입은 마을, 그리고 죽은 사람들.


"분수대..."


테이블 크기만한 작은 타원형 분수대, 아르다의 허리 높이만한 그곳에 고개를 박고 무릎을 꿇은 채 죽은 남자. 등을 관통했음이 틀림없을, 긴 검의 손잡이. 끝을 모르고 졸졸 흘러 바닥의 배수구로 흐르는 것은 희석되어가는 붉은 피.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시야가 뿌옇게 변해있었다. 아르다는 멀어져가는 정신을 붙잡고 걸음을 옮겼다. 분수대의 위치를 알았으니 이제는 집의 위치 정도야 눈을 감고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광장에 불타오르는 나무를 지나 정문으로 가지 않았다. 조금 외진 곳이지만 적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는 뒤뜰로 향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노란 빛, 주홍빛, 그리고 다수의 흰꽃이 섞인 백일홍이 피어있는 뒤뜰이 보이자, 아르다는 그곳으로 힘없이 뛰어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면 누나가 있을까? 문을 여는게 두려웠다. 마을은 한창 소란스럽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고, 그 중 한 명이 누나였을까. 아니면 집 문을 이대로 열고 들어서면...


갑자기 문을 여는게 덜컥, 무서워진 아르다였다. 이곳으로 오는 길 동안 피의 흔적은 없었다. 대부분의 전투는 광장에서만 벌어졌을 것이다. 아르다와 세릴이 사는 곳은 마을에서도 외진 축에 속했고, 희한하게도 빽빽한 나무들이 지그재그로 감싼 빈터는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찾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 해도 만약...


"없으면 구해 와야지."


아르다는 다짐하듯 그렇게 말했고, 말의 울림이 멎기도 전에 동시에 죄책감도 밀려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누나 외에 생각나는 건 없었다. 아니, 이곳으로 달려오는 동안...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마을이야 어찌되든 좋다는 걸까. 제3자의 입장에서 등한시하듯 구경만 해서는 안되는 것일텐데. 그렇다 해도 자신은, 누나만큼은 살육의 현장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가슴속을 쿵쾅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그냥 그 모습대로, 몇 시간 전에 본 모습대로만 있어준다면 좋을 텐데.


아르다는 아직까지 꽃이 시들해져 있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꽃은 보살핌이 필요한 것처럼 생생한 색감을 발했다.


다섯 갈래로 뻗은 보랏빛의 잎, 그리고 언제나 그를 다정하게 맞아주던, 한 뼘의 정원에 고개 숙이고 꽃을 쓰다듬으면서...하얀 꽃.


인기척이 전혀 없는 집도 마찬가지로 안개에 가려져 금방이라도 흰 소복을 입은 유령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음산한 침묵이 내려앉아 감돌았다.


사박.


더 이상 생각은 그만두고 집에 들어가자고 생각한 그 때였다.


"누나?"


풀을 밟아 사박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러나 작은 기대와는 달리 안개속 발의 묵직함은 누나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누구냐!"


"목소리가 아니길 바랬건만, 어린아이란 말인가. 또..."


"아..."


멀 줄 알았던 옅은 그림자는 순식간에 진한 까만 색으로 변했다.


소리를 낸 건 명백한 실수였다.


휙, 하고 강하게 허공을 가르는 검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스걱!


공간을 세로로 갈라 지면의 꽃마저 베어버릴 기세의 검, 그 직후 날카로운 쇠의 통증이 오른쪽 쇄골부터 가슴 바로 아랫부분까지 느껴졌다.


"아윽...!"




감사합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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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Chapter2-2 별 밤 아래에서 (2) ] +4 16.04.19 181 9 8쪽
18 [ Chapter2-2 별 밤 아래에서 (1) ] +7 16.04.18 184 22 9쪽
17 [ Chapter2-1 세릴 (3) ] +3 16.04.18 170 21 13쪽
16 [ Chapter2-1 세릴 (2) ] +7 16.04.17 139 26 13쪽
15 [ Chapter2-1 세릴 (1) ] +7 16.04.16 180 28 11쪽
14 [ Chapter1-5 항거 (4) ] +3 16.04.15 198 26 13쪽
13 [ Chapter1-5 항거 (3) ] +6 16.04.14 208 31 12쪽
12 [ Chapter1-5 항거 (2) ] +2 16.04.14 207 32 16쪽
11 [ Chapter1-5 항거 (1) ] +4 16.04.13 220 30 7쪽
10 [ Chapter1-4 어둠의 심연 속으로 (3) ] +2 16.04.12 219 31 9쪽
9 [ Chapter1-4 어둠의 심연 속으로 (2) ] +4 16.04.11 201 30 10쪽
8 [ Chapter1-4 어둠의 심연 속으로 (1) ] +6 16.04.10 282 29 13쪽
7 [ Chapter1-3 마을 (3) ] +5 16.04.09 225 29 12쪽
» [ Chapter1-3 마을 (2) ] +2 16.04.08 326 33 10쪽
5 [ Chapter1-3 마을 (1) ] +3 16.04.07 208 31 9쪽
4 [ Chapter1-2 침입 (2) ] +4 16.04.06 225 32 14쪽
3 [ Chapter1-2 침입 (1) ] +5 16.04.02 224 29 14쪽
2 [ Chapter1-1 숲의 경계와 아치문 (2) ] +6 16.04.02 227 33 18쪽
1 [ Chapter1-1 숲의 경계와 아치문 (1)] +14 16.04.01 336 3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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