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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순백 연재중입니다.

순백(The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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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이에너
작품등록일 :
2016.04.01 23:48
최근연재일 :
2016.04.19 22:41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4,316
추천수 :
542
글자수 :
101,705

작성
16.04.02 09:38
조회
226
추천
33
글자
18쪽

[ Chapter1-1 숲의 경계와 아치문 (2) ]

재밌게 봐주세요 !!




DUMMY

“하멜!”


돌이 날아온 공격의 근원 지점에는, 까맣다 못해 검은 보석이 박힌 것 같은 선명한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서 있었다. 아주 거만하게, 팔짱을 낀 채로 턱을 한껏 치켜들고서.


키는 아르다보다 조금 더 큰, 호리호리한 체구의 소년 하멜이 말했다.


“잘 있었느냐?”


아르다는 인사 대신 씨익 웃었다. 그럼. 겸손하면 역시 하멜이 아니다.


“하멜 대장...나를 죽일셈이야?"


“하르미카얀(Harmikayan)가의 후예이자 장차 '하얀 날개'의 위대하고도 영예로운 전사가 될 네 반사신경을 확인해 본 것 뿐이니라.”


아르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떤데?"


하멜이 씨익 웃자 고르게 난 이빨 사이로 듬성듬성한 덧니 두 개가 드러났다.


"글쎄. 합격이랄까. 돌멩이 피하는데에 그 정도면?"


아르다는 피식 웃었다. 만약 반대의 상황이라면 하멜은 머릴 붙잡고 울보마냥 행동할게 뻔했겠지만, 굳이 그 말을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하르미카얀 가문의 사내여. 왜 그렇게 다 죽어가는 표정을 하고 있느냐?"


하르미카얀의 ‘작은’ 사내 아르다는 급히 한 손을 내저었다. 하멜의 고얀 버릇 중 한가지는 남의 말투와 몸짓, 어조등을 따라하는 것이었다. 그것까지는 봐줄 만도 했지만, 관리인이 족장 등의 ‘지위가 높은 사람’을 부를 때 하는 말투를 따라하는 건 질색이었다.


“으, 그런 노인네같은 말투는 그만둬. 난 진심으로 그 아저씨 싫어한다고.”


자기도 방금 전까지 누나에게 써먹었던 주제에 조금 모순된 말 같았지만, 목 뒷부분에 닭살이 생길 정도로 관리인의 말투가 싫은 건 사실이었다. 뭐, 세세하게 따지고 보면 오랫동안 마을을 위해 헌신해온 ‘오벨라인(Obelain)’씨의 잘못은 없었다. 오히려 근면함과 성실함은 마을 으뜸으로 쳐줄 만했다. 곳곳을 가리지 않고 자주 출몰해대니. 어른들은 모두 좋아했고, 아이들은 모두 싫어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구는 것을 보면 가서 엉덩이에 빗자루 세례를 퍼붓는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저러나, 아르다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근데 오늘은 아직 아무도 안왔어? 다 모이기로 한 날 아니었나? 이산테는? 헤베랑 칼리단도?"


하멜은 그 말에 ‘훗’하고 웃음짓더니 곧 아무렇게나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귀퉁이 색이 다 바랜 누런 종이쪽지였다.


“음..어디보자...오늘은 다 늙은 영감처럼 몸이 쑤신다는데. 이건 이산테가 한 말이야. 그리고...헤베는 근처의 알라바다(Alabada)폭포 옆으로 소풍을 간다고 하더군. 칼리단은...에...여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읽다 말고 쪽지를 두 손으로 구겨버린 하멜은 약간 분개한 어조로 말했다.


"얘들이 뭐라고 말했건 간에, 내가 볼 땐 전부 같잖은 핑계일 뿐이야. 기억나? 문 구경을 가보자고 처음 말을 꺼냈던 건 칼리단이었어. 계획을 짰던 건 누구였더라? 보나마나 이산테 아니면 헤베겠지. 어쨌든 다들 오늘만 기다린다고, 기대되는 날일 것처럼 굴어놓고선! 하긴 어딜 가나 그런 자들이 있는 법이지. 말뿐인데다, 두려움에 일을 그르치는 자들. 우리 친구들이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쩌겠어. 부모님조차 설득하지 못하다니. 그렇게들 나약해서야 장차 이 다음에 뭘 할 수 있겠어.”


아르다는 왠지 우리보다는 그들이 현명한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자칭이자 유일하게 자신만이 불러주는 칭호인 '대장' 하멜의 직접적인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아 그만 조용히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실 오기 전부터 마음 한 구석이 불에 데인 듯 뜨끔하긴 했었다. 보호자인 세릴 누나를 속이고 온다는 것이. 어쨌든 초원에서만 놀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온 건 사실이니까.


그들은 자잘한 이야기 중에도 성큼걸이로 걸어 점점 내려갔다. 길은 평탄한 축에 속했다. 하멜은 처음에는 씩씩거렸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 평정을 되찾았다. 그의 별명에 딱 어울렸다. 이산테가 지어준 그의 별명은 냄비였다. 아르다는 속으로만 킬킬거렸다.


“...그래서 그랬던 거지. 그래서 지금 세상은 흉흉해. 철옹성같은 제국이 무너져가는 그 이면을 보지 못하면, 평생 비본질적인 것만을 보는 천박한 자세를 가진 채로 살게 될 거야. 오오, 인간이란.”


“그거 에르벨라 삼촌이 해준 말이지?”


“들켰군. 도대체 어떻게 알았냐? 나름 인상적인 이야기여서 기억하고 있었던 건데.”


어느새 화제전환으로 주제는 시사쪽에 머물러 있었다. 킬킬대는 이야기라면 아르다도 좋아했지만, 이쪽 분야에서는 아르다는 항상 듣는 입장이었다. 그가 키득거렸다.


“대장이 적당한 따라쟁이였다면 끔뻑 속았을지도.”


하멜은 항상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는 걸어다니는 편지였다. 물론 적당히 자신의 것인 양 이야기했다고 해서 ‘저게 정말로 하멜이 한 말이다’라고 믿지는 않았다. 워낙 실없는 소리라던가, 허풍선이같은 말을 한다던가, 나이에 맞지 않거나 이상스런 사족을 갖다붙이는 걸 잘하는 하멜이니까. 그러나 말이 많고 유쾌한데다 재밌고, 은근히 깡이 좋았기 때문에 아르다는 그를 형처럼 따랐다. 실제로 하멜은 자신보다 한 살이 많았고 그 전까진 친구처럼 지냈지만, 요 근래 키가 더 자라서인지 확실한 형 행세를 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그들이 길을 걷는 동안 사방은 온통 녹빛이었다. 키 큰 침엽수림은 잠시 사라지고, 딱 그들 키만한 난쟁이 나무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계절마다 갖가지 과일들이 나는 신비한 나무는 옛날 자신들의 종족의 기술이라고 했다. 얼핏 품종개량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르다는 그게 뭔지 알지는 못했다.


간간히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두 세 개의 개천이 그들의 앞길을 막았다. 돌을 미끄러지듯 타고 내려와 작게 바스러지는 작디작은 물줄기들은 아래로, 더 아래로 흘러갔다.


“저건 어디로 가는 걸까.”


하멜은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것도 모르다니, 바보로구나. 저렇게 산 아래 도시까지 흘러가면 그 때부턴 강이 되어있어.”


“강? 이 작은 게?”

“응. 넓고, 파랗고,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했어. 그게 강이라고 했어. 저렇게 해서 바다까지 흘러가 마침내 바다의 일부가 되는 거지. 대신 그 중간에서 식수도 공급해주고 각종 생활용수도 공급해주고, 또 농사지을 물도 공급해주고...아님 말고.”

“뭐야, 그게.”


실개천을 건넌 아르다는 킥킥 웃었다. 개천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다시 나무가 울창했다.


하멜이 불쑥 물었다.


“세릴 누나는 언제 결혼해?”


“응?”


“너희 누나 말이야. 결혼한다며?”


뜬금없는 말치고도 너무나 황당했기에,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말하려던 아르다는 목이 막혀버렸다. 대신 하멜의 설명이 이어졌다. 마침내 그가 말을 끝맺었을 때, 아르다는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었다.


“그런 거 아닌데...그런 말은 또 누구한테 들은 거야?”


“아니면 아닌 거지. 근데 아닐 리가 없다.”


“왜?”


“내가 봤어. 그것도 직접. 너희 누나가 누구랑 같이 있는 거.”


아르다는 최대한 평정을 가장한 채 말했다.


“에이, 거짓말이네.”


그러자 하멜은 미리 준비한 동작인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두 손바닥을 홱 펴보였다.


“아니라니까? 아마도 그 사람이랑 너네 누나랑...”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떤 상황인지를 예견한 아르다는 대뜸 소리쳤다.


“설마!”


“윗동네 산길을 걷는 걸 봤지. 그것도 단 둘이서. 이래도 아니라고 할 수 있어? 물론 결혼 이야기는 신뢰할 수 없는 헤베에게서 들은 거지만. 너도 알잖아. 헤베가 워낙 과장해서 말하길 좋아하는 거.”


“앞의 이야기만으로도 나름 충격적인데...사실이야? 둘이서 산길을 걸었다는 게?”


“우흐흐, 레스카르트(Leskart) 가문의 후예인 나의 모든 것을 걸지. 틀렸다면 네가 하루 시키는대로 해주지. 마음껏 부려먹어도 좋다.”


“......”


그쯤 말하니 우겨대던 아르다의 입지는 약해졌다. 물론 하멜과 대화 도중,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스쳐가듯 떠오른 인물이 없다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강해서였을까. 차라리 모르는게 나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르다도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요 근래 저녁나절이 되면 몇 번이고 집앞에 와 누나를 부르던 키 큰 남자를.


수줍어하던 누나는 어느 날 밤 아르다가 물었을 때, 그 남자의 이름이 ‘렐’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때부터였다. 자기 일도 아닌데 아르다는 렐이 누군지, 괜시리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수소문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마을은 크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종합적인 판단의 결과, ‘마을 서쪽 입구 부근에 사는 렐이라는 사내가 믿을만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는 마을에서 족장의 비서격 되는 직책을 맡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아르다는, 렐의 칼로 그은 것 같은(이 말을 하면 누나는 손가락을 들고 주의를 주었다)죽 찢어진 눈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쨌든 ‘했더라’ 종류의 소문 따위를 믿는 건 아르다도 사양이었지만, 평소 성격으로 볼 때 무언가를 걸고 말하는 하멜의 말은 백 퍼센트 진실을 자랑했으므로 그냥 넘겨들을 순 없었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해?”


“...안해! 그리고 그걸 왜 물어봐?”


이 때의 하멜은 약간 흥분한 어조가 되어 말했다.


“넌 그걸 진짜 몰라서 묻는 거냐? 너희 누나는 말이야...마을에 둘도 없는 보석이라고, 보석. 네가 만약 보석을 가지고 있다고 쳐 봐. 어디로 갔는지 그 행방이 중요한 것 아니겠냐? 하물며 그게 천사가 놓고 간 보석이라면 말이야...”


“얘기가 왜 그렇게 돼? 누나는 마을에 있는 보석 아냐! 내 보석도 아니고! 행방은 왜 찾는데? 어디 갈 것도 아닌데.”


“넌 그 말을 네가 해놓고도 진심으로 믿느냐?”


아르다는 빽 하고 소리질렀다.


“그 말투...어쨌든 누난 결혼 안해! 내가 볼 땐 대장은...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것 같은데?”


눈알을 굴리는 하멜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갔다.


“엣흠, 그건 아니고...어쨌든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이거지. 특히 남자들 말이야. 너희 누나가 마을 공동의 소유물쯤 된다고 한 적 없다.”


“난 충분히 그렇게 들리는데?”


울그락불그락해진 아르다의 얼굴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다른 면에서는 관대했지만, 누나의 혼인 주제만 되면 쌍수를 들고 반대하는 것이 요즘 들어 자신의 중대한 임무가 됐다고 생각하는 아르다였다. 특히 그 렐이라는 사내는 안된다, 특히 더. 그 사내는 이상하게 풍겨오는 분위기부터 느끼한 것이, 능글맞은 데다 가까이 가고 싶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아르다는 자신의 14년 인생을 걸고 절대로, 두 눈이 흙에 완전히 파묻혀도 그 남자(렐을 포함한 여러 쭉정이)들을 집안에 맞아들이는 것만큼은 저지하리라 작심했다. 잠시 잊어두었던 누나의 혼사 문제는 이제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완벽한 누나는 절대로 넘겨줄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전설에나 나오는 보석 '엘제라(Elzela)'보다도 귀한 것이었다. 적어도 결혼 얘기가 나온다면 이상한 마을 사내들이 아닌 더 멋진 남자여야 한다고, 누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요 몇 달 내내 생각해왔다. 보석의 짝은 보석이여야 한다고 여겼다. 그 이상이면 그 이상의 것이 상대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다 왔다. 여기야.”


하멜의 말에 그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30분이 넘게 걸어온 다리는 꽤 묵직해져 있었다. 산을 거의 다 하산했다고 느낄 정도로. 물론 그만큼 내려왔어도 실제로는 중턱도 오지 않았을 만큼 그들은 고산지대에 살고 있었다.


끼아아악!


궁지에 처한 인간의 비명과 비스무리한, 조금 더 신경질적으로 들리는 새의 지저귐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임을 알아챘을 때, 아르다는 유적처럼 오래된 붉은 빛이 감도는 돌기둥을 볼 수 있었다. 나란히 선 돌기둥은 두 개였다. 미송나무와 비슷했지만 그 둘레는 더 두터웠다. 무엇보다도 바닥에 박힌 돌기둥은 위로 갈수록 아치형이 되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거대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튼튼해보였다. 거인이 와서 밀어도 꿈쩍도 안할 것처럼.


“와...하멜...이거, 우리가 보러 온 게 이거겠지?”


그 말에 하멜은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을 걸? 아니, 위치상으로 보면 확실하지. 그렇고 말고. 이만한 크기의 문이라는 게 또 있진 않을 거 아냐? 우린 제대로 온 거야. 이건 문이야. 고대의 문이야. 우릴 지켜오던 수호신같은 거지. 우리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해줄 수 있는 성스러운 증거같은 거라고!”


“굉장한데? 책에서만 봤지 문이 이렇게 클거라고는...읍!”


“쉿! 조용히 말해! 마을사람이나 너희누나한테 들키고 싶지 않으면!”

그러나 아르다의 입을 틀어막은 하멜도 웃음이 터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문은 그들이 항상 책에서 보던 것보다 세 배는 더컸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고개를 최대한 들어 올려도 그 끝이 보일락말락이었다. 그 옆에 자라있는 나무들이 워낙 길쭉해서 그 사이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그 정체가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늙어가는 기둥 안쪽에서 뭔가 피어올라 손길처럼 와 닿는게 느껴졌다. 따뜻함...미온수로 가슴을 감싼 것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이 느껴졌다.


"정말 크다. 커. 이게 고대의 유적...이건 뭘까? 이것 말이야. 이것도 뭔지 모르겠고."


하멜은 눈을 부라리며 문에 새겨진 알아볼 수 없는 각종의 문양들, 상형문자들, 그리고 언어로 추측되는 것들을 보고 있었다. 아르다도 마찬가지였다.


“글세, 이런 걸 알 수 있을까?”


분명 글자같기는 한데 그들은 절대 알아볼 수 없는 것들...아르다는 어지럼증이 올 것 같아 고갤 돌려버렸다. 상식적으로 이 문이 고대의 상징이라면, 역사학자도 아닌 그들이 어떻게 이런 것을 해석할 수 있을까. 아르다는 조금 다른 걸 보고 있었다. 거대한 문...도대체 이만한 물건을 어떻게 만든 걸까. 그 고대의 시대에. 이만한 세월의 무게를 견디려면 분명 아래쪽은 깊게 박혀있겠지.


“아르다. 저것봐봐. 저 그림은 엄청 커. 우리의 상징일까?”


“글쎄...새 모양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기도...”


고개를 돌려 갸웃거려 보았지만, 그건 분명 새의 모습이긴 했다. 조금 닮은 정도가 아니었다. 대신 딱 한 가지가 달랐다. 사람이 새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점. 하멜은 뭔가 생각났단 듯이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어. 내가 전에 얘기했었던가? 커다란 새의 날개를 가진 인간에 대해서 말이야. 이건 비밀인데, 그건 사실 우리가 그들의 후...”


"...읍.”


문 뒤편을 빤히 쳐다보던 아르다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듯이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방금 전 하멜이 자신에게 그랬듯이. 그의 손은 하멜의 입을 가리는 딱 맞는 가리개가 되어 버렸다.


“뭐야? 한창 말하고...”


쉿.


‘있었는데’라고 말을 맺지 못한 것은, 아르다의 표정이 돌상처럼 굳어 있어서였다. 아르다는 한쪽 팔을 들고 손가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을 지칭했다.


“저기...”


"뭐야? 무슨 일...윽!"


하멜은 다시 말할 기회를 놓쳤다. 아르다가 그의 머리를 붙잡고 확 내렸기 때문이다.


“좀 조용히 있어, 대장!”


“음...네가 손을 놓으면 고려해볼게.”


그들은 은빛 테두리가 감도는 잎사귀들이 무성한 풀숲 뒤로 은신했다. 엉겨붙은 가지들과 잎사귀사이에 보이는 것은 사람의 형태였다. 정확히는 한 명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로브입은 사내 하나. 그리고 은백의 갑옷을 입은 여러 명.


아르다가 말했다.


"...저기 있는 사람 말야. 우리 마을 사람이 아닐까?"


"누구 말야?"


"저기 파란 로브 입은 사람 말이야.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긴 로브를 입은 사람. 근데 난 누나한테 분명히 들었었는데...어른도 외부인이랑 접촉은 금지라고 하지 않았어?"


‘맞아’라고 비교적 건성으로 대답한 하멜은 손을 둥글게 말아 왼쪽 눈에 대어보였다. 오른쪽 눈은 감은 채. 그리고는 허릴 숙인 채 엉덩이를 뒤로 쭉 내뺐다.


“...그러면 보여?”


“아니.”


“...그럼 굳이 왜 그런 포즈를 취하는 거야?”


“모든 것은 정신에 달린 거야. 올바른 정신은 정확한 폼에서 나오는 거고.”


아르다는 이런 상황에서도 말만은 잘하는 애늙은이에게 눈을 흘겼다. 가지가지 한다는 듯한 눈빛으로. 물론 하멜은 ‘정신을 집중하느라’ 아르다를 볼 수 없었다.


한참을 그 부동자세로 ‘으흠’을 연발하던 하멜이 말했다.


"아르다. 너 대단한데?"


"뭐가?"


드디어 그 자세를 푼 하멜은 아르다를 보며 앞니가 드러나도록 씨익 웃었다.


"저 앞에 있는 사람 말야. 누군가 했더니 지르베르(Zirber)야. 왜 있잖아."


아르다가 눈을 멀뚱히 뜨고 쳐다보자 하멜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우리 마을 사람 맞냐? 방금 대단하단 말은 취소다. 족장님이잖아, 바보야. 저건 족장님이 의식을 치를 때 입는 옷이라고.”




감사합니다 !!


작가의말

b 작품 봐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Lv.49 난정(蘭亭)
    작성일
    16.04.09 08:09
    No. 1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셀폽티콘
    작성일
    16.04.13 23:46
    No. 2

    글이 쫌 긴데...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게 어떤 장르 건 로맨스의 가능성을 깔고 간다는 느낌인데...
    이게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님의 글에 대한 가치관과 의도를 어디에 두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서 함부로 제 생각을 말씀드리기는 어렵네요.
    암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비사이에너
    작성일
    16.04.14 16:18
    No. 3

    정확한 지적입니다. 저도 제 글이 한없이 길게 늘어진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조만간 수정을 할 생각입니다. 일중이어서 저녁에 서재에 들르겠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진혜이
    작성일
    16.04.17 15:25
    No. 4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담덕아
    작성일
    16.04.17 20:44
    No. 5

    잘보고 갑니다...재밌어요~~~항상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5 홍다부
    작성일
    16.04.23 23:17
    No. 6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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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Chapter1-5 항거 (2) ] +2 16.04.14 207 32 16쪽
11 [ Chapter1-5 항거 (1) ] +4 16.04.13 219 30 7쪽
10 [ Chapter1-4 어둠의 심연 속으로 (3) ] +2 16.04.12 219 31 9쪽
9 [ Chapter1-4 어둠의 심연 속으로 (2) ] +4 16.04.11 200 30 10쪽
8 [ Chapter1-4 어둠의 심연 속으로 (1) ] +6 16.04.10 282 29 13쪽
7 [ Chapter1-3 마을 (3) ] +5 16.04.09 225 29 12쪽
6 [ Chapter1-3 마을 (2) ] +2 16.04.08 325 33 10쪽
5 [ Chapter1-3 마을 (1) ] +3 16.04.07 208 31 9쪽
4 [ Chapter1-2 침입 (2) ] +4 16.04.06 225 3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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