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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님의 서재입니다.

평등주의 사회는 없다(기계들의 봉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soooos
작품등록일 :
2020.08.03 20:08
최근연재일 :
2022.09.02 06:00
연재수 :
215 회
조회수 :
8,356
추천수 :
25
글자수 :
1,224,447

작성
21.06.2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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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93화. 이상자의 이상(2)

DUMMY

“그럼 너는 신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니냐?”


하칼이 비웃었다.


“신은 단 한 번도 나에게 호의적인 적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신과 대립하고 싸웠다. 그렇게 개척한 것이다. 너희와는 다르지.”


그는 자신이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그래봤자 부적응자일 뿐이야. 이 이상 시간 끌지 말고 순순히 죽어라.”


하칼이 말했다.


“시간을 끌어? 내가?”


“그래, 그 걸작이라는 걸 기다리는 거 아니냐?”


“하하하! 웃기는구나! 고작 몇 분 안에 완성될 게 아니다. 죽음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삶에서 몇 년은 긴 시간이겠지만, 나와 같이 영원한 삶을 개척한 자에게는 찰나에 불과하지.”


“그럼 무엇 때문에 대화를 이어가는 거지?”


“대화가 아니다. 가르침이자 협박이다. 빨리 꺼지라는 거지.”


“왜 우리가 꺼질 거라 생각하는 거지?”


“네 품 안에 있는 꿈의 조각을 모방한 가짜처럼 너희에게는 목숨이 귀중하지. 지금 내가 이 고치에 넣은 마가 폭발한다면 이 섬은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런 폭발 속에서 너희가 살아남을 것 같은가?”


“이건 협박이 맞구나. 나는 지금까지 네가 초조해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지.”


하칼은 끝까지 비웃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죽음이야말로 최고의 피난처이자 영원한 안식이다!”


하칼은 광기가 서린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 여유롭던 이상자의 표정이 굳었다.


“미친놈이군! 그럼 해봐라! 나는 이 조각이 있는 한 죽지 않지만, 너희는 무조건 죽을 것이니까!”


“그렇지 않다고 그렇게 할 거다. 화연! 너는 나가서 모두를 대피시켜라! 파편의 힘을 써서 바람을 일으켜라! 배를 힘껏 밀어 모두를 살려라!”


“하지만...”


갑작스러운 명령에 화연은 머뭇거렸다.


“명령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이상자를 죽인다면 일본을 점령하는 것은 그저 빈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쉬울 것이다.”


화연은 하칼의 목소리에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제가 남겠습니다.”


화연이 말했다.


“사령관께서 저렇게 말씀하는 건 생각이 있어서다. 네가 살아남을 필요가 있는 거지.”


트러스티가 화연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사령관님보다 제가 필요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네 생각보다 사령관은 생각이 깊다. 네가 미처 생각지 못한 무언가가 있겠지.”


“그리고 아무리 최악의 결과라도 죽음뿐이 더 있겠냐?”


샬롭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세분 모두 남을 필요는 없는 거 아닙니까?”


화연이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사령관을 끝까지 보좌해야 하는 부사령관이다.”


트러스티가 말했다.


“나도”


샬롭도 대답했다. 셋은 뜻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네, 알겠습니다.”


화연은 체념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하칼은 이상자에게 다가갔다.


“말해라.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해라. 신에게 버림받은 자여. 신을 욕해도 좋고, 푸념해도 좋다.”


하칼은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트러스티와 샬롭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이건 또 무슨 꿍꿍이지?”


“너희 이상자들을 만나보니까 하나같이 불만이 엄청 많더군. 모두 버림받아서 그런 거냐?”


“모욕이란 이해관계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이 탯줄을 잘라라!”


하칼은 트러스티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잘라라! 내 목숨을 끊지 않더라도 이 줄을 타고 주입되던 마가 끊긴다면 곧 터질 것이니까!”


이상자는 기다란 탯줄을 트러스티 쪽으로 던졌다. 하칼은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잠시, 멈춰라”


트러스티의 검은 탯줄 바로 뒤에서 멈췄다. 그녀는 이상자를 빤히 바라봤다. 새하얗고 창백한 이상자의 몰골은 마치 애벌레를 연상케 했다.


“빨리 이 검을 네 목구멍에 쑤셔 넣어보고 싶구나!”


트러스티가 섬뜩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무각을 켜라! 어차피 저 녀석의 목숨이 끊어진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터지는 건 아닐 것이다. 폭발을 저 고치가 하는 것이지”


하칼이 외쳤다.


“고착 십 초도 안 되는 찰나에 너희가 이 섬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하하하! 고작 생각해낸다는 것이 그런 것이더냐?”


이상자가 웃었다.


“숨통을 끊지 말고 저 녀석의 몸 어딘가에 있는 꿈의 조각을 꺼내라. 그렇다면 십 초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벌 수 있겠지. 녀석은 서서히 죽어갈 것이니까 말이야!”


“자! 여기 있다! 어디 해봐라! 빼고 난 다음에 유언할 시간 정도는 있겠구나!”


이상자는 자신의 왼쪽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칼은 성큼성큼 다가가 트러스티 옆에 섰다. 샬롭이 그의 뒤에 바짝 붙었다.


하칼은 아무 말 없이 이상자를 바라봤다. 이상자 역시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마주 봤다.


“이제 갔을라나?”


하칼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십여 분이면 충분히 빠져나가고도 남았을 겁니다. 화연의 힘이면요.”


“그렇겠지?”


“기다렸던 거냐? 너희는 정말로 죽은 생각인 거냐?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냐?”


이상자가 물었다.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이냐?”


하칼이 물었다.


“인간에게 가장 우선 되는 것이 삶에 대한 갈망이다.”


“그건 삶의 목표가 있을 때 이야기다. 공허 속에 사는 인간에게는 죽음이 안식이다.”


하칼은 말을 마치고는 빠른 속도로 검을 꺼내 이상자의 왼쪽 가슴을 후벼팠다. 그러자 검은 피와 함께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하칼은 손을 뻗어 반짝이는 조각은 잡았다.


“으헉”


이상자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꿈의 조각을 꺼내자 고치는 곧바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칼은 빠르게 뒤로 돌아 샬롭의 손에 있던 종이에 꿈의 조각을 꽂아 넣었다.


고치는 맹렬한 기세로 부풀어 올라 잠시 뒤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이 폭발로 인해 지축이 흔들리고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다.


이에라는 섬이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폭발의 흔적이 잠시 생겼다가 금세 바닷물로 뒤덮였다.


조금 떨어진 오키나와 부두에는 두 차례 거대한 파도가 몰아쳤다. 부두 끝자락에 서서 이에를 바라보던 로아는 긴급히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파도가 잠잠해지자 그는 다시 부두로 나왔다.


“배다!”


멀리서 배 한 척이 넘실거리는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부두로 다가왔다. 오키나와 부두는 분주해졌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돌아온 배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로아는 재빨리 인부들을 통솔했다. 배는 천천히 부두에 도착했다. 두부와 배를 이어주는 나무판자가 놓이자 로아는 재빨리 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배 안은 난장판이었다. 높은 파도로 인해 바닷물이 차 있었고 물건들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이 정도면 배가 뒤집히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로아는 이날 배에서 나오지 않았다. 별동대는 그가 곧바로 다시 배를 몰고 섬이 있던 곳으로 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별동대는 잠시 지켜보다가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같이 가보자는 말로 로아를 겨우 설득시킬 수 있었다.


영원 같던 한 시간이 지나고 별동대와 로아는 다시 섬이 있던 곳으로 갔다. 검게 그을린 나무 파편만이 둥둥 떠다니며 이곳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로아는 자신의 힘을 총동원하여 열 척의 배와 수백 명의 사람을 동원해 일주일 넘도록 수색했지만, 세 사람의 시체는커녕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


별동대는 하칼의 명령대로 폭발이 있은 다음 날 바로 본대와 합류해 일본을 정벌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하칼의 말처럼 이상자가 사라지자 조금도 반항하지 못했다.


몽조수비대 대부분을 이끌고 비장한 각오로 일본 본토에 발을 내디딘 송하림은 맥이 빠졌다.


제대로 된 전투 한번 없이 일본을 장악한 몽조 수비대는 전투보다는 오히려 이상자가 죽고 무정부 상태가 되어버려 찾아온 혼란을 수습하기에 바빴다.


결국 몽조수비대의 힘만으로는 안정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소별희 대장은 몽에 정식으로 원조 요청을 하였다.


몽은 이에 즉각 반응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일본에 보낼 병력은 차출되어 있었고 내정을 안정시킬 계획이 수립되어있었다.


조선과는 달리 고위관리직들이 대부분 벌레에게 뇌를 장악당해 있는 상태였기에 기존에 있던 관리들의 자리를 채울 인재를 일본 내에서 등용하기 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결론이 났다.


그러한 이유로 일본은 자치령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몽에 소속되었다. 이 일로 몽의 황제 구암은 이상자에 대한 수색과 경계를 한층 더 강화했다.


황제는 몽조수비대에 소속되어있던 별동대를 따로 떼어 이상자 색출을 전문적으로 하는 부대로 탈바꿈시켰다.


로아는 두 달 동안 오키나와에 주거하며 트러스티를 찾아 헤맸다. 상심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다.


잠을 제대로 자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그는 밤낮으로 오키나와 해역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기절하듯 잠이 들어 며칠을 꼬박 잠에서 깨지 못하고 깨어나면 다시 배 타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모든 것을 철수시켰다. 운 좋게도 일본으로 수많은 물건이 공급되어야 하는 상황에 실프 상단의 당주인 로아가 오키나와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구암 황제는 그에게 편지 한 통을 전했다.


그 후 며칠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다시 나왔을 때는 말끔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로아는 재빠르게 실프 상단이 동원할 수 있는 거대한 선박들을 동원해 물자를 실어 날랐다. 그로 인해 일본의 경제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곳곳에 실프 상단의 건물이 올라갔다. 사람들은 일본이 수복된다면 가장 먼저 움직일 거라고 예상한 상단은 검은 사월회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조선에 거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이 수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동아시아회사가 실프 상단 다음으로 일본으로 손을 뻗었다.


아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한 몽은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국가로서 점점 기반을 다져갔다.


그러나 견고하다 못해 무적처럼 보이던 몽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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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94화. 세상이 꾸는 악몽(1) 21.06.27 27 0 11쪽
» 93화. 이상자의 이상(2) 21.06.24 23 0 11쪽
92 92화. 이상자의 이상(1) 21.06.20 22 0 12쪽
91 91화. 섬 이에 21.06.17 22 0 11쪽
90 90화. 몽-002 21.06.13 27 0 13쪽
89 89화. 접신(10) 21.06.10 29 0 13쪽
88 88화. 접신(9) 21.06.06 28 0 12쪽
87 87화. 접신(8) 21.06.03 26 0 12쪽
86 86화. 접신(7) 21.05.30 32 0 13쪽
85 85화. 접신(6) 21.05.27 29 0 11쪽
84 84화. 접신(5) 21.05.23 30 0 12쪽
83 83화. 접신(4) 21.05.20 31 0 11쪽
82 82화. 접신(3) 21.05.16 29 0 12쪽
81 81화. 접신(2) 21.05.14 31 0 12쪽
80 80화. 접신(1) 21.05.10 30 0 14쪽
79 79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7) 21.05.06 32 0 12쪽
78 78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6) 21.05.02 31 0 12쪽
77 77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5) 21.04.29 33 0 14쪽
76 76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4) 21.04.25 33 0 15쪽
75 75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3) 21.04.22 34 0 14쪽
74 74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2) 21.04.18 33 0 14쪽
73 73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1) 21.04.15 32 0 13쪽
72 72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5) 21.04.11 36 0 12쪽
71 71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4) 21.04.08 49 0 12쪽
70 70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3) 21.04.04 38 0 14쪽
69 69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2) 21.04.01 35 0 14쪽
68 68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1) 21.03.28 35 0 14쪽
67 67화. 범 사냥꾼들의 밤(5) 21.03.26 35 0 13쪽
66 66화. 범 사냥꾼들의 밤(4) 21.03.22 41 0 15쪽
65 65화. 범 사냥꾼들의 밤(3) 21.03.19 37 0 14쪽
64 64화. 범 사냥꾼들의 밤(2) 21.03.14 36 0 13쪽
63 63화. 범 사냥꾼들의 밤(1) 21.03.11 44 0 12쪽
62 62화. 이(異)와 이(利) 그리고 조선 21.03.08 33 0 13쪽
61 61화. 괴물들이 난무하는 곳 21.03.04 32 0 14쪽
60 60화. 괴물을 위한 괴물 21.02.28 34 0 12쪽
59 59화. 마지막 커튼콜 21.02.26 36 0 12쪽
58 58화. 과거의 눈물은 현재의 비가되어(3) 21.02.21 56 0 12쪽
57 57화. 과거의 눈물은 현재의 비가되어(2) 21.02.19 36 0 14쪽
56 56화. 과거의 눈물은 현재의 비가되어(1) 21.02.15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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