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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의 싸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강고래
작품등록일 :
2023.05.10 13:32
최근연재일 :
2023.05.23 22:38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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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066

작성
23.05.2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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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상업 도시(2)

DUMMY

혹시나 의사가 마음이 바뀌어 기사단을 부르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잠시 들었지만 몇 시간을 돌아다녀도 나에게 신경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말을 거는 인간들은 주로 내 검을 보고 용사가 아니냐며 아는 척을 하는 부류였다.


누군가 나를 용사라고 부르면 지나가던 인간들은 움찔하곤 잠깐 쳐다보고는 다시 갈 길을 간다. 아무래도 용사에 대한 역사가 오래됐다보니 용사라는 존재가 일상에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있나보다. 딱 이정도의 관심 정도가 나도 편하긴 하다.


"그럼 나는 잠시 자리를 비우도록 하지."


아리는 갑자기 볼일이 있다며 우리를 떠났다. 이유도 말 안해주고 성큼성큼 사라져버려 나와 셀레나는 덩그러니 시장에 남겨지고 말았다.


뭐 됐다. 어차피 정보나 캐러 다닐 셈이었으니. 솔직한 심정으론 이 녀석도 빨리 떨어져줬으면 좋겠는데...


"저,저기..."


셀레나는 왠지 머쓱해하며 말을 꺼냈다.


"저도 약을 만들 재료를 사러 갔다와도 될까요...?"


겉으론 티는 안냈지만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오히려 땡큐지.


"그래, 그럼 나중에 만나자."


"네...! 나중에 봬요!"


셀레나는 신난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좋았어. 아까 봐뒀던 장소가 있다. 꽤나 인간들이 많이 몰리고 시끄러운 곳. 그리고 어느 정도 정신을 놓고 있는듯한 장소. 저번 마을에서 축제 때 어떤 액체를 마시고 잔뜩 흥이 올라 제정신이 아니게 되는 모습을 본 나는, 그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 그런데 어디서 언제 만날지를 얘기를 안했네."


뭐, 어때. 오다가다하면 마주치겠지.


-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했는데 건물 앞에 이 장소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저번에 활성한 번역 스킬이 남아 있는 덕분에 어렵지 않게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어디보자... 스텔라...주점..."


안쪽은 인간들이 미친듯이 떠들고 있고 꽤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그 소리들은 훨씬 커져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대충 주변 분위기를 살피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서오세요! 몇 분이신가요?"


갑자기 뭔데 나한테 일행 여부를 묻는 거지? 하지만 이곳만의 룰이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대답해주었다.


"혼잔데."


"그러면 바 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바는 또 뭐야...'


일단 따라가보니 세상 불편해보이는 의자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고, 거기에 앉은 인간들은 앞에 서 있는 인간과 대화하거나 아무 말 없이 액체를 마셔대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앞에 있는 인간이 바로 말을 걸었다.


"뭘로 마실 거죠?"


"뭘 마실 거냐고? 필요 없어."


"술집에 오셨는데 아무것도 안마시고 앉아만 있겠다니 안 될 말이죠. 제가 추천해드릴까요?"


"그럼 아무거나."


룰이 한두가지가 아닌 모양이다. 슬슬 피곤이 몰려온다. 대충 물어보다가 얼른 나가서 다른 장소를 물색해봐야겠다.


"자, 여기 우리 가게에서 만드는 에일입니다. 도수는 그리 강하지 않으니 부담 없을 겁니다."


앞에 다른 인간들이 마시는 것과 같은 종류로 보이는 액체가 나왔다. 이걸 보자니 조금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대체 무슨 맛이길래 인간들은 이걸 끊임없이 마시는 걸까? 한모금만 살짝 입을 대봤다. 대체 어떤 천상의 맛이길래...


"에잇! 퉷! 퉷!"


끔찍하다! 입에 대자마자 쓴 맛이 올라오며 이상한 향이 훅 들어온다. 이런 내 모습이 웃긴지 옆자리에 앉은 인간들이 낄낄댔다.


"것봐, 이거 애x끼 맞다니까? 야, 어른들 있는 곳에 있지 말고 딴데로 꺼져!"


"술도 못마시는게 까불고 있냐~"


지금 내가... 인간들에게 조롱을 듣고 있는 건가?


힘이 사라진 내가 이렇게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피조물들 1초도 안돼서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힘을 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입을 다물게 할 순 있겠지.


눈 딱 감고 들어있는 액체를 한번에 삼켰다. 목구멍을 열고 다이렉트로 쏟아 넣는 느낌으로 넣으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곳곳에서 환호가 들리니 나름 기분이 괜찮다. 아니, 기분이 심하게 괜찮아진다. 그리고 뭔가... 앞이 울렁거린다. 어쩐지 몸을 가누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앞에 놓인 이 액체를 전부 마셔야 저 피조물들이 다물게 할 수 있겠지... 어라 그런데 이거... 방금 다 마시지 않았나... 에라 모르겠다. 다시 한 번 아까처럼 액체를 들이키니 다시 환호가 들린다.


-


"어라...?"


어느샌가 잠들어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 많던 인간들은 전부 사라지고 여기서 일하는 인간들이 분주하게 바닥을 닦고 있었다. 분명 정신을 잃기 전까지는 괜찮은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이곳에 내려온 이후 가장 역겨운 기분이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앞에서 식기를 닦고 있는 인간에게 말을 걸었다.


"인간,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인간은 주로 아리가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으로 훑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곤 말했다.


"술도 못하면서 그렇게 퍼마셔대니 기억이 남아 있을리가 있나... 모르는 게 나을 거야. 그냥 진상이었단 것만 알아둬."


진상...? 내가 진상...?


내가 마셨던 술이라는 것... 마신 대상의 판단 능력을 저하 시키는 포션 같은 건가...? 이해가 안 간다. 왜 인간들은 그런 능력을 저하시키는 걸 들이키는 거지?


머리는 점점 아파오고 속도 안 좋다. 그런데 앞에 있던 인간이 슥 나에게 컵을 건넸다. 술...은 아닌 거 같은 초록색 액체가 가득 담겨있었다.


"해장에 좋은 약이야. 쭉 들이켜."


거짓말은 아닌 거 같다. 하지만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살짝 한모금 마셔봤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나도 모르게 컵에 있는 액체를 전부 비워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울렁거리던 속이 어느정도 가라앉았다.


"괜찮아졌으면 얼른 돌아가서 자네 친구한테 고맙다고 해. 질 나쁜 놈들이 자네 칼을 훔치려는걸 막아주고, 자네 마신 몫도 내고 갔으니까."


그 말을 들으니 머리가 차가워진다. 나를 보호해주고 돈까지 내줬다니... 셀레나는 아닐 테고 그렇다면 아리인데... 안그래도 나한테 실망하고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꼴까지 보였군. 큰일이다.


"아, 그렇군... 실례했네. 혹시 여기에 왔던 녀석이 머리를 묶고 갑옷을 입고 있었나?"


그래도 혹시 셀레나이길 빌며 물었다. 그런데 예상 외의 답이 돌아왔다.


"아니? 여잔지 남잔지도 모르겠는데.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말도 안했거든. 하고 싶은 말은 글씨로 써서 얘기했어. 아, 그러고보니 자네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했는데."


적어도 내가 만났던 인간들 중에 그런 차림은 없었다. 누구지? 아리가 쪽팔려서 모습을 가린 건가?


일단 편지를 받아들고 주점에서 나왔다. 들어왔을땐 그래도 낮 즈음이었는데 지금은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마왕에 대한 건 캐내지 못했다. 방금 그 인간에게 물을걸...이라는 후회도 있었지만 당장 안 나가면 죽여버리겠다는 분위기가 여기까지 풍겨왔다.


우선 자칭 내 친구라던 녀석이 남긴 편지라도 볼까하고 종이를 뜯었다. 번역 스킬 덕분에 처음 보는 글씨들이 점점 내가 알아볼 수 있게 변해갔다.


그런데,


"반갑습니다, 반. 아니, 세계를 만드신 신이시여."


첫번째 줄을 읽자마자 머리를 세게 맞은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몇번이나 읽어도 똑같았다. 이 편지를 쓴 놈은 나를 지금 '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가운 기분이 들어야 할 거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봤던 어떤 것보다 공포스러웠다.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와는 다른 공포였다.


하지만 정신 차려야한다. 내 정체를 아는 놈이 무슨 말을 했을지 읽어봐야한다. 심호흡을 해 마음을 가다듬은 후 나머지 내용을 읽어갔다.


'한때 신이셨는데 한낱 인간으로 전락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건강해보이니 다행입니다. 잠깐의 쾌락을 위해 몸을 망치는 독을 스스럼없이 입에 넣는 모습이라니, 인간의 모습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모습을 신을 통해 보게 되다니 절경이군요.

듣자하니 마왕 토벌 용사로 뽑혔다고 들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뿌린 재앙이니 직접 없애겠다는 마음 가짐 아주 좋습니다. 설령 다른 목적이 있는 거라도 당신은 마왕을 만나야겠죠. 불쌍한 '인간'이시니, 제가 작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이 마을에는 '지식의 마왕'이 숨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식을 추구하며 이성을 유지하는 마왕이니 나름 말이 잘 통하시겠죠. 당신이 생각한 이 상황의 해결책이 뭐든 간에 잘 만나고 오시길. 그러면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ps. 아, 그리고 술버릇이 많이 나쁘시더군요. 앞으로는 자제하시길.'


편지를 다 읽은 내가 첫번째로 든 생각은 이거다.


"개열받는다."


편지에 꾹꾹 눌러담은 조롱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방금까진 공포가 느껴졌다면 지금은 순수한 분노. 이 편지 쓴 놈을 찾아가서 한 대만 갈기고싶다. 그리고 두번째로 든 생각은 '이놈이 이 사태의 주범이다.'


마왕과 더불어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사태의 주범이 이 세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안 이상, 이 놈을 찾아내 멱살을 잡고 말 것이다. 당장이라도 편지를 갈기갈기 찢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혹시 모르니 넣어두기로 했다.


편지에는 이 마을에 '지식의 마왕'이 숨어있다고 했다. 500년 전에 너무 많은 마왕을 풀어넣어 전부 기억은 안 나지만 이 녀석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마왕들 중에는 호전적이고 지능이 낮은 녀석이 대다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나 이성적이고 항상 책을 달고 살던 녀석이었다. 솔직히 죽는다면 제일 먼저 죽을 거 같았는데 의외로 여태까지 살아있다니, 놀랍다.


"이 편지의 정보가 사실일까."


사실이 아니든 뭐든 단서가 생긴 건 확실하다. 편지 쓴 놈은 열받지만 이 정보, 알아볼 가치가 있는 거 같군. 우선 그 전에 아리와 셀레나를 찾아야겠다.


작가의말

ㅎ_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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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상업 도시(2) 23.05.23 8 0 10쪽
6 06 상업 도시(1) 23.05.15 10 0 9쪽
5 05 기묘한 일(2) 23.05.14 12 0 10쪽
4 04 기묘한 일 23.05.13 12 0 9쪽
3 03 신의 자비 23.05.12 13 0 9쪽
2 02. 업보 23.05.11 12 0 11쪽
1 01. 내가 싼 똥 23.05.10 3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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