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0^

나 자신과의 싸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강고래
작품등록일 :
2023.05.10 13:32
최근연재일 :
2023.05.23 22:38
연재수 :
7 회
조회수 :
101
추천수 :
0
글자수 :
30,066

작성
23.05.12 20:00
조회
13
추천
0
글자
9쪽

03 신의 자비

DUMMY

계획대로 나는 용사로 선택받았다.


시스템에 대한 찝찝함은 감출 수 없지만 일단락되었다.


내가 검을 뽑고 피조물들이 환호한지 꽤 지났지만 이 앞에 망연자실해있는 후예 녀석은 좀처럼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긴, 원래라면 이 녀석이 용사로 뽑히고 모든 것이 준비 되어있는 탄탄대로를 걸어갔을 터인데... 불쌍하긴 하지만 미안하진 않다.


"어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말을 걸어 보아도 후예는 요지부동이다. 설마 우나 싶어 얼굴을 보았지만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을 뿐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습도 용사의 후예다운 모습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때 갑자기 후예가 고개를 팍 치켜들었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던 녀석은 한숨을 푹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긴 하지만 정당하게 나온 결과니 승복하도록 하지. 이 세계를 잘 부탁한다."


멘탈을 다시 잡은 건지 한껏 근엄해진 후예는 어째선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설마 검을 달라는 건 아닐테고... 그런데 느닷없이 후예는 내 손을 한번 잡고 흔들었다.


'뭐지? 죽이고 싶은데 참는 건가?'


후예는 같이 온 피조물들과 함께 자리를 뜨고, 이후 광장은 본격적인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저렇게 장작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 건 어느 세계에나 있는 피조물들의 놀이인듯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싸고 춤을 추는 것도... 다른 신들의 세계를 구경했을때도 봤던 풍경이다.


"외지인님! 축하드려요! 마지막 정말 멋있었어요! 맨손으로 용사의 후예를 슈슈슉!"


아무래도 기억이 조작되면서 내가 후예는 밀치던 모습이 다르게 기억된 모양이다. 나는 어느덧 검을 든 후예를 맨손으로 제압하고 당당히 걸어가 검을 뽑은, 겁나 멋있는 설정이 붙었다.


"한낱 피조물의 재롱은 나에게 통하지 않는 거지."


"와아아!"


이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환호해준다.


엘라와 문지기가 시끄럽게 웃으며 내 곁에 앉았고, 촌장도 다가와 나에게 여러가지를 알려줬다.


"이제 용사로 뽑혔으니 그 검과 징표만 잘 지니고 있다면 어느 마을에 가도 대접받을걸세. 식사나 잠자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봐도 되지."


"호오.. 만약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지?"


"여태까지 잃어버린 역사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좋은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러고보니, 저 후예란 놈은 용사가 되지 못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내 물음에 뭔가 있었는지 촌장은 두리번거리더니 귓속말로 말했다.


"아마 다시 기사단으로 복귀할 거 같지만 아마 꽤나 힘들걸세. 용사의 후예인데 사실 일반인인 자네에게 자리를 뺏겼으니 꽤나 고달파질걸로 보고있네."


"아니, 그냥 하던 일이나 시키면 되지. 어째서 고달파지는거지?"


촌장은 망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소문으로는 이미 혈통때문에 주변에서 시기와 기대를 많이 받았다더군. 거기다 용사의 후예를 싫어하는 집단 중 꽤나 빵빵한 집안도 있어서 이번 실패를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 애초에 용사의 후예가 저 분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니 아마도 다른 용사의 후예를 출세길에 올려놓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네."


아, 그래서 검을 뽑을 때까지도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던건가. 다른 피조물들의 기대와 실패하면 있을 자신의 미래. 압박감이 상당했을 거 같다.


그런데도 나에게 자리를 빼앗겼을때 담담하게(잠깐 멘탈 나가긴 했지만)나에게 인삿말을 건네다니. 배포가 큰 피조물이다.


"책임을 질 필요가 있겠군."


고마워해라 용사의 후예. 신의 축복이란 건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


기사라는 것들이 머물고 있는 여관에 들어가자 로비에 바로 후예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는 평온해보이지만 검지로 계속 테이블을 두드리는 걸 보면 꽤나 초조하단 걸 알 수 있었다.


"후예."


내가 들어왔는지도 몰랐는지 자신이 불리자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후예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 너군. 생각할 게 있어서 반응을 못했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지? 기사단에 돌아간 후의 일?"


후예는 정곡을 찔렸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너를 탓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내가 짊어지기엔 버거운 자리였어."


말투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용사의 후예면 용사가 되고 싶은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진 않은가?


"버겁다니?"


"...알다시피 내 아버지는 마왕들 중 세력이 큰 편인 용기의 마왕을 잡은 인물이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힘을 이어받지 못한 일반적인 인간이다. 그 강한 아버지도 마왕 토벌 중 오른팔이 잘리셨는데 아마 내가 마왕과 싸우게 된다면 목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거지."


아무래도 후예에겐 내재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이미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이렇게나 걱정하다니 피조물들은 참 피곤하게 사는군.


"물론 네 목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니 오해하지 말게. 너와 합을 겨룰 때... 난 느꼈어. 너에게 잠들어있는 말도 안 되는 재능을. 여태까지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힘이다. 그런 힘이... 이렇게 작은 소년에게 깃들어 있다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겠군."


"소년? 소년이 무슨 뜻이지?"


"어?... 아 실례했군 남자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보군."


아, 그러고보니 피조물들은 성별이란 게 존재했었지. 이건 확실히 내가 추가한 설정이다. 500년이나 흐르니 설정 몇 개 정도는 까먹을 수 있지. 여태 신경을 못썼지만 확실히 이 부분은 구별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어보인다.


"남자처럼 보이나?"


"일단... 그렇게 보이지."


"그럼 소년으로 하지. 너는 성별이 뭐지?"


피조물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질문인가보다. 저렇게 미친놈처럼 쳐다보는 거 보면.


"보다시피 여자다만. 그렇게 내가 남잔지 여잔지 구별도 안 가게 생겼나?"


"사과하지. 난 그런 거 잘 몰라서."


대화는 어색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30초정도 서로 차만 홀짝거리다 나는 본론을 얘기하기로 결정했다.


"나와 같이 가는 게 어떤가?"


후예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흥미가 없는 모습은 아니다. 바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차피 돌아가도 힘들다고 들었다. 그러면 차라리 용사의 부하로서 마왕을 잡는 건 어떻지? 물론 네가 용사로 이름을 떨칠 순 없지만 공로자로 인정받을 순 있겠지."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이유라... 창조신이란 녀석이 피조물의 미래를 막은 것에 대한 책임... 이라고 하면 이해못할테지. 적당한 이유가 없을까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은,


"강해보여서."


후예의 자격지심과 고민을 해소시켜줄 최고의 대답이다. 역시 후예는 눈을 반짝였다. 그러곤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뭐, 너도 앞으로 토벌을 하러 가려면 분명 동료가 필요한 때가 올테지. 미리 만들어서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이네."


지가 더 신나면서 마치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 같은 말투. 건방지지만 일단 승낙의 의미인듯 하니 안심했다.


이제 슬슬 돌아가볼까 하는데 후예는 멈추지 않고 어려운 질문을 또 던졌다.


"그러고보니 서로 이름도 모르는 거 같네. 나는 아리. 왕국 기사단 소속이며, 용기의 마왕 토벌 대장인 안토니오의 딸. 자네는?"


아... 맞다. 이런 설정도 있었지.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될 것을. 하지만 내가 추가한 설정이니 감내해야한다. 실제 내 이름은 알리지 않는 게 좋겠지.


"미안하지만 나는 여기 오기 전에 기억을 잃어서.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다행히 상식 개변이 이런 세세한 설정까진 건드리지 못했나보다. 아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듣긴 했네. 이름마저 기억나지 않는다니 큰일이군. 그럼... 흑발이라고 부르지. 머리가 흑발이니까."


아니, 뭔소리야. 저건 절대 안된다.


"아니! 아니! ...반, 반이라고 불러줘."


"이름이 생각난 건가?!"


"아니 그냥 어디서 들어본 괜찮은 이름이라..."


사실 동네에 있는 어린 피조물의 이름을 베낀 거지만...


"그래 그럼 잘 부탁한다 반. 출발은 내일 바로 하는 거였나?"


"그럴 거 같군."


"좋다. 그러면 들어가보도록 하지."


아리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나 또한 문지기의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어느새 이름도 짓고 밥도 먹고 잠도 자며 피조물과 다름 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고작 이틀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확실히 이 세계의 흐름에 내가 맞춰지고 있다.


"...이러다 나이까지 먹으면 어떡하지."


여기서 더 피조물과 닮아갈 순 없다. 방법을 찾기 위해선 마왕들을 만나 그 녀석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 생각하며 졸음에 몸을 맡겼다.


작가의말

ㅎ_ㅎ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 자신과의 싸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 07 상업 도시(2) 23.05.23 8 0 10쪽
6 06 상업 도시(1) 23.05.15 10 0 9쪽
5 05 기묘한 일(2) 23.05.14 12 0 10쪽
4 04 기묘한 일 23.05.13 12 0 9쪽
» 03 신의 자비 23.05.12 14 0 9쪽
2 02. 업보 23.05.11 12 0 11쪽
1 01. 내가 싼 똥 23.05.10 34 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