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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의 싸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강고래
작품등록일 :
2023.05.10 13:32
최근연재일 :
2023.05.23 22:38
연재수 :
7 회
조회수 :
105
추천수 :
0
글자수 :
30,066

작성
23.05.10 14:03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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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01. 내가 싼 똥

DUMMY

01




"그럼 이번에 보낼 용사는 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외지인으로 결정입니다!"


"와아아!"


"분명 하늘에서 내려준 천사님이실거야..!"


우레같은 박수 소리와 환호하는 주민들의 표정.


그리고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인간.


대체 난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




별 거 없었다. 하던 게임을 리셋하고 처음부터 하려는 것처럼 내가 만든 세계에 질려 한 번 리셋하려던 것 뿐이다.


나름 재밌는 세계를 만들겠다며 이것저것 특별한 설정도 추가했지만 금방 질리는 내 성격은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멸망시키기로 결정했다.


물론 주먹으로 한번 쾅 내리치면 쉽게 끝나지만 또 그렇게 하기엔 재미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냥 마왕을 조금 풀어봤을 뿐이다.


내가 마왕들에게 내린 명령어는 단 한 가지.


"모든 피조물을 말살하라."


고작 피조물 따위가 창조신이 직접 보낸 마왕들을 이긴다는 건,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알아서 멸망하겠거니 기대하며 500년 정도 방치해뒀을 뿐이다. 다시 들여다봤을 때는 피조물은 말살당하고 마왕들이 세계를 차지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500년 후에 다시 들여다봤을 때, 마왕들은 온데간데 없고 피조물들의 문명은 더욱 발전해있었다.


"..뭐지?"


마왕들을 보낸 건 확실한데 이 녀석들은 코빼기도 안보인다. 근무 태만으로 어디 숨어서 놀고 있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나는 내부 점검을 위해 세계 속으로 들어가 시스템에 접근하였다. 데이터 속엔 분명 마왕이 존재하긴 했다. 심지어 아직 살아있기까지 한데 능력치는 꽤나 너프를 먹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꽤나 고전을 하며 500년동안 질질 끌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버그라 생각하고 차단을 한 건가? 마왕을 풀어놓고 한 번이라도 들여다볼 걸 하는 후회가 생겼다. 이건 시스템을 뜯어서 확인해야겠다고 판단하고 다시 나가기 위해 탈출 키워드를 말했다. 그리고 나는 분명 바깥으로 튕겨 나가져야 했을 터인데,


-경고: 존재할 수 없는 데이터가 감지됐습니다.-


머릿속에 시스템의 경고 방송이 들렸다. 솔직히 꽤나 당황했다. 여태까지 많은 세계를 만들고 부숴왔지만 이런 경고가 들린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 이게 나에게 들린다는 건.. 나를 이 세계에 속해 있는 데이터로 인식했다는 건가?


"관리자 인증. [■■■■]"


-올바르지 않은 접근입니다.-


“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커맨드:탈출!”


-자체 방어 기능을 발동하여 능력 잠금을 실시합니다.-


“능력 잠금? 이건 또 뭐야! 난 이런 거 만든 적 없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능력 잠금같은 말도 안 되는 건 만든 적도 없다.


뭐지? 누군가의 개입? 아니 창조신이 만든 세계에 개입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스템 자체의 오류? 오류가 나서 없는 기능을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이 생각을 물고 의문이 계속 생겨난다. 하지만 머릿속에 계속해서 울리는 시스템의 경고로 여유롭게 의문을 해소할 시간은 없어졌다.


-관리자 권한을 차단합니다.-


-스킬:탈출을 차단합니다.-


-스킬:창조를 차단합니다.-


-스킬:시간 조절을 차단합니다.-


-스킬:인식 변환을 차단합니다.-


“아니! 그만! 뭘 멋대로 차단하고 있어! 멈춰!”


-스킬:워프를 차단합니다.-


-스킬:통각 차단을 차단합니다.-


.

.

.


-


언제부터 기절했던 거지. 정신을 차리니 이미 어두워진 하늘이 보였다. 분명 세계에 들어왔을 때 시스템 점검을 위해 시간을 멈춰놨었는데 말이다.


몽롱한 정신을 붙잡으며 냉정하게 생각하려 노력한다. 시스템이 미쳐서 나를 버그 같은 걸로 인식하고 내 능력들을 차단했다. 관리자 권한이 있는데도 그렇게 인식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지금 나는 여기 사는 피조물들과 다를 게 없어졌다는 거다.


“..커맨드:탈출”


-차단된 스킬입니다.-


“아이씨 진짜...”


막막하다.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여기서 농사나 지으면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건가?


절망적이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밀려온다. 솔직히 신이었던 내가 느낄 필요도 없는 감정인데 말이다.


멍하니 있다 보니 추위가 느껴진다. 세계를 만든 첫 날 이후에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조금 신기하기도 하지만, 마치 시스템이 ‘이제 너는 한낱 피조물이다.’라고 못박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진 않다.


그때, 앞으로 있을 캄캄한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누구냐!”


반사적으로 뒤를 도니 웬 노인과 젊은 피조물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알 수 없는 말로 나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런 피조물들의 말 정도는 알아서 들렸을 텐데 이조차 안되는 내가 한심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들은 내가 대답을 안 해서 의아한지 서로 곤란한 눈빛을 주고받더니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건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한마디 중얼거려보았다.


“...커맨드:번역”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시스템 소리가 머릿속에 들렸다.


-스킬 적용 완료. 효과:모든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다.-


어안이벙벙해졌다. 전부 막힌 줄 알았는데 아직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다고? 시스템의 실수인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는 벌떡 일어나 생각나는 커맨드를 모두 외쳤다.


“커맨드:탈출!”


-차단된 스킬입니다.-


“커맨드:창조! 창조 제발!”


-차단된 스킬입니다.-


“에이씨! 뭔 중요한 건 죄다 안되게 해놨냐! 커맨드:워프!”


-차단된 스킬입니다.-


“아오 망할!!”


“저..저기..”


“뭐야!”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와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젊은 피조물은 움찔하며 나에게 무언가 건넸다. 어디서 주워온 푸대자루같은 천옷이다. 그제야 나는 내가 이들과 다르게 옷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알몸인 신원 불명의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구르고 펄쩍 뛰니 많이 무섭긴 하겠구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니 저절로 공손한 자세가 되었다.


“이 아이가 당신을 발견했답니다.. 실례지만 마을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 누구십니까?”


늙은 피조물이 공손한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미친 사람으로 보는 거 같은데 그냥 내가 창조신이오 하고 질러버릴까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할까. 하지만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늙은 피조물 허리춤에 꽤나 큰 도끼가 있는 걸 보고 나는 바로 선택할 수 있었다.


“기..기억이 나지 않아요. 제가 누구죠...?”


내가 생각해도 어설픈 연기다. 하지만 둘은 세상 측은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더니 젊은 피조물이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예상 했어요. 우선 여기 계속 있으면 위험하니 저희 마을로 함께 가지 않으실래요?”


이거 완전 미친놈으로 낙인 찍힌 게 분명하다.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그런갑다하고 어설픈 연기도 그러려니 넘겼나보다.


하지만 뭐든 좋다. 내가 만들긴 했지만 솔직히 500년 전과는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이 세계를 이해하려면 피조물들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분명 마왕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윽...감사합니다.”


또 어설픈 연기로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이 친절한 피조물들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는 내 손을 잡고 끌었다. 그 손은 처음 느껴보는 따뜻함이었다. 순간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졌다. 내 눈앞에서 직접 생명체를 마주하니 멸망시키려고 했던 내가 굉장히 나쁜 놈처럼 느껴졌다.


숲속을 걷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름 잘 만들어진 마을이 보였다. 앞에 서 있는 문지기같은 녀석이 길을 막곤 나를 노려보았다.


"엘라, 이 녀석은 뭐지?"


"들판에 쓰러져있었어요. 그게..."


젊은 피조물의 이름은 엘라였다. 엘라가 문지기에게 속닥속닥 귓속말을 하니 오늘 지겹도록 받은 측은한 눈빛을 받곤 마을 입장이 허가되었다. 내 예상이지만 이렇게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는 것을 보면 비슷한 상황이 전에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한다.


밤이라 더욱 활기가 넘치는 번화가를 지나고 어떤 집에 도착했다. 대충 흐름을 보면 문지기 녀석의 집인 거 같았다. 독심술 스킬이 막힌 지금 이 피조물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꽤나 평범한 방을 내주며 문지기는 상냥하게 말했다.


"내일 몇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 일단 오늘은 쉬고 내일 보도록 하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문지기는 방을 나갔다.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남겨지니 아까 못했던 고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왜 관리자 권한이 막힌 것일까. 능력을 봉인하는 건 추가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그리고 다짐했다. 누가 됐든 이런 사건을 벌인 장본인은 가만 두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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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내가 싼 똥 23.05.10 3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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