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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릿오브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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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天影
작품등록일 :
2012.10.21 17:15
최근연재일 :
2012.11.2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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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01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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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스피릿오브엔젤] 제20장 운명의 만남 (2)

DUMMY

“적은 3만. 숫자로는 우리와 같아.”

지휘관 막사. 그 안에는 데미안을 비롯한 친구들. 그리고 이안과 라스, 이피온 부대 소속의 RAI 요원 한 명이 있었다. 총지휘관은 이피온이었고, 대부분이 친구들이었기에 이안 등의 양해를 얻어 평어로 회의를 진행했다. 어차피 이안은 작전 자체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어 한 발 빠져 있었고, RAI 요원들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역할이니 회의의 주체는 이피온과 데미안, 둘이었다.

“그 한 명은 아직?”

“그래, 아쉽게도.”

데미안의 질문에 이피온이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현재까지 전해진 정보로 제국군에서 주의해야 할 인물은 셋. 얼마 전 전투를 벌였던 류디칸과 창천기사단 소속의 케린 위티어, 그리고 정체불명의 은색 갑옷의 사람이었다.

케린이 주로 정찰 등의 임무를 가지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면 제국군의 지휘는 류디칸 아니면 은색 갑옷의 사람이다. 하지만 둘은 나란히 본대를 끌고 있었기에 누가 총지휘관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완벽한 정보차단에 의해 RAI로서도 그 은색 갑옷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현재 제국군은 셋으로 갈라져서 오고 있습니다.”

라스가 나서며 제국군의 움직임을 보고했다. 그 은색 갑옷과 류디칸, 케린이 각각 1만의 병력을 이끌고 여기 헤리스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정면과 좌, 우. 중앙군으로 먼저 헤집어놓아 혼란에 빠트리고, 좌우에서 동시에 들이닥쳐 섬멸을 하겠다는 의도였다.

“류디칸 백작이 정면. 케린이 좌, 은색 갑옷이 우측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선 GM 2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GS가 3기가 있지? 전력 차는 어떤가?”

“아시다시피 그리핀에 대해서는 왕국이 열세입니다. GS-7이 한 기가 있기에 간신히 버틸 정도입니다. GS의 지원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GS-7은 GS-1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지만, 그래도 제국군의 GM에는 무리였다. 최신예의 GS-64정도는 되어야 우세한 싸움을 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군. MDS도 서로 동급이라고 했던가?”

“예, 양군 모두 5Km 탐지범위의 MDS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정범위 내에선 어떤 움직임을 보여도 서로 눈치 채고 만다. 무언가 계획을 세우려면 그 전에 마쳐야 하겠지만,

“별다른 작전은 필요 없겠지?”

이피온이 동의를 구하자 데미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가지 중 하나. 우리도 셋으로 나누던가, 하나로 각개격파를 하던가.”

“은색 갑옷의 실력이 불명이긴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우리가 우세야. 셋으로 나누는 게 좋지 않을까?”

류디칸은 중급, 케린은 초급의 마스터. 그리고 이피온, 카이져는 중급의 마스터이고, 데미안은 초급의 마스터이나 6서클의 마법도 일부 사용할 줄 아는 마검사이다. 또한 이안과 세르니안이라는 7서클의 마법사. 게다가 정예의 흑혈검사대도 있었다.

“3만은 대병력. 그리고 우리는 병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리지.”

데미안은 병력통솔의 효율성을 지적했다. 비록 많은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인정받고 있다곤 하나, 데미안이나 이피온이나 20대 초반, 어린 편에 속한다. 명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전장에 뛰어든 건 고작 1년. 능력은 있으나 경험이 부족한 점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3만이라는 병력은 단시간 내에 유기적으로 움직일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서로 다른 두 부대가 섞였으니 융화가 잘 안 되는 것도 있고.

나눠진 적 병력을 각개격파를 하려면 호흡도 잘 맞아야 하는데, 그러한 점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적에 맞춰 이쪽도 셋으로 나눠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찬성이란 말이지?”

“그래, 내가 은색 갑옷을 맡지.”

데미안이 동의하며 동시에 의견을 말했다.

“검과 마법이 있으니 돌발 상황에도 침착히 대응할 수 있어.”

은색 갑옷은 정체불명의 사람. 검을 차곤 있지만, 마법사일 수도 있다. 어떠한 상대인지, 실력도 모르는 이상 임기응변이 능하고 범용성이 높은 데미안이 맡는 게 제격이었다.

“그럼 내가 중앙의 류디칸, 카이져가 좌측의 케린을 맡으면 되겠군. 자, 나눠진 각 부대의 지휘관은 정해졌고, 다음은 마법사인데.”

“카이져에겐 이안님과 라스를.”

이번에도 곧바로 의견을 말하는 데미안. 지휘관 업무가 익숙지 않은 카이져이기에, 그를 보좌할 인물이 필요했다.

“병력도 너희 부대 위주로 편성해주면 되겠지? 너는 어쩔래?”

“난 흑혈검사대만 몇 붙여준다면 아무 병력이나 상관없어.”

“아니, 그것 말고 마법사. 상대가 정체불명이니 고위 마법사가 같이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이피온은 뒤에 서 있는 세르니안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말에 데미안도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왠지 갑자기 뺨이 얼얼해지는 것 같았다.

“상식적으로는 중앙이 본대지. 류디칸은 만만찮은 실력자야. 그쪽부터 빨리 정리하는 게 좋아.”

“하긴, 한쪽을 빨리 정리하고 다른 쪽으로 지원을 가는 게 이상적이긴 한데.”

꼭 작전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의 관계를 위해서 세르니안을 붙여주고 싶은 이피온이었지만, 둘 사이의 공기가 심상찮았다. 그리고 데미안의 의견도 일리가 있었다. 이피온과 세르니안, 그리고 그녀의 가디언을 맡고 있는 페리. 지금껏 함께 싸워왔기에 서로 호흡도 잘 맞는다. 이 강력한 전력이 활약하면 맡은 곳은 금방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지원을 해줄 수 있겠지.

“그럼, 넌 혼자가 돼. 괜찮겠어?”

“나 혼자서 마법사의 역할도 할 수 있어.”

“네 의견이 그렇다면 알겠어. 지휘관 배정은 그렇게 하자. 다음은 세부 병력 분배야.”

다른 사람들이 멀뚱히 구경하는 사이에 이피온과 데미안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작전을 마무리했다. 회의 도중 종종 카이져나 페리가 의견을 건네기도 했지만, 세르니안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데미안과 두 사람의 거리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좋은 흐름이군요.”

은빛 갑옷과 투구를 쓴 카이티나 황녀. 그녀는 류디칸과의 통신을 주고받고 있었다.

“번거롭게 워프를 하며 자리를 바꿀 필요는 사라졌군요.”

「예, 모두가 황녀전하의 계획대로이십니다.」

“아부할 필요 없어요. 당신의 생각이 적중한 거니까.”

셋으로 병력을 나눈 것,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긴 것. 이 모두가 류디칸과 카이티나의 계략이었다. 그리고 상대도 장단을 맞춰 병력을 나누고, 거기다 데미안이 카이티나가 이끄는 부대로 오게 하는 것. 데미안이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도 모두 두 사람이 유도한 것이다. 오랜 전쟁 경험으로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류디칸의 연륜이 만들어낸 작전이었다.

이러한 작전 모두가 아무런 방해 없이 데미안과 1대1로 싸우기 위한 것으로, 이피온 등 거추장스러운 마스터급 능력자가 둘의 싸움에 끼어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의 전장. 부디 나를 즐겁게 해다오, 칼슈터의 동생이여.”

멀리서 흙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보며 카이티나는 투구 아래에서 차갑게 웃었다.




“적과의 거리 2Km.”

이피온의 곁에서 RAI 요원이 보고했다. 이제 곧 전투의 시작이다.

“공중은?”

“GS와 GM의 신경전 중. 예상대로 지원은 못 받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육안으로 보이는 적들을 보며 투구 아래에서 씨익 웃었다.

“말로만 듣던 류디칸의 실력을 한 번 볼까? 세르니안.”

“…….”

세르니안을 불렀지만, 그의 바로 뒤에서 달리고 있을 그녀에게선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세르니안, 뭐 하는 거야?”

뒤를 돌아보자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표정이 보였다.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 나중에 살아남아서 그 녀석을 패면 되잖아.”

“아, 패, 패긴 누굴? 아, 아냐, 미안해, 딴 생각해서.”

이피온의 꾸중에 깜짝 놀라며 그녀는 정신을 차리곤 마법 준비를 했다.

“누굴 팰지는 뻔한 일이지. 아니면 벌써 팼나?”

피식 웃으며 이번에는 그를 따르고 있는 흑혈검사대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50의 익스퍼트 검사의 검에서 검은색 검기가 어른거렸다.

“진짜 때렸어?”

세르니안의 바로 곁에서 말을 몰고 있는 페리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응? 아, 아니야. 그냥, 따귀 한 대.”

“때렸네.”

쿡 웃으며 그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서 걱정되는 거야? 사과도 못했는데 전투가 벌어져서?”

“거, 걱정하긴, 누굴.”

“뻔하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하는 세르니안. 그래도 그 누군가가 걱정되는지 그녀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었다.

사실 데미안이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고 있다. 작전 회의를 마치고 출정을 하기 직전에 RAI로부터 보고가 있었다. 그리고 비룡기사단장인 세르닌이 비상대기 중이라는 연락도 있었다. 정체불명의 그 은색 갑옷이 누군지 그 후보가 추려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 후보 모두 하나하나가 만만찮은 인물들.

“괜찮을 거야.”

그때 세르니안을 향해 포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동시에 시원한 감각이 온몸을 돌며 마음을 안정시켜줬다. 페리가 바람과 물의 정령으로 그녀의 긴장을 풀어준 것이다.

“고마워, 페리.”

“아냐. 그보다 이제는 집중하자.”

서로 부딪히기 직전의 양 군대. 이제 잡담을 나눌 시간은 없었다.

“넌 내가 지켜줄게. 그러니 마음 놓고 마법을.”

스르릉!

검을 뽑는 동시에 세르니안과 페리의 주위에 불덩어리가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 외에 땅에서도, 바람에서도, 모든 원소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정령의 힘이었다.

“전군 공격.”

슉, 슈슈슈슉, 슈우우욱!

이피온의 명령과 동시에 수십의 검은색 검기가 날아갔다. 상대편에서도 검기가 날아왔다. 동시에 서로의 하늘 위를 오가는 화살들.

“파이어 익스플로전.”

쾅, 콰콰콰콰쾅!

적에게서 마력을 탐지, 마법사에게 우선 공격을 시작하는 세르니안. 7서클의 마법사인 그녀를 감당할만한 마법사는 적에겐 없었다. 또한 그녀에게 접근하려는 적들은 단 하나도 페리를 넘지 못했다.

채앵, 챙, 챙!

난전의 한 가운데. 마상에서 서로 검을 부딪치는 두 남자. 싸움의 여파로 사방에 강기가 튀자 어느새 그들 근처로는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자네가 지휘관인가?”

“그러는 당신은 류디칸 백작?”

허공에 검을 나누며 상대의 신분을 교환한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씨익 웃었다.

“아무리 흑혈기사단이라도 젊은이가 대단한 실력이군. 데미안이란 이름이었던가? 검술로는 그 젊은이보다 뛰어난 것 같아.”

“당연한 말을, 흑혈월광(黑血月光).”

슈우우욱!

거대한 반월형의 검강. 뛰어난 기마술로 강기를 피해냈지만, 이피온은 어느새 말에서 내려 류디칸의 말 바로 아래로 이동했다.

쉬익!

그리고 류디칸이 어떻게 피하기 전에 그의 말이 목이 잘린 채 쓰러졌다.

“이거 참, 요즘 트랜드인가? 자네도 마상전투가 익숙지 않은가?”

말이 쓰러지기 직전 뛰어내린 류디칸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얼마 전 데미안과 싸울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걸 어떻게?”

“데미안이라는 젊은이도 똑같은 말을 했거든.”

“그 녀석 답군요.”

피식 웃으며 이피온은 류디칸을 향해 검을 겨눴다. 전투는 이제 시작이다.

“흑혈폭검강.”

“라이트닝 포스, 소드 오러.”




“창천기사단과의 전투라.”

선두에서 말을 몰고 있는 카이져는 기대감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전 세계적으로 창을 사용하는 이는 드물다. 대부분 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건 전장에서도 마찬가지. 돌진용 랜스라면 몰라도 창을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기사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적장은 창천기사단 소속의 창술가. 그 유명한 기사단의 창술이라면 과연 어떠할지 호기심이 있었다.

“너무 재미만 신경 쓰지 말게. 자네가 지휘관이란 사실을 잊지 말고.”

“하하, 걱정 마십시오. 저도 바보는 아닙니다.”

이안의 걱정 어린 충고에 웃으며 대꾸하며 그는 정면을 주시했다. 흙먼지와 함께 선두에서 기다란 창을 지닌 그림자가 보인다.

“어차피 정면대결에 난전이 될 것입니다. 딱히 지휘에 신경 쓰실 건 없습니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만 하시면 됩니다.”

상대와의 거리를 재며 라스가 말했다. 데미안과는 달리 지휘에는 딱히 능력이 없는 카이져였지만, 중급의 마스터가 전장을 헤집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의 뒤에는 이안과 라스, 그리고 흑혈검사대가 받치고 있으니까.

“그럼, 시작해볼까?”




전속으로 달리며 서로 부딪히는 중앙과 좌군에 비해 데미안이 이끄는 우군은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MDS를 통해 은색 갑옷이 이끄는 적도 천천히 접근하고 있다는 포착한 그다. 다른 곳에서는 이미 전투가 벌어졌는데도 천천히 움직인다는 건 뭔가 노리는 게 있다는 것.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세르니안.’

상대의 의중을 생각하면서도 그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한 사람. 자신과 전혀 눈을 마주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자 가슴이 아파왔다.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고개를 저어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며 흑혈검사대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모두 발검. 신호를 내리면 흑혈일검과 함께 달려 나간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흑혈검사대는 대답과 동시에 검을 뽑았다. 그리곤 몇몇은 뒤로 빠져 병사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그가 펼치려는 작전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검기를 날림과 동시에 흑혈검사대로 돌격하여 적을 혼란에 빠트린다. 그 뒤를 나머지 병사들이 처리하는 것.

하지만 데미안은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하나 있었다.

“…….”

스르릉!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검을 뽑아든 데미안. 그의 머릿속에는 출정 직전 찾아온 연락과 RAI의 보고가 떠올랐다.

데미안과 그 친구들의 후견인인 비룡기사단장 세르닌 마겔로부터의 연락. 현재 자신은 비상대기 중이며,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후퇴하라는 전언이었다.

그리고 은색 갑옷의 정체의 후보를 추린 보고. 그 중 가장 유력한 후보가 하나 있었다. 류디칸과 함께 움직이며, 완벽한 정보 통제를 할 수 있는 지위를 지닌 인물. 비룡기사단장이 비상대기를 해야 할 정도의 강자.

“저, 사령관님.”

그때 마법사 하나가 데미안을 향해 다가왔다. 원래 이피온의 부대에 배속되어 있던 4서클의 마법사였다.

“뭔가?”

“지금 이 일대엡….”

“알고 있다. 경거망동 하지 말고, 쓸데없는 말도 하지 말도록.”

무슨 말을 할지 눈치 채곤 그를 뒤로 물리는 데미안. 4서클의 마법사가 느꼈는데, 6서클 러너인 데미안이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워프 차단.’

은색 갑옷이 있을 제국군을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일종의 결계. 방금 막 작동된 것 같은데, 도저히 그 범위를 추측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전역(戰域) 전체에 달할 수도 있다.

이 정도의 마법을 펼치려면 최소 8서클은 되어야 하지만, 지금 적에게 그 정도의 마법사는 없다. 그래, 마법사는.

옛날 카르틴과 함께 활동했던 전설의 10서클 마법사 세르아 가르시안. 그녀는 그래이드 제국과 친밀한 관계였고, 제국 황실에 많은 마법 아티팩트를 선물했다. 그 중에는 워프로 인한 암살을 막기 위해 차원위치정보를 일그러뜨려 워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아티팩트도 있었다.

즉, 제국 황실의 보물이라면 가능했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한다고 하던데…….’

“사령관님.”

그때 다시 그를 부르는 목소리 하나. 흑혈검사는 손가락을 뻗어 저 앞을 가리켰다.

어느새 왕국군과 제국군, 양군 모두 육안으로 상대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다. 이 타이밍이라면 데미안이 명령을 내려 선수를 쳐야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

할 말을 잃고 흑혈검사가 가리키는 곳을 멍하니 쳐다보는 데미안. 그곳은 제국군이 모여 있는 곳보단 좀 더 앞이다. 지금 대치중인 양 군의 정확히 가운데가 되는 위치.

거기에는 은색 갑옷과 투구를 쓴 기사가 서 있었다. 지팡이처럼 칼끝을 땅에 살짝 박곤, 손잡이 위에 두 손을 포갠 모습은 마치 황제와 같은 모습이었다. 홀로 서 있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1만의 병력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적장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혼자라니, 무슨 배짱으로…….”

공손히 대답하던 흑혈검사가 손짓하자 다섯 명의 흑혈검사가 앞으로 나왔다.

“이미 전투가 벌어진 마당에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겠죠.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

만류하려던 데미안은 생각을 바꾸곤 고개를 끄덕여 승낙했다. 앞으로 나선 다섯 명은 모두 익스퍼트 최상급으로, 데미안이 이끄는 흑혈검사대 중 최고의 실력자들이다. 다섯의 합공이라면 검술만이라면 데미안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두두두두두!

다섯의 기마가 은색 갑옷을 향해 달려갔다. 뽑아든 검에는 선명한 검은색 검기가 넘실거리고 있다. 그럼에도 은색 갑옷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척, 처처처척!

다섯 기마는 동시에 검을 휘두를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두두두두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은색 갑옷을 지나쳤다. 그걸 지켜보던 흑혈검사들이나 왕국군 병사들은 그대로 다시 턴하여 은색 갑옷을 향해 검을 휘두를 거라고 생각했으나,

툭, 투투투툭!

“이힝, 이히히히힝!”

두 동강이 난 다섯 시체가 땅으로 떨어졌다. 하체를 싣고 있던 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부짖으며 계속 달리다, 제국군 병사의 공격에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

흑혈검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은색 갑옷은 여전히 가만히 서 있다. 하지만 자신의 동료들은 죽었다.

“도, 도대체 무슨 일이…….”

흑혈검사들이 당황하는 사이 데미안은 말없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어떻게 공격을 했는지 봤다. 거대한 흰색 검강이 단 한 번에 다섯의 사람을 베어버렸다. 빠른 동작에, 흰색 검강이라 멀리서 식별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우웅, 우우웅!

그러던 사이 등 뒤에서 검기가 발동되는 소리가 들렸다. 큰 충격에 당황한 나머지 남은 마흔다섯의 흑혈검사들 모두가 공격준비를 한 것이다.

“그만…….”

이번에도 데미안은 제지하려다 내버려뒀다. 마흔 다섯 명의 검기 일제 사격. 이걸 막기는 불가능이다. 어떤 움직임을 보이며 피할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슈슈슈슈슉!

45개의 검은색 검기가 일제히 날아갔다. 목표는 은색 갑옷.

스윽!

아무래도 이번 것은 위기감이 들었는지 살짝 다리를 벌리며 검을 들어올렸다.

우우웅!

그리고 그 검을 감싸는 흰색 검강. 아무리 검강이라도 45개의 검은색 검기를 막기는 무력해보였다.

샤아아악!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단 한 번의 휘두름. 검기에 맞서 허공에 한 번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45개의 검기가 모두 상쇄되어 사라졌다.

“어, 어어…….”

그 위용에 흑혈검사들은 얼이 빠졌다. 이건 도저히 인간의 경지가 아니었다.

“우와아아아아아!”

경악한 왕국군과는 달리 제국군의 사기는 치솟기 시작했다. 인간을 초월한 무력(武力). 그러한 존재가 있는 한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려운 싸움이 되겠군.”

흑혈검사들을 제지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객관적인 전력은 왕국군이 우위니 패배하진 않겠지만, 피해는 클 것이다.

‘그것도 모두 저 괴물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성립되는 거지만.’

식은땀이 절로 났다. 저런 게 움직이면 필패다. 물론 아무리 강하다한들 홀로 1만의 병력을 상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움직임으로 기세가 꺾인다. 게다가 적은 은색 갑옷 혼자가 아니라 1만의 병력이 함께이지 않은가.

타탁!

데미안은 말에서 내렸다. 의아하게 바라보는 흑혈검사를 향해 은색 갑옷을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내가 저것과 싸우기 시작하면 전군 공격을 시작해라.”

“하,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처음에는 화려하게 싸우도록 하지. 그걸 가리키며 적당히 꾸며서 사기를 올려라. 저 은색 갑옷과 대등하다던가, 압도한다던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은색 괴물과…….”

어느새 괴물이라 부르는 모습에 데미안은 피식 웃었다.

“설마 죽진 않겠지.”

그 말을 남기곤 천천히 은색 갑옷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면서 티 나지 않게 마나를 끌어올렸다. 마법사용의 준비도 마쳤다. 숨기고 어쩌고 하면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처척, 척!

드디어 은색 갑옷의 앞으로 다가간 데미안. 이제 서로 검을 뻗으면 닿을 거리다.

“데미안 세이트인가?”

차가운 여자 목소리. 투구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저를 아십니까?”

“역시 칼슈터와 닮았군. 실력은 어떨까?”

스윽!

은색 갑옷의 여자는 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단순한 동작이었으나, 거기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이건 인사다.”

쐐애애액!

바람을 찢으며 수직으로 내려오는 그녀의 검. 이대로라면 앞서 흑혈검사들과 같은 결과가 나올 터.

“파이어 봄(Fire Bomb).”

퍼어엉!

데미안은 재빨리 준비한 마법을 시전했다. 내려 베는 검을 뒤덮을 폭발. 아무리 실력 있는 사람이라도 그대로 팔이 튕겨나갈 위력이다.

쉬이익!

하지만 그녀의 검은 폭발마저 베어버렸다. 그대로 검이 데미안을 베기 직전.

카아앙!

“큭.”

절로 신음이 나왔다. 그래도 데미안은 그녀의 검을 막았다. 폭발로 속도와 위력을 떨어뜨리고 검을 들어 막은 것이다.

“마법과 연계가 쓸 만하군.”

그녀는 작게 감탄하며 검을 거둬들였다. 그 틈을 노려 데미안은 연속으로 준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파이어 블래스터, 슈팅 크로스!”

콰아앙앙, 슈슈슈슈슉!

거대한 불덩어리가 그녀를 감쌌고, 근접거리에서 수십 개의 강기 다발이 날아갔다. 데미안의 상식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거리.

“우와아아아아!”

두두두두두!

동시에 지시했던 대로 왕국군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방금 그 모습에 사기는 올라온 모습이었다.

왕국군이 움직이자 제국군 역시 달려나오며 서로 부딪혀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데미안과 불덩어리 속에 있을 은색 갑옷의 여인 근처에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괴물들과의 싸움에 휘말리기 싫은 건 왕국, 제국군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샤아아아아!

“이 정도면 장단에 맞춰준 셈인가?”

그와 동시에 불덩어리가 안쪽에서부터 갈라져 사라졌다. 거기엔 갑옷에 그을림 하나 없는 멀쩡한 모습의 은색 갑옷이 보였다.

“…….”

데미안은 좀 더 거리를 벌리며 신중히 그녀를 노려봤다. 그와 동시에 은색 갑옷의 유력 후보자가 떠올랐다.

현 제국 최정예 기사단인 백혈기사단 부단장. 최상급을 눈앞에 둔 상급의 소드 마스터. 그리고,

“카이티나 그래이드 공주님이십니까?”

“보통은 황녀라고 하지.”

전장에 나서면 왕국군 전체에 비상이 걸릴 실력자. 카이티나 그래이드 황녀가 투구 안에서 날카롭고 차가운 시선으로 데미안을 바라봤다.

“워프도 차단시켰고, 한창 전투중이니 방해할 사람도 없다. 느긋하게 검이나 나눠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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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분량이 많네요.


굇수 등장.

대사제나 기타 등등 존재자체가 사기인 비상식 괴물들을 제외하면,

황녀님은 꽤 상위권의 실력자입니다.

top30위권 내의 실력자.

세계관 최강급인 3천10성7마를 제외하면 위에서 1,2위를 다투는 실력자이죠. 그들 바로 아래단계랄까.

그리고 데미안과 나이차도 세살밖에 안 나는 굇수천재. 앞으로도 얼마든지 성장 가능성이 있답니다.

10대 중반 때부터 전장에서 뒹굴었던지라 데미안과는 비교도 안 될 풍부한 경험도 가지고 있죠.


그러한 강적을 상대로 데미안은 과연 얼마나 잘 싸울 수 있을 것인가?



이자벨 : 그래서 결론은?

천영 : 오늘 개강. 학교가기 싫어.ㅠㅠ

이자벨 : 개강했다고 월간연재는 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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