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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몽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망나니가 사람을 너무 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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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몽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4.03 16:30
최근연재일 :
2024.04.14 01:02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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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글자수 :
57,510

작성
24.04.1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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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망나니의 유쾌한 여행 -4

DUMMY

#9화


그를 가르친 암살자는 말했다.


-명심해라, 16호. 암살자는 한 번에 한 가지의 목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언제나 최소 두 가지에서 세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여라.


쓰임이 다해 자신이 가르친 이들에게 살해당한 어리석은 자이지만, 16호는 그 말만큼은 옳다고 여겼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보인다.

이상적인 암살이다.


그래서 에릭 레이븐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순간, 16호는 이상적인 암살을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사실상 모든 게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에릭 레이븐과 상급기사인 베비스 레이븐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빌젠 남작령에 숨어든 동료들을 모아야 했다.

거기에 소피아 빌젠과 남작성을 나선 에릭 레이븐이 암시장을 목표로 한다는 걸 알아내고 습격로와 퇴로를 확보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에릭 레이븐의 죽음만을 목표로 두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에릭 레이븐의 죽음은 시작이다. 빌젠 남작령과 레이븐 백작령 사이를 파탄 낼 신호탄이자, 최근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소피아 빌젠을 향한 경고.’


한 사람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파멸의 도미노.

많지 않은 시간에도 16호는 그것을 짜내고자 했다.

뭣보다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흔히 하는 실수인, 자신이 짠 계획에 매몰되는 일을 방지하고자 사고를 유연하게 가져갔다.


에릭 레이븐이 암시장에 간다고 했을 때는 그를 죽이는 한편 그가 산 물건을 훔쳐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자 했고.

소문만 거창한 모래시계를 50골드에 사는 모습에서는 혹여 있을 기연을 위해 루카스 남작님에게 보낼 방도를 생각해두기도 했다.


‘베비스 레이븐과 소피아 빌젠의 호위들 발도 묶어두었다.’


경매가 끝나고 어수선한 틈을 타서 욕심 많은 이들에게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들이 돈 많은 졸부일 것이라고.

지금쯤 암시장에서 나온 그들에게 겁도 없이 달려들고 있겠지.


당연하지만 그런 어중이떠중이들이 긴 시간을 벌어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길어야 5분일까.

하지만 16호는 그 전에 에릭 레이븐을 죽이고 모래시계를 탈취할 자신이 있었다.


‘여행 중에 훈련받는 모습이나, 헬하운드를 사냥하는 모습에서 에릭 레이븐의 실력은 이미 충분히 봐두었다.’


자신감 어린 확신.

16호와 동료들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이빨을 드러냈다.

그런데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렇게 숨어도 안 통한다니까!”

“컥-!”

“!!”


어둠에 동화되어 뒤를 노리던 동료가 배에 니킥을 맞고 튕겨나갔다.

뼈가 부러지는 적나라한 소리가 안 그래도 엉망이 된 사고를 한층 더 엉망으로 만들었다.

동료들이 차례차례 당하고 있다.


‘어떻게?!’


분명 실력 자체는 그가 파악한 것과 그리 다를 게 없었다.

잘 쳐줘봐야 하급기사 수준.

저 일천한 경지로는 레이븐 백작가의 상징이자 최대위험이라 할 수 있는 새카만 오러를 내보일 수조차 없다.

하지만 그런 상대에게 동료들이 당하고 있다.


16호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너지는 상식 앞에 이성은 무력했다.

허나, 느긋하게 상황을 이해할 시간은 없었다. 뒷골목 주먹들처럼 건들거리는 에릭 레이븐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기 어린 눈동자가 그를 집어삼킬 것처럼 노려보았다.


“지루한 숨바꼭질은 다 끝났냐.”

“네놈은 대체 어떻게 우리를 알아볼 수 있는 거지···?”


한번 본 인간의 모습을 모방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을 통해 동료들 사이에서 혼란을 일으켰으나 통하지 않았다.

어둠에 숨거나, 지면을 물처럼 스며드는 등의 능력 또한 마찬가지.

마치 전부 보이는 것처럼 그들을 베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걸까?


그리고 그 순간 16호의 시선이 에릭의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모래시계로 향했다.


“···설마 그런 능력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갑자기 뭔 개소리야.”

“내 실수였군. 나타난 변수를 너무 얕보았어.”


에릭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소피아의 도움이 있다고 해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적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믿고 겁도 없이 달려들었고, 그는 그들의 머리 위에 뜬 ‘이름’을 보고 베었을 뿐이다.


물론,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16호는 모든 게 모래시계의 힘이라 여겼기에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이를 악물었다.


처음 덤볐다가 에릭 레이븐에게 목이 날아간 동료가 하나.

부상을 입은 동료가 둘.

소피아 빌젠과 전투 중인 동료가 하나.


‘암살은 실패했다.’


곧 호위병력이 몰려올 터.

그사이에 에릭 레이븐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획이 완벽히 실패한 것은 또 아니었다.


암살자란 언제나 죽음을 각오하는 자들.


콰앙!

“!!”


부상을 입은 동료들은 기꺼이 대의를 위한 초석이 되었다.

그들의 몸에 설치된 마력폭탄이 터졌다.

핏빛 불길이 도시를 밝혔다.


그리고 대다수의 시선이 그곳을 향한 틈을 타서 16호와 소피아 빌젠을 상대 중이던 동료는 단도를 던졌다.

다만, 그들의 목표는 이제 에릭 레이븐의 목숨이 아니었다.


콰직-

“어?”


반사적으로 날아드는 단도를 검으로 쳐낸 에릭이 어벙한 목소리를 냈다.

단도가 주머니 속 모래시계에 박혔다.

찢어진 주머니 사이로 붉은 모래가 피처럼 쏟아졌다.


‘목표는 완수했다!’

“끄아악!”

“에릭!”


그 과정에서 동료가 결국 불에 타죽었지만, 16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꺼내둔 연막탄을 터트렸다.

동시에 골격이 뒤틀리며 건장한 성인이던 그의 몸이 어린아이로 변했다.


후웅-


머리 위를 지나가는 검.

본래 가슴을 꿰뚫어야 했을 검은 허공을 스쳐지나감에 미소를 지은 16호가 작아진 몸으로 근처 강에 뛰어들었다.

또다시 육체를 변형해 어인의 모습을 모방해 물살을 거스르는 그.

음습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문제의 모래시계를 파손시켰다!’


그렇다면 기회가 있다.

잠시 호위가 강화되겠지만 에릭 레이븐을 죽일 기회는 남았다.

다음에는 반드시 실패하지 않으리라!


도시에서 벌어진 소란 탓에 어수선한 남작령으로 돌아온 16호, 아니. 이제 존은 허둥지둥 도련님을 맞았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요?!”

“······.”


에릭의 표정이 묘해졌다.


※※※


세상에는 참 여러 사람이 있는 거 같다.


‘그러니 이런 미친놈도 다 있는 거지.’

【인조인간】 16호


연막탄을 도망가는 걸 놓칠 때만 해도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설마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질 줄은 몰랐으니까.

뒤늦게 도착한 이들과 함께 강을 샅샅이 수색했는데도 찾지 못할 때는 이미 영지를 빠져나갔으리라 생각했다.


‘그만큼 이번에 녀석들이 벌인 일은 크니까.’


백작가의 자제와 남작가의 영애를 암살하려고 한 집단이 나타났다.

남작이 발칵 뒤집어지는 건 당연했다.

도시는 현재 봉쇄되어 도망간 이와 거기에 연루된 이를 수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간도 크게 성으로 돌아온 배포에 감탄을 해야 할지, 헛웃음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놔두기는 해야겠지.’


증거가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16호의 정체가 밝혀져도 문제였다.

몰랐다는 말은 통하지 않을 거다.

안 그래도 레이븐 백작가에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한 빌젠 남작가는 이걸 빌미로 많은 걸 요구하려 할 거다.

그런 꼴을 보느니 암살자를 잠시 모르는 척하는 게 낫다.


‘써먹을 곳이 남기도 했고.’


모래시계를 부수고 득의양양하게 도망치던 모습.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자신들을 본 게 모래시계 덕분이라고 착각한 거 같은데, 그 착각을 잘만 이용한다면 이번처럼 루카스 남작의 힘을 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냥 놔둬보기로 했다.

베비스 경에게 사정을 어느 정도 설명해두면 안전장치도 마련될 테고.


“도련님이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로 다행입니다요!”

“그래그래.”


그러니 지금은 놔두기로 하고.


“안나나 세바스찬은 내가 나간 사이에 별일 없었고?”

“넷! 다른 분들한테 찻잎을 받아서 끓여보고 있었어요.”

“허허. 저도 일이라고 할 건 없었습니다. 곧 있을 화로제와 관련해서 업무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둘 다 큰 일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게 더 무섭다.

그나마 16호가 크게 사고를 쳤으니 당분간은 상황을 볼 거라는 게 희망적인 얘기인가.

이런 의미에서 습격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나는 그 평가를 전면 철회했다.


“반드시, 반드시 암살자들을 잡고 말겠어요.”

“음, 좀 진정하는 게 어때. 얘기를 들어보니 잠도 안 잤다면서.”

“지금 잠이 중요한가요! 이번 일은 빌젠 남작가를 향한 도전이에요. 화로제가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감히 그런 짓을!”


소피아의 분노로 방이 후끈해졌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불 속성 마나가 뿜어지며 뜨거워지고 있다.

남작가의 시종들은 그런 그들의 아가씨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는 한편, 말려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더 진정해야지. 머리에 열이 올라서 중요한 행사를 망쳐서야 상대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뿐이잖아.”

“하, 하지만······.”

“가슴은 뜨거워도 머리는 언제나 차갑게. 그게 네 좌우명 아니었어? 이런 모습은 너답지 않은 거 같은데.”


말을 좀 세게 한 거 같지만, 유능한 소피아가 실제로 16호를 찾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온 소피아의 반응은 내 생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저답지 않다고요? 하···하핫! 그렇게 따지자면 가장 본인답지 않은 건 에릭 공자 당신 아닌가요?”

“여기서 내 얘기가 왜 나와.”

“에릭 공자는 이상해졌어요. 비련의 주인공이기라도 한 것처럼 굴던 예전의 당신이었는데 지금은······.”


왜 말을 하다가 말아.

하지만 소피아는 그 이상 얘기할 생각이 없는지 마른세수를 했다.

달아오르던 공기도 낮아졌다.


“모래시계는 결국 고칠 수 없었어요. 장인 말로는 고치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 만드는 게 더 빠를 거라더군요.”“뭐 어쩔 수 없지. 깨진 것도 문제인데 붉은 모래가 흘러내렸으니까. 어떻게 고쳐도 그건 새로운 모래시계지.”

“그게······당신의 대답인가요.”


뭔 소리람?

하지만 그리 말하는 소피아의 얼굴이 지나치게 진지해서 괜한 소리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가만이라도 있으면 반은 간다니까.


그리고 그 말은 이번에도 들어맞아 소피아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의 뜻은 잘 알겠어요. 아버지는 제가 잘 설득해볼게요. 저희가 좋은 약혼관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마지막은 웃으면서 끝내고 싶으니까요.”

“너 그 말은···.”

“밤새 고민했어요. 무슨 의도로, 왜 그런 걸까. 하지만 공자의 말을 들으니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간단하더라고요. 서로 싫어하는데, 명목상으로라도 관계를 더 이어나갈 필요는 없죠. 그러니 합시다, 파혼.”


나는 거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혼을 선언하는 소피아의 얼굴에 깃든 이유 모를 미안함과 후련함 등을 무시하며.

당연히 우리 선언만으로 귀족끼리의 파혼이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빌젠 남작가는 이런 결과를 원하고 있었으니 결과는 뻔하지.


‘파혼은 기정사실이다.’


소피아라는 여걸은 이제 망나니 약혹자라는 짐을 털어내고 원작처럼 세상에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겠지.

나는 한 명의 사람이자 게이머로서 그걸 축하해주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에릭 때문에 제대로 친해지지 못한 게 아쉽네.’


나는 작은 아쉬움을 담아 웃었다.


※※※


“아아······.”

“저기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한 거지.”

“화로제···참가하신다고요······.”

“흥미도 있고. 남작님도 부탁하셨으니까. 남작령에서 암살위협이 있고, 파혼 얘기가 나돌면 그림이 안 좋잖아.”

“그···렇죠.”


소피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파혼한 우리.

같이 축제에 가게 생겼다.



작가의말

다음 편은 새벽 1시에 올라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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