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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몽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망나니가 사람을 너무 잘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구스타몽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4.03 16:30
최근연재일 :
2024.04.14 01:02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5,865
추천수 :
186
글자수 :
57,510

작성
24.04.05 09:20
조회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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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12쪽

망나니의 유쾌한 반란 - 1

DUMMY

#2화


마르쿠스가 나를 의심하고 있다.

뭐 예정된 일이긴 했다.

사람이 별다른 계기도 없이 하루아침에 이리 달라졌으니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물론 그래봐야 악령에 빙의당한 건 아닌지 의심하는 정도겠지만.’


그 노인네 성격상 내 변화에 흥미를 느끼면 느꼈지 다짜고짜 제거하려고 들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악령에 관한 빙의도 몇 번 실험해본 뒤 아니라는 걸 깨달을 테니까.

마르쿠스가 내 정체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


‘대신 내 머리를 좀 더 자주 보겠지···.’


씨발.

서러워서 얼른 힘을 키우던가 해야지.


“여, 여기가 훈련장이에요.”

“그래. 가서 어디 갔냐고 하면 내 길 안내 했다고 해.”

“그, 감사합니다?”

“오냐.”


불편해하는 게 느껴져서 얼른 수련장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뒤에서 생각지도 못한 얘기가 들려왔다.


“후, 훈련하실 예정이라면 베비스 경을 불러드릴까요?”

“베비스 경?”

“아···그, 괜한 참견이었다면 죄송해요!”

“아니. 나무라는 게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그게 누군데?


“으우우. 도련님의 스승이시니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실까 싶어서······.”

“아, 그런 거라면 좋지. 좀 부탁할게.”

“넷!”


기합이 잔뜩 들어간 채 도도도 달려가는 메이드.


【덜렁이】 메이

“확실히 정신없는 친구네.”


그래도 덕분에 큰 도움이 됐다.

설마 훈련하러 와서 검술스승이 있다는 걸 깨달을 줄이야.

다행인 건 메이의 말을 듣고 난 뒤부터 베비스 경에 대한 에릭의 기억이 조금씩 생각난다는 거다.


‘베비스 레이븐. 뛰어난 재능으로 백작의 신임을 산 방계 출신 기사.’


성격은 기사치고 자유로운 편.

에릭의 검술스승이지만, 망나니가 하도 수련을 안 하니 동생인 다이크의 검술스승을 겸직 중인 모양이다.

덕분에 에릭이 대놓고 싫어한 인물이다.


“도련님!”


다가오는 흑갈색 머리 남성.


【흑기사】 베비스 레이븐


오, 이명이 멋지다.

표정도 다행히 에릭에게 큰 악감정 없어 보이고.

첫 단추를 잘 꿸 수 있을 거 같다.


“메이로부터 저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훈련을 좀 할까 해서.”

“···그럼 각오가 서신 겁니까?”

“아, 응. 뭐 그렇지.”


개처럼 구를 각오를 묻는 거 같은데, 안 하면 죽음이 확정인지라 힘들어도 해야 된다.

그러자 환하게 웃는 베비스 경.


“잘 생각하셨습니다! 게다가 이번 마경 토벌에 참가하신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그래.”

“가주님께서 도련님이 다시 훈련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뻐하시겠군요.”

“그랬으면 좋겠네.”


그래야 내 말을 들어주지.

백작가를 돌아다니는 불순분자가 하도 많다 보니 손발이 근질거렸다.

집에 벌레가 돌아다니는 기분이다.


‘이런 걸 보면 에릭의 영향이 아예 없진 않은 거 같네.’


몸을 강탈한 셈이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자자, 얘기가 좀 길어진 거 같은데 슬슬 훈련에 들어가는 거 어때?”

“전 좋습니다!”

“음, 그런데 경도 알다시피 내가 좀···오래 놀았잖아. 그래서 기초부터 시작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도련님.”


아, 역시 아무리 망나니라고 해도 기초부터 시작하겠다는 소리는 좀 이상했나?

하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베비스 경의 표정이 감격에 차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기초가 중요하다는 제 말을 들어주시는군요! 그럼 시작은 간단하게 레이븐 백작가의 오러연공법부터 시작하려 하는데 어떻습니까?”

“좋아.”

오러연공법!

기사에게 있어 검술만큼이나 중요한 기본기.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걸 콕 짚어서 알려준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베비스 경에 대해 들으니 기억이 떠오른 것처럼, 오러연공법을 보면 기억나는 게 조금이라도 있겠지.’


집중을 위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베비스 경은 그런 내 태도에 놀라운 한편, 스승으로서 제자의 변화가 기꺼운지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였다.


“도련님도 아시겠지만 ‘레이븐 하트’는 대륙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위험한 오러연공법입니다.”


레이븐 하트.

직역하자면 까마귀 심장인가.

단순한 이름이다.


‘그런데 위험하다고?’


무슨 금지된 힘이라도 받아들이나···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베비스 경이 폭탄을 터트렸다.


“그야 위험할 수밖에 없죠. 레이븐 하트는 대륙에서 유일하게 마나와 함께 마기를 흡수하니까요.”

“마기···?”


아니, 그걸 왜 흡수해?

하지만 눈을 감고 집중한 베비스 경은 그런 내 경악을 보지 못한 모양이다.

그가 손을 펼쳤다.


화륵!


새카만 오러가 거칠게 일렁인다.

첫 감상은 불길하다는 것.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카만 오러 사이사이에 깃든 마나가 푸르게 빛나며 밤하늘처럼 보이기도 했다.


“레이븐 하트를 익힌 자는 인간의 몸으로 마(魔)를 품습니다. 네, 미친 짓이죠.”

“하.”


맞다.

미친 짓이다.


텅 빈 그릇에 마기를 담는 건 괜찮다.

그릇이 검어질 뿐이니까.

흑마법사나 일부 암살자가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마기와 함께 다른 것을 넣는다면 그때부터 얘기가 다르지.’


내용물이 충돌하면서 그릇에 금이 갈 수도 있다.

최악에는 그릇 자체가 깨질 수도 있겠지.

즉, 죽는다.


하지만 베비스 경은 그게 뭔 대수냐는 듯 해맑게 웃었다.


“인간은, 그런 미친 짓을 해서라도 이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목숨을 쌓은 끝에 도달했죠. 우리와 우리의 선조가 목숨을 걸고 싸울 때, 뒤에서 제 배나 불리는 돼지들이 상상도 못할 경지에.”

화르륵-!


베비스 경의 손아래서 펼쳐진 오러가 한 가지 형태를 이뤘다.

그것은, 칠흑의 검.

나는 멍하니 그 이름을 속삭였다.


【용맹의 검】

“모글레이.”

“···지나가듯이 말씀드린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군요. 네, 맞습니다. 이것이 제가 갈아낸 마검입니다. ‘금 같은’ 신의 은총 없이도 악마를 죽일 수 있는 무기.”

“일종의 분신이네.”

“괜히 검사에게 검이 분신이라고 하는 게 아니죠.”


가볍게 웃는 베비스 경.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걸 숨기고 있었으니 악마와 손잡았다고 처형됐지.’


베비스 경이 멋들어지게 말했지만 마검은 결국 마검이다.

주인을 파멸로 몰아가는 검.

멀쩡한 사람이라면 당장에라도 거리를 두는 게 맞겠지.


실제로, 에릭은 그랬다.


-미쳤어! 너도, 우리 가문도 전부 미쳤다고!

-도련님···!


에릭은 예정된 파멸을 감당하지 못했다.

‘각오’가 부족했다.

그러나 선택하지 않으면 결국 모든 걸 잃는다는 걸 아는 김승우는 다르다.


나는 각오를 다졌다.


“나도, 알려줘.”

“죽도록 힘들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검을 얻은 뒤에도 편안하지 않겠죠. 흔히 심마라고 표현하던가요.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베비스 경이 마검을 허공에 긋자 훈련장에 새겨지는 수백의 검흔.

비산하는 먼지.

마검을 든 기사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왕국에서 마검을 든 저를 이길 수 있는 건 가주님뿐입니다.”

“가르쳐줘.”

“물론입니다. 저는 도련님의 검술스승이니까요.”


그리고.


지옥이 펼쳐졌다.


※※※


그런 말이 있다.

괴물을 죽이기 위해 너 또한 괴물이 되지는 말라고.

그런 의미에서 베비스 경은 틀렸다.


‘아, 악마 같은 인간.’


마검을 권하는 혀 놀림이 악마 못지않다 싶더라니.

사람을 굴리는 솜씨는 그 이상이다.

갓 태어난 사슴도 지금 내 다리처럼 떨리진 않을 거다.


“으으, 죽겠네.”


근데 내일도 가야겠지···.

이게 참, 어쩔 수가 없다.

베비스 경이 나를 이렇게 굴린 데는 내 탓, 정확히는 내 몸 탓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당연했다. 마우스나 딸깍이던 게이머가 검의 파지법부터 마나를 느끼는 법 같은 걸 어떻게 알까.

만약 후자를 안다면 그 사람은 귀환자다.


근데 나는 귀환자가 아니었고, 기초고 뭐고 없어진 상태를 파악한 베비스 경의 눈은 내 다리만큼이나 떨렸다.

다행인 건 베비스 경이 집념의 사나이였다는 점일까.

기초를 아예 몸에 때려 박더라.


문제는 그게 또 효과가 좋았다는 거다!

생존본능의 발로인지 에릭이 했던 기억이 떠오르고, 성과가 그 즉시 나오니 베비스 경의 눈이 뒤집히고.

끔찍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하, 영지도 둘러보고 해야 하는데.”


좋아하는 게임 속 세계를 직접 본다.

참을 수 있을 리 없다.

당장에라도 둘러보고 싶어 손발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바깥은 이미 밤.

몸도 솔직히 만신창이이니 얌전히 쉬고 내일 가기로 했다.

노는 것도 체력이 있어야 하지.


그런데 그때였다.


“거기서 뭐하는 거야.”

“아, 다이크.”

뒤를 돌아보니 서 있는 다이크.

그런데 딱 봐도 불만이 엄청 많아 보인다.


“하! 형은 정말 구재불능이구나.”


느닷없이 욕먹었다.

뭐지?


“왜 시비지?”

“시비? 형 꼴을 봐. 지금 내가 말을 안 하게 생겼나.”

“야, 내 꼴이 어때서.”


훈련 때문에 엉망이긴 한데 욕먹을 정도는 아니지.

그런데 저쪽 생각은 달랐던 거 같다.


“식당에서 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해놓고 지금 그러고 있는 게 형은 부끄럽지도 않아?”

“오히려 좋아하실 거 같은데.”

“제정신이야? 아버지가 형이 술에 꼴아서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실 리가 없잖아.”

“어?”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점검했다.

평소 술 좋아하는 사람이 야밤에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걸 보고 생각나는 것은?


‘아, 저 새끼 또 술 처마셨구나.’


그것도 아침에 뭘 잘못 먹었는지 이제부터 달라질 거라고 선언한 놈이?

화날 만했네.

한 대 안 친 게 다행이지.


“야, 네가 무슨 오해를 하는지 알겠는데 나 술 안 마셨어.”

“형은 책임감이라는 게···뭐?”

“나 술 안 마셨다고. 지금 비틀거리는 건 훈련하다 와서 그래. 뭣하면 베비스 경한테 물어봐도 좋아.”


그런데 다이크의 반응이 충격적이었다.


“형······이제는 약도 해?”

“아니, 얘기가 왜 그렇게 흘러.”

“형이 이 시간까지 훈련을 하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안 되겠어. 아버지, 아버지한테 가서 얼른 얘기해야···.”

“어어?”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바람처럼 달려가는 다이크.

전신근육통 상태인 내가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아온 녀석을 잡는 건 불가능했다.

성이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쟤 어쩌려고 저러냐···.”


내가 그리 한숨을 내쉴 때였다.


“허헛, 한창 상상력이 풍부할 때 아닙니까.”

움찔


깜짝이야.

이 음험한 노인네 인기척 좀 내고 다닐 것이지.

아니지, 의도적인가?


“세바스찬 안 자고 뭐하는 거야?”

“도련님 훈련이 끝나는 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식사 때 드리기로 한 꿀물을 못 드렸었으니까요. 마침 데어왔으니 따듯할 때 드시지요.”


진짜 미친놈인가?

물론 그랬다간 목이 날아갈 테니 얌전히 꿀물을 받았다.


“고마워. 마침 따스한 게 마시고 싶었거든.”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이렇게 안 기다려도 돼. 늦게까지 훈련할 거 같은데 미안하잖아.”

“허허. 도련님께서 늙은 저를 이리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도련님을 모시는 건 저의 기쁨이니 부디 제가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내가 싫다니까!

하지만 웃는 얼굴로 지긋이 바라보는 암살자의 시선이 무서워서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면 이상한 걸로 복수할 거 같다.


“마음대로 해.”

“감사합니다.”


음흉한 노인네 어디 두고 보자!

노인공격을 보여줄 테니.


※※※


다음날 아침.

백작은 아침식사를 나온 이들에게 선언했다.


“에릭이 어제 밤늦게까지 훈련을 했다고 들었다. 베비스 경의 말에 따르면 성실히 임하고 하니 저택의 인원들은 이와 관련해서 괜한 억측은 삼가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다이크?”

“······네.”

“킥킥!”

“엘리아, 다 큰 숙녀가 되서 남을 비웃으면 못 쓴단다.”

“힝, 네.”


고개를 푹 숙이는 동생들.

이마를 짚는 백작부부.

그 사이에서 나만이 킬킬거리며 소세지를 썰었다.


“우물우물. 맛있네~.”

“씨이.”


좋아, 저 얼굴만으로도 오늘 영지 탐방이 즐거울 거 같다.

망나니의 유쾌한 반란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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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나니의 유쾌한 반란 - 1 +1 24.04.05 660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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