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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몽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망나니가 사람을 너무 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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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몽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4.03 16:30
최근연재일 :
2024.04.14 01:02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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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글자수 :
5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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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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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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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망나니의 유쾌한 반란 - 4

DUMMY

#5화


조제프 뷔케.

수호자 가문인 레이븐 백작가가 귀족들의 삽질로 멸문하고 아르투스를 잿더미로 만든 흑마법사다.

전문분야는 길들인 마수를 이용한 저주.


‘게다가 조제프는 그냥 내버려두면 아르투스 인근에서 힘을 모아 동부 전체를 초토화시켜버리지.’


그 자체로도 짜증 나는데 시간이 지나면 더 강해져서 깽판을 치는 스타일이다.

자연히 강해지기 전에 반드시 잡아야 하는 빌런이기도 했다.

위험도만 따지면 마르쿠스보다 위다.


그러나 동시에 위의 이유로 나는 조제프를 여러 번 상대해봤다.

상대의 약점을 훤히 꿰고 있다는 거다.

최소한의 무력만 갖춰지면 이곳이 현실이라는 걸 감안해도 충분히 죽일 수 있다.


‘···그 최소한의 무력이 오러 사용자여서 문제지.’


체내에 흐르며 육신을 강화시켜주는 오러를 외부로 표출할 수 있게 되는 단계에 선 자를 오러 사용자라 부른다.

쉽게 말해 검기를 다룰 수 있게 되는 경지이며, 세상은 이 수준에 이른 자를 중급기사라 부른다.

그렇다면 현재 내 수준은 어떨까?


여기에 베비스 경은 단언했다.


“훈련된 병사 이상, 하급기사 미만 정도로 될 겁니다.”

“어중간하네.”

“네. 어중간하죠.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본래 오러로 신체를 강화할 수 있다면 하급기사 정도로 쳐줍니다만······.”

“나는 기본기가 되어 있질 않아서 그렇구나.”


당연히 이런 실력으로는 약점을 꿰고 있다고 해도 조제프를 이길 수 없다.

약점 좀 안다고 사람이 맨몸으로 상어에게 덤비지 않는 것과 같다.

다만, 억울한 감이 없지는 않았다.


‘기본기가 튼튼한 인물에게 빙의했다거나, 최소한 에릭의 기억을 전부 받아들였어도 제대로 된 하급기사로 평가받았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당시 조제프가 피를 토했다는 것.


무슨 만화도 아니고 사람 얼굴을 보고 각혈했을 리는 없으니, 아마도 지병 같은 게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솔직히 뼈에 가죽만 덮어놓은 꼴을 보면 절대 건강해 보이진 않았으니까. 원작에서는 그래도 살집이 있었던 것도 그런 내 가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아르투스를 멸망시키면서 악마에게 제물로 건강을 얻었던 거겠지.’


그러니 조제프가 몸을 추스르기 전에 강해져야 한다.

베스트는 이번 마경 토벌에서 조제프의 은신처를 찾아서 베어버리는 것.

목이 떨어지면 제가 어떻게 살 건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너무 조급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계단도 하나씩 오르면 언젠가 정상에 도달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당장 오늘만 해도 여러 일이 있었는데 도련님께서는 저와 이렇게 훈련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노력도 안 하고 결과가 나오길 바라면 안 되니까 하는 거지.”

“그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않는 자가 얼마나 많은데요. 자. 그런 의미에서 슬슬 일어나시죠. 쉴 시간은 충분히 드렸습니다.”

“칫.”


역시 상급기사의 시선은 못 속이나 보다.

그래도 어제 너무 과했다는 자각은 있었던 건지, 아니면 오늘 내가 보여준 활약 덕분인지는 몰라도 훈련은 제법 할 만했다.

목검을 쥐고 자세를 잡으니 베비스 경이 부드러이 웃으며 물었다.


“도련님께서는 검술이라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문득 떠오르는 광경.

과거, 베비스 경은 에릭에게 이번과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때 에릭이 뭐라 답했더라.


“가문에 명예를 가져오고, 약자를 수호하기 위한 숭고한 무기···라고 했던가.”

“음, 이제는 아니신 겁니까?”

“응. 아니야.”


어린 에릭은 한 가지 착각했다.


“검을 휘두르느냐에 무엇을 담는지는 자유지.”


정의, 호신, 자유, 호승심.

뭐든 좋다.

하지만 검에 무엇을 담건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검은 무기야. 상대를 상처 입히기 위한 무기. 그리고 검술은 그런 검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체계화한 방식인 거고.”

“기사도를 숭상하는 이들이 들었다면 기겁을 했을 소리군요.”

“그들이 기사는 아니잖아. 애초에 검이 무기라고 해서 내가 뭐 명예를 저버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실로 맞는 말입니다.”


베비스 경이 만족스러움을 담아 웃었다.


“검에 거창한 뜻을 담는다고 적보다 호흡을 아낄 수 있거나 하는 일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도련님께 가르쳐 드릴 건 하나입니다.”

“적을 상대하는 방법?”

“하핫, 아뇨. 죽이는 법입니다.”


기사가 주군의 아들한테 상쾌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해도 건가 싶지만, 나로서는 이런 방식이 훨씬 좋았다.

괜히 납득도 안 되는 명예를 강요했다면 그것만큼 귀찮은 일이 없었을 테니까.

베비스 경이 열린 사람이라 다행이다.


“사실 본래는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나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도련님을 보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왠지 불길한데.”

“도련님은 강해지시기를 원하시고, 저는 스승으로 그걸 도와야 하니 어쩌겠습니까. 좀 과격해도 이해해주십시오.”

꿀꺽.


침을 삼키며 목검을 강하게 쥐었다.

오늘 훈련이 어제보다 할 만하다는 말은 취소해야 할 듯싶다.


예로부터 실력이 빠르게 성장하는 방법에는 실전과 강자와 대련이 있으니, 열린 사람 베비스 경은 목검을 들어 올리며 활짝 웃으며 말했더랬다.


“30초, 버텨보시죠~.”

탁-!


목검과 목검이 거세게 부딪쳤다.


※※※


무언가에 열중하는 이의 시간은 쏜살처럼 지나간다고 한다.

바쁘게 살면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진다는 뜻이다.

현재, 내가 바로 그랬다.


베비스 경과 훈련을 빙자한 무차별 대련을 시작한 지 어느새 일주일.

결과적으로 그날 대련은 30초도 못 버텼다.

베비스 경이 내 수준에 맞춰 신체능력이나 검술을 제한했음에도 그랬다.


기본기도 기본기였지만, 수많은 실전 속에 생겨난 판단능력은 도저히 내가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능히 해낼 수 있는 법.


탁, 탁탁!


목검을 연신 부딪친다.

요 일주일간 맞으면서 키운 안목이 실시간으로 빛을 발했다.

날아드는 목검을 상대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였다.


막고, 흘리고, 쳐낸다.


전신에 흐르는 오러가 과거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활력을 선사했다.

상쾌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복잡한 생각할 필요 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왔다.


팍-!


손끝까지 오러가 전달되는 느낌과 함께 치솟는 상대의 검.

가슴이 훤히 비었다.

되나?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얼마 남지 않은 오러를 쥐어짜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게임 속 쾌검을 참고했다.


허나, 막힌다.


“윽!”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섬전처럼 휘둘러진 검이 내 검을 틀어막았다.

힘 싸움에 들어가면 내가 불리하다.

그 탓에 물러서며 다시금 기회를 엿보려 할 때였다.


“여기까지입니다.”

“어?”


검을 회수하는 베비스 경.

땀범벅이 된 나와는 다르게 땀 하나 흘리지 않은 모습이다.

평소라면 저 모습에 체념했겠지.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축하드립니다. 30초, 달성하셨군요.”

“예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누군가는 겨우 30초를 버틴 게 뭐 대수냐고 말할 거다.

하지만 내게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안목도 그렇지만 검술이 드디어 궤도에 올랐다.’


뭐든 시작이 힘든 법이다.

게임에서도 그랬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면 눈덩이가 비탈길을 내려가듯 성장에 속도가 붙었다.


그게 현실이 된 지금 얼마나 유지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드디어 내가 검 좀 휘두르게 됐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리 생각하니 속에서부터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 좋으십니까.”

“그럼. 이제 30초가 1분이 되고 그러는 거지.”

“다음 대련에서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도 되겠군요.”

“······.”

“하하핫! 농담입니다.”


거 사람이, 누군가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걸 알아야지.


“그래도 마지막 수법은 좋았습니다. 오러가 조금만 더 많았다면 그 당시 저로서는 못 막았을 겁니다.”

“괜찮았다니 다행이네.”


그보다 검술을 어느 정도 해결하니 오러가 문제다.


“레이븐 하트는 꾸준히 하고 있는데.”

“제아무리 레이븐 하트가 오러를 빨리 쌓게 해준다고 해도 절대적인 시간의 총량은 어쩔 수 없는 법입니다.”

“이걸 해결하려면 영약이 최고인데.”

“그렇습니다만, 도련님이 아시다시피 웬만한 영약이 아니면 큰 효과는 보기 힘들 겁니다.”

“확실히 이번에 먹은 영약은 별 효과가 없었지.”


아르투스에 숨어든 하멜른의 피리를 처리한 다음 날의 일이었다.

소식을 들은 변경백은 흑마법사의 수작에 분노하는 한편 그걸 막은 내게 영약을 내렸다.

마법사가 약초를 정제하여 만든 녀석이었다.


게임에서도 꽤 신세를 진 녀석이라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베비스 경의 말대로 영약은 그리 큰 효과를 주지 못했고, 나는 이번 승리로 결심을 굳혔다.


‘슬슬 누군가 채가기 전에 기연을 챙겨야지.’


미래를 아는 자의 특권.

빠른 성장의 동력원.

지금까지는 영지 바깥으로 나갈 엄두가 안 나서 차일피일 미뤘지만,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가 온 거 같다.


‘빌젠 남작령의 암시장.’


아르투스의 이웃 영지로, 질 좋은 철과 무구로 유명한 곳이다.

내 목적은 그곳 암시장을 떠돌아다니고 있을 골동품을 찾는 것.

정확히는 그 안에 숨겨진 영약을 찾는 거지만.


‘문제는 빌젠 남작령까지 무슨 구실로 가냐는 건데······.’


하멜른의 피리를 잡으면서 내 평판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건 그전까지 벌인 악행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런 망나니가 갑자기 이웃 영지에 가겠다고 하면 못 가게 말리거나 엄중한 감시가 붙는 게 일반적이겠지.

암시장으로 향해야 하는 나로선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니 자연히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그런데 다음날.

결과적으로 내 고민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역으로 백작 부부가 내 등을 떠밀었기 때문이다.


“······네?”

“네 약혼녀인 소피아 영애로부터 편지가 도착했으니 읽고 답장을 주라고 했다.”

“아마도 얼마 뒤에 빌젠 남작령에서 개최될 화로제 때문에 연락을 준 거 같구나.”

“흠, 에릭 네가 그간 소피아 영애한테 실수한 게 있으니 이번에 가서 제대로 사과를 하는 것도 좋겠구나.”


에, 에릭한테 약혼녀가 있었어?!

게다가 그 이름도 익숙하다.

소피아 빌젠.


‘아르투스가 무너지고 마경을 틀어막은 여걸.’


수많은 마수의 주검 앞에 선 붉은 머리 여성이 떠올랐다.

영약을 구하러 간다면 만나지 않을까 했지만, 설마 에릭과 약혼관계였을 줄이야.

하지만 게임에서 그런 언급은 없었던 데다 레이븐 백작가가 멸문할 때 무사했던 걸 보면 상황을 짐작하긴 쉬웠다.

그리고 그건 편지에서 느껴지는 냉랭함에 더 확실해졌다.


‘이 기회에 파혼하려는 거구나.’


가문이 탐나서건 동맹을 위해서건 약혼을 맺었지만, 최근 귀족들이 레이븐 백작가를 압박하니 끈 떨어진 동아줄로 보였겠지.

에릭의 망나니짓도 그 이유 중 하나일 테고.


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영웅인 소피아 빌젠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욕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에릭이 싸지른 똥을 치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그냥 빌젠 남작령으로 가서 영약만 구해오면 그만이다.


‘대충 상대해주고 무시하자.’


그때의 나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소피아 아가씨 남작님의 계획이 성공할까요?”

“녀석이 좋아하는 술과 아름답기로 유명한 무희도 준비해뒀어. 녀석이 추태를 보이면 그걸 꼬집으면서 백작가에 파혼을 요구하면 돼.”

“요즘 아르투스에서 망나니가 변했다는 소문이 돌던데 전 그게 걱정이에요.”

“하! 그 쓰레기가?”


소피아 빌젠은 약혼반지를 노려보았다.

증오스러운 첫 만남이 떠올랐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꾸미기를 즐기는 또래 영애들과 다르게 검술연습을 즐겼고, 왕국의 수호자인 레이븐 변경백을 동경했다.

자연히 그 동경을 장남인 에릭에게 밝혔고,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하, 그런 괴물이 좋다고?

-본인의 아버지를 향해 괴물이라니요! 게다가 변경백께서는···.

-아, 됐고. 너 같은 거랑 할 말은 없으니 술이나 가져와.

까득-


아릿한 고통에 회상을 끝낸 소피아는 단호하게 답했다.


“절대로 그럴 리 없어.”


확신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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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나니의 유쾌한 반란 - 4 24.04.08 520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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