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눈물겹지만 편안한 길을 걷는 신통한 다이어리다
어머니의 구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잔소리꾼일 듯한 어머니가 투박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가을 저편에 있는 봄비. 가을에 오는 비가 봄비 같을까. 조금은 다른 느낌이긴 하다. 봄비는 조금 따스한 느낌이지만, 가을비는 조금 차가운 느낌이다. 그래도 봄이나 가을이나, 비가 오는 날은 조금 서늘하다. 그 서늘한 기운에 정신을 못 차릴 때도 있다. 집에 있는 날, 비가 오면, 마냥 신이 난다. 빗방울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낭만적인 느낌이랄까. 물론, 외출할 때 오는 비는 그리 반갑지 않다. 우산도 써야 하고, 차는 막히고, 길바닥은 젖어서 조심조심 걸어야 하고, 전철을 타러 들어갈 때면, 비에 젖은 우산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고. 그래서 게으름쟁이한테는 비가 오는 날, 집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는 게 정말로 신나는 일이다. 무엇을 해도 신이 난다. 무엇보다도 이런 날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신이 난다. 그 신나는 마음에 내 마음은 또한 들뜨기 시작한다. 이유 같은 건 없다. 그저, 그 순간의 분위기, 그 순간의 즐거움에 취해 하루를 만끽한다. 정말, 게으름쟁이 잘 자게 비가 오시는 날이다. 봄비도 그렇고, 가을비도 그렇다. 여름이나 겨울이 아닌 한, 비는 그렇게 내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한다. 저 너머에 있는, 눈물겹지만 편안한 길을 걷고자 노력하는 신통한 다이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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