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파인애플밥

거지 같은 인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파인애플밥
작품등록일 :
2021.04.28 20:58
최근연재일 :
2021.05.05 02:05
연재수 :
6 회
조회수 :
331
추천수 :
6
글자수 :
22,148

작성
21.04.29 06:41
조회
52
추천
1
글자
11쪽

1. 나는(2)

DUMMY

“으...으으...”


“...도련님?”


“으윽...”


“와, 시발. 살아났다고?”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와... 이게 무슨 일이야. 도련님, 정신이 들어요?”



뿌연 시야 사이로 초록 머리를 한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초록색?’



그가 손가락으로 내 볼을 콕콕 찔렀다. 눈썹이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산 거 맞지? 존나 신기하네.”



나를 바라보는 눈이 꼭 우리에 갇힌 동물 보는 듯했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그는 돌연 가슴 앞에서 박수를 짝, 하고 쳤다.



“아, 이럴 때가 아닌데!!”


“......?”


“얼른 이 사실을 알려야지!”



‘어휴, 바보, 바보.’ 중얼거린 그는 입 앞에 두 손을 모아 소리쳤다.



“마아님! 백작니임! 도련님께서 깨어 나셨어요오오.”



그러고는 문을 열고 나가는데 발걸음이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소리 없이 닫힌 문을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랜 시간 누워있었는지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아으... 머리야.......”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습관적으로 오른쪽 어깨를 돌렸다.



‘어라...?’



평소에 미세하게 느껴지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피부도 전보다 하얘진 것 같은...


그때 닫혔던 문이 벌컥, 열렸다.


초록 머리를 필두로 수많은 인원이 들이닥쳤다. 검은 머리, 빨간 머리.. 파란 머리.......?



“맞죠? 제 말이? 도련님께서 깨어나셨다니까요? 제가 백작님께 거짓말을 하겠어요?”



초록 머리는 나를 삿대질하며 끊임없이 재잘댔다. 한 여자와 남자가 그의 말을 뒤로하곤 새하얗게 질려 내 쪽으로 다가왔다.



“...리오? 괜찮은 거냐?”


“정신이 든 거니?”



둘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그들은 간절한(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눈으로 침대에 앉아있던 나를 꽉 붙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나는 오른팔을 빼내며 둘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물이 서린 여자의 눈동자가 충격받은 듯 일그러졌다.



“왜 그러니, 리오? 어디 아픈거야? 의사, 의사 어딨어!”



여자는 뒤에 서 있던 무리를 보며 외쳤다. 그러자 중년의 여자가 무리를 헤치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 역시 샛노란 색의, 꼭 외국에서나 볼 법한 머리 색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붙들었다. 닿는 손이 왠지 시원하다.


나는 팔을 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검은 머리 여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누구시죠?”


“......리오......?”



여자는 놀란 듯했다.


옆의 잿빛 머리 남자가 여자의 어깨의 손을 올리며 물었다.



“혹시... 우리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냐.”


“네?”


“리오, 이 분이 너의 어머니, 그리고 내가 너의 아버지이다.”


“리오...요? 사람을 잘 못 보신 것 같은데.”


“리오!!”



남자는 탄식하며 눈을 감았다.






**






<2>


나는

다시 살아났다.


새로운 사람의 몸으로, 새로운 세계에서.

이은호가 아닌 리오로.


리오 리히트.

리히트 백작가의 하나뿐인 후계자.


팔을 돌리며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얼굴.


손을 들면 거울 속 형체도 똑같이 손을 들었고 눈을 깜빡이면 그도 똑같이 따라 했다.


믿기지 않는 일엔 누구나 그렇듯 오른팔을 들어 왼쪽 가슴을 퍽, 쳤다.


아팠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진짜로 일어났나 보다. 나는 리오 리히트가 되었다.


리오의 방은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질 좋은 실크로 만들어진 옷은 몸에 착 감겼고, 방 한쪽에 놓인 테이블은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창가로 다가가자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 사이로 일꾼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어딜 다녀오는 건지, 저 멀리서 초록 머리 시종 제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창가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 그가 팔을 붕붕 흔들어댔다.



‘시종이란게 원래 저렇게 거침이 없나......? 시종이 있어 봤어야 알지.......’



내가 가만히 있자 그는 보지 못했다 생각했는지 양팔을 흔들며 폴짝폴짝 뛰었다. 가만히 두면 춤이라도 출 기세다.


그래, 내가 너무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이 세계는 주종관계가 엄격하지 않은가 보지.


똑같이 손을 들어 인사해주었다.


제리의 입꼬리가 시원하게 올라갔다.






**






깨어난 지 3일째.


리오로서의 생활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도련님, 도련님, 도련님.”



제리가 문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갑자기 열린 문에 고개를 들자 급하게 들어오던 그가 끼익 발걸음을 멈췄다.



“어이쿠, 죄송! 노크 까먹었네.”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고는 문을 반쯤 열어놓고 다시 나간다. 한쪽 몸만 걸치듯 나간 제리는 주먹으로 세 번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도련님, 똑똑.”


“.......”


“도련님, 똑똑똑. ‘누구세요’ 해주세요.”


“......누구세요?”


“시종 제리예요.”


“.......”


“‘들어와’ 해주셔야죠.”


“......들어와.”


“예에. 시종 제리 입장이요오.”



경쾌하게 들어온 제리가 맞은편에 앉았다. 확실히 거침없는 성격 같다.



“이럴 거면 뭐하러 노크해?”


“재밌잖아요.”



그는 꺄학학학, 하고 웃었다.



“왜 또, 무슨 일인데?”


“아 까먹을 뻔했네. 이것 좀 보세요! 진짜 죽이죠.”


“...뭐?”


“이거 안 보이세요? 이오니아국에서 직수입한 원단으로 만든 건데.”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한 바퀴 빙글 돌았다. 무지개 색깔 옷이 휘황찬란하게 번쩍였다.



“이오니아...국?”


“아, 그것도 기억 안 나세요? 다 모르시네, 진짜. 도련님은 바보예요?”


“기억이 안 나는 걸 어떡해.”


“그건 그렇죠. 도련님 잘못은 아니니까요? 뭐 걱정일랑 붙들어 매세요. 제가 잘 알려드릴 테니까.”



제리의 눈이 수상하게 번뜩였다.



“그래, 좀 알려줘. 아직도 리오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어.”


“우웩, 지금 자기가 자기 이름 부른 거예요? 귀여운 척하는 거야, 뭐야?”


“아니! 귀여운 척하는 게 아니고! 익숙하지 않아서.......”



당황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하자 그는 다시 한번 꺄학학학, 하고 웃었다.



“도련님께는 제가 있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가끔씩 귀여운 척 하셔도 넘어가 드릴게요. 제리는 아량이 넓으니까요.”


“그래... 그런데 아까 하려던 말은 뭐야?”



제리는 중요한 걸 말하려는 듯 검지를 세워 입가에 가져다 대더니 내게로 몸을 숙였다.



“그러니까 사실은요...”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 원단이 얼마나 비싼 거냐 하면...!”


“아니! 그거 말고!! 그게 궁금한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


“아 왜요! 이거보다 중요한 게 어딨다고!! 제가 이걸 얼마나 힘들게 구했는지 아세요? 세 가지 색의 조화가 얼마나 잘 빠졌는지! ”


“그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겠어.”


“오, 보는 눈이 있으시네. 그러니까 3이 얼마나 완벽한 숫자냐면요......”


“제리! 그런 거 말고!”


“흠... 알았어요. 도련님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는 거지요?”



그는 이마를 찌푸리더니 팔짱을 꼈다.



“흠...”



나는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의 표정을 따라 내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사실 저도 잘 몰라요.”


“어? 너 내 시종이라며. 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시종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요. 제가 시종이 된 지가 얼마 안 되어서요.”


“뭐?”


“저는 도련님 쓰러지시기 2주 전쯤 고용됐는걸요. 그래서 잘 몰라요. 도련님 눈 뜨고 계신 것보다 감고 계신 걸 더 많이 봤다니까요? 잘 알 턱이 있나.”



나는 실망해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자 제리가 도리어 앞으로 기댔다.



“대신.”


“......?”


“리히트 가문에 대해서는 잘 알아요.”


“우리 가문?”


“예.”



제리가 검지를 세웠다. 나도 모르게 뾰족하게 솟은 그의 손가락에 집중했다.



“리히트. 부자 가문.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가문 중 제1 가문이죠. 최근 들어 영향력도 커졌고요. 제가 이 옷 구할 수 있게 된 것도 리히트가 이름 탓이 컸어요.”



그는 다시 한번 일어나더니 핑그르르 돌았다. 빨간색과 파란색, 초록색이 섞여 번쩍거려 눈이 부셨다.



“그리고... 까만색.......”


“응?”


“신기해....... 까만 머리.”


“검은 머리가 어때서??”


“도련님은 바보니까 모르시겠죠?”


“뭐야?”



제리는 꺄학학 짧게 웃더니 앞에 앉았다.



“이 나라에서 까만 머리는 흔하지 않죠.”



그가 손을 뻗어 내 머리끝을 간질였다.



“오래전부터 까만색은 황가의 색이란 말이죠. 물론 일반 평민 중에도 있었지만, 저는 처음 보거든요. 이런 머리카락.”


“어머니도 검정색인데 뭘.”


“마님보다는 도련님 것이 좀 더 칠흑 같지요. 이런 색은 난생처음 봐요.”


“......그래?”


“네. 도련님... 저..."


제리가 답지 않게 말꼬리를 늘였다.


"......?"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그의 눈은 음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 조금만 주시면 안 돼요?”


“뭘 줘?”


“머리카락.”


“이걸 어떻게 줘?”


“왜 못 줘요? 좀 잘라 주면 되지!”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려들었다. 은근히 덩치가 있는 제리에, 의자에서 떨어질 듯 밀려났다.



“무슨 소리야! 머리카락을 왜 잘라!”


“아, 조금만요!! 아무 짓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전시만 해 둘게요, 네?”


“그게 더 이상해!! 나에 대해서 좀 알려달라 했더니 머리카락을 잘라가려고 하다니!”


“흥, 머리 내놓으란 것도 아닌데. 너무하세요!”


“이게 뭐가 너무해! 당연한 걸.”



옆으로 물러난 제리에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그는 ‘먼지 묻었어’ 툴툴거리며 옷을 털었다.


햇빛을 받아 화려하게 조합된 세 가지 색이 찬란하게 반짝였다.



“그럼 저 갈래요.”


“진짜?”


“나중에 몰래 자르지 뭐.”


“뭐?”


“뻥이에요. 주무세요.”




탁, 제리가 문을 닫고 나갔다. 아직 해가 중천이다. 잘 시간은 멀었지만 빠르게 걸어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뒤에서 기습할지도 몰라. 앞으로는 꼭 문단속하고 자야지.”



두세 번 문이 잠긴 걸 확인하고 나서야 몸을 돌렸다.


제리가 떠나간 방이 고요했다.

편안해진 마음으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화려한 중세풍의 방에는 적응 되지가 않는다.

3개월 동안 리오가 누워있었을 침대, 질 좋은 옷가지,



그리고 어제 발견한



그의,

보물들까지도.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거지 같은 인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 2. 용의자(2) 21.05.05 29 1 8쪽
5 2. 용의자(1) 21.05.02 39 1 9쪽
4 1. 나는(3) 21.05.01 50 1 10쪽
» 1. 나는(2) 21.04.29 53 1 11쪽
2 1. 나는(1) 21.04.28 72 1 10쪽
1 0. Prologue 21.04.28 89 1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