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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밥

거지 같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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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밥
작품등록일 :
2021.04.28 20:58
최근연재일 :
2021.05.05 02:05
연재수 :
6 회
조회수 :
330
추천수 :
6
글자수 :
22,148

작성
21.04.28 21:12
조회
71
추천
1
글자
10쪽

1. 나는(1)

DUMMY

<1>


나는

죽었다.






***






“이은호!!!”



태해령이 새카만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뛰어왔다.


방금 씻고 나왔는지 덜 마른 머리가 유난히 구불거렸다. 가까이 다가온 덩치는 나를 보더니 순식간에 얼굴색을 바꿨다.



“뭐야, 씨발?”


“......?”



험상궂은 표정의 태해령은 양손으로 내 볼을 잡아 주욱 늘렸다.



“언데? 애 얼굴에 울만있냐, 해끼야? 안 나(뭔데? 내 얼굴에 불만있냐, 새끼야? 안 놔)?”


“왜 또 영혼 빠진 표정인데?”


“으언 또 머야 (그건 또 뭐야)?”


“인생 다 산 것 같은 표정. 그래, 이 표정!”



태해령은 ‘이거 싫어, 이 표정 진짜 싫다고’ 중얼거리며 얼굴을 찌부러트릴 듯 마구 주물러댔다.


나는 마디 굵은 손을 억지로 떼어내며 불퉁하게 답했다. 볼이 욱신거렸다.



“...뭐래... 미친 새끼. 오전 내 수업 들어봐라. 그것도 1교시!”


“아하?”


“차라리 지금 인생 하직하는 게 낫지 않겠냐?”


“아하!”


“아님 네가 대신 대출 해줄래?“


”...그렇다면 이해하지! 1교시라니... 뭔 그런 수업을 잡았대?”



그는 얄밉게 히죽이죽 웃었다. 악력은 얼마나 센지, 손자국이 났을 게 분명하다.


태해령은 수업은 어땠냐는 지, 시험 공부는 잘하고 있냐는 지 허튼소리를 하며 팔을 둘러왔다.


제 딴에는 살짝 얹었다 했지만 갑작스레 오른쪽 어깨에 턱, 휘두르듯 얹힌 팔에 저절로 몸이 앞으로 굽었다. 팔 하나가 웬만한 무기에 견준다.



“아야야...”


“헉, 아파?”



죽는소리 좀 했다고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팔을 뗐다. 걱정을 한껏 담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놀랐잖아! 왜 아픈척해? 다친 데 또 친 줄 알았네”


“너 팔을 봐라. 그건 그냥 흉기야, 새끼야. 멀쩡한 사람이라도 거기에 맞으면 아프다고.”


“뭐, 이 형님 팔이 국보급이기는 하지. 내가 괜히 주몽의 후예겠어? 내년 올림픽 때 또 한 번 보여줘야... 음... 보여줘야지.”



그는 흠칫하는 기색이었으나 눈을 마주치곤 아무렇지 않은 듯 히죽 웃어 보였다. 그래도 미안한 감정을 온전히 지우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착해 빠진 새끼, 지 잘못도 아닌데.



“야, 태해령.”


“왜?”


“너 방금 나 다친 데 또 때렸어.”


“헐, 진짜?”



태해령은 내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물었다.


“병원가야 될 것 같아.”


“아씨, 어느 병원이 제일 가깝지?”


“병원은 됐고...”


“야! 병원을 가야지. 어딜 가? 청진병원이라고 거기 선생님이 잘 봐주시거든? 거기로 갈래? 국대들 다치면 만날 거기로 가는데.”


“아니... 병원은 됐고.......”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치료비하게 십만 원만.”


“.......”


“내놔.”


“장난이었냐?”



태해령이 얼굴을 구기며 욕을 짓씹었다.



“아 그딴 걸로 장난치지 마라, 진짜.”


“상식적으로 퇴원한 지 3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아프겠냐고. 멍청한 새끼야.”



나는 한껏 비웃어댔다. 한참을 분한 눈으로 보던 태해령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는 오바하며 심장께를 붙잡았다.



“그런 거 하지 마. 나 아직도 심장이 내려앉는 거 같다고.”


“아하하, 알았어. 미안해.”



웃느라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그의 곰 같은 어깨를 팡팡 쳤다.



“오늘 수업은 아예 끝난 거야?”


“응. 오늘 오전부터 풀강이라 피곤하다. 너는? 훈련 없어? 왜 벌써 나와?”


“코치님이 이번 주는 좀 살살하자고 하셔서 일찍 퇴근했지. 쩌어어 쪽부터 너 보고 뛰어왔다, 임마. 근데 이렇게, 어? 형아를 짐짝 취급하면서 놀려? 어?!”



태해령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헤드록을 걸었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 팔을 찰싹찰싹 때렸다. 그는 내가 두 손 다 들고 항복을 외쳐댈 때가 돼서야 놔줬다.



“아오, 힘만 더럽게 세 가지고는.”


“힘만 세냐? 운동도 잘하고 활도 잘 쏘지요?”


“미친 새끼.”



내가 킥킥대며 웃자 그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일찍 끝난 김에 형아가 코노 쏜다!”


“아... 안돼.”


“왜!!”



태해령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한다는 듯 쳐다봤다. 얼굴만 보면 꼭 배신당해 나라라도 잃은 듯한 표정이었다.



“과외 있어. 빨리 가야 해.”


“과외?”


“응. 시험 기간이라 가서 봐줘야 해.”


“와씨... 운동밖에 모르던 놈이 수능 봐서 대학도 가고... 애들도 가르치고... 형아 감개가 무량하다.”


“오, 감개무량이라는 말도 알아?”


“...너는 가끔 나를 너무 멍청이 취급해.”


“...아니었나보네.......”


“뭐? 죽고 싶냐, 앙?”


“우리나라 양궁 대표께 죽으면 그건 또 그것대로 영광입죠.”


“그래, 함 죽어봐라!!”



태해령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달려들었다. 나는 그를 피해 습관적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3년 전부터 생긴 고질적인 버릇이었다.






**






과외를 마치고 나니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비가 오려나?”



오른쪽 어깨를 잡고 팔을 슬슬 돌려보았다.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는데 날이 흐리면 어김없이 팔꿈치가 쿡쿡 쑤셔왔다. 사고 후유증이다.


옛날에는 비 오는 날이 좋았다. 야외에서 훈련을 못 하니 그만큼 자유시간이 주어졌었으니까. 근데 이제는 싫다. 비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



‘태해령이나 부를까.......’



태해령과는 14살 때부터 함께였다.



‘처음 훈련장에 데려간 것도 나였는데...’



그는 처음부터 눈에 띄는 선수였다. 시작은 내가 먼저였지만 언제부터인가 태해령은 나를 뛰어넘고 고등학생 선배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럴만했다.


걔는 궁을 재밌어했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


취미로 시작했던 활은 그렇게 우리의 학창 시절이 되었다.


우리는 함께 훈련했고 중학교, 고등학교 청소년 대회 때도 함께였다.


내 사고가 있기 전, 18살이 되든 해 여름까지 말이다.




작은 사고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훈련 끝나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한창 재건축 붐이 불던 때였고 우리 집 근처에도 공사하는 곳이 많았다.


태해령과 헤어지고 막 골목을 돌았을 때였다. 오른쪽 공사장에서 커다란 바위가 떨어졌다(그런데 나중에 인부가 하는 말이 손바닥만 한, 작은 돌이라고 했다).


돌은 오른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행히 살아났다. 당연하다. 그건 코끼리만 한 돌도 아니었고 머리로 떨어진 것도 아니었고 그저 어깨만 살짝 스쳤을 뿐이니까. 일상생활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다만 활은 더 이상 쏘지 못할 거라 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나 대신 태해령이 엄청 울었다. 나는 괜찮았다. 태해령만큼 활을 잘 쏘지도 않았고(그해 양궁 청소년대회 태해령은 1등, 나는 4등을 겨우 넘었다), 운동하는 게 힘들기도 했다.


오히려 잘 된 걸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고민은 짧았다.


‘뭐하냐’ 메시지를 보내자 득달같이 1이 사라졌다.



오후 7:45 뭐하냐


심심해 뒤짐 오후 7:45


오후 7:46 할 일없냐 새끼야ㅋㅋㅋ


어 존나 심심해. 오후 7:46


오후 7:47 화살이나 더 쏘고 오지.


미쳤냐? 오후 7:47

어떻게 얻은 자윤데! 근데 씨발 비올 거 같아. 왜 꼭 훈련 안 하는 날 비가 오는 거지? 오후 7:48

내일까지 오후 7:49

아니 모레까지 내렸으면 좋겠다. 오후 7:49


오후 7:49 zzzzzzzz미친새끼ㅋㅋㅋ

오후 7:50 나와 코노ㄱ.

오후 7:50 갔다가 올만에 성난돼지 먹자.


오!!!!! ㅇㅇㅇㅇ 오후 7:51

ㅇㅋㅇㅋㅇㅋㅋㅇ 오후 7:51


오후 7:51 아닌가?

오후 7:52 삼겹살 먼저 먹고 코노 가는 게 맞나


아무거나 다 좋음 오후 7:52

ssss배고프니까 삼겹살 먼저 ㄱ 오후 7:52


오후 7:53 ㅇㅋ

오후 7:53 사거리로 나오삼.


ㅇ 오후 7:53

짐 나감. 오후 7:58




느릿느릿 걷다 보니 벌써 사거리 앞이었다. 태해령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아.......”



비 온다.


끄물끄물하던 하늘은 어김없이 비를 뱉어냈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줄기는 금세 굵어졌다.



‘우산 사야겠는데...’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길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았다.


손으로 머리를 가렸으나 굵은 빗방울은 속눈썹을 타고 눈앞을 막았다. 눈꺼풀을 깜빡이며 물을 몰아냈다.


그러나 계속해서 내리는 비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때마침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안 되겠다. 빨리 다녀와야지.”



어느덧 신호는 7초를 남겨두고 깜빡이고 있었다. 얼굴을 닦아내며 빠르게 횡단보도로 뛰어들었다.


그때였다.



‘빠앙-’



파란색인지, 회색인지 가늠되지 않는 트럭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빵빵-’



가려고 했던 편의점에서 누군가 나왔다. 비닐이 벗겨지고 투명색 우산이 팡- 하고 펼쳐졌다.



‘빠아아앙-’



고개를 든 그와 눈이 마주쳤다. 희미하게 미소 짓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떴다. 멀리서도 그 표정이 또렷했다.



‘영혼 빠진 표정이 저런 얼굴이려나?’



그는 기껏 샀을 우산을 던졌다. 그리고는 차도로 빠르게 뛰어들었다.



“이은호!!!!!”



답지 않게 사색이 되어 뛰어오는 얼굴엔 눈물인지 비인지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잡힐 리가 없다. 그럼에도 나도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끼이이이익-’



타이어가 도로에 마찰 되는 소리에 귀가 따가웠다.



나의 끝이 어떨지 상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좆같다.


태해령의 표정이 나에게 물든 것 같다. 얼굴이 찌푸려지며 빗물 같은 게 끊임없이 흘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오른쪽 팔을 보호하듯 몸을 돌렸다.



‘빠아아아아앙--’



3년 전부터인가...

나는 언제나 죽음을 그렸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


파란색인지, 회색인지 모를 차의 헤드라이트가

꼭 주인공을 비추는 조명처럼 나를 덮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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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용의자(2) 21.05.05 29 1 8쪽
5 2. 용의자(1) 21.05.02 39 1 9쪽
4 1. 나는(3) 21.05.01 50 1 10쪽
3 1. 나는(2) 21.04.29 52 1 11쪽
» 1. 나는(1) 21.04.28 72 1 10쪽
1 0. Prologue 21.04.28 89 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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