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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밥

거지 같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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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밥
작품등록일 :
2021.04.28 20:58
최근연재일 :
2021.05.05 02:05
연재수 :
6 회
조회수 :
329
추천수 :
6
글자수 :
22,148

작성
21.05.01 00:24
조회
49
추천
1
글자
10쪽

1. 나는(3)

DUMMY

내가 그걸 발견한 건 깨어난 지

이틀째가 되던 날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한탄하듯 뱉자 거울 속의 그도 나와 똑같이 말했다.

얼굴도, 목소리도 생소했지만 표정만은 낯익었다.



“결국 죽은걸까?"



그때 차에 치였는데.


거울 속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의 남자가 있었다.


여기는 한국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도 아닌 것 같다. 꼭 소설에서 나올 법한 차원 이동이라도 한 것 같다. 말도 안 되지만...






정신 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날, 눈 뜨자마자 나는 리오의 어머니를 마주했다

그녀는 어제 나를 진찰했던 노랑머리 의사와 함께였다.



"리오, 네 상태를 캐롤에게 말해. 뭐든 다 괜찮으니까."



그녀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것저것 물어봤으나 나는 여전히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연히.


수확 없는 조사에 어머니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갔다. 괜히 죄라도 지은 것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가... 리오가 된 거지? 그럼... 리오는 사라진 건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그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걸까?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나?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못 돌아가는 것일까? 영원히? 태해령한테는 내가 살아있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아.


이제는 아프지 않아야 할 팔이 욱신거렸다. 나는 연신 팔을 주물렀다.


손끝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왔다.


가만히 있으니 괜히 생각만 많아진다. 이럴 땐 활을 잡아야 생각이 없어지는........ 아니, 이것도 옛날얘기다. 이젠 사라져 버린.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어떻게든 살아봐야지.




아까 어머니가 뭐라도 생각나면 적어놓으라고 주고 간 붉은색의 수첩과 펜을 집어 들었다.



‘리오는 누구인가.’


‘리히트 가문은 어떤 가문인가.’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꼭 역사 공부라도 하는 것 같네.


조금이라도 리오에 대해 알기 위해 방안을 둘러봤다. 존재를 입증하듯 그의 흔적이 방 안에 가득했다.


중앙에 놓인 거대한 침대에는 금박을 입힌 부드러운 이불이 깔려 있었다. 전에는 맡아보지 못한, 뭐라 비유하기 어려운 좋은 향기도 났다.


리오가 좋아하던 향일 수도 있다.


옆의 옷장을 열자 매끄러운 비단으로 만든 화려한 색상의 옷들이 수백 장 걸려있었다. 뭣도 모르는 내가 봐도 비싸 보였다.



“되게 새 옷 같네.......”



뭐라도 알아낼 수 있을까 뒤적이고 있는데 옷장 구석에 어딘지 이질적인 옷 뭉치가 구겨져 있었다. 나는 엄지와 검지로 옷 끄트머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으으.......”



구석에 구겨져 있는 검은색의 낡아빠진 옷이었다. 이전 것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색상이나 질감이.



“빨았겠지?”



킁킁거려 봤으나 딱히 냄새가 나지는않는다.



“임금이 잠행 나갈 때 입는 것 같은, 그런 비슷한 용도려나? 저 옷들은 아무래도 눈에 띄니까. 백작가 도련님이 그런 옷이 필요한가? 임금도 아니고."



뭐, 필요할 수도 있지.


펜을 들었다.




‘첫 번째, 리오는.. 리히트 가문은 부자인가...? 상상도 못 할 엄청난 부자라서 저런 수상한 옷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검은색 옷을 탁탁 털어 걸어 구석에 걸어놨다.



“그나저나 이거 다 팔면 얼마야...”



남의 것이니 팔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아주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하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옷장 옆에는 네 칸으로 된 서랍장도 있었다.



“소지품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추측할 수 있지.”



지겨웠던 ‘경영과 심리’라는 수업에서 배운 거다. (딱히 성적이 잘 나온 건 아니다. 비쁠이었나... 그래도 배운 걸 써먹다니, 뿌듯했다.)


손을 대자 ‘철컥’하는 소리가 났다. 이것도 마법(얘기하면 못 믿겠지만 이 세계에는 마법이란 게 존재한다고 했다)이 걸린 서랍장인가 보다. ‘나’를 인식한 서랍이 아무런 방해 없이 열렸다.


첫 번째 서랍엔 수십 장의 종이가 헝클어진 채 처박혀 있었다.


하...


‘두 번째, 아무래도 리오는 정리를 못 하는 성격인 것 같다...’



나는 어질러진 종이 뭉치를 집었다 놨다 했다. 리오의 성격을 흉내 내야 한다는 의무감과 본능이 서로 충돌했다.



“그래. 리오는 성격을 좀 바꿀 필요도 있어. 정리하는 습관은 어릴 때 드리는 게 좋지, 아무렴.”



나는 빠르게 종이 뭉치를 꺼냈다. 차곡차곡 질서정연하게 쌓이는 종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이 종이 뭉치들은 편지 같았다. 사실 편지라고 말하기가 뭐하기는 하다. 적혀 있는 거라곤 겨우 단어 몇 개뿐이었으니.



‘3월 7일 22시 코린여관.’

‘4월 7일 22시 아티스여관.’

‘5월 7일 22시 세인느여관’

......



뭐지......?


뒤집어 봐도 저게 다였다.



“비밀연애라도 한 건가?”



정리된 편지들을 정갈하게 서랍 안으로 넣었다. 아, 예쁘다.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쓰레기 뭉치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벌레 천지이면 어떡하지, 고민했으나 서랍 속에는 별것 없었다.


그저 백색 액체가 들어있는 시약병 몇 개가 마구잡이로 굴러다니고 있었고 밴드랑 붕대 몇 개가 난잡하게 쑤셔 넣어져 있을 뿐이었다.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을 뿐 최악은 없었다. 이것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서야 숨을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이 정도 손대는 건 괜찮겠지. 정리해주는 건데, 뭐.”



병이 엎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서랍을 닫고는 세 번째 것을 천천히 열었다. 이제야말로 쓰레기 뭉치가 나올 때가 된 것인...



어.......


“이게... 뭐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어디 그런 공간이 숨겨져 있었는지 그리 크지 않은 서랍에서는 금붙이가 끊임없이 나왔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 오색 빛의 반지며 팔찌에, 금과 각종 보석으로 만든 장식품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열면 안 될 걸 연 것 같은데...”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너무 큰 소리가 난 탓에 나도 모르게 주변을 미어캣마냥 살폈다. 다행히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괜히 찔려 양팔을 들고 선서하듯 허공에 외쳤다.



“나, 나 아무것도 손 안 댔어요! 알죠? 뭐 훔칠 게 있다고 훔치겠어! 바로 닫았습니다. 보지도 않았어요!”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게 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던 습관 때문이다.



그나저나 뭐였을까?


비상금이려나...?



그런데 일반적으로 비상금은 돈으로 가지고 있지 않나? 귀금속이 아니라? 돈으로 바꿀 때도 시간이 꽤 걸릴 텐데.

그냥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려나.......



‘세 번째, 비상금.’



머뭇거리다가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왕창’



네 번째 서랍이 남았으나 너무 지쳤다.



‘또 아까 같이 보물이 쏟아지면 어떡하지?’



차라리 쓰레기 뭉치가 나오는 게 낫다. 갑작스러운 재물에, 뭐 내 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괜히 머리 아파졌다. 태어날 때부터 자본주의 인간은 원래 그렇다.


그래도 이왕에 시작한 거, 열어보는 게 나으려나.


네 번째 서랍으로 시선을 옮겼다. 감당도 못 할 보물들을 봐서 손이 떨렸다.



“으윽, 이건 왜 이렇게 안 열려?”



어디에 걸렸는지 서랍이 삐걱거렸다. 세 번째까지는 얼음판에서 미끄러지는 스케이트 날처럼 막힘없었는데.


그리고 왠지 이상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그래, 이건 보지 말라는 계시야. 마음의 준비가 되면 열랜다. 또 보물이라도 쏟아지면 어떡해.”



서랍을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아까 봤던 반짝이들이 눈에 밟힌다. 누가 훔쳐 갈 일도 없는데 괜히 마음이 불안해진다.



“이래서 은행이 있어야 하는 건데! 아오, 진짜!!”



나는 침대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 서랍 앞까지 갔다.


세 번째 문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잘 잠겨있는지 확인했다.


세 번 확인했다.


혹여나 누가 봤을까, 문 쪽을 힐끔거렸다. 문도 잘 잠겨있고, 서랍도 잘 잠겨있고...

내 마음만 활짝 열려 불안이 스물스물 기어나왔다. 그래봤자 내 보물도 아닌데.



“하... 더 오리무중이 됐네.”



리오에 대해 알기 위해 시작했던 일인데 더 어려워졌다.


한숨 쉬며 돌아가던 그때였다.

방 안을 둘러보던 시선에 무언가가 잡혔다.



“저건 또 뭐야?”



침대 밑에서 무언가가 반짝 빛났다.

설마...... 금?

아까 서랍 뒤질 때 굴러간 게 있었나?


빠른 속도로 다가가 침대 밑으로 손을 뻗었다.



“으... 먼지.......”



한참 뒤적이고 나서야 손에 잡혔다.


꽉 쥔 손을 빼내자 소매에 먼지가 달라붙어 길게 이어졌다.


머리카락 뭉치가 뒤엉켜 먼지와 함께 딸려 나왔고 리오 것이 아닐듯한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도 있었다.



“아오 씨, 이게 뭐야!”



손에 들린 것은 금이 아니라 금색 포장지에 쌓인 무언가였다.


초콜릿인가? 단 거 좋아하지도 않는데! 침대 옆 좁은 탁자 위로 던지자 또르르 굴러간 초콜릿이 옆으로 떨어졌다.



‘리오는 좋아했으려나?’



떨어진 초콜릿을 집었다. 이번엔 조심스럽게 좁은 탁자 위로 올려놓았다. 혹시라도 그가 제 자리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



“뭐, 리오꺼니까.”



다시 펜을 들어 올렸다.



‘네 번째,’



펜촉이 종이에 마찰해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리오는... 초콜릿을 좋아하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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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용의자(2) 21.05.05 29 1 8쪽
5 2. 용의자(1) 21.05.02 39 1 9쪽
» 1. 나는(3) 21.05.01 50 1 10쪽
3 1. 나는(2) 21.04.29 52 1 11쪽
2 1. 나는(1) 21.04.28 71 1 10쪽
1 0. Prologue 21.04.28 89 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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