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高礎(고초) 님의 서재입니다.

단천문(檀天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19 06:3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44,315
추천수 :
1,045
글자수 :
623,753

작성
24.07.16 06:30
조회
220
추천
8
글자
12쪽

9-3

DUMMY

산적 대부분이 출동하고 산채를 비우자 나원평은 남아 있던 부상 산적 대여섯을 가볍게 제압하고 서둘러 동굴로 되돌아왔다.


초조히 모여 그를 기다리던 장유현과 갇혀있던 사람들은 그의 모습이 보이자 우르르 모여들었다.


장유현.


"어찌 됐는가? 산적들이 어디론가 몰려가는 듯싶던데···"


"현령 어른 아드님이 재물을 갖고 돌아온 모양입니다. 산적두목과 그 사부까지 모두 출동하고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도망가야 하는가?"


"제 생각입니다만 놈들은 재물을 취한 즉시 증거인멸을 꾀하려 모두 죽이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추측이지만 아드님이 꾀를 부려 토벌대를 이끌고 왔을지도 모릅니다. 허니 아무도 없는 지금, 서둘러 도망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진짜, 산채에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단 말인가?"

"몇몇이 남았었는데 모조리 제압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가! 고맙네, 고마워. 그럼 망설일 이유가 어디 있어!"


장유현은 즉시 지시를 내렸다.


"정집사! 들었지! 서둘러 식솔 데리고 산채를 빠져나가세!"

"알겠습니다. 어르신!"


부상자와 노약자를 인도해 산채 뒤로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막 걸음을 떼던 노인 장유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아, 미안하네만 내 손녀딸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나?”


질문에 즉답을 못 하고 머뭇대는 나원평, 뭐라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까 두 마두가 나간 뒤 즉시 방에 들어간 그는 깜짝 놀랐다.


마지막 두목 놈이 희롱하며 나간 건 소리를 들어 알 수 있었는데 그가 나간 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가 수치심을 못 이겨 혀를 깨물고 자살을 시도하고 말았다.


정신을 잃었다가 놈이 만지는 순간 의식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피로 흥건해진 현장, 벗겨지며 드러난 우윳빛 뽀얀 상체와 하체에 번진 붉은 선혈은 이율배반적으로 아름답게 비쳐 보였다.


자신 안에 감춰진 악마적 생각에 반감을 느낄 사이도 없이 달려든 그는 즉시 심장박동을 확인했다.


심장이 미약하나마 쿵쿵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다만 피를 너무 많이 쏟아 의식을 잃고 축 늘어져 있을 따름이었다.


이미 지혈시켜 위험은 제거된 상태, 하지만 그녀는 쉽사리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분명 죽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그녀 스스로 세상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의지에 깨어나려는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방해하는 듯 보였다.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한 듯싶다. 흐트러진 그녀의 찢어진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힌 뒤 한쪽 구석에 뉘어 놓은 그는 고통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녀석이 우악스럽게 짚은 혈도를 풀어주고 밖으로 나왔다.


그 이후 산적들을 제압하고 동굴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고 나왔다.


노인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그, 어떤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난감했다.


입을 다물고 있다 하여 해결될 것도 아니고 또한 남은 시간 역시 얼마 없기에 할 수 없이 말문을 열었다.


그의 말 뒤에 나온 노인의 의외의 반응, 노인은 손녀가 끌려가는 순간 이미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각오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담담히 듣던 노인은 막상 상상이 현실이 되자 겉으론 냉정해 보였지만 하얀 구레나룻이 미미하게 흔들리고 손을 보니 부들부들 떨었다.


산등성이 너머 어두운 숲을 넋을 잃고 주시하는 노인, 말없이 지켜보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참을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 아이 지금 어디 있소!”


나원평이 손끝으로 목조건물을 가리키자 장 노인은 집사라는 중년의 사내와 함께 건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누군가를 등에 업고 나오는 두 사람.

창백한 소녀의 얼굴, 분명 아까는 미약하나마 화색이 감돌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철렁하는 마음에 황급히 다가간 나원평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소녀의 시신을 확인해야 했다.


아마도 가문의 명예를 택했음이 분명했다.

분노가 노인을 향했다.

어떻게 자신의 손녀를 제 손으로 죽일 수 있다는 말인가.


“총각, 노여움을 거두게, 저 아이도 아마 저리 수치스럽게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오히려 더···”


“사람의 목숨을···. 어떻게 당신 마음대로 그럴 수가 있죠?”


“후~ 그것이 세상 사는 이치일세. 어쨌든 고마웠네.”


노인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산채 뒤 오솔길을 통해 느릿느릿 빠져나갔다.


인간이 어찌 저럴 수 있다는 말인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결국, 자신은 사람을 구해준 것이 아니라 산적 놈들과 하등 다를바 없는 짐승들을 구해 준 것 아닌가?


그러나 돌이켜보면 자신 역시 그녀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 침묵하고 외면했었으니 오십 보 백 보 똑같은 놈.



‘우리가 저들을 구해줘야 하지 않겠냐? 너희들 젊은 혈기가 아깝지 않아! 적들을 공격하자는 것도 아니고 상황을 염탐해서 소굴도 알아내 알려 준다면 더 좋지 않겠어.’



곱씹을수록 뼈아픈 그때의 말.

사람들을 구하자며 친구를 탓했던 그때 그 말이 이 순간 왜 떠오를까.


괴로움에 그는 머리카락을 줘 뜯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신의 무능력에 번민하며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기던 그, 어느새 팽욱이 빠져 실종된 감옥 깊은 곳에 들어와 있는 초라한 자신 모습을 발견했다.


“린천!”


아직도 바닥에 철퍼덕 앉아 있는 친구 혁린천, 넋이 반은 나간 모습이다.


스르륵 무너지는 나원평의 신형, 그 역시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웠다.


문득 비쳐든 어린 산적의 창백한 얼굴, 그 역시 감옥 구석진 벽면에 넋이 빠진 듯 처연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공포와 괴로움이라는 이중적 상황에 복잡다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린 산적. 동병상련, 이것이 동병상련인가?


아까는 이해한다고 했지만 절친한 친구를 죽인 이 자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분노했다.


그러나 감성보단 이성이 앞섰던 그의 의지가 차가운 지시를 이끌어 행동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니. 내가 이 어린 산적과 무엇 다를 것 있어!


결국, 상황만 다를 뿐 똑같은 짓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입술을 질끈 깨문 그의 맥 빠진 시선이 어둠에 잠겨 들었다.


말 없는 침묵, 무거운 죄악의 어둠이 셋의 어깨 위에 무서운 두려움으로 깔렸다.


이때.


"빨리빨리 가지 못해!"


호통 소리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분명했다.

아니 놈들이 벌써 돌아왔단 말인가!

왁자지껄 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소리로 미루어 틀림없는 산적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 친구 놈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넋이 반은 나간 상태인데 이를 어쩐단 말인가.


지금 녀석의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안돼! 이놈마저 잃는다면 난 난···.’


감상에 빠져 시간을 지체했던 자신이 미웠다.

아까 사람들이 빠져나갈 때 함께 갔어야 했는데 이젠 큰일이다.

그는 즉시 입구로 달려갔다.

낌새가 이상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산적두목을 위시해 전 산적졸개들이 굴비에 엮어진 듯 줄줄이 목책을 넘어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한결같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맥이 빠진 모습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어! 저 중들은!”


그들의 선두에 눈에 익은 긴 흉터의 대머리 노인 둘이 있었다.


“어서 가 자식들아!”


이들은 온 동네가 떠나라 소리 지르며 어슬렁어슬렁 목책 문을 걷어차고 뚜벅뚜벅 들어왔다.


“어? 저, 저자는 마, 마종두?”


그들의 후미,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상황이 눈을 휘둥그레 만들었다.


막강무공으로 둘을 묵사발로 만들었던 마종두, 삼두마의 막내 마종두의 비참한 모습이 그의 눈에 비쳤다.


두 다리는 부러졌는지 흐물흐물하고 가슴 역시 함몰됐는지 뻥 꺼진 것이 중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좀 전까지 위풍당당하던 그의 모습은 지금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괴불이선은 자신들의 금제(禁制)로 인해 기껏 천둥 산 어디에서 치료한답시고 머물고 있을 소문주를 찾기 위해 주변 산골을 샅샅이 수색하던 중 산적들을 향해 사정하는 중년 사내를 발견했다.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한 이들은 낌새를 보아하니 양민을 협박, 재물을 약탈하려는 놈들이란 사실을 대뜸 알아채고 찾지 못해 짜증 난 기분을 풀어보려 시비를 걸었다.


단번에 놈들의 우두머리를 제압한 둘은 혹 녀석들의 산채에 찾는 그놈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로를 꽁꽁 묶도록 한 뒤 걸어오다 도중에 마종두와 두목을 조우하게 되었다.


이들의 실력에 비해 괴불이선의 무공은 하늘, 체면에 물러설 수 없다며 앞장서 달려들던 마종두는 비참한 꼴로 중상을 당했고 나머지 수십의 산적은 겨룰 엄두도 못 내고 앞선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굴비 엮이듯 줄줄이 끌려왔다.


"아미나불! 한 놈도 빠지지 말고 전부 내 앞으로 선착순 집합!"


산채에 들어서자마자 꽥 소리 지르는 육대수.


"형님, 이런 무식한 놈들이 그런 어려운 말 알아듣겠소!"


무식한 놈들 다루는 데는 무식한 자신이 더 낫다는 듯 클클.


"아미나불! 셋을 셀 동안 쌍방울 울리게 안 모이면 전부 떼어 낼 줄 알아!"


그의 호통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크게 진동하는 건물들.


"껄껄껄! 아우 말이 맞네!"


낄낄 웃으며 기다렸지만 잠잠, 개미 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


부아가 치민 육대화의 얼굴이 흉악스럽게 변했다.

뱁새처럼 길게 째진 작은 눈이 절뚝이며 부들부들 서 있는 두목을 향했다.


비수처럼 찔러 드는 시선에 움찔 놀란 두목은 황급히 대꾸하려 했지만. 성질 급한 육대화의 손이 틈을 못 참고 즉시 날아왔다.


퍽!! 아이쿠~!


"야! 왜 개미 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냐? 빨리 집합시켜!"

"으으으! 알, 알겠습니다."


두목 또한 다리 하나가 부러졌는지 한쪽 발을 질질 끌며 뛰는 것이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동굴에 숨어 이들 수작을 지켜보던 나원평은 두 땡중이 팽욱에게 암습을 가하고 사라진 바로 그 자들임이 확신하고 이를 뿌드득 갈았다.


‘저것들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어!’


속으로 이를 가는 순간.


"이 개자식들 내 모조리 죽여 버리고 말겠다!"


동정을 살피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혁린천이 고래고래 고함과 함께 쏜살같이 앞질러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나원평, 손쓸 틈 없이 벌어진 일에 경악했다.


"저건 또 뭐야?"


그토록 찾던 놈이 제 발로 달려들자 육대화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어이가 없었다.


어느새 다가온 혁린천, 거대한 의천도가 바람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얼마나 육중한 힘이 실렸는지 윙 소리가 지축을 가를 듯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감히 하늘 같은 천하의 괴불이선 어르신을 몰라뵙고 무모한 도전을 하다니.


정수리를 쪼갤 듯 내려치는 도를 육대화는 한 번의 가벼운 손짓으로 퉁겨냈다.


그리고는 전이 차력으로 혁린천의 옆구리를 잡아채 멀리 패대기쳤다.


땅이 푹 패일 정도로 강하게 떨어졌건만 그의 입에선 비명 하나 흘러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비틀비틀 땅을 짚고 일어서며 휑하니 꺼진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다.


"늙은이 너 때문에 우리 욱이 죽었어! 뒈져 땡중!”

"뭐, 땡중? 이놈이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소문주 그 녀석을 찾으려면 이놈이 필요해 손속에 사정을 두어 던졌던 것인데 뭐 어쩌고 어째! 땡중 뒈져.


순간 열이 뻗친 육대화는 혁린천을 향해 벼락같이 쇄도했다.


한편 아우와 마찬가지로 청년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던 육대수는 내뱉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뭐? 팽욱이란 소문주, 그 청년이 죽었다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단천문(檀天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1 11-1 24.08.09 211 11 12쪽
80 제 11 장 깨진 반쪽 옥패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고 +1 24.08.08 234 10 15쪽
79 10-10 24.07.31 230 10 13쪽
78 10-9 24.07.30 204 9 12쪽
77 10-8 24.07.29 210 8 12쪽
76 10-7 24.07.27 219 9 11쪽
75 10-6 24.07.26 218 9 12쪽
74 10-5 24.07.25 226 9 12쪽
73 10-4 24.07.24 235 8 14쪽
72 10-3 24.07.23 229 8 12쪽
71 10-2 24.07.22 234 8 13쪽
70 10-1 24.07.20 244 8 11쪽
69 제 10 장 단천문 무공 24.07.19 255 8 13쪽
68 9-5 24.07.18 229 8 13쪽
67 9-4 24.07.17 226 8 16쪽
» 9-3 24.07.16 221 8 12쪽
65 9-2 24.07.15 234 6 17쪽
64 9-1 24.07.13 228 7 12쪽
63 제 9 장 친구야! 어떻게 해야 하냐! 24.07.12 238 8 11쪽
62 8-9 24.07.11 239 8 12쪽
61 8-8 24.07.10 240 7 12쪽
60 8-7 24.07.09 244 9 14쪽
59 8-6 24.07.08 261 8 15쪽
58 8-5 24.07.06 238 9 13쪽
57 8-4 24.07.05 249 8 12쪽
56 8-3 24.07.04 250 8 12쪽
55 8-2 24.07.03 262 8 13쪽
54 8-1 24.07.02 278 8 12쪽
53 제 8 장 엉뚱하게 휘말린 싸움과 헤어짐 24.07.01 289 8 12쪽
52 7-8 24.06.29 285 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