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너 자신을 사랑하라

영혼의 왕 - 세계의 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Lee書靈
작품등록일 :
2016.12.14 02:34
최근연재일 :
2016.12.21 18:38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1,986
추천수 :
13
글자수 :
63,467

작성
16.12.18 23:08
조회
164
추천
1
글자
9쪽

2장 - 꽃은 시들기 전에 꺾인다(3)

DUMMY

메켄투스가 부임한 며칠 사이에 부대에는 중대한 변화가 두 가지 일어났고, 펜릴은 그 두 가지가 모두 못마땅했다.

먼저 조금이나마 괴물들이 다시 처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가장 약한 종류 중 하나인 거대 개미 엔트레트가 네다섯 마리 쳐들어온 정도지만, 세 달 동안 지속된 평화의 종언을 알리는 그들의 등장에, 밝은 빛만 가득했던 북동 수비대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펜릴에게는 그보다 부대 개편이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 슈라인 대장이 이끄는 동안 쳐들어온 수많은 수의 괴물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에 따라 메켄투스는 부대의 효율성과 보충이란 명목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게 소대들을 통폐합했다.

그 결과 같은 1부대 소속이었던 리튼은 신성력을 다룰 수 있다는 명목하에 수비대장 직할 부대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고위 사제인 자신이 견습 사제들의 지도편달을 하는 것이 그들에게 매우 좋을 것이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래도 펜릴은 앞으로 리튼을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할 생각에 그녀를 앞에 두고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같은 동북지역이라 해도 그가 있는 곳에서 그녀가 갈 부대까지는 1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자주 찾아올게. 너희도 자주 찾아오고."

리튼이 애써 위로하려는 듯, 그녀를 배웅하는 펜릴과 라시안의 등짝을 살짝 두드려 주며 말했다. 그럼에도 펜릴의 얼굴엔 그늘이 가시지 않았다. 겉도는 성격 탓에 자신에게 먼저 다가온 리튼과 카넬리언 외에는 동향 사람조차도 제대로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카넬리언은 요새 신임 대장 메켄투스 때문에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한동안은 그를 만날 시간이 없어 보였다.

'요새 힘들어 보이는 것도 한몫하고.'

"뭐, 여유가 생긴다면 찾아가주지. 널 찾을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가 슬픈 눈망울을 하고 있을 동안 옆에서 라시안이 가볍게 허세를 부렸다.

"또 그런다, 또."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라시안의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었다. 길게 내려온 앞머리를 올리자 펜릴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던 선한 눈매를 그녀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메켄투스님도 참.. 이렇게 찢어놓으니 좀 그렇다."

시무룩한 표정의 펜릴이 옆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에이, 고위 사제님을 모실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인데. 그런 기적을 보여주실 정도로 신실한 메켄투스님의 뜻에 너무 섭섭해하지 마."

"그래, 다 뜻이 있는거지, 쪼잔하게 삐지냐, 병신아.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그의 말에 리튼은 고위 사제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줬고, 라시안은 리튼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 주었다. 그에 펜릴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나 없다고 둘이 싸우지 말고. 혹시 내가 못 찾아오면 일주일 뒤에 아랫마을 술집에서 만나. 그 때는 내 휴가니까, 어떻게든 만날 수 있을거야."

리튼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 그녀가 돌아서 어느 정도 걸어가자 손을 흔들어주던 라시안은 펜릴에게 인삿말도 건네지 않고 홱 돌아 먼저 자신의 소대로 돌아갔다.

'저 싸가지 없는..'

차가운 태도에 펜릴은 화가 불쑥 났지만, 욕을 차마 입밖에 내진 못한 그였다. 이내 한숨을 쉬면서 그도 자리에서 돌아갔다. 절대 쟤랑 경계임무를 서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하지만 다음 날, 펜릴과 라시안은 서로가 절실히 원했던 소원이 깨진 것을 확인했다.

"슈라인 대장 때가 더 나았지. 네 놈이랑 절대 근무를 같이 설 일이 없었으니까."

"그건 인정."

둘은 아직 메워지지 않은 장벽의 틈 근처에 나란히 서서, 그 틈 사이로 보이는 마역을 바라보고 있는 채 말했다. 서로가 싫은지 둘은 멀찌감치 거리를 벌리고 있었고, 표정은 아수라들마냥 완전히 딱딱해져 있었다.

대규모 공격이 있던 한 달 동안 상비군과 예비 성인 양쪽 모두 사망자가 많았던 덕에, 40개에 달하던 소대를 10개 내외로 통폐합하였고, 대신 10명이던 소대원의 수를 20명 정도로 늘렸다. 그 과정에서 펜릴과 라시안이 한 소대로 통합되는 불운은 면했지만, 지금처럼 둘이 같이 근무하게 되는 슬픈 꼴을 보게 된 것이다.

거기에다가 장벽이 덜 수리되어 인원 배치를 늘린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물론 장벽을 마저 고치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고위 사제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마저 고치기 위해선 시간이 더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한동안만 좀 수고해 주기 바랍니다." 라는 의뭉스런 말을 하였고, 어쩔 수 없이 부셔진 장벽에 대한 대비 인원까지, 인원을 두 배로 늘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펜릴과 라시안은 싫으면서도 같이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내 옆이냐? 싫어 죽겠으니 아예 멀찌감치 떨어져도 될 걸, 왜 굳이 내 옆으로 와서 지랄이냐."

"네 놈이 싫긴 하지만 지루한 근무 때 놀려먹는 재미는 있거든."

펜릴의 물음에 라시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못생겼지, 멍청하지, 눈치는 쥐뿔도 없어, 거기에 고자까지. 이 병신요소 총집합한 새끼를 놀리는 재미가 그래도 멍때리며 근무하는 것보단 이득이니까."

"..."

항상 물어보면 그 이상으로 손해를 보는 펜릴이었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야, 그런데 내가 놀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너랑 리튼이랑 한 마을에서 계속 친했으면, 그럼 사귀었어야 정상 아니냐? 아님 적어도 고백은 해 보던가 했어야지."

"왜, 뭐가 어때서."

펜릴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라시안이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니다. 고자에게 말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임자가 없으면 먼저 줍는 사람이 주인이지 뭐."

그 말에 펜릴의 고개가 급속도로 돌아갔다. 리튼을 가지겠다 은연중에 선언한 라시안을 바라보는 펜릴의 눈은, 괴물들의 포악한 시선 저리가라 할 정도로 사나웠다.

"지금 리튼과 사귀겠다는 거냐? 너 따위가?"

"왜? 병신이랑 사귀는 것보단 백배 낫지 뭐."

하지만 라시안은 그의 시선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펜릴이 발끈하여 뭐라고 대꾸하려는 찰나, 갑자기 펜릴의 흉갑에서 미약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주변까지 보일 정도로 강한 빛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펜릴과 라시안은 똑똑히 보았고, 펜릴의 표정에 큰 당혹감이 나타났다.

"너 뭐야, 그거."

"나도 몰라, 젠장. 나한테 묻지마."

하지만 그 말을 하고 나서 펜릴은 잊었던 기억이 생각났다. 슈라인이 그에게 맡겼던 징표를 오른쪽 가슴에 보관하고 있었단 사실을.

"축하한다. 이제 사제 부대로 꺼져줄래? 아니다 씨발, 그러면 리튼이랑 둘이서 붙어먹잖아?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은거야 대체."

라시안은 당황했는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이내 장벽에서 들려오는 '괴물이다!' 라는 외침과 나팔소리를 들었다. 장벽 틈으로 엔트레트 개체 다수와 약간의 멘티스들이 장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에 짜증이 확 샘솟았는지, 그는 펜릴을 향해 오만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 재수 옴붙었어. 젠장. 네가 갑자기 발광했기 때문이잖아."

"..."

하지만 펜릴은 숨기는 것이 있기에 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가슴 안에 숨겨져 있는 슈라인의 징표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이 징표가 무슨 연관이 있는 건가?'

현재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에, 나중에 카넬리언의 업무가 덜 바빠지게 되면 물어보기로 결심하였다. 일단은 비집고 들어오려는 괴물들이 우선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칼을 쥐고 장벽의 틈 앞에 섰다.

하지만 괴물과 인간들 사이에 일어난 치열한 전투에 펜릴은 피곤해졌다. 거대 개미라지만 엔트레트들은 개체 하나하나는 사람의 무릎팍에 올 정도로 작고 약했지만, 그 개체수가 수백 단위에 이를 정도였고, 중간중간 섞여있는 멘티스들의 위협적인 공격 또한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 결과, 그는 슈라인의 징표에 대한 잡념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숙영지로 복귀했다. 그렇게 그는 또 다른 하루를 살아남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영혼의 왕 - 세계의 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프롤로그가 수정되고, 기존 서장은 1장으로 옮겨졌습니다. 16.12.21 76 0 -
공지 정말 천천히 글쓰게 되었습니다. +1 16.12.14 162 0 -
11 3장 - 꽃은 시들지 않고 꺾인다(6) +1 16.12.21 191 1 17쪽
10 3장 - 꽃은 시들기 전에 꺾인다(5) +1 16.12.20 103 1 11쪽
9 3장 - 꽃은 시들기 전에 꺾인다(4) 16.12.19 125 1 10쪽
» 2장 - 꽃은 시들기 전에 꺾인다(3) 16.12.18 165 1 9쪽
7 3장 - 꽃은 시들기 전에 꺾인다(2) 16.12.18 125 1 9쪽
6 3장 - 꽃은 시들기 전에 꺾인다(1) 16.12.18 115 1 8쪽
5 2장 - 장벽에서(3) 16.12.16 131 1 24쪽
4 2장 - 장벽에서(2) +1 16.12.15 135 1 19쪽
3 2장 - 장벽에서(1) +1 16.12.14 190 1 18쪽
2 1장 - 약속 +1 16.12.14 339 3 12쪽
1 서장 - 세계의 끝 16.12.14 366 1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