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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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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2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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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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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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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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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화 돌아오다 - 11

DUMMY

로스 단장은 레일라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성함이?”


“레일라고요. 저는 참고로 척후대에 있었어요. 도적 출신입니다.”


“그렇습니까? 숏소드와 옷차림을 보니 그런 거 같군요. 그럼 준비되시면 앞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네. 저 그런데 마법 단검 쓰는 건 반칙이겠죠?”


“하하하. 마법 단검을 가지고 계신 모양입니다? 어떤 능력인 단검에 따라 조금 달라지겠죠.”


“호홋! 쓰면 몸의 속도가 몇 배 빨라지는 건데 좀 그렇겠죠?”


레일라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으음, 강제로 못 쓰게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 지양하셨으면 좋겠군요. 순수하게 실력을 보는 거라······.”


“알겠어요. 그냥 안 쓰죠. 아리엘, 가지고 있어?”


“웅웅. 와, 이게 저번에 말한 그 단검이구나. 처음 만져봐.”


레일라가 분신처럼 아끼는 단검을 아리엘에게 건네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기한 듯 단검을 요리조리 관찰하는 아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바로 훈련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로스 단장도 그녀를 뒤따르며 성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외쳤다.


“조앤! 앞으로!”


“네!”


여자 성기사였다. 그 모습을 본 레일라가 찡긋 웃으며 로스 단장에게 말했다.


“굳이 배려 안 해주셔도 되는데요?”


“하하, 그렇습니까? 그래도 저 친구가 꽤 빠릅니다. 배려는 아닙니다.”


“네, 뭐 그럼.”


레일라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묶었던 머리를 풀었다. 머리끈을 입에 물고 머리를 정리하며 앞으로 나온 조앤이라는 성기사를 꼼꼼하게 살폈다. 갑옷을 입고 있긴 했지만, 꽤 호리호리한 몸이었다. 로스 단장의 말처럼 제법 빠른 실력을 갖춘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몸놀림만 따진다면 성기사단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빠른 능력을 자랑했다. 레일라가 정리한 머리를 다시 질끈 묶고는 손목과 발목을 풀었다.


가만히 둘을 지켜보던 로스 단장이 시작을 알렸다.


“준비가 다 되셨으면 시작하시죠.”


- 탓!


둘의 대련은 앞선 카데스와 리머스의 대련보다 더 빠르고 싱겁게 끝나버렸다. 시작과 동시에 레일라가 빠르게 조앤에게 달려들었다. 거침없이 달려드는 그녀를 보며 조앤이 방패를 단단히 쥔 채 빠르게 뒤로 몸을 피했지만 레일라는 가볍게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라 재빠르게 단검 두 개를 뽑아 조앤을 향해 던졌다. 얼굴 쪽으로 날아오는 단검을 방패로 간단히 막아내긴 했지만 두 번째 단검은 조앤의 발등으로 정확히 날아갔다. 비록 그레이브(Greave)를 차고 있긴 했지만, 조앤은 본능적으로 주춤하며 발을 뒤로 빼버렸다. 레일라는 조앤이 발을 뺄 때 거의 동시에 바닥에 착지했고, 착지한 순간 강하게 땅을 밀며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의 옆을 지나쳐 등 뒤에서 숏소드로 목을 겨누었다.


“끝난 거 같죠?”


“어어? 뭐죠?”


“죄송해요. 창피를 주려는 건 아니니까 오해 말아요.”


성기사들은 환호성조차 없었다. 단지 입을 떡 벌리고 순식간에 끝이 나버린 둘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레일라의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빨랐다. 성기사단 기사들 입장에서는 이런 몸놀림이나 움직임을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평화를 수호하는 이들에 비해 산전수전 다 겪은 일행은 다양한 공격 방법과 경험이 있었다. 성기사단이 강하기는 하지만 어쩌면 상대를 잘못 만났을지도 몰랐다.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천천히 둘의 대련을 지켜보려던 로스 단장 역시 입을 벌린 채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이 난 상황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보게! 조앤이 잘할 거라 하지 않았나? 불과 몇 초 전에 자네가 했던 말일세!”


“그러게 말입니다. 조금 전 말하던 마법 단검도 쓰지 않고 저 정도 몸놀림이라면 아마 도적 중에서도 최상위 수준에 속할 거 같습니다.”


레일라는 대수롭지 않은 대결이라 생각했는지 별다른 표정도 없이 자리로 돌아왔다. 척후대에 있으며 수도 없이 산을 타고 달리던 그녀에겐 손쉬운 상대였고, 조앤은 경험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레일라의 예상은 여자이니 당연히 다른 곳보다 얼굴을 먼저 막으려 했을 테고, 발로 향한 단검으로 인해 짧지만, 기회가 올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레일라, 멋있다. 하하하.”


들어오는 그녀에게 한스가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하려 했지만, 고개를 살짝 저으며 레일라가 조용히 말했다.


“야! 하지 마, 하지 마. 괜히 도발하지 마.”


“어, 미안.”


레일라 말에 한스는 눈치를 보며 재빨리 손을 내려버렸다.


두 번의 대련에서 너무나도 손쉽게 상대를 누른 카데스와 레일라는 차분하게 앉아있었다. 반면 셜레인 대주교와 로스 단장은 계획을 급히 바꾸었다. 본래의 대련 의미를 떠나 적어도 자존심은 챙기려 했다.


“안 되겠군요. 마지막엔 카렌 대신 트리스탄을 내보내야 할 거 같습니다.”


“뭐? 만약 그 친구도 지면 성기사단 자존심을 완전히 구기는 거네!”


“그렇다고 제가 나갈 수도 없잖습니까?”


“할아버지, 단장님. 저 왔습니다. 급히 오라 하셔서······.”


둘이 계획을 변경하려 할 때 즈음 드디어 베일에 싸여있던 카렌이 도착했다. 괜히 파시비엔이 짝사랑하는 게 아니었다. 레일라나 아리엘도 예쁜 외모였지만 뭔가 느낌이 달랐다. 레일라가 섹시함, 아리엘이 귀여움과 상큼함을 가졌다면 카렌은 갑옷을 입고 있어도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이 물씬 나는 분위기였다. 파시비엔의 말을 빌리면 아그나달린이 현신한 모습에 가까울 정도였다.


“됐다. 돌아가거라. 계획이 바뀌었다.”


“네? 여기에 모여 계신 걸 보니 모험가분들이 오셨나 봐요.”


“됐으니까 카렌 너는 돌아가고. 자넨 정말 걔를 내보낼 생각인가?”


“어?”


서 있던 카렌의 눈에 반대편에서 알고 있는 얼굴이 걸어 나오는 걸 보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할아버지. 저분······.”


“저분은 얼어 죽을! 썩을 놈이야! 너나 나나 전부 기억도 못 하고 있다는구나!”


“정말요?”


“저기! 저 아직 남았는데 안 하세요?”


역시나 서지터는 카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해맑게 손을 흔들어 마지막 대련을 하자고 보챘다. 서지터는 두 사람의 대련을 보고 있자니 몸이 근질거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서둘러 나온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보십시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넵!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서지터는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 허리에 찬 작은 가방에서 붕대를 꺼내 손에 감기 시작했다. 붕대를 항상 손에 감을 땐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이 있는 서지터는 고개까지 까닥거리며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붕대 감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그냥 트리스탄을 내보내겠습니다. 압도적으로 강함이 어떤 건지 우리 쪽에서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마하니 저 친구가 이기겠습니까?”


“두 사람 실력을 보지 않았나? 의뢰하려 했다가 이거 개망신당하게 생겼구만!”


“네? 트리스탄 오라버니를요?”


카렌은 멍하니 선 채 서지터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트리스탄이란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트리스탄은 그리폰 성기사단 내에서 로스 단장 다음가는 실력으로 2인자라 불리는 자였고, 차기 기사단장, 차기 15인의 소드마스터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성기사였다. 아직 나이도 20대 중반이었기에 로스 단장도 뛰어넘을 거라는 말도 들려왔다.


카렌은 그렇게 강한 트리스탄을 자신이 알고 있던 서지터라는 남자의 상대로 내보내려는 것이 의아할 뿐이었다. 어린 시절 두 번밖에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알고 있던 서지터는 마법학교에 다니고 있던 마법사였다.


“트리스탄! 앞으로!”


결국, 로스 단장은 트리스탄을 호명했고, 모여 있던 성기사단 무리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석에서 트리스탄이라는 성기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아래로 걸어 내려왔다.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빈틈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걸음걸이였다. 서지터의 앞까지 걸어와 마주하자 붕대를 마저 묶고 있던 서지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잠깐만요. 이것만 마저 묶고요.”


“네, 괜찮습니다.”


서지터가 잠시 시간을 번 이유는 웅성거리는 소리를 자세히 듣기 위함이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직감한 그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앞서 두 사람이 너무나도 쉽게 이겼기에 의뢰도 의뢰지만, 듣도 보도 못한 모험가들에게 세 사람 모두 지는 걸 그다지 원치 않을 거라 생각되었다. 적어도 마지막은 이기기 위해 자신의 앞에 마주한 트리스탄이란 사내는 보통 실력이 아닐 거라 느껴졌다.


그쪽으로 자신의 추측이 도달하자 심장이 쿵쾅거리며 빠르게 뛰었다. 오래간만에 정말 제대로 싸울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될 수밖에 없었다.


“다 됐습니다!”


서지터는 붕대를 다 감은 뒤 양손을 쥐었다 폈다 움직여보았다. 오늘의 붕대는 특히나 만족스럽게 감겼다는 생각에 즐거울 따름이었다.


“트리스탄. 그럼 시작하게.”


로스 단장 입장에서는 비장의 무기였다. 서지터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반드시 트리스탄이 이길 거라 확신했다.


한편 카렌은 지금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기에 셜레인 대주교에게 다급히 물어보았다.


“할아버지, 지금 무슨 일이에요? 왜 저분이 저기에······.”


“일단 그냥 좀 지켜보자꾸나.”


- 카가강!


카렌이 서둘러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두 사람의 검이 맞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트리스탄은 앞선 두 사람과 다르게 양손검을 사용했기에 둘의 격돌은 더욱 강하게 맞붙었다. 둘은 떨어지지 않고 잠시 힘겨루기를 하다 서지터가 먼저 말을 걸었다.


“와, 세다.”


“감사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를 밀어냈다. 서지터가 빠르게 검을 오른손으로 바꿔 쥐고 밑에서 강하게 올려 쳤고, 트리스탄은 몸을 옆으로 틀며 오른손으로만 검을 잡아 서지터의 목을 노리고 빠르게 휘둘렀다.


- 후우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지켜보는 모두 숨을 죽이고 둘을 바라보았다. 서지터는 허리를 뒤로 젖혀 가볍게 트리스탄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왼손으로 다시 검을 잡아 트리스탄의 옆구리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 퍼헉!


서지터의 공격이 그대로 트리스탄의 옆구리에 꽂혔다.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은빛 갑옷이 제대로 찌그러져 버렸다. 서지터가 장난스럽게 한 마디 툭 던졌다.


“1점입니다.”


트리스탄은 찌그러진 갑옷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놀랍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공격하도록 하죠.”


트리스탄이 곧바로 돌진했다. 트리스탄이 찌르기 공격으로 깊숙이 찔러 넣자 서지터는 슬쩍 상대의 검을 흘려버리고는 역으로 파고들려다 재빨리 몸을 뒤로 빼버렸다. 찔러 들어온 공격은 속임수였고, 왼발로 서지터를 걷어차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발은 피했지만 뒤이어 공중에서 빙글 돈 트리스탄의 검이 서지터의 왼쪽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 스윽!


소량의 피가 훈련장 흙바닥으로 튀어 떨어졌다. 짧고 간결했지만 멋진 공격이었다.


“1점입니까?”


“그런 거 같네요. 어? 내 문신!”


서지터는 반팔 튜닉을 입고 있었기에 곧바로 왼팔을 걷어 검은 늑대의 상징인 켈베로스 문신을 살펴보았다. 안타깝게도 늑대 머리 하나가 살짝 다쳐버렸다.


“아, 속상해. 끝나면 제 팔 바로 치료해주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제야 안심을 한 서지터는 씨익 웃고 다시 먼저 공격해 들어갔다. 아무리 강한 트리스탄일지라도 작정을 하고 달려드는 서지터를 보고 살짝 몸이 움츠러들었다. 서지터의 등 뒤에서 거대한 검은 늑대 한 마리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달려드는 착각에 빠졌다.


- 카앙! 카강! 카가강! 카하앙!


서지터는 왼손, 오른손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예측조차 힘든 공격들로 트리스탄을 몰아붙였다. 검은 늑대가 되면서 수많은 훈련을 통해 예전보다 양손을 더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 서지터였다. 양손의 장점을 최대한 살렸기에 벨크와 상대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평소 서지터의 공격이 예측 못 하는 방향에서 들어왔지만, 양손으로 번갈아 쓰게 되면 예측 범위는 상대가 쉽사리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넓었다. 그리고 지금도 트리스탄을 압도해버리며 상대에게 공격할 타이밍을 전혀 주지 않고 무섭게 파고 들어갔다.


반면 트리스탄은 힘겹게 서지터의 공격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치명적인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성기사였더라면 지금쯤 벌써 나가떨어졌겠지만, 로스 단장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는 트리스탄은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 카아앙!


상황을 역전시키려 트리스탄이 남은 힘을 끌어모아 다시 서지터의 검을 막아섰다. 제법 숨이 가쁜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이번엔 먼저 말을 건넸다.


“하아, 아깐 간 보는 거였습니까? 후우, 이렇게 강한 힘을 숨겨두셨으면서?”


“우선 상대를 파악해야 하니까요.”


“이거 같은 남자지만 반해버리겠군요. 후우.”


“죄송한데 전 여자를 좋아해서······.”


“정말 유쾌하신 분이군요.”


“감사합니다. 더 지치시기 전에 끝내겠습니다.”


“어림없습니다. 하!”


트리스탄이 즐거운 표정으로 기합을 넣고 강하게 서지터를 밀어버렸다. 그에겐 모처럼 만난 호적수 덕분에 아주 즐거웠다. 평소 다른 성기사들과 실력 차이가 극명하게 났기 때문에 대부분 자신과의 대련을 피해왔었다. 하지만 즐겁게 대련하는 게 얼마 만인지 승패 따위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 카하앙!


서지터는 빨리 문신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조금 뒤로 밀렸다가 왼손으로 트리스탄의 양손검을 강하게 쳐내버렸다. 두 사람 모두 손이 얼얼할 정도였지만 검을 놓치지는 않았다.


곧바로 자세를 낮춘 서지터가 트리스탄의 다리 쪽으로 베기 공격이 들어갔고, 서지터가 쳐낼 때 잠시 중심이 흐트러졌던 트리스탄은 머리를 노리고 동시에 공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지터의 공격이 속임수였다. 다리로 휘두르는 척하며 빠르게 검을 회수해 머리 위로 능숙하게 손잡이를 바꿔 잡아 트리스탄의 공격을 막아냈다. 뒤이어 빠르게 허리춤에 있던 숏소드를 오른손으로 뽑아 들어 트리스탄의 갑옷 옆구리의 빈틈을 콕 찔렀다.


“나름 치명타니까 2점으로 쳐주시죠? 그럼 3점 끝이겠죠?”


“하! 하하! 그 검은 뭔가 했는데. 하하하!”


다행히 깊게 찔리지는 않았다. 상대를 봐주는 여유까지 부린 서지터를 보며 트리스탄은 호쾌하게 웃고는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 예상하지도 못했습니다. 하하하하!


“아, 기사분들한테는 좀 치사한 공격인가요?”


“아닙니다. 하하하! 전혀 치사한 공격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한 수 배웠습니다. 제 생애 가장 즐거운 대련이었습니다.”


서지터 역시 즐거운 대련이었다. 가진 실력을 다 쏟아붓지는 않았지만 모처럼 땀을 흘리고 강한 상대와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게 좋았다.


“일어나세요.”


“네, 감사합니다.”


서지터가 손을 뻗자 트리스탄은 손을 꽉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둘의 대련이 끝이 났지만, 누구 하나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대련 중간까지 초조하게 지켜보던 로스 단장도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눈으로 좇기에도 어려울 만큼 빠르고 물 흐르듯 이어진 서지터의 공격에 놀랐고, 그런 공격을 막아내고 버틴 트리스탄도 기특했다.


“저 빨리 치료 좀. 이거 흉 지면 안 되는 문신이거든요.”


- 타다닷.


“팔 걷고 가만히 계세요. 살짝 스친 거라 다행입니다.”


어느새 달려온 카렌이 서지터의 왼팔을 잡고 치료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서지터가 형식적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어? 감사합니다.”


셜레인 대주교는 치료를 받는 서지터를 바라보며 옆에 있는 로스 단장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트리스탄까지 졌네. 의뢰는 둘째치고 성기사단 진짜 개망신당한 걸세.”


“그러니까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트리스탄 내보내지 말라 하지 않았는가.”


“그나마 다행입니다.”


“뭐가 다행이란 말인가?”


“저 친구 지금 치료받고 있는 팔에 문신 말입니다.”


“문신이 왜?”


“저 문신 검은 늑대를 상징하는 문신입니다.”


“뭐라? 검은 늑대?”


“트리스미스 전투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은 다섯 명의 검은 늑대 말입니다. 그 검은 늑대에게 진 것이기에 그나마 다행인 겁니다.”


“고작 어린 저 썩을 놈이?”


“네, 제가 알기론 용병단 내에서도 아무나 새길 수 없는 문신입니다.”


“허! 저세상으로 간 저놈 할아비가 들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소리구만.”


두 사람은 만담이라도 하듯 열심히 말을 주고받았다. 평소 켈베로스 용병단에 많은 관심이 있던 로스 단장만이 서지터의 팔에 세긴 문신을 알아보았다. 트리스탄보다 어려 보이는 서지터가 자신이 가장 믿는 기사까지 꺾어버렸다. 로스 단장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만약 적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돋았다. 적으로 두어선 안 될 사람이었고, 그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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