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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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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2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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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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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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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7화 커져가는 불씨 - 17

DUMMY

수도에 남겨진 둘은 주민들을 납치한 범인이 아닌 지루함과 답답함과의 싸움이 이어졌다. 똘똘한 듀번트와 지하 마을 지도를 만들어 주는 한나가 조력자로 등장하긴 했지만, 실종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를 잡기 쉽지 않았다.


서지터와 듀번트가 조사를 시작한 첫째 날. 가장 처음 실종된 필립의 집을 방문했지만 벌써 주인이 없는 빈집을 다른 자들이 차지하며 현장 조사나 증거 같은 걸 찾을 수조차 없었다.


그의 집을 차지한 자들을 두들겨 패서라도 혹시 모를 자백을 받고 싶었던 서지터는 듀번트의 제지에 미련을 남기고 등을 돌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렇게 허탕을 친 서지터는 곧바로 두 번째 실종자인 안토니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가 실종되었을 것이라 예상되는 시간대가 한창 공공 근로 일을 할 때였기에 지하 3층을 돌며 그를 목격한 사람이 없는지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열심히 수소문해 보았으나 역시나 별 소득 없이 또 허탕. 남의 일에 관심조차 없는 동네 특성과 항상 그곳에서 묵묵히 일하던 안토니의 성실함이 더해져 마치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에나 있는 공기 같은 존재가 바로 안토니였다.


조사 3일 차. 외지에서 흘러들어와 딱히 히크 거리나 지하 동네와 인연이 별로 없던 밥은 함께 도박하던 사람들 외엔 친분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가 안 보이기 시작하기 전날 도박을 같이하던 자들을 만나보았지만 다들 그에게 받을 빚이 있다며 틀림없이 도박 빚 때문에 다른 곳으로 도망갔을 거라 울분을 토했다.


3일 동안 아무런 소득이 없던 서지터는 지칠 대로 지쳤는지 쓸쓸한 표정으로 4일째 조사에 나섰다.


그와 지하 동네를 나란히 걷던 듀번트는 서지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형, 얼굴이 왜 이렇게 어두워요? 안 지 얼마 안 됐지만 이런 표정 낯서네요.”


“너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밝은 표정이 지어지겠냐? 3일 내내 여기저기 뒤지고 다녀도 아무런 단서도 못 찾았는데?”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데 실패한 자가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한 자가 패배하는 거랬어요.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세요.”


서지터도 잠시 걸음을 멈춰 서서 듀번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요샌 그래도 형 만나러 가기 전에 분수대에서 하루에 한 번 꼬박꼬박 세수하는데.”


“대체 뭐 하는 놈인가 해서.”


“또 거지라고 놀리려고요?”


“아니? 이런 동네에도 너 같은 녀석이 산다는 게 신기해서 좀 쳐다봤다.”


처음부터 줄곧 느꼈지만, 지하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다. 서지터 자신도 어울리지 않는 마이론홀드 마법학교에서 별종 취급을 받다 뛰쳐나온 것처럼, 듀번트 역시 꿈도 희망도 없는 동네에서 별종 취급을 당하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자신과 겹쳐 보였다.


“나도 나지만 너도 참 너다.”


“네? 무슨 말이에요?”


“모르면 말고.”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으며 서지터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쳇! 형, 그런데 지금 우리 어디 가요?”


“어딜 가긴 어딜 가. 허탕을 치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은 네 번째 실종자에 대해 알아봐야지.”


“그러니까 어디를 알아보러 가는 거냐고요.”


“실종자 부인이랑 딸 만나봤다며. 지하 2층 산다 그랬나? 안내해.”


“그렇구나.”


이런 일에 익숙지 않은 듀번트가 서지터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매사 장난스럽고 실없는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의뢰받은 일을 할 때만큼은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조사하는 모습을 보며 듀번트는 서지터에게 살짝 반해있었다.


“빨리 와. 가뜩이나 대낮에도 어두운 동네인데 랜턴 들고 있는 네가 앞장서서 안내해야 할 거 아냐.”


“네, 가요. 가.”


듀번트는 기억을 더듬으며 며칠 전 가봤던 시게르의 집으로 향했다. 마치 개미굴 같은 좁은 길을 지나 다닥다닥 붙어있는 허름한 문 앞에 서자 서지터가 그의 뒤에서 말했다.


“여기야?”


“네.”


노크하려던 서지터는 금세 마음을 고쳐먹었다. 살짝만 노크해도 문이 부서질 것만 같아 문 앞에 서서 사람을 불렀다.


“저기요. 실례합니다. 계세요?”


문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며 인기척이 들려왔지만, 대답은 되돌아오지 않자 다시 말했다.


“죄송한데 여쭤볼 게 있어서요. 계시면 잠시만 시간 내주세요.”


- 끼이익.


얼굴의 반 정도만 문이 살짝 열리며 문 안쪽에서 여인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누, 누구시죠?”


살짝 열린 문 안쪽에서 빛 한 줌 새어 나오지 않자 듀번트가 랜턴을 들었다. 갑작스러운 불빛에 집주인은 고개를 홱 돌려버렸고, 서지터는 듀번트에게 꿀밤을 먹이며 언제 그랬냐는 듯 쓸쓸한 표정에서 해맑은 얼굴로 돌변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사정이 있어서 여러 가지 조사를 좀 하는 중이라서요. 부인께 여쭤볼 것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여인이 답했다.


“무, 무슨 일 때문에 오셨는지······.”


“헤헤, 잠깐 들어가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저 이거! 받으세요. 남의 집에 방문하는데 빈손으로 올 수는 없어서요.”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서지터가 봉투 하나를 밀어 넣었다. 반강제로 건넨 봉투에서는 고소한 빵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 끼긱.


“어! 감사합니다.”


빵 냄새 때문이었는지 문이 열리고 둘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서지터는 두 눈을 의심했다. 집안 내부는 세 사람 정도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좁고 습하고 어두웠다. 빈민가에 살던 한스의 옛집이 오히려 저택 같아 보일 정도였다.


그 좁은 공간에 작은 서랍장이 있었고 문 옆 구석에 단출한 식기가 몇 개 보였다. 제대로 된 식기의 기능조차 한 지 오래되었는지 골동품 같은 모습으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한 상태였고, 벽에는 거적때기 같은 옷 두 벌이 초라하게 걸려있었다.


랜턴의 불빛이 마지막으로 어둠을 몰아낸 가장 안쪽 구석엔 빼빼 마른 소녀 하나가 잔뜩 웅크린 채 둘을 경계하고 있었다.


서지터는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 최대한 침착하고 밝은 목소리로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따님도 있었네요. 안녕? 배고프지? 먹을거리를 좀 사 왔는데.”


그의 말에 여인은 봉투에서 빵 하나를 꺼내 딸에게 건네주었다. 서지터가 나름 준비한 뇌물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서지터 옆에 있던 듀번트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새삼 감탄했다.


자신이 며칠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땐 시게르의 얘기를 듣기 위해 한참이나 애를 먹었지만, 서지터는 단숨에 집안으로 입성한 것도 모자라 두 모녀의 경계심 또한 쉽사리 풀어버렸으니 충분히 놀랄 만도 했다.


“잠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집주인에게 앉겠다고 양해를 구하는 말을 내뱉었으나 이미 서지터는 바닥에 털썩 앉아 버린 후였다.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나갈 의사가 없음을 밝히자 여인도 조심스럽게 서지터 앞에 앉았다.


“뭐 때문에 오셨는지.”


여인은 서지터의 눈치를 보며 말했지만 대강 방문의 목적을 눈치채고 있었다. 이미 한 번 방문했던 듀번트가 함께 왔으니 말이다.


“그게 그러니까 여쭤보기 조심스럽지만 일단 물어볼게요. 얼마 전부터 남편분께서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네.”


“혹시 어디를 간다는 말은 없었나요?”


“그 전에 왜 이런 걸 물어보시는지······. 그리고 며칠 전에 저 아이에게 다 얘기했는데.”


편하게 대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시게르를 언급하자 다시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아! 죄송합니다.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 체이스란 사람이고요. 요즘 들어 지하 동네에서 자꾸 사람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어떤 분께 의뢰를 받고 조사 중입니다.”


여인은 서지터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이 동네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건 대수로운 일이 아닌데······.”


“그렇긴 한데 의뢰를 맡기신 분이 평소랑은 좀 다르다고 생각하셔서요.”


서지터는 어떻게 하면 경계심을 풀고 편하게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던 찰나 구석에서 빵을 오물오물 먹고 있던 소녀가 불쑥 끼어들었다.


“체이스? 엄마, 나 저 아저씨 알아.”


순간 서지터는 속으로 뜨끔했다. 최근 자주 쓰던 가명을 지하 동네의 소녀가 알 정도면 보나 마나 얼마 전 끝난 마상창시합이리라.


“어어? 나를? 나를 어떻게 알까? ······하, 하하.”


“축제 때 사람들이 아저씨 이름 외치는 거 들었어요. 말 타고 싸우는 대회에서 우승했잖아요. 같은 사람 맞죠?”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인물에게 정체가 들통날 줄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서지터는 이걸 기회라 생각하고 친근하게 말해주었다.


“이야! 너 똑똑하구나? 아저씨가 말 타고 창 들고 푸바바바박! 적들을 다 물리친 사람 맞아. 내가 경기한 거 봤니?”


“······멀리서요.”


멀리서 봤다면 얼굴까지는 못 알아봤을 수도 있었다. 분명 당시의 꽃미남인 얼굴과 지금의 얼굴은 차이가 너무 컸으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제대로 얼굴을 못 알아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경기장에 입장하기 위해선 소액의 입장료가 필요한데 이런 곳에 사는 아이가 마상창시합을 보기 위해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왔을 리 만무했다.


“나중에 아저씨가 말 태워줄게. 어때? 좋지?”


“정말요?”


소녀의 호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엄마의 한마디에 물거품이 되었다.


“페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가서 놀다 들어와.”


“으응.”


페니라는 이름을 가진 시게르의 딸은 시무룩해져 남은 빵을 손에 꼭 쥐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가 나가자마자 여인은 다시 경계 모드로 서지터를 대했다. 방금까지 서지터의 눈치를 보던 소극적인 자세와는 달랐다.


“저번에 다 얘기했고 더 할 말은 없어요. 오히려 그 인간 사라져서 속이 다 시원하니까.”


“으음,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나중에 혹시 생각나는 게 있으시면 여기 이 녀석 찾아서 말씀해주세요.”


서지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너무나도 쉽게 포기하는 모습에 당황한 듀번트가 자신이 사는 곳을 알려주고는 서둘러 서지터를 뒤쫓았다.


“형, 형! 포기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니까요!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돌아가는 건데요.”


서지터는 듀번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디로 갔지?”


“뭐가요?”


“뭐긴 뭐야. 페니라는 여자아이 말이야.”


듀번트가 손가락을 튕기며 감탄했다.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호감을 얻은 페니에게 물어볼 계획이란 걸 그제야 깨달은 듀번트였다.


“저기 있네.”


페니는 집 근처에서 또래 여자아이들과 모여 흙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다.


“어? 여기 있었네? 좀 전에 말 태워준다고 했던 거 새끼손가락 안 걸어서 말이야. 자! 약속!”


서지터는 페니 앞에다 새끼손가락을 들이밀었다. 잠시 주춤거렸던 페니는 앙상한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서지터의 손가락에 걸었다.


“히히, 약속했으니까 꼭 아저씨 말 태워줄게. 그런데 어디서 넘어진 거야? 조심 좀 하지. 여기저기 멍이 들었네. 아저씨 친구 중에 성직자도 있다? 지금 여기 없어서 못 데려오는데 나중에 그 아저씨 불러서 신성마법도 써줄게. 신성마법 엄청 신기해. 그것도 약속! 그리고 도장도!”


여전히 새끼손가락을 걸고 있던 서지터는 엄지로 도장까지 찍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페니는 안 들릴 정도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응? 뭐라 그랬어?”


“······아니라고요.”


“뭐가 아니야?”


“넘어진 거 아니에요.”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페니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럼? 누가 때렸어? 아저씨가 혼내줄까?”


“······모, 못 해요.”


“저기 그런데 있잖아. 아저씨가 꼭 만날 일이 있는데 혹시 아빠 어디로 갔는 줄 아니?”


“말하면 엄마한테 혼나요.”


“그렇구나. 방해 안 할게. 친구들이랑 놀아. 아저씨는 약속 지키러 꼭 다음에 다시 올게.”


“네에.”


잘만 꼬시면 페니에게서 얻을만한 정보가 많아 보였지만 서지터는 그냥 그곳을 벗어났다. 그런 행동이 못내 아쉬웠는지 듀번트가 졸졸 따라오면서 안타깝다는 듯 말을 걸었다.


“형, 진짜 이상한 거 알아요?”


“뭐가 또?”


“조금만 더 꼬셨으면 말해줄 거 같았단 말이에요. 왜 그렇게 포기가 빠른 거냐고요.”


“이미 얻을 정보는 다 얻은 거 같은데? 그리고 인마! 딱 봐도 열 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애인데 안 좋은 기억을 들쑤셔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어. 애한테는 그런 게 얼마나 오래 기억에 남는데.”


“그래도요. 왜 손해 보는 장사만 하는 기분이냐고요.”


“정보는 충분히 다 얻었다니까 그러네. 마지막 퍼즐 하나는 페니 엄마한테 달렸지만.”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듀번트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몇 년을 함께 한 친구들이야 이런 식으로 나오면 뭔가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듀번트는 서지터의 생각을 읽기엔 아직 한참 모자랐다.


서지터는 한심하다는 듯 듀번트를 쳐다보며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줌마의 행동을 보면 과도하게 우릴 경계하잖아.”


“그랬죠. 제가 먼저 찾아갔을 때도 그랬어요.”


“재밌는 건 경계를 하면서도 계속 눈치를 보면서 의식적으로 내 눈을 피하기까지 했거든. 마치 죄를 지은 듯 초조해하고 내 시선을 피하고. 그렇다는 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뜻이지.”


“그래서요?”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이 갑자기 사라졌어. 그럼 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끝이잖아. 그러던 와중에 페니가 내게 호감을 보이니까 서둘러 밖에 나가라고 내보냈거든. 내 눈엔 아직 아이라서 말실수를 할까 봐 내보낸 것처럼 보였어.”


“말실수요?”


“어, 그리고 밖에서 페니는 말실수를 실제 했고.”


“넘어진 게 아니라는 말이랑 엄마한테 혼난다는 말밖에 안 했는데요. 그게 말실수에요?”


“그럼 그게 말실수지. 소실수냐?”


유치한 농담에 듀번트가 치를 떨었다.


“와, 썰렁해!”


“이미 멍이 든 건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우리도 알고 있으니 말실수라고 볼 수 없고, 엄마한테 혼난다는 말은 이미 아줌마의 행동에서 다 드러난 거였고. 진짜 말실수는 따로 있어.”


듀번트는 정답을 전혀 모르는 스무고개를 하는 것 같아 답답했다.


“뭐냐고요, 그게!”


“이게 이젠 고용주한테 성질까지 내네? 너 죽을래?”


“안 죽고 한나랑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거라니까요.”


“닥치시고. 내가 아까 페니한테 그랬잖아. 누가 때렸냐고, 아저씨가 혼내줄까? 라고 물어봤을 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안 된다고 말을 했겠지. 개차반 같은 인간이라도 어쨌든 자기 아빠니까. 그런데 페니는 안 된다가 아니라 못 한다고 말을 했거든.”


“어? 그랬나?”


“어, 그랬어. 안 된다랑 못 한다는 엄청난 차이야. 한 마디로 시게르는 현재 혼내줄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이지.”


“당연히 사라졌으니까 혼내줄 수 없는 상태죠.”


“너는 꼭 머리 쓰는 일은 하지 마라. 아줌마의 행동이랑 페니의 말을 조합해보면 뭔가 떠오르는 게 없냐?”


“몰라요.”


“아까 생각한 거 취소.”


듀번트를 보며 자신과 겹쳐 보인다고 느꼈던 걸 후회하는 서지터였다. 결국 전혀 이해를 못 하는 듀번트에게 친절하게 마저 설명해주었다.


“아줌마도 온몸에 멍이 있었지?”


“네.”


“랜턴 불빛으로 봐서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충 봤을 땐 멍의 짙음이 티가 날 정도로 달랐어. 그 흔적이 아줌마는 오랜 시간 꾸준하게 가정폭력을 당해왔다는 의미지. 예전에 맞았던 흔적, 최근에 맞았던 흔적이 뒤섞여 있는 거라고 보면 돼. 반면 페니는 얼굴 쪽이랑 팔에 든 멍의 색이 같았어. 그럼 그 멍은 근래 폭행당했다는 건데, 엄마란 자기는 맞아도 자식이 맞으면 눈이 뒤집혀야 정상이거든. 저 아줌마는 그런 좋은 엄마인 거고. 페니랑 조금 가까워지니까 극도로 경계를 하는 걸 보면 아이는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거였겠지.”


듀번트의 눈엔 단순히 멍의 흔적으로 이런 추리를 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놀랍기도 했다.


“이제 결론을 내보자. 아줌마는 남편의 폭력에 버티면서 살아왔어. 그동안 시게르란 인간은 페니는 때리지 않았겠지. 그러니 아줌마도 그냥 참고 살았을 거야. 그런데 시게르가 실종되는 날 아이에게까지 손을 댔어. 그래서 아줌마는 눈이 돌아버려서 남편을 죽이고 어딘가에 묻거나 숨기거나 유기했다라는 게 내 결론.”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그렇지. 어쨌든 우리가 조사 중인 실종 사건과는 별개야. 그냥 가정폭력으로 벌어진 안타까운 사건일 뿐이지.”


하지만 서지터의 생각과는 다르게 시게르의 실종은 결코 별개의 사건이 아닌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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