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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님의 서재입니다.

무영창의 마법사가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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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3.10.3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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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3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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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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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전조(前兆) 8

DUMMY

"······."


아이샤가 확답을 해주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녀로서는 스스로 생각했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일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제안은 무시할 수 없는 제안일 것이다.

고대 정령을 연구하는 아이샤로서는 롱누스, 가르누달 그리고 미뉴는 살아있는 표본이나 마찬가지다.


고대 정령 분야는 연구자가 한줌도 없는 불모지다.

아이샤는 그런 척박한 황야와 같은 분야를 연구하며 숱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그런 어려움 속에서 한줌의 자료도 무척 소중히 여길 것이다.


그런데 평생 숙원이던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한 줌의 애매한 사료도 아니고 살아있는 전설을 눈앞에서 관찰할 기회가 주어진다?

내가 아는 아이샤라면 내 제안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기회라 여길 것이다.


아니, 분명히 그렇게 여길 것이다.

이건 이전 생에서 아이샤가 직접 한 얘기였으니까.

고대 정령을 연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사소한 사료(史料)에도 병적이라 여길 만큼 자세히 살펴야 했는지 말이다.


그리고 아이샤가 내 제안을 그렇게 여기도록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내기 전에 가르누달과 롱누스, 미뉴를 아이샤에게 먼저 소개한 것이기도 하다.

아이샤를 내 여정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결국 그녀의 입에서 내가 원하던 대답이 흘러나왔다.


"······좋아."



*



아이샤에게 확답을 듣고 난 뒤, 우리는 고민할 것도 없이 이튿날 이실리에논 숲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먼 길을 온 아이샤에게 여독을 풀 겸 하루 정도는 마을에 머물것을 권했으나 그녀가 거절했다.

익숙해서 상관없다는 이유였다.


"따로 필요한 것은 없어?"


샨단 마을은 게리아 사막을 여행하기 전에 거점으로 취급되는 마을인 만큼 여행에 필요한 물건은 대부분 구입할 수 있는 마을이다.

때문에 다시 먼 길을 갈 예정이라면 필요한 것이 없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덕분에 물가가 비싼 건 흠이지만.


"식량만 보충하면 될 것 같아."


"나도······, 그정도면 되겠다."


아이샤를 기다리는 동안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갖춰놨기에 신선식품만 좀 더 추가적으로 챙기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샤와 마을 상점을 돌며 물건을 구입했을 때였다.


"왜 그래?"


내 질문에도 아이샤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아이샤 주변을 맴도는 작은 돌풍이 보였다.


마력의 흐름과는 다른 것.

저건······.


"루타가 전해준 건데······, 사막 중앙 쪽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대."


루타는 사막에 사는 바람 정령의 일종이다.

간단한 의사소통정도가 가능한 아주 작은 하위 정령.


"지진?"


"······아니, 지진보단 폭발인가?

여진도 없고 범위가 넒긴해도 땅이 갈라진 거에 그쳤다고 해."


"······언제?"


땅이 갈라졌다는 말에 드래곤의 심장을 얻기 위해 내가 헤친 땅을 떠올렸다.

······지진으로 착각할만큼 크게 저질렀던가······?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아이샤의 대답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오늘 아침."


"오늘?"


그렇다면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란 말인데.

티마이오스테 쪽도 정리됐는데 왜 지진이 일어났지?


"몬스터들은?"


"몬스터?"


"지진이라면 주변 환경이 바꼈다는 소린데 몬스터들의 반응은 어때?"


드래곤의 심장이 문제였을 때와 같은 이유라면 벌어지니 상황도 똑같을 것이다.

대지진 때문에 일어난 몬스터 대이동.

그게 아니라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글쎄······.

사방으로 흩어진 것 같은데, 이 정도는 당연한 반응 아니야?"


내가 짐작하는 것을 자세히 설명해줄 수 없으니 아이샤의 의견은 일리가 있었다.

하위 정령인 루타를 통한 정보 수집에는 한계가 있으니 더이상 자세히 알아보는데에도 무리일테고.


무엇보다 티마이오스테의 사체가 있던 자리는 이실리에논 숲 방향과 반대쪽이다.

나 혼자도 아니고 일행이 늘어난 마당에 사막 중앙까지 다시 다녀오기도 애매한데.


"신경쓰이는 게 있어?"


아이샤가 내게 물었고, 그 질문에 드래곤의 심장을 손에 넣은 것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해야할지 고민했다.

애초에 이실리에논 숲에 도착하면 아이샤 또한 알게 될 이야기이긴 하지만, 자세한 자초지종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난 조금 더 고민한 뒤 간단하게 말했다.


"네가 도착할 때까지 여유가 있어서 사막 안쪽까지 다녀왔거든.

그게 뭔가 관계 있나 싶어서."


다녀왔다는 사실만 이야기한다면 이실리에논 숲에 도착해서 다시 이야기를 꺼내기도 수월해진다.

예상대로 아이샤는 깊이 묻지 않은 채 내 대답에 수긍했다.


"조금만 늦게 다녀왔으면 휘말렸을지도 모르겠다.

몬스터들의 동향도 상당히 혼란스러운 모양이니까."


그렇게 말한 뒤 아이샤는 루타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보는 모양이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많은 돌풍이 아이샤 주변을 맴돌았다.

아이샤 주변의 루타 숫자가 늘어난 것처럼.


"다행히 이실리에논 숲 방향에는 몬스터가 없는 것 같아."


곧장 출발하기로 했으니 우리가 갈 길에 영향이 없는지 살펴본 모양이었다.

다행히 우리가 가능 방향에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고.


"다행이네.

아니라면 며칠 마을에 더 머물러야 했을 텐데."


아니면 더 빠르게 빠져나가거나.

운이 더 나쁘다면 산댠 마을이 통째로 과달루페 숲 주변에서 괴멸당한 마을 꼴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나저나 정령 친화력이 높은 모양이네.

부르지 않아도 루타가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처음 봤어."


아이샤가 정령 친화력이 높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모처럼 자연스럽게 언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에 말을 보탰다.

내 자연스러운 감탄에 아이샤는 뺨을 조금 붉히며 말했다.


"대단한 건 아니야."


그럴리가.

아이샤가 가진 정령 친화력은 또래에서는 한손에 꼽히고도 남는 수준이다.

아니, 혼혈이 아닌 순수 엘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느 수준.

그정도로 아이샤는 압도적으로 높은 정령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주변에 정령사가 없어서 마냥 신기하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아는 척 할 수 없었기에 주변에 정령사가 없다는 말로 내 무지를 어필했다.

아는 게 없으니 그녀의 대단함을 당연시 여길 수 있도록.

내 익숙함이 의심을 사지 않도록 말이다.


"여기까진 어떻게 왔어?"


내가 화제를 돌리자 아이샤는 재빨리 대꾸했다.

아마 내 감탄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사막 경계까지는 말을 타고 와서 그 이후로는 걸어왔어.

넌?"


아이샤가 말한 이동수단은 평균적으로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도보나 혹은 말. 혹은 둘 다.

나는 대답 대신 내 망토 자락에 숨어있는 가르누달을 눈짓했다.


"어떻게?"


"커지면 탈 수 있어."


내가 멋쩍게 말하자 아이샤는 감탄한 얼굴로 입을 딱 벌렸다.

그리고 한껏 기대에 찬 눈으로 가르누달을 바라봤다.


"혹시······, 나도?"


아이샤까지 가르누달의 등에 탈 수 있다면 여행일정이 확 줄어든다.

나도 긍정적인 대답을 바라며 가르누달을 바라 보았지만 가르누달의 대답은 안타깝게도 부정적이었다.


"······음, 안 될 것 같다.

나는 복속 대상이라 가능한 거고, 다른 사람은 닿지 못할 거라는데?"


가르누달이 할아버지를 공격했던 것을 떠올렸지만, 그건 한시적인 경우인 모양이었다.

그림자로 된 가르누달의 몸체는 평소 물질과 비물질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공격할 때는 순간적으로 물질에 가까워지는 원리인 것 같고······.


나 외에 다른 사람까지 등에 태우려면 그 물질 상태를 장시간 유지해야하는데 그건 상당히 비효율적이라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내 설명에 아이샤는 무척 아쉬운 얼굴을 했다.

이건 사실 나도 좀 아쉬웠다.

말보다는 가르누달이 훨씬 빠르니까.


"어쩔 수 없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마을을 떠났다.

말을 살 수 있는 마을은 넉넉히 이틀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으므로 적어도 하루이틀은 쭉 걸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미뉴가 안 보이네.

미뉴는 같이 안 가?"


"마을 밖에서 만날 거야. 워낙 눈에 띄니까."


미뉴의 푸른 깃털은 도시에서는 물론이고 이렇게 외진 곳에서는 특히 눈에 잘 띈다.

같이 다니는 것도 상관없긴 하지만, 되도록이면 사람이 많은 곳에선 붙어다니지 않았다.

이젠 굳이 그럴 필요없지만······, 이건 쫓기던 삶에서부터 비롯된 일종의 버릇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미뉴에게도.



*



아침부터 걷기 시작한 나와 아이샤는 부지런히 걸은 덕분에 해가 지기 전에 사막의 경계에 다다를 수 있었다.

게리아 사막은 경계 근방까지만 와도 기후가 눈에 띄게 좋아진다.

사막의 밤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혹독하지만 사막 경계 지역을 넘어가면 노숙도 견딜만한 기후로 바뀌는 것이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야."


우리는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는 나무 밑에 자리잡았다.

쉬지 않고 걸었으니 상당히 피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나도 아이샤도 여행에 익숙한 덕분이다.


"생각보다 잘 걷는구나.

사실 졸업한지 얼마 안됐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기숙사 친구 중에 기사학부가 있거든.

토너먼트 준비 때문에 그 친구랑 체력 훈련했던 게 도움이 됐나봐."


기숙사 친구 중에 기사학부, 미엘의 이야기였다.

내가 토너먼트 때까지 미엘이랑 아침 훈련을 한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릴 정도였지만 그것과 별개로 미엘과의 훈련은 내게 많은 도움이 됐다.


노는 데 바쁘고 체력 단련과는 거리가 먼 삶은 살아온 내가 미엘이랑 한 훈련 덕분에 평균 이상의 체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으니까.

미엘 덕분에 기초 체력이 엄청 늘어났고 그 늘어난 기초 체력은 여기저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원래 내 성격이라면 죽어도 하지 않았을 짓이었으니 진짜 이유가 뭐가 됐건 결과적으론 같았다.


"멜젤른도 기숙사제구나?"


"아카데미 대부분이 그렇지."


난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앞의 모닥불에 장작을 보태 넣었다.

그리고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잡담이 계속 이어졌다.


대부분은 아이샤가 이야기하고 내가 질문하거나 아이샤의 질문에 내가 대답하는 식이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대부분 고대 정령과 관련된 것들이었고 그 대부분은 내가 아는 얘기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녀 자신의 목소리로 내가 기억하는 것들을 확인해주는 것은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었으니까.

그것은 아이샤가 내 기억속의 그대로의 사람이라는 의미와 같았으므로.


한참을 떠들고 난 후에야 나와 아이샤 모두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밤이 깊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아이샤가 답지 않게 말이 많았다는 것도.

아이샤도 그걸 깨달았는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너무 내 얘기만 한 거 아니야?"


아이샤로서는 그녀가 연구하던 고대 정령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들어주거나 상의했던 사람이 드물었을테니, 말문이 틔이자마자 수다가 쏟아질 것은 이미 예상한 부분이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신이 나 보이는 것은 가르누달과 롱누스의 존재 덕분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아니야. 괜찮아. 재밌었어."


게다가 그런 아이샤가 떠드는 모습이 보기 좋기도 하지만, 아이샤와 그녀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내게 도움이 된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아이샤는 고대 정령을 연구하면서 정령과 마수, 오래된 생명들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와 이야기를 공유할수록 가르누달과 롱누스에 대해 뭔가 알아낼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슬슬 자야겠다.

해가 뜨면 곧장 움직여야하니까."


"응, 그게 좋겠다."


시간이 많이 늦어있었기에 우리는 그대로 자리를 폈다.

아직 2월이라 해가 늦게 뜨겠지만, 그래도 해가 뜨자마자 움직이려면 오래 자진 못할 것이다.


······그럴 텐데, 나는 곧장 잠들지 못했다.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아이샤가 잠든 것을 확인한 뒤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내 내부에 있는 심상(心想)의 도서관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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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11화 변하지 않는 것들 3 24.03.23 253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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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103화 전말 6 24.03.05 353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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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8화 전말 1 24.02.24 432 17 12쪽
97 97화 하얀 뿌리 엘프 8 +1 24.02.22 431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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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5화 하얀 뿌리 엘프 6 24.02.18 453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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