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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님의 서재입니다.

무영창의 마법사가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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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3.10.31 19:07
최근연재일 :
2024.05.3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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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7,015

작성
24.03.1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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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9화 변하지 않는 것들 1

DUMMY

밤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쉽게 믿지 못할거라 생각해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도 있었지만, 걱정했던 것보단 훨씬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갔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음날 날이 밝자, 레헨트는 그대로 갈리아체트리에게 돌아갔다.

높바람 새에 올라타기 전에 레헨트가 아이샤와 무언가를 약속하는 것 같았지만, 부녀 간의 대화를 엿들을 생각은 없었기에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건지는 내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아이샤는······.


"······진짜 같이 갈 거야?"


나를 따라간다고 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


정확히는 본가 별채 아래의 동굴, 거기를 가보고 싶다고 한 거지만.

분명 다른 일정이 따로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잘못 들었나.


"뭐, 나야 상관없는데······."


어젯밤 이야기로 인해 아이샤를 대하기 조금 껄끄러워졌다.

지나치게 솔직했던 감상들에 대한 후폭풍이라고 해야하나.

다행히 그런 어색함은 나만 느낀 듯, 아이샤는 거침없이 궁금한 점을 내뱉었다.


"말을 구할 거야?"


이번에는 대꾸하기 쉬웠다.

레헨트가 없으니 높바람 새를 타긴 어려웠고, 남은 방법은 도보다 말을 구해 육로를 통하는 방법 뿐이었다.


보통이라면.


"······음, 그건······.

너만 괜찮다면 말이지."


난 그렇게 말하며 가르누달을 소환했다.

정확히는 롱누스의 힘과 섞은 가르누달을.

나는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가르누달을 가르켰다.


"나 외에도 탈 수 있게 됐어."


"나도 탈 수 있어?"


아이샤는 예상대로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롱누스의 힘을 섞어 몸집을 키운 가르누달의 형태는 이전보다 훨씬 명확했다.

일렁이는 그림자가 아닌, 하얗게 얼어붙은 비늘이 곳곳에 섞인 외양이였으니까.

때문에 복속의 대상이 아닌 아이샤 또한 가르누달에게 충분히 닿을 수 있게 되었다.


가르누달을 탈 수 있게 된 아이샤가 크게 기뻐했기 때문에, 어색함은 금세 지워졌다.

우리는 함께 가르누달의 등에 올라탔고, 그대로 사막을 떠났다.



*


사막을 떠나 본가가 있는 카이샤르 지방까지 딱 일주일이 걸렸다.

말을 탔다면 한 달이 넘게 걸릴 거리였지만, 가르누달의 속도로는 일주일도 넉넉했다.

가르누달의 기본 속도도 무척 빠르지만, 말은 갈 수 없는 험한 지형도 가르누달은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까닭이다.


"······도착했어."


우리가 카이샤르 지방의 본가에 도착한 것은 거의 한밤중이었다.

아직 공기는 서늘했고 밤은 고요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느낀 이질감의 정체가 그 탓인 줄 알았다.


"······원래 이렇게 조용해?"


아이샤가 물었고 잠시 고민한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카이샤르 가에 상주하는 사용인은 저택의 규모에 비해 무척 적은 편이다.

할아버지께서 쓸데없이 사람이 북적대는 걸 싫어하시는 성정이신데다가, 어지간한 일은 직접 처리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정도까지 인기척이 적을 리 없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미뉴."


내가 이름을 부르기 무섭게 미뉴가 공중으로 솟구쳤고, 나는 가르누달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와 동시에 주변으로 감각을 확장했다.

내 의지를 머금은 마나가 저택 전체를 훑었다가 사라진다.


"······!"


"유젤?"


아이샤가 당황해 외쳤으나 대꾸할 정신이 없었다.

저택 전체를 훑은 내 감각에 닿는 생명의 기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 하나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마법을 사용했다.


"유젤!"


아이샤가 날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쳤지만, 대꾸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



마법을 사용해 한 번에 이동한 것은 저택 1층, 현관과 마주한 중앙 홀이었다.

내 손짓 몇 번에 선명한 빛의 구술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것으로 실내는 한낮처럼 밝아졌고, 나는 눈앞에 펼쳐진 참상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


아직 여름도 되지 않은 봄이다.

그것도 여름보다는 겨울에 가까운 시기.

아직 예정된 기간은 한참 남아있었다.


그런데, 왜?


카이샤르 본가인 저택, 내가 지금 서있는 1층의 중앙 홀에는 2층으로 이어지는 중앙 계단이 있다.

귀족의 저택이 으레 그러하듯 중앙 계단은 널찍했다.

성인이 열댓이 나란히 서서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그 널찍한 계단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제멋대로 펼쳐져있는 수많은 시체들.


어떤 시신은 왼팔이 없었고 어떤 시신은 오른 다리가 없었다.

어떤 시신은 몸통의 절반이 갈려 내장을 모두 쏟아내고 있었다.

시체들의 공통점은 사지가 멀쩡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신은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


난 크게 심호흡하며 계단을 박차고 올라갔다.

계단에서 올라가자마자 왼쪽, 복도 끝까지 가면······.

할아버지의 연구실과 서재, 할아버지의 방이 있다.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가 계실 만한 곳을 차례로 뒤졌다.

1층 중앙 홀만큼은 아니지었지만 내가 발걸음 하는 곳마다 시체가 즐비했다.

이상하다.

우리집 사용인이 이렇게 많았었나?


의아함도 잠시, 내게 가장 급한 것은 저 시체 중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거였다.


나는 저택을 뒤지는 마법을 한 번 더 사용했다.

그리고 마법으로 확인되는 모든 시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시신은 그 중에 없었다.

그제서야 난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아니, 이걸 안도라고 할 수 있나?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어 떠오른 생각을 떨쳐버렸다.

적어도 할아버지의 시신은 없다.

그럼, 할아버지라면 살아계실 것이다.


게다가 그 많은 시신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할아버지의 시신을 제외한 모든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 서재의 책상, 중앙에 보란 듯이 머리만 놓여있는 시신은······.


"빌 아저씨······?"


몸통은 어디갔지?

나는 이를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가 주변을 다시 한번 훑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끝에 왼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머리가 없는 시신을 하나 찾아냈다.


"······유젤."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의 아이샤가 보였다.

아이샤의 어깨에는 미뉴도 함께였다.

미뉴에게서도 날 몹시 걱정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이게······ 너 괘, 괜찮······?"


아이샤는 적잖이 당황한 모양인지 말을 더듬으며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놀랐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샤가 보기에도 내 주변에 널린 시체들이 카이샤르 집안에서 일하던 사용인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테니까.


내 바로 옆까지 다가온 아이샤는 내가 끌어안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시신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무척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시신은······."


"······빌 아저씨······."


"가까운 사람이었구나."


"응······, 내가 어렸을 때부터 저택을 관리하시던, 집사 아저씨······."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목소리가 잠긴다.

가슴이 답답하다.


미뉴가 아이샤에게서 떨어져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빌 아저씨의 시신을 끌어안은 덕분에 내 몸은 피범벅이었지만, 미뉴는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품에 기대 내게 체온을 나눴다.

마치 나를 위로하듯.


"······다른 사람들은······."


"······살아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


마법을 사용한 이상, 결과는 직접 뒤지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다.

할아버지 수준 이상의 마법이 아닌 이상 내 감각을 피할 수 있는 마법은 없으니까.

아니, 이젠 할아버지의 마법이라도 날 쉽게 속일 수 없을 것이다.


그걸 알기에 아이샤는 혹시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깨물었을 뿐.


"그래도 이제르바이잔 님은 안 보이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아이샤의 지적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이야기였지만, 사건의 배후를 짐작하는 나로서는 그 말에 마냥 긍정할 수 없었다.

본가가 이꼴이 되는데 할아버지가 가만히 계셨을 리 없다.


저택에 마법전(戰)의 흔적은 없으니 사건 당시 할아버지가 본가에 계시지 않았을 확률이 높지만······,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할아버지는 지금 황궁에 계시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도 카달리우스 그 새끼가 억류하고 계실 가능성이 거의 백 퍼센트.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왔어도······."


그렇게 자책하는 내 눈을 눈물이 가득차 시야를 가렸다.

내가 있었다면 저택이 이따위로 부서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이런 식으로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아니,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렇게 말하지 마."


아이샤가 울먹이는 내 뺨을 양손으로 감쌌다.

뺨이 따스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


"넌 해야할 일들을 하고 돌아온 거잖아.

어디서 한눈팔다가 돌아온 게 아니잖아."


자책을 멈출 수 없었지만, 아이샤의 위로섞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지만, 그녀가 건넨 말들이 내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자 어느 정도 기분이 진정되었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아이샤를 향해 말했다.


"아이샤. 부탁이 있어."


"응?"


"정령들에게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줘."


심증은 확실하지만 확신이 필요했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공간의 현재가 아닌 기억을 읽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정령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정령들은 일이 벌어지는 내내 이 자리에 있었을 거고 모든 것을 지켜봤을 것이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없을 뿐.

하지만, 여기엔 아이샤가 있다.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정령 친화력을 가진 그녀가.


"······알았어."


아이샤는 그렇게 대답한 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아이샤를 중심으로 마나와는 다른 힘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마나 보다 훨씬 생명력이 넘치는, 자연에 가까운 힘.


"······."


주변에 무언가가 몰려들었다.

그것들이 모여 웅성거린다.

소란스럽다.

수십 수백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속삭이는 기분이었다.


착각이라고 생각할 뻔 했지만, 아이샤가 감은 눈을 뜸과 동시에 그 무언가들이 형태를 갖춰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는데."


진심이었다.

카이샤르 가문의 저택은 중심 시가지와 꽤 떨어져 있다.

덕분에 주변에 나무가 많았고 자연이 그 원형을 대부분 보존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곳에 비해 정령이 꽤 많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인데.


"좀 멀리있는 아이들까지 불러모았어."


내가 감탄을 금치 못하자 아이샤가 조금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그녀로서는 날 돕기 위해 힘써준 모양이었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네."


물론 정령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아이샤의 몫이었다.

나는 정령과 전혀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아니, 이정도까지 선명하게 보일 때는 정령이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대략적인 의도는 알 수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런 '대략적인 의도'가 아니었으니까.


"응? 으응······, 그래? 그랬구나······, 응······."


아이샤는 역시 정령에게 사랑받는다.

그녀가 질문하자 정령들이 앞다투어 아이샤에게 달려들어 무어라 떠드는 게 잘 보였다.

내 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재잘거림으로 들렸을 뿐이지만, 빠르게 쏟아지는 재잘거림들 만으로도 정령들이 얼마나 말이 많은지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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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11화 변하지 않는 것들 3 24.03.23 253 12 12쪽
110 110화 변하지 않는 것들 2 24.03.22 260 10 12쪽
» 109화 변하지 않는 것들 1 24.03.19 287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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