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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나양 님의 서재입니다.

야인무적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유한세상
작품등록일 :
2024.05.08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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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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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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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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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악연과 인연 -1

DUMMY

동정호에 한 선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척으로 이루어진 선단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동정호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처음에는 수군의 훈련인 줄 알고 깜짝 놀랐으나, 이내 군함이 아니란 걸 깨닫고 저마다 불만을 토로했다.


“저들은 누구이기에 이리도 격식이 없단 말인가. 수많은 문인과 객들이 시상을 가다듬는 곳을 이리도 무례하게 지나가려 하는가.”

“시선께서 등선하신 성지에 파랑을 일으키다니! 내 저들이 누군지 알아내 단단히 따져 물어야겠소!”


풍류운사라 자칭하나 세간에선 한량이라 부르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던 중 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문사가 젊은 한량을 만류했다.


“그만두게. 저 표기가 보이지 않는가? 창천표국일세.”

“창천표국이라면 안휘 남궁세가가 운영하는 직속 표국 아닙니까? 명가라는 이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네는 동정호에 온 지 얼마 안 된 모양이군. 남궁세가는 예를 아는 명문가일세. 창천표국도 마찬가지. 항상 이곳에 올 때마다 문인들을 배려해 사람이 없는 이른 아침에만 배를 댔다네. 어떤 피치 못한 사정이 있을 걸세.”


노문사는 팔을 들어 주변 이들을 가리켰다.


“다른 문인들을 보게. 다들 너그러이 이해해주고 있지 않나.”


한량이 주위를 둘러보자 노문사 말대로였다.

무안해진 한량은 금방 태세를 전환했다.


“사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저 화난 척하며 남궁세가를 질시하는 자들이 있는지 떠본 것뿐이지요. 암. 창천표국이 그럴 리가 없지요.”

“허허. 연기가 제법이구먼. 여럿 속아 넘어갔겠군.”


노문사는 그런 한량이 우스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받아주었다.


잠시 후, 창천표국은 한량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악양에 정박했다.

부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수십 척의 배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중 태반이 포승줄에 묶이자 깜짝 놀라 수군거렸다.

표물까지 하역을 마치자 남궁영은 계획했던 대로 창천대를 둘로 나누었다.

하나는 수적들을 관아로 압송하는 병력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쟁자수들과 함께 악양 지부로 표물을 옮기는 병력이었다.


“북궁 형은 고 조장을 따라 지부로 가 쉬고 계시오. 일 마치고 내 거하게 대접하리다.”

“그러지 않아도 되오.”

“사양하지 마시오. 북궁 형 덕에 많은 재물을 얻었는데 보답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우릴 염치 없는 놈들이라 욕할 거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알겠소.”


북궁백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영은 두 후기지수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고 조장을 도와 표물을 이송해라. 만약 내가 돌아갔을 때 일손을 돕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다는 얘기가 들리면 너희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알겠습니다. 숙부님.”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

“지부장께 무례를 범하지 말고. 고 조장. 아이들을 부탁하네.”

“걱정 마십시오. 제가 공자님들을 잘 보필하겠습니다.”


남궁영은 고석삼의 어깨를 두드린 후 수적들을 데려갔다.

포승줄을 묶으며 미리 점혈을 짚어 단전을 막아두었기에 사고가 일어날 일은 없었다.


“북궁 대협, 공자님들. 저를 따라오십시오.”


북궁백은 고석삼을 따라 객잔이 늘어선 악양 거리를 걸었다.

어느 객잔에는 정갈하게 차려입은 노문사들이 격한 논쟁을 하고 있었고, 어느 객잔에는 선남선녀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저기 봐. 도가 문파 같은데 어딘지 알아?”

“이 멍청아. 목소리 좀 낮춰. 너는 남궁세가의 사공자라는 놈이 형산파도 모르냐?”

“처음 강호에 나왔는데 모를 수도 있지.”


앞에서 짐을 한가득 짊어지고 걸어가는 남궁무진과 남궁수는 쉬지 않고 두리번거리며 티격태격했다.


“공자님들. 잘 아시겠지만, 다른 사람을 곁눈질하며 수군거리는 건 무림에서 큰 결례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눈이 가네요.”


남궁가의 후기지수들은 첫 나들이 나온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안전상의 이유로 합비 내에서만 가끔 돌아다녔을 뿐, 남궁세가의 울타리를 벗어난 적은 처음이다.

그들의 눈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다.

그 사실을 아는 고석삼은 크게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저 이따금 주의를 주기만 했다.


“저곳이 창천표국 악양지부입니다.”


지부에 도착하자 지부장과 많은 사람이 마중 나왔다.

하선하자마자 사람을 보낸 탓에 예정 도착일보다 이틀이 빨랐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표물과 표행 인원들을 수용할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다른 이들이 표물을 정리하는 동안 북궁백은 방에 머물렀다.

지부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불편해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그러나 도무지 이 살기와 혈향을 떨쳐낼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남궁세가에서 함께 출발한 이들은 함께 한 시간도 있고, 잠악채를 격퇴하면서 완전히 일행으로 받아들였는지 피하는 건 사라졌다.

다만, 한 번씩 힐끔거리며 부담스러운 시선을 보냈을 뿐이다.

장성 너머에서 항상 받아왔기에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무위에 대한 동경과 아군이라는 안도의 시선이다.


‘차라리 그게 나아.’


양민들이 피하는 거야 괜찮지만, 원치 않게 무림인들의 시선을 끌고 있지 않나.

안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 남궁천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방도가 없는 건 아니었다.


-반박귀진(返璞歸眞)에 이르게. 아니면 산에 들어가 십 년간 참선하던가.


반박귀진의 경지는 언제쯤 이룰 수 있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자신도 도달하지 못했다면서.

무공의 재능이 없어 검기조차 형성하지 못하는 북궁백으로서는 꿈에도 닿지 못할 경지였다.

잠깐 고민하던 북궁백은 머리를 흔들었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건 나중에.’


잡념을 털어내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가문에 내려오는 북궁명심결로 내상을 다스린 후 삼재심법을 운기 하길 반복했다.

조금이라도 수명이 늘어나길 바라면서.


* * *


해 질 무렵, 남궁영이 돌아왔다.

그는 지부장과 인사를 나누고 고석삼에게 간단한 보고를 받은 후 조카들을 데리고 북궁백을 찾아왔다.


“나갑시다.”

“나는 정말 괜찮으니 조카분들과 다녀오시는 게 어떻소? 괜히 소란이 벌어질까 걱정되오.”


북궁백은 정중히 사양했지만, 남궁영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내 그리 말할 줄 알았소.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니 걱정 마시오. 살면서 깨끗한 만월이 비치는 동정호를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오.”


그 말에 북궁백은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여기요.”


남궁영이 북궁백과 조카들을 데리고 간 곳은 동정호 인근 고급 객잔이었다.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북궁백이 보기에도 황금을 부어 만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외관이 화려했으며, 무려 다섯 층이나 되는 고루거각이었다.

두 명의 위사가 지키는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단정하게 용모를 정리한 중년인이 나와 남궁영을 반겼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삼층으로 모시겠습니다.”

“장 총관. 요리는 준비됐소?”

“예. 지금 바로 올리겠습니다.”


장 총관을 따라 삼층으로 올라갔다.

자리는 각각 멀찍이 떨어져 있고, 한쪽에는 동정호가 보이는 노대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먼저 와 앉아 있는 사람들의 복색을 보니 고급 비단이 아닌 자가 한 명도 없었다.


“보통 값비싼 객잔이 아닌 것 같소.”


북궁백의 물음에 남궁영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동정호에는 수많은 객잔이 있지만 다섯 개를 최고로 뽑소. 이 청월루는 그중에 하나요. 당연히 비싸지.”


동정호가 내려다보이는 삼층 이상은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어도 명성이 없다면 예약조차 불가능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예약을 받는 객잔이 있다는 건 처음 들었소.”

“손님을 가려 받아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는 말 아니겠소? 저기, 그 이유가 오는군.”


계단에서 점소이들이 올라와 음식과 술을 내려놓았다.

일곱 가지나 되는 음식 중 북궁백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술에선 싸구려 백주와는 비교가 안 되는 향긋한 향이 올라왔다.

남궁영이 북궁백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현상금으로 사는 거니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드시오.”

“현상금?”

“잠악채 말이오. 관아에서 건 현상금이 생각보다 많더군.”


부채주 추안의 목이 없었음에도 현상금만 금 삼십 냥에 달했다.

거기에 수채에서 노획한 재물만 해도 어림잡아 이번 표물 총가치의 세 배에 버금갈 정도였다.

처음에는 일 할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를 북궁백에게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북궁백은 그리 많은 돈은 필요 없다며 사양했고, 억지로 떠넘기듯 쥐여 준 것이 겨우 삼 할이다.

현상금마저 받지 않겠다고 미리 못 박았으니, 남궁영으로선 무엇을 사줘도 아깝지 않았다.


“일은 잘 해결됐소?”

“들면서 천천히 얘기합시다.”


남궁영이 곁눈질을 하며 대답했다.

그쪽에는 남궁무진과 남궁수가 침을 삼키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미안하오. 잘 먹겠소.”


앞에 보이는 해물 요리를 집어 앞접시에 덜었다.

이어서 남궁영이 음식을 덜고 나서야 두 후기지수가 맹렬하게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놈들아. 수련에 그리 열중했으면 진즉 출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남궁영은 조카들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소 엄하게 대하는 것과 다르게 속으론 굉장히 아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북궁백도 음식을 입에 넣었다.


“아.”


절로 탄성이 나오는 맛이었다.

남궁세가의 식사도 훌륭했지만, 청월루의 음식은 급이 달랐다.

네 사람은 한동안 음식에 열중했다.

간간이 오가는 술이 아니었다면 한 자리에 동석한 개개인이라 착각할 만큼 말이 없었다.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지고 나자, 남궁영이 입을 열었다.


“잠악채 일은 잘 끝났소. 마침 관아에 호남성 제형안찰사사(提刑按察使司)에서 부사가 파견 나와 있더군. 말이 제법 잘 통하는 관리였소.”


남궁영은 술로 목을 축이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북궁 형의 제안은 안찰사의 승인을 받고 최종적으로 도지휘사의 협조를 얻어야 하겠지만, 일단 즉참은 면했소.”


북궁백의 제안은 수적들의 죗값으로 참형 대신 수군의 조수로 군역을 지우자는 것이었다.

처음엔 관아에 넘기는 거로 끝내려 했으나, 악양까지 오면서 경험한 그들의 능력은 이대로 사장시키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차라리 수군에서 그들을 부린다면 당장의 활용성을 넘어 장기적으로 뛰어난 조수를 육성하고 수적으로 인한 피해도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잘 됐구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처자들은 관에서 돌려보내기로 했소. 원치 않거나 갈 곳이 없는 여인들은 남궁세가에서 거둘 것이오.”

“그렇소?”


북궁백은 씁쓸하게 되물으며 술을 마셨다.

술은 더 이상 향기롭지 않고 쓰기만 했다.

남궁영도 씁쓸한 얼굴로 연신 술을 들이켰다.


수적들은 제물만 탐하지 않았다.

도적질하면서 반반한 여자가 있으면 납치해 노리개로 삼았고, 그 수가 스물이 넘었다.

수채를 점거해 처자들을 풀어주었을 때, 악에 받친 한 처자가 수적들을 죽여달라 소리쳤다.

남궁영과 창천대는 북궁백의 눈치를 보았고, 북궁백은 그 처자에게 직접 칼을 쥐여주었다.


-직접 죽이시오. 분이 풀릴 때까지.


처자는 넷을 죽이고 칼을 떨어트렸다.

오열하는 처자 뒤에서 다른 처자가 나서서 둘을 죽였다.

둘, 셋, 둘, 하나, 하나···.

스물한 명의 처자들은 수적 쉰둘을 죽이고 칼을 내려놓았다.

북궁백은 끝까지 그들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북궁 대협. 궁금한 것이 있사온데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갑자기 축 처진 분위기를 환기하려 했는지 남궁무진이 말을 걸었다.


“남궁무진 공자. 난 대협이 아니오.”

“일단, 말씀부터 편하게 하시지요. 숙부님과 동년배이신데 저희에게 반존대를 하시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대협을 오래 보진 않았으나 충분히 대협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남궁무진이 동의를 구하자 남궁수가 슬쩍 북궁백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대협은 정파 선배님들께 의례 붙이는 호칭에 불과합니다. 다른 적절한 호칭도 없고요.”

“그럼 그렇게 하게.”


북궁백의 허락이 떨어지자 남궁무진이 씩 웃으며 질문했다.


“저번에 잠악채를 격퇴하신 신위를 보면 일반적인 무공의 상리와 궤가 다른 것 같습니다. 혹시 선배님께선 특별한 신공을 익히신 겁니까?”


남궁영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무림의 불문율을 어겼다고 보긴 힘들지만, 아슬아슬한 수위였다.

하지만 조카를 제지하진 않았다.

내심 그도 대답을 듣고 싶었다.


“내가 익힌 거라곤 가문의 기본 심법과 십팔반무예(十八般武藝)가 전부라네.”

“정말이오?”

“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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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형산혈사-2 +2 24.05.30 1,075 26 13쪽
23 형산혈사-1 +4 24.05.29 1,106 24 13쪽
22 형산-4 +2 24.05.28 1,090 22 14쪽
21 형산-3 +3 24.05.27 1,119 25 14쪽
20 형산-2 +2 24.05.26 1,139 23 13쪽
19 형산-1 +2 24.05.25 1,217 25 15쪽
18 피의 첫걸음 -3 +2 24.05.24 1,251 25 16쪽
17 피의 첫걸음 -2 +2 24.05.23 1,229 23 14쪽
16 피의 첫걸음 -1 +2 24.05.22 1,333 24 14쪽
15 악연과 인연 -4 +2 24.05.21 1,305 25 15쪽
14 악연과 인연 -3 +2 24.05.20 1,278 26 13쪽
13 악연과 인연 -2 +2 24.05.19 1,289 25 13쪽
» 악연과 인연 -1 +2 24.05.18 1,367 21 13쪽
11 잠악채 -3 +3 24.05.17 1,378 23 15쪽
10 잠악채 -2 +2 24.05.16 1,402 26 13쪽
9 잠악채 -1 +2 24.05.15 1,571 28 16쪽
8 남궁세가의 귀빈 -3 +3 24.05.14 1,682 29 13쪽
7 남궁세가의 귀빈 -2 +2 24.05.13 1,727 28 18쪽
6 남궁세가의 귀빈 -1 +3 24.05.12 1,847 31 13쪽
5 십오 년을 지나 -3 +3 24.05.11 1,848 32 14쪽
4 십오 년을 지나 -2 +3 24.05.10 1,855 33 14쪽
3 십오 년을 지나 -1 +2 24.05.09 1,947 36 13쪽
2 귀향(歸鄕) -2 +3 24.05.08 2,134 36 15쪽
1 귀향(歸鄕) -1 +5 24.05.08 2,451 3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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