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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나양 님의 서재입니다.

야인무적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유한세상
작품등록일 :
2024.05.08 22:07
최근연재일 :
2024.06.27 18:30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59,595
추천수 :
1,249
글자수 :
324,069

작성
24.05.13 19:34
조회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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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18쪽

남궁세가의 귀빈 -2

DUMMY

단체 수련 중인 청천대 이백 명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연무장에서 남궁영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그만! 일각 후 검진 훈련으로 넘어간다.”

“복명!”


복명복창을 외친 창천대원들은 연무장 한쪽에 놓인 물을 마시러 몰려갔다.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대원들은 어느 순간 다 같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뛰고 있어.”

“약왕전주님이 그러던데? 내상도 심하고 타박상도 심해 두 달은 움직이기 힘들 거라고.”

“그럼 우리가 보고 있는 건 뭐야?”

“나야 모르지. 무슨 신공을 익혀서 회복력이 빠른가?”


창천대원들은 쑥덕이며 주시하고 있는 연무장 한쪽에는 땀을 비오듯 흘리며 달리고 있는 북궁백이 있었다.

그는 창천대가 검법 수련을 시작한 한 시진 전부터 무장을 갖추고 오십 장이나 되는 담장과 담장 끝을 왕복하는 중이었다.


“내공을 쓰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일단 속도가 너무 느리다.

열 살 정도 되는 애들이 술래잡기하겠다고 뛰어다니는 정도에 불과하다.

무거운 갑주와 중병기를 들고 있지만, 저 정도는 이십 년의 내공을 가진 이류무사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경공 수련도 아니고 저런 달리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북궁백의 실력을 똑똑히 지켜봤던 창천대원들의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들었고, 창천대주 남궁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주님? 어디 가십니까?”


옆에서 쉬고 있던 고석삼이 물었다.

눈치가 빠른 그는 남궁영이 물을 마시거나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난 것이 아니란 걸 단숨에 알아차렸다.

남궁영이 눈짓으로 북궁백을 가리켰다.


“왜 저렇게 뛰는지 궁금하지 않나?”

“저도 궁금하긴 합니다만···.”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네. 머리에 잡념이 남아있으면 제대로 훈련이 되지 않아. 직접 이유를 물어보고 알려주면 어느 정도 해소되겠지.”

“그럼 제가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고석삼이 얼른 일어나며 말했다.

남궁영은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만류했다.


“태상가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귀빈이야. 가도 내가 가야지. 쉬고 있게.”

“그럼 제가 모시겠습니다.”


남궁영이 고석삼을 힐끔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눈빛을 보니 또 싸우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하게.”


남궁영은 고석삼을 데리고 북궁백에게 향했다.

그들이 오는 걸 발견한 북궁백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남궁영이 먼저 포권을 취했다.


“창천대를 맡은 남궁영이오.”

“북궁백이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잠시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북궁백은 이들이 왜 온 것인지 몰라서, 남궁영은 막상 앞에 서니 자신의 검을 박살 내고 머리통을 내리치던 그때가 생각나서 그랬다.


“어깨는 괜찮소?”


먼저 입을 땐 건 북궁백이었다.

남궁영은 검 조각이 박혔던 어깨를 들썩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거의 다 나았소. 흔적만 남아있지. 북궁 교위야말로 어떻소? 몸이 심하게 망가졌다던데?”

“상당히 괜찮아졌소. 그리고 이미 퇴역한 몸에 교위는 당치않소. 어차피 교위도 아니었고.”

“그럼 북궁 무인이라 부르리다. 그나저나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더 쉬어야 하는 거 아니오?”

“몸이 근질거려서 어쩔 수 없더이다.”

“몸을 푸는 것치곤 꽤나 무리...”


남궁영은 도중에 말을 멈췄다.

땀을 흘리는 것과 달리 북궁백의 호흡이 안정돼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가 한 시진 동안 달렸다는 걸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어디서 물을 뒤집어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온했다.


“혹시 내공을 쓴 거요?”

“아니오.”

“그럼 순수한 체력만으로 그렇게 뛰었단 말이오?”


북궁백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영과 고석삼은 놀라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의 짐와 병장기를 옮긴 수하들의 말에 따르면 갑주만 해도 육십 근이 넘고, 언월도도 팔십 근이 넘는다고 했다.

자신들도 매일 육체 단련을 빼놓지 않았지만, 백사십 근을 들고 한 시진 동안 뛸 자신은 없다.

삼십 년간 외공만 수련한 무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근육질을 보면 납득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서 의아함을 감출 수 없다.


“그렇게까지 육체를 단련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적과 싸워 살아남으려면 적보다 강한 체력과 힘이 필요하오.”

“하지만 그렇게까지 단련할 시간에 내공을 쌓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소?”


몸을 아무리 단련하더라도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인간이라는 생물의 한계다.

그에 반해 내공은 인간의 한계를 쉽게 넘어서게 만든다.

기력이 쇠해 근육이 쪼그라든 노고수들도 내공을 이용해 천근이 넘는 바위를 들어 올리며, 하루에 천 리를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북궁백은 고개를 저었다.


“내공 소모가 체력 소모보다 훨씬 빠르오. 서로 내공이 바닥났다면 체력과 힘이 강한 자가 이기는 게 당연하지 않소?”


그 말을 들은 남궁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동의하오만, 생사결은 대부분 짧은 순간에 끝이 나기 마련이오.”


강호에선 항상 본 실력의 삼 할을 숨기라는 격언이 통용되는 것처럼 아무리 기감이 예민하더라도 상대방의 실력을 정확히 가늠하긴 어렵다.

따라서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다면 생사결의 매 순간, 일 초 일 초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공이 부족해 죽을지언정 체력이 부족해 죽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알겠군. 환경이 너무나 다르구나.’


북궁백은 자신과 이들의 차이를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 근처까지 다가와 대화를 엿듣고 있는 무인들을 살펴보았더니 남궁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남궁세가는 실전을 경험한 지 얼마나 되었소?”


뜬금없는 질문에 남궁영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표국에 무인들을 붙여 강호행을 시키니 적다고 할 순 없소.”

“나는 무인들 개개인을 말하는 게 아니오. 남궁세가라는 집단을 말하는 거요.”

“음···.”


남궁영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삼십칠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궁세가 전체는커녕 일개 무력대조차 집단전을 치른 적이 없다.

기존 문파는 물론 새로운 문파가 생겨도 남궁세가의 권위를 넘보려 들지 않았고, 사파 역시 눈치를 보며 설설 기었다.

일개 조장이 타 문파의 수장과 대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

그곳이 바로 여기, 안휘의 패자 남궁세가였다.


“난 무림인의 전투 방식을 잘 모르오만, 당신들이 실전 경험이 없다는 건 금방 눈에 들어오더군.”


북궁백의 말에 남궁영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우린 매일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하고 있소. 실전에 맞닥트려도...”

“실전을 치른 적이 없는데 실전과 같은지는 어찌 확신하오?”


남궁영이 입을 다물었다.

치켜뜬 눈 안에서 이글거리는 반발심을 응시하며 북궁백이 말했다.


“확인해보시겠소?”


* * *


북궁백은 갑주를 벗어놓고 목봉을 들었다.

그의 앞에는 청천대 무인의 반이 팔뚝에 검은 천을 묶고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시커먼 재를 묻힌 목검을 쥐고 있었다.


“규칙은 간단하오. 내공은 일절 사용하지 않소. 급소에 재가 묻은 사람은 적에게 당한 거로 간주하여 그 자리에 쓰러져 있으시오.”


한 무인이 손을 들었다.

북궁백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물었다.


“스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몰래 내공을 끌어올리는 건 어떡합니까?”

“모든 게 실전과 완전히 똑같을 순 없소. 남궁세가와 본인의 명예를 걸고 알아서 하시오.”


북궁백은 자신에게 배속된 열 명의 조장들에게 물었다.


“집단전 발발 시 어떻게 움직이도록 훈련받았소?”

“조별로 창천검진(蒼天劍陣)을 이루어 움직입니다. 공격이나 방어, 진퇴는 대주님의 명에 따릅니다.”

“대주께선 어찌 나올 거라 보시오?”

“아마 공격을 지시하실 겁니다.”

“그럼 우리도 공격하기로 하겠소. 나는 따로 움직일 테니 그대들은 평소 훈련받은 대로 움직이시오.”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린 북궁백은 몸을 돌려 반대쪽에 있는 남궁영 측 창천대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쪽과 달리 팔뚝에 하얀 천을 묶고 있었다.

때마침 준비가 끝났는지 남궁영이 몸을 돌렸다.


“준비됐소.”


남궁영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북궁백은 목봉을 들었다가 힘차게 내리찍었다.

쿵. 쿵. 쿵.

개전을 알리는 울림이 퍼지기 무섭게,


“돌격!”

“가자!”


양측에서 진격 명령이 떨어졌다.


두두두두.

뽀얗게 피어오르는 먼지 위로 도합 이백 명의 무인들이 서로를 향해 내달렸다.

진검도 아니고 내공을 끌어올린 것도 아니지만, 연무장 밖에서 구경하는 이들이 보기에는 그 기세가 꽤나 대단해 보였다.

삼십 장이 넘는 거리가 반 장으로 줄어드는 건 금방이었다.


“하압!”


누군가의 기합과 함께 목검과 목검이 부딪쳤다.

그걸 시작으로 좌우에서 기합성과 함께 목검 부딪치는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일 합을 부딪친 후, 창천대 전원은 그동안 받았던 훈련에 따라 창천검진을 운용하려고 했다.

그 순간, 무인들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좁아.’


물 흐르듯 유기적인 차륜전을 기조로 하는 창천검진은 운용을 위해선 필히 자리를 교체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전면이야 적이 있으니 예외로 쳐도 보법을 밟으며 빠져나가고 끼어들 수 있는 좌우 공간이 필수적인데 어처구니없게도 다른 조원들이 걸림돌이 되었다.


“이런···.”


검진이 삐걱거린다.

선두에 있는 무인만 계속 검을 맞대고 나머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억지로 검진을 이어가기 위해 끼어들 기회를 엿보았다.

결국, 뒤에서 지켜보다가 참지 못한 남궁영이 소리쳤다.


“창천검진을 깨라! 안으로 파고들어!”


일시적으로 두 편으로 나뉘었지만, 본래 다 같은 창천대 소속이다.

남궁영의 명령은 양측에 동일하게 전해졌다.


“밀어붙여!”

“파고 들어가!”


양측에서 연신 고함이 터져 나왔다.

처음 질서정연하게 서로를 향해 달려갈 때의 웅장함은 사라지고, 뭔가 소란스러운 꼬마 아이들의 전쟁놀이처럼 난전으로 변했다.


“컥.”


북궁백 측 무인이 옆에서 날아온 목검에 옆구리를 가격당했다.

그 무인은 규칙을 잊지 않고 쓰러지며 검을 날린 사람을 흘겨보았다.

기억해 두었다가 차후 비무할 때 한 방 먹여줄 속셈이었으나, 이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편이잖아?’


양측이 뒤섞여 난전을 벌이다 보니 그와 같은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적인 줄 알고 베었는데 아군이었고, 아군인 줄 알고 무시했는데 적이었다.

창천대를 곤혹스럽게 한 건 또 있었다.

쓰러져 있는 무인들이다.


“어이쿠!”


앞에서 다가오는 적을 피해 물러서던 한 무인이 쓰러져 있는 사람의 몸에 걸려 비틀거렸다.

그는 균형을 잡고자 급히 발을 디뎠으나 그곳에도 다른 사람의 몸이 있었다.

내공을 사용했으면 상황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았고, 연신 비틀거리다 목검에 맞고 쓰러졌다.


“개판이군.”


뒤에서 지켜보던 남궁영은 실망감과 허탈감에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 고생해서 훈련한 건 무엇이었는지, 죄다 어디로 간 건지 알 수 없었다.

씁쓸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모의전에서 이렇다면 피가 튀고 살이 갈라지는 실전에선 더 심할 거라는 것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미 창천대의 체면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지만, 대주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자신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타앗!”


남궁영은 기합을 내지르며 난전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북궁백도 움직이고 있었다.


‘이만하면 저들도 알았겠지.’


더 해봐야 깨달을 것도 없고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어 오히려 부상자가 생기지 않으면 다행일 지경이다.

북궁백은 쓰러져 있는 무인들을 피해 난전 속으로 파고들었다.

등을 보이고 있던 무인은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별안간 목검을 휘둘렀다.

검은 띠, 아군이다.

북궁백은 혼자 내공을 쓰는 것처럼 가볍게 목검을 쳐낸 후 목덜미를 잡아 뒤로 던지며 말했다.


“아군을 돕고 함께 움직이시오.”


얼떨떨하게 바라보는 무인을 일별하고 앞으로 나섰다.

북궁백을 발견한 창천대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북궁백의 몸 근처까지 날아오는 목검은 단 하나도 없었다.

동료들을 밟지 않기 위해 빈 땅만 딛고 다가오니 속도도 느리고 경로가 훤히 보여 발에 체중이 실리는 순간 목봉 한 번씩 찔러주면 끝이었다.

수하들을 상대하던 남궁영은 무인지경으로 뚫고 들어오는 북궁백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북궁 무인부터 쓰러트려라!”


상대측 창천대가 북궁백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헛웃음이 나오는 건 아군이 길을 내어준다는 것이었다.

표나지 않게 은근슬쩍 목검에 맞아가면서 말이다.

그 탓에 북궁백으로 인해 기울어가던 전세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두 명을 쓰러트릴 동안 너덧 명이 나자빠지니 북궁백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순식간에 포위됐다.

북궁백은 당황하지 않고 쓰러져 있는 무인들을 짓밟으며 뒤로 물러서더니 가장 가까이 있는 상대측 무인의 검을 쳐냈다.

강한 충격을 받은 무인은 신음을 내뱉으며 검을 놓쳤고, 북궁백은 즉시 손을 뻗어 팔을 꺾으며 끌어당겼다.

그 직후 제압한 무인을 날아오는 목검 앞에 들이밀었다.


“저, 저 비열한!”


아직 서 있는 무인들을 비롯해 땅에 쓰러진 채로 보고 있던 무인들까지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인간 방패라니.

상상만으로도 고개를 젓게 만드는 악랄한 짓이다.


“허업!”


검을 휘두르던 무인은 급히 검로를 비틀었다.

아무리 목검이라도 제대로 맞으면 살점이 터지고 뼈가 부러진다.

모의전에 상대편이라고는 하나 동료가 아닌가.

그러나 그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인간 방패 옆구리에서 튀어나온 목봉에 간을 찔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남궁영이 눈에 불을 켰다.


“북궁백!”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대놓고 이름을 부른다.

북궁백은 그를 보고는 쓰러져있는 무인의 옷깃을 잡아챘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무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는 힘껏 던졌다.


“빌어먹을!”


남궁영은 입술을 깨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분통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의도를 알면서도 당해주어야 한다.

정파니까, 내 수하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수하의 몸을 받아내고 암습을 조심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북궁백은 그에게 계속 무인을 던지기만 할 뿐, 상대해주지 않고 피해 다니며 다른 무인들을 쓰러트렸다.


남궁영 측 무인들은 삽시간에 쓰러졌다.

압도적인 힘 차이에 일 합을 버티는 이가 없었다.

정면 대결은 승산이 없어 다른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그 무엇도 소용없다.

등 뒤에서 달려들어도, 쓰러진 척 누워있다가 암습을 가하려 해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먼저 목봉을 휘두르거나 막아버린다.

내공을 끌어올려 기감을 펼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기혈이 막혔다지 않는가.

길이 꽉 막혀 있는데 억지로 뚫으려 하면 외부에서도 티가 나기 마련이다.

북궁백은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다.

절정 후기에 올라 있는 남궁영 또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즉, 저 귀신같은 활약은 극한으로 단련된 육체와 경험에서 나온다는 말이었다.

무인들이 할 말을 잃고 보고만 있는 사이, 끝이 다가왔다.


“대주가 마지막이오.”

“헉. 헉.”


남궁영은 대꾸 없이 거친 숨만 토해냈다.

아무리 절정고수라도 육체 능력만으로 이십 명이 넘는 성인 남자를 받아냈으니 지치는 건 당연했다.

더 화가 나는 건, 그만큼 사람을 집어 던지며 다른 무인들을 쓰러트린 북궁백은 조금 숨이 차올랐을 뿐이지, 여전히 안정적인 호흡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꾸욱.

남궁영은 목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패배할지언정 포기해선 안 된다.

대 남궁세가의 직계이며 창천대를 이끄는 대주로서 항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타앗!”


남궁영이 기합을 외치며 북궁백에게 달려들었다.


* * *


“어떻더냐?”


남궁세가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고루거각 삼층에 있는 가주의 집무실에서 연무장을 보고 있던 남궁천이 물었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던 남궁기는 침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전장에서 오래 지냈다더니 확실히 체면을 신경 쓰지 않는군요. 절대 정파인의 방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궁기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현 남궁세가에 필요한 방식입니다.”

“네 말이 맞다.”


남궁천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는 언제나 공명정대를 추구하지. 목숨이 경각에 달려도, 사문에 멸화의 불길이 타올라도 그 신념에 매몰되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해.”


말을 하면서도 연무장을 보고 있던 남궁천은 혀를 찼다.

남은 힘을 짜낸 남궁영은 북궁백의 일 초도 받아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마지막까지 그는 수하들을 밟지 않고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았다.

끝까지 공명정대한 정파인의 표본이었다.


“쯧. 떨어진 위신은 바로 세울 수 있지만, 잃어버린 목숨은 되찾을 수 없다는 걸 왜 모를꼬. 이보게. 가주.”

“예. 아버님.”

“그럼에도 우린 정파네. 북궁백의 방식이 현실적이란 걸 알면서도 우린 공명정대를 추구해야 해. 가주라면 어떤 방식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는가?”


남궁기는 냉정한 눈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북궁백을 바라보았다.


“배우고 가르치되 우리를 대신할 이를 구해야겠지요.”

“내 생각도 같네.”


남궁천이 남궁기의 어깨를 토닥이며 대견스러워했다.


“내가 가주에게 북궁백과 승아에 대한 진실을 알려준 건 그런 이유야. 치욕은 잠시 묻어두게. 왕은 힘이 강한 자가 아니라 강한 힘를 부리는 자니까.”

“아버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그래도 반드시 뛰어넘을 겁니다.”


남궁기의 고집스러운 대답에 남궁천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암. 그래야 제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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