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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나양 님의 서재입니다.

야인무적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유한세상
작품등록일 :
2024.05.08 22:07
최근연재일 :
2024.07.0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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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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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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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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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이별과 만남-3

DUMMY

북궁백은 갑자기 튀어나온 자신의 별호에 순간 한 차례 눈이 흔들렸다.

추걸개에게 미리 듣긴 했지만 벌써 여기까지 소문이 퍼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별호로 불리는 것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의 반응을 본 언상권은 부담스럽게 눈을 빛냈다.


“역시···. 용모나 기도가 소문과 똑같아서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그 소문이 벌써 강서까지 퍼졌다니···.”

“무려 보름이 넘게 지나지 않았습니까? 호사가들이 쉴 틈 없이 떠들고 다녀서 그들의 배가 꺼질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나게 떠들던 언상권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것도 인연인데 말 편하게 하시죠. 저 누구 등쳐먹고 그런 놈 아닙니다.”


북궁백은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제 입으로 그런 말 하는 놈치고 그렇지 않은 놈이 없다.

정말 진주언가의 혈족이라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명문가의 자손이 어찌 저리 자유분방한 몰골로 혼자 돌아다닌단 말인가.

용모도 그렇고 스스럼없는 성격이나 가벼운 몸짓과 말투가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본능이 이 자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의심한다는 걸 눈치챈 언상권이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제 말을 못 믿으시나 봅니다. 좋습니다. 제가 진주언가의 혈족이란 걸 증명하겠습니다. 도를 빌려주십시오.”


언상권이 북궁백 허리에 달린 기형도를 가리켰다.

다른 무인의 병기를 빌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권사인 그가 시왕공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북궁백이 기형도를 뽑아 건네주었다.


“오.”


도를 받아든 그가 굉장한 무게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탄성을 터트렸다.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던 다른 무인들도 수군거리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예기가 엄청나군.”

“보통 철로 만든 도가 아니야.”

“굉장한 명장이 만들었구나.”


그 안에 숨길 수 없는 욕심이 느껴진다.


‘저들도 똑같군.’


북궁백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전쟁 이후 진가철방의 야장이 찾아와 조금만 더 다뤄보고 싶다고 하도 애원하길래 허락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오 일 내내 기형도를 붙들고 늘어지더니 형산의가에 찾아와 돌려주며 말했다.


-예전보다 쓸만할 거다.


그 자리에서 확인해본 게 실수였다.

쓸만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도가 되어 있었다.

외형은 변하지 않았으나 무게 중심이나 예기가 수준이 달랐다.

문제는 치료를 받던 형산파 무인들과 그들을 찾아온 호남정의맹 무인들이 봤다는 것이다.

이 또한 소문이 났을 거라 생각하고 내보인 것이었다.


“해보시오.”


북궁백의 말에 언상권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걸 보아하니 확신이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고,


“윽!”


결국, 피를 봤다.

언상권은 피가 흐르는 팔뚝을 보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포권을 취하며 소리쳤다.


“형님! 믿어주십시오. 하늘에 맹세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비무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비무행 중이라더니.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친근한 척 다가온 이유가 밝혀졌다.

자세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간절함으로 보아 출신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지만, 비무행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북궁백은 단호했다.


“불가하오.”


비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진원진기를 쓰지 않고 내공만 사용하면 된다.

그러나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어째서 안 된다는 겁니까? 비무를 통해 견식을 넓히고 자신의 무공을 재정립해 경지 상승의 토대로 쌓는 것이야말로 무림인의 본분 아닙니까? 이러한 교류를 시작으로 친분을 쌓으며 우애를 다지기도 하고 말입니다!”


안달 난 몸을 들썩이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객잔을 떨쳐 울린 언상권이 다른 무인들을 가리켰다.


“저기 계신 선후배님들은 정사를 떠나 그 본분을 어기지 않고 한 명도 빠짐없이 저와 비무를 해주셨습니다. 왜? 무의 궁극을 추구하는 무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무인들은 피식 웃거나,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 것으로 호응했다.

그들 중 고개를 저었던 험상궂은 중년인이 말했다.


“이봐. 겉늙은 친구. 그냥 한 번 해주는 게 좋을 거야. 그놈, 해줄 때까지 귀찮게 하거든.”


그의 반대편에 아직 앳된 기색이 가시지 않은 후기지수와 앉아 있는 학사 차림의 노인이 말을 덧붙였다.


“저 철없는 놈은 언가의 혈족이 맞네. 나 선학철필(仙鶴鐵筆) 나중산이 보증함세. 그리고 우리도 비무를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라네.”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은 모습이 보기만 해도 고루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별호도 그렇고 다른 무인들이 조심스러워하는 것도 그렇고 무림에서 꽤 명성을 떨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니···.

북궁백의 표정을 읽은 후기지수가 진절머리를 치며 말했다.


“밤새 방문 앞에 무릎 꿇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니까 잘 수가 없더라고요.”


그 외 다른 이들도 후기지수의 말에 공감하며 혀를 찼다.


‘귀찮게 됐군.’


북궁백은 작은 한숨을 내쉬고 표정을 굳혔다.


“나와의 비무를 통해 그대가 얻을 수 있는 건 없소.”


한 점의 의심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언상권이 황망해 했다.


“어찌 그리 단정하십니까? 형님께서 오합련의 수장 둘을 척살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익힌 건 가전심법과 십팔반무예밖에 없기 때문이오.”


북궁백의 말에 병장기를 차고 있는 면면과 다르게 조금은 쾌활했던 분위기가 싹 가라앉았다.

언상권은 아무런 말 없이 눈만 끔뻑였고, 다른 무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에이. 형님. 농이 심하십니다.”


언상권이 조금 딱딱한 목소리로 애써 웃었다.


“사실이오.”

“그, 그럼 혹시 가전심법이 어마어마한 신공...”

“입문심법이오.”

“십팔반무예가 제가 아는 그것이 아니...”

“군에서 가르치는 십팔반무예가 맞소.”


하나하나 대답할 때마다 언상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른 무인들은 눈을 좁혀 의구심을 드러내거나 어이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등 북궁백이 의도한 반응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그러길 바라던 사람은 아니었다.


탁.


갑자기 언상권이 식탁을 내리쳤다.

그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증명해보십시오!”

“...어?”


북궁백의 표정이 흔들렸다.

언상권이 과한 몸짓으로 억울해하며 외쳤다.


“저도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실패하지...”

“시도는 했습니다! 그러니 형님도 시도는 해보십시오!”

“...”


북궁백은 작게 입을 벌리고 멍하니 언상원을 바라보았다.

주변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클클. 재밌게 돌아가는군.”

“허허. 그놈 어울리지 않게 입담이 제법이로고.”


북궁백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비무할 곳은 있소?”


* * *


북궁백은 객잔에서 제공한 별채 앞마당에서 언상권과 마주 보고 섰다.

그들의 주위에는 객잔에 머물고 있던 이들 전부가 벽에 등을 기대고 구경 중이었다.


“거, 해 넘어가기 전에 빨리빨리 합시다.”


흐트러져 있는 복장부터 말투, 건들대는 자세까지 모두 다 사파 소속임을 알려주는 무인이 소리쳤다.

그러자 누가 봐도 정파로 보이는 번듯한 용모의 무인이 말을 받았다.


“횃불이 있긴 하나 해가 있을 때 빨리 진행하는 게 좋겠소.”


정파와 사파가 으르렁대지 않고 한곳에 머무른다.

그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서 있는 것처럼 서로 거리를 두고 있어 완전히 어울린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험악하진 않다.

얼마 전에 형산파와 오합련의 혈전에 참전하고 지켜본 북궁백에 있어서는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아무래도 이 자 때문인 것 같은데···.’


북궁백은 호탕하게 웃으며 두 무인에게 이제 시작하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넉살 좋게 말하는 언상권을 바라보았다.

기대감으로 얼굴이 살짝 상기된 그는 편견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두 무인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심판을 자청한 나중산이 앞으로 나섰다.


“비무에 앞서 간단한 규칙을 알려주겠네.”


비무라고 해서 막무가내로 손속을 겨루는 게 아니다.

말만 비무지 생사결과 다를 바 없는 비무도 있고, 고수가 하수를 상대로 수련을 돕는 지도식 비무도 있고, 규칙을 정해 치르는 친선 비무도 있다.

언상권이 말한 견식과 교류가 목적인 이상 거칠어지지 않게 일정 부분 제약을 두는 것이다.


“내공의 제한은 없으나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검기나 권풍 등, 외기를 다루는 기공술은 금하겠네.”


그 외에는 단순했다.

앞마당을 벗어나면 안 되고, 과한 호승심으로 살초를 날리는 것도 금물이다.

어느 한쪽이 패배를 인정하거나 나중산이 전투 불능이라 판단하면 그걸로 비무는 끝난다.


“생사결이 아니라 친선 비무임을 항상 명심하게. 누구도 상하는 일 없이 무사히 끝내길 바라네.”


나중산이 무거운 목소리로 강조했다.

아무리 제약을 둔 친선 비무라고 해도 안전하기만 한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내공 제한을 두지 않으며 대부분 병장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스쳐도 피는 기본이요, 제대로 맞게 되면 몇 달 동안 정양을 해야할 수도 있다.

먼저 언상권이 포권을 취했다.


“언가의 상권입니다. 가문의 천왕권과 시왕공을 수학했습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북궁가의 백이오. 십팔반무예를 익혔소. 잘 부탁하오.”


북궁백도 마주 포권한 다음 용약재연세(龍躍在淵勢)를 취했다.

창법, 월도법, 편곤법의 기수식으로 병장기를 땅에 바로 세우고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언월도는 사용하지 않았다.

날붙이를 들게 되면 자연스럽게 살기를 흘러나오고, 그의 몸이 저절로 힘을 쏟아내 상대를 반드시 죽이려 들었기 때문이다.


“하압!”


언상권이 기합을 외치며 선공을 취했다.

북궁백은 약간 낮은 자세로 우직하게 파고드는 그를 향해 가볍게 봉을 찔렀다.

언상권은 그대로 봉을 튕겨내려 했고, 그걸 본 북궁백은 즉시 봉 끝을 흔들어 그의 손목을 후려쳤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언상권은 시왕공을 믿고 파고들기를 선택했다.


빠악.


묵직한 타격음이 터져 나오며 언상권의 몸이 주춤거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북궁백이 몸을 회전하며 철봉을 후려쳤다.

그 기세가 얼마나 강맹한지 바닥에서 일어난 흙먼지가 흩어지지 못하고 깃발처럼 봉을 따랐다.

언상권은 감히 받아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침음을 삼키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보기보다 훨씬 묵직해.’


언상권은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팔뚝에서 올라오는 통증을 참아내는 중이었다.

시왕공이 무림에서 알아주는 호신공이나 어떤 무공이 그렇듯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용의 역린처럼 잘못 맞았다가는 한 번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조문이 있다.

또한, 검도창같은 날붙이에는 강하지만 내부에 충격을 주는 권봉같은 격타 무기에는 상대적으로 약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호신공을 익히지 않은 무인들보단 훨씬 튼튼한 건 당연지사.

그저 북궁백의 힘과 철봉이 발휘하는 충격량이 굉장할 뿐이었다.


‘일단 봉부터 제압해야겠군.’


언상권은 말아 쥔 주먹을 폈다.

권법을 주로 익혔다고 해서 주먹만 후려칠 줄 아는 게 아니다.

권각술을 익힌 무인들은 병장기를 사용하는 무인들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육체 활용에 매진한 결과 기본적인 각법은 물론, 금나수(擒拿手)에도 일가견이 있다.


스슥.


언상권이 허를 노리며 마당을 빙빙 돌았다.

북궁백도 봉 끝을 슬쩍슬쩍 흔들면서 거리를 유지했다.

장병기와 단병기가 겨룰 때 항상 나오는 간격 다툼이다.


“타앗.”


언상권이 몸을 날렸다.

북궁백이 조금 전과 동일하게 대응하자 곧바로 봉을 움켜쥐려 했다.

그러나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북궁백은 봉을 회수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봉을 회전하며 보법을 밟는 다리를 노렸다.

언상권이 그 자리에서 멈추고 다리를 들어올려 피해내자 또다시 봉을 회전하며 수직으로 내려쳤다.

어쩔 수 없이 진격을 멈추자 봉이 밀어닥쳐 공세를 퍼붓는다.

언상권의 몸에 닿지는 않았지만, 다시 물러서게 만들었다.


“흠.”


지켜보고 있던 무인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한쪽은 간격을 좁히려 하고, 한쪽은 간격을 유지하려 하는 단순한 공방의 반복이다.

허나 그것이야말로 이 비무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북궁백은 그 핵심을 회전과 찌르기와 치기로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정말 무식한데. 화려함은 전혀 없이 실전성만 부각했어.”

“빈틈이 없어. 초식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기본기가 전부인데 말이야.”

“기초가 매우 단단하오. 기본기의 연계로 수많은 투로를 양산하고 있소.”

“품고 있는 거력이 대단한가 보군. 저 언가 놈이 몸에 맞는 걸 두려워하다니.”


무인들이 감탄을 토해냈다.

그들 모두가 언상권과 비무를 치렀고, 그 비무를 관전했다.

그의 천왕권과 시왕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가 얼마나 담력이 세고 과감한지 몸소 겪어봤기에 그걸 완전히 틀어막는 북궁백의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안 되겠다.’


조금씩 물러나가다 벽까지 몰린 언상권이 이빨을 꽉 깨물었다.

얕보거나 비무라고 안일한 마음을 먹은 건 아니다.

처음 객잔에 들어왔을 때 느껴지던 분위기도 그렇고, 붕산혈귀라는 별호가 터무니없이 과장된 소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규칙 내 최선을 다했다.

그저 상대가 오랑캐를 불허하는 장성처럼 단단했을 뿐이다.

허나 그것이 이대로 무기력하게 패배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무인의 호승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질 땐 지더라도 한 번 정도는 간담이 서늘하게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흠.’


언상권의 눈빛이 변했다.

무언가 단단히 결심한 눈빛이다.

굳이 예측할 것도 없다.

시왕공으로 한 번 버텨내면서 밀고 들어올 생각이겠지.

그렇다면,


‘그걸 이용하면 그만.’


북궁백은 언상권의 허리를 후려쳤다.

언상권은 피할 생각이 없다는 듯 앞으로 몸을 날렸다.

‘뻑’하고 타격음이 터져 나왔지만 언상권은 통증을 참으며 손을 뻗었다.

뱀처럼 쉭 휘어진 손길이 빠져나가려는 봉을 잡아채 옆구리에 단단히 붙들었다.


“오.”

“내가 저거에 당했지.”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무시했다.

그대로 밀고 나가 천왕권을 펼치려는 순간,


“헉!”


세상이 뒤집혔다.

하늘은 아래로, 땅은 위로.

이내 등이 찌르르 울리며 땅이 흔들렸다.

그 직후 잠시 몸이 경직된 틈을 타 옆구리와 팔뚝으로 고정한 봉에 엄청난 회전이 걸리면서 쑥 빠져나갔다.


부웅.


북궁백의 몸이 회전했다.

크게 호선을 그린 철봉이 그의 어깨 뒤로 넘어갔다.

언상권이 몸을 일으킬 새도 없이 회전을 마친 그가 진각을 밟았다.


쿵.


땅이 울리며 반탄력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내력이 스며든 근육 한올 한올이 짜내는 힘과 중량, 회전력과 팽창력이 더해져 수십, 수백 배나 증폭해 철봉에 실렸다.

북궁백은 신력이 담긴 철봉을 등 뒤에서 끌고 나와 아직 일어서지 못한 언상권을 내리쳤다.

수도 없이 달자들과 말을 일도양단했던 그 동작 그대로.


슈아학!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언상권은 철봉이 하늘을 끌어 내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자기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죽음이란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그때,


“그만!”


나중산의 고함이 들리자마자 풍압이 얼굴을 때렸다.

그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지고 짧은 머리가 갈대밭처럼 흔들렸다.

언상권은 질끈 감았던 눈을 슬며시 벌렸다.

철봉이 시야의 절반을 채우며 눈앞에 멈춰 있었다.

그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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