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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려은 님의 서재입니다.

라포르리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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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려은
작품등록일 :
2011.07.03 01:44
최근연재일 :
2011.07.03 01:44
연재수 :
2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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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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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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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08.06.1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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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La~port Liarta - 19장 하얀…. #01

DUMMY

제 19장 하얀.... #01



며칠 후 첫눈이 내렸다. 기괴막측한 이카로스산맥의 날씨치고는 너무나도 조근한 날씨의 첫눈이었다.

다음 날 아침, 온 마을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란은 그 멋진 광경에 매료되어 문득 외투를 걸치고 집밖으로 나왔다. 온통 하얗다. 길도 집도 하늘도…, 눈앞에 어리는 입김마저 하얗다.

-뽀득 뽀드득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오랜만의 눈이다. 작년에는 겨울날씨가 따뜻해서인지 눈은 오지 않았었다. 첫 눈이다. 이렇게 눈이 오는걸 보니 멋졌다. 운치도 있고…

그래서 그런지, 얼마 후면 샴하인이다. 겨울의 대축제. 가까운 도시나 제도에서는 성대하게 축제를 연다고 그랬다.

그러나, 하얀호수 마을사람들은 샴하인까지 축제를 열지는 않았다. 그만한 재정도 없었거니와 사실 다들 예전부터 샴하인을 별로 축하해야한다거나 그런 자각이 없었다. 마을사람들에게 샴하인축제는 제도나 부자도시들 정도나 즐기는 남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하얀호수 마을처럼 가난한 시골마을에게는 그냥 평범한 명절일 뿐이었다.

-퍽

"자! 이거나 받아라!!"

-휙휙! 퍽퍽!!

"앗! 치사해!! 돌을 넣다니!! 너나 먹어랏!!"

-휙휙! 퍽퍽!!

"크헉!!"

동네 꼬마 녀석들이 나와서 길가에서 눈싸움을 한다. 눈덩이가 아이들 사이를 -휙휙 날아다닌다. 아란은 자신도 어렸을 때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에 흐뭇한 마음으로 길을 걸으며 지켜보았다.

-탁!

어라? 그런데 아란자신에게도 눈덩이하나가 날아와 부서졌다. 어떤 녀석일까. 아란은 꼬마들을 보던걸 제쳐두고 그 불청객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이얏!"

-휘이익 퍽!

"앗!"

이런, 이번엔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다. 무지 차갑다.

"으아!"

아란은 한손으로 얼굴에 붙은 눈을 훔치며 말한다.

"에잇! 누구야!"

"헤헤…"

차가운 눈을 치우자 자신에게 눈덩이를 던진 이가 보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의외의 인물이었다.

"칸나!?"

"오랜만입니다요!! 아란!!"

그랬다. 아란에게 눈덩이를 던진 이는 리리스의 친구이자 마을에서 가장 활달한 소녀 칸나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뾰루퉁한 표정으로 아란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플로라까지 있었다.

"너, 너네들 어떻게…."

아란은 정말 의외의 상황에 의아해졌다. 아란이 그렇게 멍청한 표정을 짓자, 칸나와 플로라는 아란에게로 다가온다. 플로라가 아란 쪽을 향해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

"친구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면, 친구의 남자친구부터 찾아보는 게 정상아냐?"

"엉?"

"그말대로야아~ 아란!! 우리는 리리스를 찾고 있거드은~ 근데 보이지가 않아서…."

"도무지 찾을 수 없달 까?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자, 잠깐. 무슨 소리야. 리리스가 없어졌어?"

아란은 둘의 말하는 어투가 좀 이상하다고 여겨졌다.

"뭐, 없어졌다면 없어졌달까. 몇 일간 리리스의 모습을 본적은 오래됐지만…."

"사실 우리 리리스한테 쓴소리 좀 했었거든~ 그래서, 훌쩍~ 미안해서, 훌쩍~ 사과좀 하려는데…."

"어이, 울지는 말라고…."

"갈만한데나 짐작가는덴 없어? 너랑은 뭐 자주 나다니던데 말야. 리리스. 요상한 소문에 휘둘리는 바람에 우리가 리리스에게 좀 심하게 굴었었거든. 그래서 요즘 얼굴 보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막상 찾으러 갈려니 아무데도 안보이네, 요 계집애."

"……."

리리스.

그랬다. 아란은 그제서야 그동안 리리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깨달았다. 리리스는 그 이얀이 뿌리고간 소문을 모르는 게 아녔다. 오히려 그 소문에 아주 제대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방금 이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녀가 어떤 입장에 처해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리리스의 절친한 친구인 칸나와 플로라마저 그녀에게서 등 돌릴 정도였다면 그 본인의 고통은 그 정도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문득, -쿠궁하고 자신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건 좋지 않다.

그런데도 리리스를 너무 혼자 내버려 둔 것 같았다. 그러자 아란은 마음이 급해졌다.

"아란, 너도 모르겠어?"

"모르겠나요오~? 아란!?"

"……."

"……."

어딘지는 대충짐작은 간다. 집도 아니고, 칸나도 플로라도 찾지 못할 리리스의 피난처. 그러나 얘네들에게 말해줘도 될까 두렵다. 아니, 말해줘도 못갈 것 같은데…. 그녀들을 보는 아란의 눈이 가늘어진다. 얘네들한테는 아주아주 무서운 곳이니까 말이다.

"뭐야? 이상한 눈 하지 말고 확실히 말해? 알어 몰라?"

"휴우…."

"……."

"…잘 모르겠는데?"

"아아, 역시나…."

"아, 진짜! 남자친구도 모르는 데라면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요 계집애!!"

아란은 플로라의 외침에 마음속으로는 찔렸지만, 그래도 이렇게 된 이상 대충 얼버무려놓고, 리리스에게 직접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리리스를 혼자 놔두면 안 될 것 같다. 그동안 친구들에게서조차 외면당한 리리스다. 이 이상 상처받은 그녀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지금 얼마나 괴로울까.

아란은 그렇게 둘에게 대충 둘러대고는 몸을 돌렸다.

"그럼 나중에, 만나게 되면 너네들이야기 해놓을께. 그때 말해봐."

"어, 응? 아, 알았어. 아란."

"헤에~ 그냥 가는 거야? 심심한데 같이 좀 놀지."

"아, 급한 일이 생각났거든."

"그래? 흐음~ 아쉽네. 그럼 담에봐용~."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칸나와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드는 플로라를 뒤로한 채, 아란은 리리스의 집을 향해 달렸다. 마침 리리스의 집이 아란의 집 쪽과 비슷한 방향이라 플로라와 칸나의 반대쪽으로 뛰어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란은 리리스의 집에 도착했으나, 리리스는 집에 있지 않았다. 리리노부인의 말에 의하면 아침 일찍 나갔단다. 아란은 그 말을 듣고, 노파의 집으로 갈 생각을 했다. 만약 리리스가 집에도 마을에도 없다면, 갈 곳은 그 곳 뿐이다.

그러나, 그때였다.

-꼬르륵

생각해보니 아침조차 먹지 않은 채 나왔다. 엄마가 걱정하시겠다. 아란은 그렇게 생각하자, 당장에 마녀의 집으로 달려가기가 좀 그래졌다. 일단 집에 들렀다가 다시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침밥을 건너뛰고 마녀의 집으로 가는 것도 나쁘진 않았으나, 만약에 지금 갔다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작게라도 마녀의 귀에 들어간다면,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왔냐는 둥, 이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게 뭐냐면 니가 처먹는 수프라는 둥, 온갖 막말과 잔소리를 쏟아낼께 뻔했다.

그건 좀 무서웠다. 그래서 차라리 안전하게 집에 들렀다가 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빨리 먹고 나오자.'

그렇게 아란은 마음을 정하곤 달려 한달음에 집에 도착했다.

"엄마!"

"어, 아란. 한발 늦었구나."

"네?"

한발 늦다니? 엄마가 알기 어려운 소리를 하셨다.

"방금 리리스가 왔다갔는데 못 만났니?"

"에엣!?"

아란은 깜짝 놀란다. 리리스가 왔다 갔다고?

"역시, 엇갈렸나 보구나. 오늘 리리스가 너한테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부르는 것 같던데…."

"저, 정말요?"

리리스가 불렀다? 아란은 조금 미묘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곧 고개를 붕붕 흔들어 잡생각을 지운다. 오히려 고마웠다. 이쪽에서 먼저 찾아가는 게 좀 꺼려졌는데, 직접 불러주기까지 하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 화가 좀 풀린 것일까. 리리스.

"응, 기다리다 바로 방금 나갔단다. 혹시라도, 네가 오면 마을언덕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그쪽으로 오라던데?"

"공터요?"

"그래, 너 이번 루나사축제때 예비성년식 했던 곳 있잖니. 거기서 기다리겠다고 하더구나."

"그래요?"

"리리스가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달려가면 공터에 도착하기 전에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아란은 그 말을 듣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 알겠어요. 엄마, 그, 금방 다녀올게요. 그럼."

"아, 아란. 그럼 추울 텐데 일찍 들어와라. 괜찮다면 리리스도 함께 데려오든가."

"네, 알았어요."

문을 박차는 기세로 달려 나가는 아란. 아란은 지금 마음이 급해졌다. 달렸다. 한시라도 빨리 리리스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에게 모든 걸 사과하고 다시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용서를 빌면 그녀도 용서해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아란은 새하얀 눈 위를 밟으며 달렸다.

-하아 하아

숨이 거칠어진다. 주위의 풍경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입가에서 나온 하얀 숨이 눈에 잡힐 듯이 하얗게 비쳤다. 두꺼운 외투자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아란은 조금은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힘껏 달렸다. 지금만큼은 맨 처음 리리스를 너무나도 좋아하던 그때의 자신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이윽고 아란은 마을 샛길을 따라 올라가 예전에도 한번 온 적이 있는, 마을 공터에 도착했다. 도착한 순간, 아란은 눈이 부셔 잠시 눈가를 한손으로 가렸다.

루나사축제때도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놀던 공터였다. 그 드넓은 공터에는 어제 내린 첫눈이 덮여 새하얗게 바뀌어 있었다.

온 천지가 새하얘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새하얀 은의 벌판 가운데에 그녀가 있었다.

에메랄드빛 단발머리의 소녀, 리리스. 아란자신의 여자 친구다.

"리리스…."

-뽀득 뽀드득

아란은 소녀의 이름을 되뇌이며, 소녀에게 다가간다.

리리스는 새하얗게 구름이 낀 하늘을 보고 있었다. 먹구름이 아닌 새하얀 구름. 덕분에 날씨마저 새하얳다. 그러다 소녀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아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 아란."

리리스는 조용히 웃으면서 그렇게 아란의 이름을 불렀다. 리리스의 표정에서 아란은 내심 안도했다. 소녀가 화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좋게좋게 화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리리스, 오랜만이네."

"응, 그러네."

조용조용 웃으면서 아란을 맞는 리리스. 아란은 그런 리리스의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아름답다고 여겼다. 평소의 연녹색 단발은 하얀 눈을 배경으로 보석처럼 빛났고, 인형 같은 이목구비와 투명한 피부가 소녀의 매력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오늘은 평소의 베이지색 외투가 아닌 따뜻한 느낌의 아이보리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는데, 추웠는지 회색 벙어리장갑을 끼고 있어 상당히 귀여워 보였다. 그리고 신발은 왠지 두툼한 까만 털 장화였다. 리리스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예뻐 보인다.

그러자, 아란은 괜스레 쑥스러워졌다.

"아, 무슨 말부터 해야 하나."

"응?"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 저…."

"흐음."

"그게…윽."

"음?"

그러다 말문이 막혀버린다. 고개를 갸웃하는 리리스. 입맛을 -쩝 하고 다시는 아란. 결국, 입을 열었다.

"…그게, 미안해. 리리스. 정말, 미안해."

소녀에게 고개 숙여 사죄한다.

"…응? 뭐가?"

"에?"

"그러니까,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근데, 소녀의 반응이 시원찮았다. 추궁하는 표정이아니라 정말로 뭘 사과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에… 그러니까. 내말은, 그동안 리리스한테 너무 심하게 굴기도 했고, 요전에는 밀어버려서…, 그래서…."

뒷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조심 말을 꺼내는 아란에게 리리스는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턱을 짚고 있던 손가락을 딱 튕긴다.

"아~ 그거?"

"응…."

"풋, 이제 그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나 이제 다 훌훌 털어버렸으니까."

"아, 정말?"

샐쭉 미소 지으며 말하는 리리스에게 아란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정말로 다행이다. 리리스가 신경 쓰지 않는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가.

"응, 뭐 이미 지난일인걸. 내가 잘못한 것도 있고하니. 아란이 굳이 사과할 필요까진 없어."

"그, 그래?"

"응."

아란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 이제 용서받았다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이제 다시 리리스와 예전 관계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가? 다시 화해하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소년은 그런 생각에 마음속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그, 그럼 리리스. 용서해 주는 거야?"

"용서하고 말고가 어딨어? 난 다 잊었는걸."

리리스의 그 말에 아란은 괜스레 쌓였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용서받았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 말을 하는 리리스가 너무도 천사처럼 보였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아란은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분이 좋아진 아란은 리리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엄마가 그러시던데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찾았다며?"

"응, 아란."

"뭔데?"

아란은 리리스의 그 말이 내심 기대되기 시작했다. 분명 화해하고 다시시작하자는 말일 것이리라. 원래는 자신이 그렇게 먼저 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란은 타이밍을 놓친 게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먼저 그런 말을 했으면, 좀 더 멋있게 보였을 텐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께 아란."

"응. 뭔데?

리리스는 한번 입술을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아란은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리리스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 떠나…."

"에? 어디로…?"

"조금 멀리 떠나…."

리리스의 표정을 보아하니 꽤나 먼 곳으로 떠나는 모양이었다. 왠지 모르게 아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응? 그럼 언제 돌아오는데?"

"글쎄, 오래 걸릴 것 같아.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르구…."

"에, 그럼 우리사이는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럼, 나는…?"

아란은 조금 아리송한 듯 고개를 갸웃한다. 리리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으, 응?"

"그러니까… 우리……"

"……??"

"…헤어져…."

"……."

"……."

"…응?"

아란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뭐?, 뭐라구?

"우리, 헤어지자구…."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아란은 리리스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별을 통고하는 연녹색소녀를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그런 아란에게 리리스는 조용조용 말을 이어간다.

"며칠 전부터 생각 많이 했어. 아란. 물론, 아란과 함께 있었던 시간들은 즐거웠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란 걸 이제서야 깨달았어."

"리리스…."

"아란, 넌 분명 좋은 애야. 상냥하고, 배려심 깊고, 하지만 나, 다시생각해보면 널 정말로 좋아한 적은 없는 거 같아. 그냥, 집착…. 집착이었던 거 같아. 꼬마 애들이 자기 것에 대해 애착을 갖는 그런 거 있지."

"……."

"미안해, 아란. 난 널 좋아하지 않아."

-쿵

'난 널 좋아하지 않아.'

'난 널 좋아하지 않아.'

'난 널….'

아란은 그 말에 심한충격을 받았다. 소녀가 지금 질 나쁜 농담을 하는 거라고 여겨졌다. 뭐야. 리리스. 정말이야? 머리가 몽롱해졌다. 거짓말, 전부 거짓말 같았다.

"…리리스."

"응?"

"이거 전부 거짓말이지? 그렇지?"

"아란…."

아란의 목소리가 고조되기 시작한다.

"거짓말 맞지? 응? 이거 나한테 예전의 일 보복할려구 그러는 거지?"

"아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해. 응? 다 내가 잘못했어."

아란은 피를 토하듯이 그렇게 말한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말아줘.

"그, 그러니까…."

"아란!!"

그러나, 리리스는 차갑게 일갈하며 아란의 말을 끊었다.

"……!!"

아란의 그 절박한 표정 앞으로 리리스는 슬픈 표정을 하고선 말한다.

"아란, 그런 문제가 아냐. 아무리 이런다고 해도 이젠, 예전 관계로 돌아갈 수 없어."

"왜, 어째서…."

"나, 내일아침에 제도로 떠나."

-쿠궁!

"뭐…?"

아란은 다시 한 번 커다란 충격이 머리를 강타하는 것을 느꼈다. 뭐? 수도로 간다고?

"얼마 전에 연락이 왔어. 올리오르할머니의 추천으로 제도(제국수도)에 있는 세인트 마리안느 학원 마법학부에 들어가게 됐어. 나, 거기서 마법사가 되는 공부를 할 꺼야. 그러니 이제, 아란이 날 볼일은 없을 꺼 같아."

리리스는 그렇게 조용조용한 어투로 아란에게 말한다. 아란은 그 큰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면, 이젠 영영 리리스를 볼 수 없는 건가. 말도 안 된다. 이럴 수가 있나.

완벽한 이별통고…. 리리스는 지금 이곳, 올해 초, 소년과 사귀기 시작했던 바로 이곳에서, 소년에게 이별을 통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일아침, 아빠와 함께 마차로 출발할 꺼야. 아란도 나와서 환송해줬으면 해."

"……."

리리스는 멍하니 충격에 빠진 아란에게 말한다.

"그동안 고마웠어. 아란. 사실, 너와 루치야 사이에서 많이 힘들었어."

들리지 않는다.

"근데, 생각해보면 나정도 되는 여자가 한 남자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웃기잖아? 난 차라리 너랑 루치야가 잘되었으면 해."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 고민 많이 했어. 너와 학원 사이에서…, 그런데 난 마법사가 꼭 되고 싶었어. 그렇게 생각하니깐. 아란, 네가 더 이상 소중하게 생각되지 않은거있지."

들리지 않는다.

"그때 깨달았어. 고작 남자 때문에 내 인생을 좀먹고 있는 건가하고, 난 역시 널 좋아하지 않나봐."

'난 널 좋아하지 않아….'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리리스가 뭐라고 하는지 아란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듣고 있을 수도 없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란은 울컥해진 감정을 감추고는 리리스에게 작게 말하고 돌아섰다.

"미안해."

"응?"

"…미안해. 리리스 정말로…."

그리고는 뛰쳐나간다.

"아, 아란…."

리리스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아란은 달려 나갔다. 속에서부터 북받쳐 오르는 감정.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모조리 달리는데 쏟아 부었다. 뒤에서 리리스가 부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더 이상 리리스와 같이 있다간 돌아버릴 것 같았다.

-뚝 뚝

갑자기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어느새 인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갑게 냉각된 겨울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눈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은 차가운 공기에 부딪혀 그 열기를 잃고 식어버렸다.

아팠다. 너무도 아팠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리리스를 생각할 때마다 심장이 사정없이 난도질당하는 것처럼 아팠다.

-아 아….

미안했다. 리리스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리리스를 믿지 못한 자신이 너무도 바보 같았다. 자신의 탓이다. 모든 게 자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믿지 못했다. 멍청하게, 자기 멋대로 그녀의 행동을 생각해버리고선 그 입을 막아버렸다. 생각해보니 리리스에게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자신이었다.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한 건지 이제서야 자각했다.

눈물이 흘렀다. 이별의 고통, 그것은 죽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아란은 그렇게,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기위해 정신없이 달렸다.


다음날 아침, 아란은 리리스가 마을을 떠나는 데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저 자기 방에 문을 잠근 채 틀어박혀서 하루 종일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아란이 걱정 되었지만, 아란은 아무하고도 만나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았다. 아란은 그렇게 거의 일주일간을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 소문은 온 동네에 다 퍼졌다. 리리스가 아란과 헤어졌으며, 그 충격으로 아란은 집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소문은 한참 궁술수련에 정신없는 루치야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뭐? 아란과 리리스가 헤어졌대?"

"응, 지금 마을에 소문이 장난 아냐. 오빠들은 다들 아란 오빠보구 고소하다 그러구, 언니들은 아란오빠보고 병신이래."

루치야는 그 소식에 적잖이 놀랐다. 정말 헤어졌다구? 루치야는 아란이 너무 걱정되었다. 자기도 느껴봐서 안다. 실연의 고통이란, 정말 말 할 수 없는 아픔을 동반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소문까지 돌고 있으니, 아란의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소식에 오히려 설레고 있는 자신에게 루치야는 다시 한 번 놀랬다. 루치야는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조만간 루치야는 아란의 집에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해 겨울은 한 소년의 아픈 첫사랑의 기억과 함께 지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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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0

  • 작성자
    Lv.91 키리샤
    작성일
    08.06.16 23:07
    No. 1

    감사히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적학진인
    작성일
    08.06.17 00:54
    No. 2

    아란은 자업자득이지만,
    리리스도 만만치 않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5 넋서리
    작성일
    08.06.17 03:04
    No. 3

    리리스는 탁월한 선택인듯한데.. 사실 마을에서 적당한 남자 만나 알콩달콩 사는게 행복할지 몰라도..그럼 판타지가 너무 잔잔해 지니 넘어가고..찌질한 남자친구 뻥~차버리고 제 갈길 가는게 현명하죠. 그나저나 우리의 찌질한 주인공은 어쩌려나.. 심약하다고 용기가 없는건 아닌데 저 나이에 아직 저러고 있으니.. 요즘에들 같으면 잘 꼬셔서 양다리 걸치고, 자기몫으로 다가온 인연들에서는 본전까지 쫙~뽑아서 자기 능력으로 만들텐데.. 상당히 안습이라는..

    어쨌든 잘 봤습니다. 건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08.06.17 18:27
    No. 4

    잘 읽고 갑니다. 솔직히 좌정관천님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요즘 추세(?)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5 넋서리
    작성일
    08.06.18 01:25
    No. 5

    헉;; 본인 이야기 아닙니다. 요즘 애들요. 아이들..저 늙었어요 ㅜ.ㅜ 제가 저맘땐 운동밖에 몰랐어요. 믿어주세요 ㅜ.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월하려은
    작성일
    08.06.23 22:24
    No. 6

    키리샤/적학진인/좌정관천/Karist 님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08.06.23 22:59
    No. 7

    지금 좌정관천님 댓글 봤습니다.
    제 말이 오해를 불렀군요 -_-;; '좌청관님 말씀처럼'이었는데, 죄송합니다 좌청관천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2 極限光
    작성일
    09.01.15 12:22
    No. 8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이천(異天)
    작성일
    09.08.02 22:51
    No. 9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Fireacon
    작성일
    09.09.13 11:47
    No. 10

    아란쪽이 좀더 잘못했긴 한데 결국 오십보 백보 ㅇㅅㅇ..
    애초에 리리스가 이얀 만났던 그날 사실대로만 이야기 했으면
    저럴리도 없었을듯.. 결국 서로 믿지 못하다가 쨍그랑!
    리리스는 굉장히 현실적인듯. 그런데 잘 보면 모든 사건의 뒤엔 올리오르
    마녀님이 계시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월하려은
    작성일
    09.09.15 17:52
    No. 11

    Fireacon 님 ^^ 하하 그렇게 되는 거군요. 마녀 올리오르의 판정승!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오유성
    작성일
    09.11.20 03:08
    No. 12

    아아... 첫 글부터 여기까지 정주행했습니다... 시간 어찌할까요 ㅠㅠ 내일 일찍 나가야 하는데 ㅠㅠ 지각하면 월하려은님 탓입니다 ㅠㅠ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월하려은
    작성일
    09.11.21 09:22
    No. 13

    오유성 님 ^^ 하하 감사합니다. 지각 하시지 않길 바랄께요;; 아. 너무 늦었으려나;; 그럼 앞으로도 제 글 많이 사랑해주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루안
    작성일
    09.12.05 14:52
    No. 14

    개인적으론 루치야 리리스 둘다 나 그 이상의 인물하고 맻어졌음 하는데 추세를 봐서 보는 걸 그만 둬야 할지 판단해야겠네요 작가님 건필 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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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운영雲影
    작성일
    09.12.08 17:11
    No. 15

    아아, 혈압아. 아니 현실에서 저게 가능합니까 대체? 아니 현실에서 친구들이랑 싸우다보면 서로 말이 얽혀서 나오는데 이게 무슨 100분 토론하는것도 아니고, 사회자가 " 네 그쪽말하세요" 이렇게 순서정해주는것도 아닌데. 말을 막는게 가능합니까 그냥 차라리 다른 방향으로 오해를 하는걸로 진행하시지 말을 막는다니....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09.12.09 18:50
    No. 16

    리리스 빠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월하려은
    작성일
    09.12.13 13:32
    No. 17

    루안 님 ^^ 네 감사합니다.

    운영雲影 님 음 그말도 일리가 있네요^^ 참고하겠습니다.

    나무방패 님 리리스는 갔습니다. 아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1 키온
    작성일
    10.09.09 23:51
    No. 18

    건필하시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Hyeok
    작성일
    10.10.12 22:02
    No. 19

    지금은 헤어졌어도 인연이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예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SlamDrum
    작성일
    11.04.28 01:32
    No. 20

    아아 속이 다 시원하다!! 자알~ 깨졌네요.
    전 루치아를 응원하렵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리리스가 어떻게 변해 있을 지기대됩니다. 그리고 이얀도 좀 업그레이드 됐으면 좋겠어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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