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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려은 님의 서재입니다.

라포르리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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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려은
작품등록일 :
2011.07.03 01:44
최근연재일 :
2011.07.03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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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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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08.07.1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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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La~port Liarta - 21장 제도로.... #02

DUMMY

제 21장 제도로.... #02


아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 일을 아빠에게 시킨 게 이자크 노인이라고? 어째서, 그 양반이 어째서? 아란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성배를 수호하는 그런 대단한 일을 헬카이트 공작은 어째서, 우리 집에, 아무것도 없는 시골가정에 맡겼단 말인가. 아란은 그 사실에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너희 가족에 대해서 내가 알고있는 한 가지는…. 너희 부모가 제도에 있을 때 헬카이트 공작 밑에서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었다는 것과 헬카이트 공작이 쫓겨날 때, 같이 수도를 떠났다는 거란다."

"……."

그럼 뭐야. 우리 가족도 제도에 살던 헬카이트 공작파 귀족 중 하나라는 소린가. 아란은 왠지 엄청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와서 그게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이제는 자기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운이 없었지. 설마, 성배가 이렇게 일찍 깨어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지. 부끄럽지만, 제도에는 내 쌍둥이 동생인 마르가트라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도 나처럼 실력 있는 마법사란다. 그 아이가 십 년 전 성배를 봉인했지. 최소한 못해도 백 년은 갈 줄 알았던 봉인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성배를 다른 두 개의 신기처럼 전설로 조작하기엔 넉넉한 시간이지. 그럴 예정이었단다. 하지만, 그 아이의 실수인지 봉인이 너무 일찍 풀렸던 거야."

"후우…, 결국, 어쩔 수 없었던 거네요."

아란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쩔 수 없었다. 현자 급의 마도사가 봉인한 데다, 그런 계획이었다면, 게다가 그 계획을 짠 이가 헬카이트 공작이었다면, 실패하는 게 더 이상해 보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아빠가 위험을 감수하고도 그 일을 받아들인 이유가 이해가 간다. 마녀가 침울해하는 아란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었지…."

"그럼, 결국 빼앗긴 거네요. 그 성배란 거…. 아빠와 엄마가 그걸 지키려고 죽기까지 했는데, 지키지 못했잖아요."

아란은 마지막에 그 복면인의 대장이 들고 사라지던 갈색나무상자를 떠올리고는 축 처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 마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후, 그건 아니란다."

그러면서, 천천히 서랍장 쪽으로 가서 맨 위에 있는 서랍장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거기서 투박하게 생긴 회색상자를 꺼내 들었다.

"설마…."

아란은 놀란 눈초리로 그 상자를 주시했다. 마녀는 씨익 웃으며, 그 상자의 뚜껑을 열어 보이며 말했다.

"보거라! 너의 부모가 목숨을 바쳐 지킨, 제국의 신기 중 하나인 '성배' 란다."

마녀가 열어 보인 상자 안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황금색 펜던트가 번쩍거리며 들어 있었다.

'저것이… 성배.'

생각보다 수수한 느낌의 펜던트, 중앙에 구멍이 있는 특이한 문양이 인상적인 펜던트였지만, 아란은 그 황금색 펜던트를 보고 알듯 모를 듯 한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아란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그걸 쳐다보고 있었다.


며칠 뒤 아침, 아란은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왼팔에는 새로 감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어제오후에 루치야가 와서 갈아주고 간 것이다.

-통 통 통..

마녀는 주방에서 아침을 만드는 듯, 도마 위에서 야채라도 써는 듯 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꽤나 시끄러운 소리도 지금의 아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아란은 지금, 조금 심란한 상태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란은 그렇게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아란은 침대에 앉아 노파가 건네준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노파가 직접 봉인을 해둬서인지, 더 이상 푸른빛은 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평범한 펜던트인데 말이다. 노파와 얼마 전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전날 밤, 너의 부모가 날 찾아왔더구나. 성배를 가져와서는 그것의 봉인이 풀렸으니, 분명히 노리는 자들이 눈치를 채고선 찾아올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안전하게 다시 숨기려고, 방법을 찾았지.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바꿔치기'였단다.'

'바꿔치기….'

아란은 노파의 말에 멍하니 중얼거린다.

'그래, 그 갈색상자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로 했지. 그 상자에는 이미 성배의 성력에 흠뻑 젖어 있어. 오베론의 눈이 반응할 수 밖에 없지. 나는 그 상자에 있는 성배를 꺼내, 일단 내 힘으로 깨어난 성력을 봉인한 뒤, 원래 상자에 가짜를 넣은 다음 그 상자를 열지 못하게 마법으로 봉인해버렸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오베론의 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상자 자체'가 성배인 줄 알고 있을게야.'

'…….'

'원래 계획은 그랬는데 말이지. 녀석들이 바로 다음날 들이닥칠 줄은 몰랐었지. 일부러 미오와 유카인까지 보내 너희 가족을 보호하려 했었는데….'

마녀도, 그 점은 유감인 듯, 말을 흐렸다. 아란도 덩달아 침울해진다. 그러자 마녀는 괜스레 말을 돌린다.

'여튼, 일단 내가 이걸 힘으로 봉인해둔 이상, 조만간에 이것의 정체를 들킬 일은 없을 게야.'

'그럼…, 된 거군요. 마도사 올리오르 할머니가 성배를 가지고 있으면, 누구보다 안전할 테니….'

노파의 말에 아란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마녀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았다.

'아니지, 너는 이 늙은이를 너무 과대평가 하고 있구나. 아무리 대단한 마도사라 한들, 인간일 뿐이다.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지. 수많은 성배를 노리고 달려드는 승냥이 떼를 나 혼자 다 감당하기에는 벅차거든.'

'그, 그럼….'

'그래서, 나는 이걸 너에게 맡기고 싶구나.'

'…….'

'…….'

'…엣!?…네에!?'

아란은 성배를 맡으라는 노파의 말에 깜짝 놀랐다.

'네가, 이걸 헬카이트 공작에게 전해주려무나. 그럼, 그가 알아서 할 게야.'

'그, 그게, 하, 할머니가 직접 수도로 가시면 되잖아요?'

당황하며 말하는 아란에게 노파는 호통친다.

'설마, 이 다 늙어빠진 할망구가 그 먼 길을 가야 속이 시원하겠냐!!'

'그, 그래도 이렇게 위험한걸…. 저, 전 싫어요. 못하겠어요.'

아란은 노파의 말에 겁을 집어먹은 듯 도리질친다.

'흥, 강요는 하지 않는다. 생각해보고 정 못하겠으면, 이걸 나한테 돌려주면 돼.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하지만, 그 정도가 네 녀석의 그릇이라는 거겠지. 쯧쯧쯧.'

'…….'

마녀는 혀를 -끌끌끌 차며, 그렇게 말하고는 펜던트를 꺼내어 아란을 향해 -휙 던졌다. 아란은 엉겁결에 그 펜던트를 받아들었다.


아란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팬던트를 만지작거리며 바라보았다. 부모님이 남기신 유산, 부모님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려고 하신 그 '물건'. 정말 이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인지 쳐다본다.

"후우~."

모르겠다. 자기가 보기에는 약간 특이한 펜던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생각하는걸 잠시 쉬고는 침대 옆에 놓여 있는 테이블 위를 바라본다.

그곳에는, 자신의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이자크 노인이 준 하얀 스틱, 책, 그리고 단단히 밀봉된 검은 상자였다. 아란의 집은 모조리 불에 타 쓰러졌었는데, 그 미오와 유카인이라는 여자가 아란을 구해오면서, 거기 있던 물품들을 몇 가지 가지고 나왔다고 했다.

아빠가 가지고 나오려 했던 가방이 있었으나, 가방과 나머지는 불에 타 없어졌었는데, 저 검은 상자만이 덩그러니 불 속에서 멀쩡하게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 검은 상자를 쳐다보던 아란은 매우 놀랐다. 그 상자는 자신의 것이긴 했으나, 자기도 잊고 있던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건 바로, 이자크 노인이 헤어지며 아란에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 열어보라던 바로 그 상자였다.

"이, 이건…."

재질이 나무인데도, 그 불구덩이 속에서 용케도 타지 않았다. 겉부분에 약간 눌어붙은 자국이 있었지만, 건재해보였다. 그런데 눌어붙은 덕분인지 상자는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다. 상자 밖의 마감재가 녹아 상자의 뚜껑과 몸체를 -딱 하고 붙여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란은 문득 이걸 이자크 노인이 주면서 하던 말이 기억났다.

'그건 널 위해 특별히 내가 준비한 거란다. 내 도움이 가장 절실히 필요할 때 열어보거라. 재미로 열어보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그때는 오히려 너에게 독이 될 물건이다. 명심하거라. 절대로, 절대로, 내 도움이 아니면 답이 없을 때 열어야만 한다. 내 말 꼭 명심하여야 한다.'

아란은 상황이 지금보다 최악일 순 없을 거라고 여겼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아란 자신은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집은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가진 것은 오로지 검 한 자루와 이자크 노인이 준 책, 그리고, 눈앞에 있는 검은 상자하나다. 지금, 아란은 이자크 노인의 조언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아란은 마음을 굳게 먹고 검은 상자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딸깍!

눌어붙은 상자의 틈새를 칼로 떼어내자, 드디어 검은 상자의 뚜껑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란은 왠지 두근두근 떨렸다. 노인은 과연 무엇을 넣어놓았기에, 아란에게 그렇게까지나 경고했던 것일까? 아란은 궁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어라?"

그런데 생각보다 나무상자 안에 있는 것은 단출했다. 오래전에 써놓은 걸로 보이는 편지와, 파란색 목함이 들어 있었다. 파란색 목함은 은은하게 윤이나는게 꽤나 귀중한 것을 넣어 놓은 것으로 보였다. 노잣돈이라도 들어 있는 걸까. 아란은 그것을 열어보기 전에 편지부터 집어들었다. 아란이 생각하기에는 여기에 진짜로 중요한 내용이 적혀 있을 것만 같았다. 아란은 편지봉투를 열고 노릇노릇하게 변한 편지를 펼쳐 읽었다.


~친애하는 아란에게

네가 만약 이 편지를 읽게 된다면, 분명 장난삼아 열어보지 않은 이상 심각한 위험 속에 처해 있다는 소리겠구나. 아마도 부모님의 생명이 위험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돌아가신 상황일 테지….

심지어, 네가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짐작하고 있겠지만, 너희 가족을 위험에 빠뜨린 것은 과거 내가 한 일이 틀어졌기 때문이란다. 너의 가족이 위험에 빠질 일은 바로 그 성배라고 불리는 웃기는 펜던트 때문이겠지? 그게 바로 나의 실수이자, 성배를 숨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란다. 지금 수도의 상태는 너무도 불안정하구나, 황제는 이미 노쇠하여 이 노인네가 없으면 귀족파들을 찍어 누를 수도 없는 상태란다. 황제의 기사단이라 불리는 임페리얼 릴리움나이츠(황립백합기사단)의 일부마저 귀족파의 성향을 띄고 있으니, 말 다했지 말이다.

그러나 황제파의 실질적인 힘이라 할 수 있는 로젠크로이츠 공작가문이 중립이라는 사실은 다행이지. 로젠크로이츠 나이트템플(장미십자기사단)의 힘은 제국 최강의 힘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여튼, 내가 제도로 복귀함으로써, 귀족파들의 입지는 위태롭게 됐단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라도 이쪽의 파벌들의 입지를 견제하게 되겠지.

그중에서도 가장 쉽고 효과적인 수단이 십 몇 년 전에 사라진 성배를 찾는 것이란다. 성배는 그 자체가 가진 힘은 둘째 치고 라도 제국의 정통성을 잇는 것. 그들로서는 손에만 넣으면 제국의 정통성을 이을 수 있으므로, 새 황제를 세우는 것도 가능해지지. 그 때문에 나는 십 몇 년 전, 성배를 믿을만한 이의 손에 맡긴 다음,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제도 밖으로 몰래 도망치도록 했단다. 그게, 너희 부모님이지.

아란은 여기까지 읽고는 깜짝 놀랐다. 이자크 노인은 2년 전부터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손써오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오래전 아빠와 공작이 영주성에서 하던 대화를 엿들었을 때, 공작은 아빠에게 수차례 위험을 경고했었다. 그때부터 공작은 어렴풋이 일이 이렇게 될 수도 있을 거라 예상했던 것이다. 아란은 헬카이트공작의 놀라운 혜안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뒤편을 읽어본다.

아란, 만약 성배를 빼앗겼다면, 할 수 없다. 마도사 올리오르에게 의지하여라, 그리고 그녀를 통해 내게 연락을 다오. 그러나 성배를 빼앗기지 않았다면, 내가 한 가지 너에게 숙제를 내리마.

네가 직접 그걸 가지고 수도로 오거라, 네가 만일 그걸 무사히 제도까지 가지고 오게 된다면, 내 너를 친히 나의 기사로 임명해 주마. 물론, 제도로 온 뒤 3년간의 기사학교를 수료해야겠지만 말이다. 네가 만약, 제도로 오려 한다면, 내 너를 위해 선물을 하나 준비해 두었단다.

파란 상자안에, 너를 나의 수련기사로 임명한다는 증거가 들어있다. 이걸 보이면, 너는 나의 기사로써, 제도로 올 때 필요한 편의와 일반 제국기사가 가지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단다. 게다가, 가까운 도시의 시청에서 내가 너의 이름으로 맡겨둔 얼마간의 돈을 찾아 쓸 수 있게 해놓았단다. 모쪼록, 아껴쓰길 바란다. 그리고 만약, 제도에 도착하게 되면, 헬카이트저택 입구에서 이걸 보이길 바란다. 그럼 두말하지 않고 순순히 안으로 들여보내 줄게야. 네가 보고싶어 질 것 같구나. 아란. 나는 널 제도에서 보길 원한단다.

이른 초봄 벤카르트 영주성에서…

아이작 폰 헬카이트~

아란은 편지를 다 읽자마자, 떨리는 손으로 파란색상자를 열었다. 손바닥만한 목함은 딸깍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란은 그 안의 내용물을 보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잖아.'

진짜였다. 편지의 내용은 진짜였다. 파란색 목함안에는 손바닥만 한 지갑같이 생긴, 접이식 기사수첩이 들어 있었다. 기사증명서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검은색 가죽바탕에 맨 앞에는 은으로 된 하얀 사자 머리 문양이 붙어있었다. 철혈의 공작을 상징하는 하얀 사자문양. 그것은 분명 헬카이트공작가문의 문양이었다.

검은 가죽으로 된 안쪽을 펼쳐본다. 안에는 가죽 판 위에 붙은 금색 판에 음각으로 '나 제국의 공작, 아이작 폰 헬카이트는 아란 칼을 나의 명예로운 수련기사로 명한다.'라고 씌어 있었다. 수련기사이긴 하지만, 기사는 기사다. 이것만 있으면 아란도 일반기사들을 넘어선 '수사권'이라는 황립기사들만의 특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가짐으로써 아란은 기사 작위를 딴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자크 노인이 어째서, 도움이 필요하기 전에는 절대로 열지 말라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아란이 예전에 생각 없이 이 상자를 열었다면, 아란의 입장에서 기사 작위는 독이 됐으면 되었지, 득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리라.

기사라…. 아란은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한다. 오랜 꿈. 자신의 숙원이었던 꿈이다. 그것 때문에 방어검술을 익혔고, 저주받은 체질 베이에트를 뛰어넘으려 엄청난 노력을 했었다. 아직 자신은 꿈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리는 중이었다. 최근의 잇따른 충격적인 일로 그 꿈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조차 많이 갖지 못했지만, 아직 아란의 기사에 대한 꿈은 접힌 게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기회를 손에 넣었다.

'성배를 들고 제도로 가면, 나는 기사가 될 수 있다.'

그것도 철혈의 공작의 직속 기사다. 헬카이트공작은 기사단을 가지지 않는 공작으로 유명했다. 그는, 기사단 없이 제국 중앙군과 정치판에서 세운 공만으로 공작의 자리까지 오른 위인이었다. 기사단을 가질 열망도 이유도 없는 그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그의 전통을 깬 첫 번째 인물이 자신이다. 그러나 아란은 망설였다. 마음속에서는 아직까지도 갈피를 못 잡은 상태다. 그렇게, 소년은 자신의 양손에 있는 펜던트와 기사수첩을 번갈아 쓰다듬으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쾅! 철컥!

"하아! 올리오르 할머니 안녕하세요~!?"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숨을 헐떡이는 루치야가 들어왔다.

"응, 왔구나. 루치야. 어서 테이블에 앉거라. 이 녀석도 나도 너 기다리느라, 아직 아침을 입에 대지도 않았구나."

"아, 죄송해요."

마녀의 권유에 루치야는 미안해하며, 노파가 권유하는 자리에 앉는다. 마녀의 말대로 뜨거운 수프와 빵 그리고 샐러드와 베이컨, 과일들이 테이블 위에서 먹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란, 좋은 아침!"

"응, 루치야…."

루치야가 밝게 웃으며 아란에게 인사했지만, 아란은 뭔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듯, 건성으로 대답한다. 루치야는 그런 아란의 모습에, 아란이 아직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떨쳐내지 못한 것 같아, 웃음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괜스레 말을 돌렸다.

"바, 밥 먹자. 밥 먹어요. 할머니."

"그래."

셋은 드디어 숟가락과 포크를 들고 식사하기 시작했다. 문득, 마녀가 입을 열었다.

"루치야."

"네, 할머니."

"그런데 요즘 리나스는 어떻게 된 거냐? 마법을 배운다는 녀석이 어제오늘 통 얼굴도 보이지를 않어!"

"그, 글쎄요."

루치야는 빵을 수프에 찍어 먹다 당황해하며 말한다. 마녀는 흉측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으름장을 놓았다.

"리리스랑 다르게 이 녀석! 걸핏하면 농땡이 부리는 게 천하제일이구나! 흥! 리나스 이 녀석은 뜨거운 맛을 못 봐서 그래, 소질이 좀 있어서 가르쳐봤더니, 허구한 날 농땡이나 피우고!"

"그, 그래도 걔가 마음만 잡으면…."

"그래선 안 돼!! 난 재능은 있는데 게으름피우는 리나스보다는, 오히려 별로 소질은 없지만 노력 하나는 발군인 리리스를 나는 더 높이 사겠다!!"

"아…, 그렇군요."

루치야는 리나스 이제 큰일 났구나하고 생각하며, 얌전히 식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동생이 좀 걱정되기는 한다.

"그나저나, 루치야. 이젠 밤에는 함부로 나다니지 말거라."

"네?"

"흥, 요즘에 바깥소식이 흉흉한 거 모르느냐? 어떤 놈들의 소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밤에 여기저기서 망령들이 일어나 사람들을 습격한다 하더구나."

"마, 망령요?"

"그래, 마물들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시체가 일어난다고들 하니, 조심하거라. 그런 것들은 어지간해선 죽지도 않으니, 골치만 아프지. 아랫마을에서도 몇 명 희생자가 나왔다고 하더구나."

"저, 정말요!?"

"그렇다니깐, 이렇게 뒤숭숭한데 영주성 기사단은 뭐 하는지 모르겠어. 이럴 때는 모름지기 기사들이 먼저 나서서 그런 것들을 소탕하곤 해야 할 텐데 말이지."

'기사.'

아란은 방금 노파가 말한 기사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기사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가슴속에서 뭔가가 크게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온몸에 전류가 찌릿찌릿 오는듯한 그 기분. 그래, 기사란 그런 것이었다. 용맹하고 지혜롭고 강한, 사람들의 선망을 얻는, 그런 것이 아란이 생각하고 있던 기사였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건 비겁하게 얻은 떨거지 기사 따위가 아니었다. 모든 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선망되고 존경받을만한 최고의 기사가 되는 것. 그게 소년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기사가 되고 싶다. 그래서 부모님의 원수도 보란 듯이 갚고 싶었다. 이렇게 밤마다 악몽 속에서 성배를 뺏어가기 위한 적들에게 시달리다 깨는 것은 죽을 만큼 싫었다. 나약해진 자신이 싫었다. 기사가 되고 싶다. 다시 생각하면 할수록 피가 끓어올랐다.

-쿵!

아란은 그렇게 테이블을 박차며 일어났다. 아란의 난데없는 그 반응에 루치야와 노파가 화들짝 놀라며 아란을 쳐다본다. 아란이 놀라는 노파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저, 제도로 가겠어요!"


---------------------------------------------------------------------------<계속>


그 동안, 신경 많이 못쓴 데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게 없네요. 하, 지, 만. 그래도 꿋꿋이 연재하겠습니다.^^ 이것이 아직 저의 글을 기다려주시고 있는 여러분들의 성의에 대한 유일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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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La~port Liarta - 21장 제도로.... #01 +12 08.07.08 1,854 5 12쪽
70 La~port Liarta - 20장 습격 #04 +13 08.06.27 1,806 5 12쪽
69 La~port Liarta - 20장 습격 #03 +12 08.06.26 1,746 5 19쪽
68 La~port Liarta - 20장 습격 #02 +14 08.06.25 1,753 5 19쪽
67 La~port Liarta - 20장 습격 #01 +5 08.06.23 1,814 5 11쪽
66 La~port Liarta - 19장 하얀…. #01 +20 08.06.16 1,936 4 21쪽
65 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4 +10 08.06.11 1,826 4 20쪽
64 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3 +9 08.06.10 1,845 4 18쪽
63 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2 +5 08.06.03 1,869 5 15쪽
62 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1 +24 08.05.31 2,003 5 14쪽
61 La~port Liarta - 17장 깨어진 우정 #02 +12 08.05.28 2,003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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