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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 소일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5.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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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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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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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방(2).

DUMMY

홍기는 아직도 자신의 경험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 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달리고 있는 지금도, 야심한 밤에 숲속에서 귀신이라도 맞닥뜨린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나 되는가?


열 명이서 철저하게 움직인 자객들이 검수 하나를 처리하지 못했다.


상대는 이름이 알려진 고수도 아니고, 명문의 자제도 아닌, 얼마 전까지 고작 철방의 아들내미였던 자였다.


그럼에도 몰살이었다.


열 명 중 아홉이 당했다. 살아남은 것은 홍기 하나뿐이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잘린 왼팔에서 느껴지는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만은 확실하게 진짜였다.


‘도망쳐야 한다.’


그 검귀가 어째서 팔 한쪽만을 자르고 살려주었는지는 모르지만, 벼랑 끝에서 건진 목숨일수록 소중한 법이었다.


그렇게, 자객 홍기는 사력을 다해 숲을 벗어나 달렸다.


* * *


자객들이 물러가고, 장포현에 도착하기까지 소일도는 이틀을 더 걸어야 했다.


걸음이 이전만큼 고단하지는 않았다.


한번 자객을 퇴치했으니, 이전보다는 편히 잠들 수 있었던 까닭이다.


물론 검 한 자루 궤고 자야 하는 것은 똑같았지만 말이다.


그 와중 희소식도 있었다.


‘확실히 실전을 겪을 때마다 경지가 빠르게 상승하는군. 전생의 깨달음 때문인가.’


소일도는 경탄할 속도로 검귀의 감각을 되찾고 있었다.


싸울수록 심장이 담금질하듯이 단단해지고 안정적으로 변해갔다.


며칠 만에 피나 시체를 대량으로 봐도 울렁거리지 않게 된 것은 덤이었다.


‘바늘귀 같던 내공도 어렴풋이 끌어다 쓸 수준은 만들어졌다.’


여전히 토납법으로 쌓은 공력의 양은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백 번 나았다.


검귀로서 얻었던 깨달음 때문인지, 나아가야 할 길이 차근차근 보이는 중이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공심법의 구결도 떠오르리라.


‘결국 필요한 것은 외공인가.’


정기신(精氣身)은 곧 정신과 기력과 육체.


정신, 기력은 서서히 성장하고 있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될 뿐이지만, 육체는 달랐다.


‘심하게 썩어빠졌다.’


물론 소일도의 근력이 아예 못난 편은 아니었지만, 검귀의 시선으로 보면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며칠 전에는 자객 몇 명을 베었다고 팔이 후들거렸으니, 흑사방에 진입하기 전에 한번 제대로 갈아엎을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육체라는 것이 그리 하루아침에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혹독한 단련으로도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천천히 늘어나는 것이 근(筋)이요, 아예 단련할라 치면 말 그대로 뼈를 깎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 골(骨)이다.


그 근골을 합쳐서 육체라 하거늘, 소일도에게는 그것들을 제대로 단련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


해서 소일도가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하는 수 없이. 한 번에 전부 찢어놓는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안 된다면,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가고자 하는 길에 지름길이 없다면 죽을힘으로 외길을 달리면 된다.


그것이 소일도의 지론이었다.


‘적어도 삼 일은 몸져누울 각오를 해야겠군.’


일단 온 근골을 찢어놓으면 당분간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에 적에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살아남을 가망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일단 손은 써두었으니.’


소일도는 팔 한 쪽만 자르고 살려준 한 명의 자객을 떠올렸다.


‘자객이 도착했을 시간이 빨라야 오늘 미시(未時: 13시~16시). 충분하다.’


자객을 살려 보냈으니 소일도의 강함에 대해 보고가 상세히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니 소일도를 잡고자 한다면 훈련된 자객 열 명을 상회하는 병력이나 고수를 보낼 거라는 말인데, 일개 흑도 방파가 준비하고 결정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전력이었다.


‘......그렇다 해도 대비는 필요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소일도는 장포현의 저잣거리를 걷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지자 어둠에 몸을 숨겨주던 흑의는 오히려 눈에 띄어서 벗은 지 오래였다.


소일도가 걸음을 멈춰 선 곳은 어느 약방 앞이었다.


“주인장 계시오?”

“예, 지금 나갑니다.”


한 발짝 들어오자마자 약재의 씁쓸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이어서 나타난 주인장은 약재를 손질하다가 왔는지 한층 더 고약한 향이 풍겼다.


“어디가 안 좋아서 오셨수?”


약사의 떠보는 듯한 목소리.


소일도는 쓸데없는 흥정과 드잡이를 할 시간이 아까웠다.


투욱.


던져진 전낭에서 묵직한 소리가 났다.


등매루에서부터 챙겨 온 적당량의 돈이었는데, 약재 값으로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칠 금액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낭 안을 들여다본 약사의 눈이 커졌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약재를 모두 꺼내주시게.”

“아, 알겠소.”

“갈근, 창포, 강황, 인삼, 작약, 고삼잎, 하수오, 섬수, 자충, 백청, 그리고 감로수를 몇 모금 마실 정도만.”


종류가 많긴 하지만 충분히 동네 약방에서 구할 수 있는 약재들이었다.


약사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랍을 열어서 약재를 하나하나 나열했다.


“이것들은 다 어디에 쓰실 생각이오?”

“먹을 거요.”

“이걸 다 먹는단 말인가? 저런 쯔즛.”


약사가 물건들을 꺼내다 말고 혀를 찼다.


“약도 적당히 잘 분배해서 먹어야 약이지, 이렇게 한 번에 먹으면 독이라오. 약과 독은 본디 하나라는 말도 모르는가?”

“내가 복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상관 말고 담아주기나 하시오.”

“얼씨구, 내가 약사인데 이걸 한 번에 복용하는 방법 같은 건 없소. 과거에 의성 장중경도 열 개가 넘는 약재를 합방(合方)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는데. 어디의 누구한테 들었는지 몰라도 영 돌팔이를 만났구먼.”


약사와 설왕설래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왜냐하면, 소일도가 요구한 것들은 통상적인 방법으로 섭취해서 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돈, 안 받을 거요?”

“......”


약사는 마뜩잖다는 듯이 인상을 썼지만 이내 약재들을 마저 꺼냈다.


“아무튼 난 분명 경고했소. 나중에 탈 나고 속 아프다고 찾아와도 난 모르오.”


소일도는 대꾸하지 않고 약재들을 챙겼다.


“아, 그리고 실이 있으면 좀 주시오.”

“실? 무슨 약방에서 실을 찾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약사는 잠시 서랍을 뒤적이다가 바늘이 꽂힌 실타래를 꺼냈다.


집집마다 하나쯤은 있는 것이 실과 바늘이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본래라면 뜬금없는 요구에 없다고 했겠지만, 소일도가 건넨 돈의 금액 때문에 실 정도는 기분 좋게 넘겨줄만했다.


“자 받으시오.”


실은 뭐에 쓰려는지 물어보려다가, 약사는 그만 입을 닫았다.


소일도의 장삼 아래 허리춤에 검이 패용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림의 영문은 알아도 모르고, 들어도 못 들은 체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불문율이었다.


“고맙소.”


실타래를 품에 넣은 소일도가 인사치례하고 몸을 돌렸다.


* * *


흑사방 본단이 있는 장포현은 여느 현과 다르지 않았다.


피폐하기는커녕 평범하게 도회지가 있고, 주루나 반점(飯店), 객잔도 멀쩡하게 영업하고 있었다.


하긴 예상했던 일이었다.


어설픈 흑도일수록 푼돈에 눈이 멀어서 주변의 피를 말리기 마련이다.


이렇듯 제대로 된 운영이 돌아가는 흑도들의 주변은 도리어 상권이 활발하고 봐줄 만 한 향락가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멀게 봤을 때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돈도 늘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기를 생산하는 철방만은 박해받겠지만.


소일도는 반점을 찾아서 들어갔다.


잠을 청할 수 있는 객잔이 아닌 연유는, 물론 적들에게 있어서 가장 뻔한 장소가 객잔이라서였다.


원래 숙소의 개념이 없는 반점이라면 한 시라도 추적을 늦출 수 있으리라.


이곳은 주인장이 점소이까지 겸하는 작은 반점인 듯했다.


“소협, 주문하시겠습니까?”

“소면이면 되네.”

“소면 하나, 금방 가져다 드립지요.”

“그리고.”


소일도는 또 전낭을 꺼냈다.


“삼 일 정도. 묵을 수 있나?”


돈을 너무 물 쓰듯 쓰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소일도가 돈에 관심이 없거니와, 돈으로 해결 가능한 일은 돈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가장 빨랐고, 지불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저렴한 단위였다.


노력, 체력, 심력...... 돈을 대신해서 쓸 수 있는 것들 중 소일도에게 돈보다 가치 없는 것은 한 가지도 없었다.


그러나 전낭을 본 주인장은 표정을 굳혔다.


“죄송하지만 손님,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가.”


물론 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렇게 거절을 당할 수도 있었다.


돈은 또 벌면 그만이지만 목은 달아나면 붙일 방법이 없으니까. 무림의 일에 관여되기 싫은 마음일 수도 있었다.


“그럼 가보겠소.”


숙박을 거절당한 이상 이곳에서 식사를 할 이유는 없었다.


소일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주인장이 먼저 반점을 나가서 입구 근처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후다닥 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됐는지 목소리를 조용하게 내리깔며 말했다.


“소협은 흑사방을 찾아온 것이지요?”

“......”

“눈을 보면 압니다. 장포현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흑사방에 원한을 가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가끔 이렇게 멀리서 칼을 갈고 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주인장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한층 더 소곤소곤 말했다.


“이곳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본 점은 흑사방의 관리하에 놓여 있습죠. 제가 안전한 거처를 알고 있습니다.”

“그걸 내게 알려주는 이유는?”

“이렇게 죽는 분들을 너무 많이 봤으니까요. 여기가 아니라 장포현에서 웬만한 곳에 머무르면 십중팔구 잠결에 죽은 줄도 모르고 칼에 맞을 겁니다.”

“음,”


주인장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장포현 안이 흑사방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은 진실이었다.


소일도는 잠시 머릿속으로 경우의 수를 계산해 보았다.


‘벌써 자객이 보고를 제대로 올렸고, 흑사방에서 이미 내 위치와 동선을 파악해서, 미리 반점의 주인장에게 숙소 유도를 맡겼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게 옳았다.


게다가 이미 소일도의 소재를 파악했다면 이렇게 번거로운 방법을 쓸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미 반점의 주인장이 흑사방의 충직한 개일 경우는?’


의문이 떠오름과 동시에 소일도가 살기를 발출했다.


무형지기까지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무공을 익힌 자라면 피부로 느끼고 반응할 수준이었다.


좀 더 기감이 통한 자라면 소일도의 검이 발검(拔劍)하여 목이 떨어지는 상상까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주인장은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는 소일도에게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소일도는 살기를 거두었다.


“확인을 좀 하느라, 미안하오.”

“괘, 괜찮습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주인장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골목길로 들어서 이쪽으로 쭉 가면 장포제철소라는 철방이 하나 나옵니다.”


제철소, 즉 철방.

흑도와는 도저히 바투 붙어서 공생할 수 없는 이름이었다.


소가철방도 그랬다.


기본적으로 흑도는 무력으로 이권을 쥐는 집단이다.


다른 상원은 모두 풀어줘도 무기를 생산하는 철방만은 가만히 놔둘 수 없는 것이다.


소일도가 물었다.


“그 제철소는 흑사방 산하가 아닌 건가?”


주인장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뗐다.


“장포제철소는 빈 집입니다.”


빈 집.


알만 했다.


소가철방과 비슷한 일을 겪은 것이다.


“......그렇군. 고맙네.”


소일도는 추가로 몇 냥을 식탁 위에 올리고 반점을 떠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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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등매루의 밤(1). +3 23.05.11 1,309 23 12쪽
3 검귀, 돌아오다(3). +1 23.05.10 1,418 26 12쪽
2 검귀, 돌아오다(2). +1 23.05.10 1,621 27 12쪽
1 검귀, 돌아오다(1). +5 23.05.10 2,106 2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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