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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 소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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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5.10 18:40
최근연재일 :
20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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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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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05.1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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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등매루의 밤(1).

DUMMY

“어제 금목상단 사공자 앞에서 표정관리 못한 년 튀어나와.”


사내가 짜증이 치민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앞에 횡렬로 선 기녀 열댓 명은 고개만 푹 수그린 채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신입 창기(娼妓: 몸을 파는 기생)들은 아직 반항기가 조금씩 남아 있는 경우가 있었다.


대부분이 원하지 않게 팔려오거나 끌려와서 창기가 된 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내가 기녀 하나를 삿대질로 가리켰다.


“너 말하는 거야 이 년아. 내가 말했지. 금목상단 사공자는 우리 큰 손이니까 절대 실수하지 말라고.”


등매루 쯤 되는 큰 기루를 관리하다 보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손님들은 보다 젊고 아름다운 창기를 원하는데, 젊거나 아름다운 창기들은 아직 기가 꺾이지 않아서 손님을 불쾌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이다.


사내는 이럴 경우 가차없이 기녀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고 교육해야 했다.


아무리 금목상단 사공자처럼 얼굴이 독두꺼비를 닮은 인물이 오더라도 여우같은 웃음을 지으며 접대할 수 있는 창기가 되도록 말이다.


그것이 등매루 관리자로서 사내의 업무였다.


“감히 큰손 앞에서 면상 표정을 구겨?”

“죄, 죄송합니다.”

“그분이 지금까지 우리 기루에서 쓰신 돈이 네년 평생 몸 팔아 벌 돈보다 많다. 그런데 그분이 다시 등매루를 찾지 않으시면 네년이 어떻게 책임질 테냐?”


지목받은 기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곳보다 더한 곳에 끌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몸이 오들오들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두 번 본 광경이 아니라서 사내는 일말의 동점심도 들지 않았다.


“앞으로 나와.”


사내가 위협하듯 손짓했다.


한 발짝 나온 기녀는 과연 금목상단의 사공자가 지목한 만한 미색을 가지고 있었다.


긴 흑장발로 고리를 만들고 화려하게 치장된 비녀를 꽂은 기녀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고개 처들어.”


기녀가 사내의 명령대로 고개를 들자마자.


짜아악!


그녀의 시야가 거칠게 돌아갔다.


“얼굴은 이걸로 끝.”

“......”

“너는 창기니까 몸에도 별로 멍을 많이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한 곳만 맞을 것이다. 잘 봐둬라. 누구든 창기는 이 등매루에서 이렇게 맞는 거다.”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해낸 사내가 주먹을 꽉 쥐어 치켜들었다.


“큰 소리 내면 뒈진다.”


사내가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명치, 명치, 또 명치.


버티다 못한 기녀가 숨을 쉬지 못하겠는지 배를 감싸 안으며 주저앉았다.


사내는 기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다시 일으켜 세웠다.


“손 풀어. 잘못 맞으면 손병신 된다.”


구타는 기녀가 몇 대를 더 견디다가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뒤에야 끝났다.


사내는 마치 작업 하나를 끝낸 듯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다른 기녀들에게 말했다.


“후, 깨워라.”


겁에 질린 신입 기녀들이 몰려들어서 기절한 기녀를 다급하게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사내는 다분히 고의적으로 미간을 구겼다.


“누가 그딴 식으로 답답하게 깨우래. 찬물 가져와.”


촤아악!


찬물을 끼얹자, 기절했던 기녀가 귀신같이 일어났다.


“자, 표정관리 못한 네년은 됐고. 다음, 음식 나르다 접시 깨먹은 년......”


사내가 마저 교육을 진행하려는데, 방문이 벌컥 열렸다.


들어온 것은 점소이였다.


“뭐야, 교육하는 거 안 보여?”

“죄송합니다 형님. 손님 지명이 있어서요, 혹시 머리칼이 갈빛인 묘령의 아이가 있습니까? 들어온 지 삼 년이 안 된 신입으로요.”


다른 기녀를 데려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문이 구체적이었다. 필시 원하는 여자가 있는 것이리라.


훑어보니 마침 조건에 부합하는 기녀가 있었다.


“가봐라. 운 좋은 줄 알아.”

“가,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기녀가 점소이와 함께 방을 나갔다.


그리고 사내가 탐탁치 않은 얼굴로 교육을 마저 진행하고 있는데, 또다시 방문이 덜컥 열렸다.


이번에도 같은 점소이였다.


왠지 얼굴이 편 듯했다.


“형님, 소일도 공자가 왔답니다요! 오려고 하는 기녀들은 모조리 부르랍니다!”

“소일도?”


사내는 꽤 오랫동안 등매루의 관리자로 있었지만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과연 누구길래 그런 베짱 좋은 말을 한단 말인가. 확실한 것은 적어도 은원보 한두 개짜리 주문은 아니었다.


사내는 고민했다.


교육도 중요했지만, 이렇게 한 번에 벌어들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점소이 너는 이미 짭짤하게 챙긴 듯한데, 이만 빠져라. 내가 들어가겠다.”

“알겠습니다요 형님.”


사내는 결단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열다섯 명의 젊은 기녀가 겁 먹은 채 따랐다. 누구 하나 실수를 만들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 * *


소일도 공자가 있는 곳은 사방이 붉은 빛으로 옷칠된 벽면의 고급스러운 독실이었다.


사내가 야심차게 데려온 스물네 명의 기녀들을 소개했다.


하지만 소일도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없군.”

“예?”

“없어. 이 등매루에는 내가 찾는 여인들이 없다.”


각양각색의 미녀들을 무려 스물넷이나 대령했다.


사내는 세상물정도 모르는 건방진 공자의 까탈에 잠시 화가 났지만 이내 가라앉혔다.


“하하, 눈에 맞으시는 인재가 없어 죄송하게 됐습니다. 원하시는 여인을 설명해주시면 제가 그에 맞게 치장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공자님.”

“음.”


하지만 씨알도 먹힐 리 없는 소리였다.


소일도가 원하는 것은 외관이 아니라 사람이었으니.


“치장한다고 될 게 아니다. 기녀는 이게 전부인가?”

“......손이 비는 기녀들은 전부입니다. 지금 접대중인 기녀들은 당연히 오지 못했지요.”


사내는 참을 인자를 새기며 대답했다.


돈, 저 귀공자에게 돈만 뜯어내면 된다는 일념이었다.


그런데 그때 소일도의 한 마디가 날아들어서 사내의 평정을 깼다.


“전부 데려와. 지금 접대중인 기녀들, 몸이 안 좋아 휴식하는 기녀들, 밥을 먹든 변소에 있든 간에 하나도 빠짐 없이 전부.”

“......”


사내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어찌나 이를 악 물고 참았는지 턱 밑에 사선으로 굵은 힘줄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공자님.”

“그런가?”

“예, 저희도 이 바닥에서 장사를 계속 해먹으려면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이 있는지라. 돈을 얹어 주셔도 불가능합니다.”

“음.”


그 말에 소일도가 조소했다.


“여인들을 납치해 창기로 만들어 팔고 있는 흑도가 도리를 다 찾는군. 헛소리 그만하고 전부 긁어모아서 데려와.”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겁을 먹었던 기녀들은 뒤에서 벌벌 떨었다.


한동안 정적이 이어지다가, 사납던 사내의 표정이 한 순간 의문으로 물들었다.


“......너, 소가철방에서 주워 키웠던 백치놈 아니냐?”


자세히 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쩐지 곱게 자란 귀공자 치고는 머릿결이며 그을린 피부며 이상하다 했다.


정체를 알고 보니 허리에 패용한 검도 장식이 수상하리만치 수수했고, 변변한 것은 걸친 고급 장삼과 헌앙한 얼굴뿐이었다.


흑사방이 남정현에 들어온 이후로는 소식이 없기에 뒈졌거나 철방주가 다시 유기라도 한 줄 알았건만.


“그래. 철방주가 내 아버지시다.”


소일도의 대답에 사내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와락 구겨졌다.


“네놈, 죽고 싶은 게냐?”


진심으로 살의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고작 백치에게 농락을 당했다는 사실에, 사내는 정말 소일도를 반병신으로 만들 생각을 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군. 내가 철방 아들이면 기녀들을 데려오는 데 문제가 있나?”

“뭐?”


소일도가 당당하게 나오자, 사내는 되려 당황했다.


모로보나 사내가 아는 백치에게서 나올 반응은 아니었다.


당연히 돈이 없으리라 여겼는데, 태도를 보아하니 마치 정말로 돈을 가져온 것 같지 않은가?


“너, 돈은 가져왔냐?”


말이 짧아진 사내가 물었다.


그러자 소일도는 팔을 뻗어서 식탁의 산해진미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한타방 음식이 담긴 접시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쏟아졌다.


“술과 음식, 기녀들을 부른 값이다.”


소일도는 빈 식탁자리 위해 검을 풀어서 올려놨다.


제법 정갈한 잿빛 검이었다.


하지만 그뿐.


명검도 보검도 아니었다. 적어도 사내가 보기로는 그랬다.


“뭐하자는 거지? 고작 검 하나로는 음식 값으로도 어림 없다.”


거기에다 깨진 접시 값까지 추가하면 저런 칼 하나가 아니라 예닐곱 개를 들고 와도 음식 값만 될까 말까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검수가 검을 팔 리가 없지 않은가.”


그제서야 사내는 소일도가 식탁에 검을 올려놓은 저의를 파악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게, 그 칼에 맞아 뒈지기 싫으면 기녀들을 전부 데려오라 이 말인가?”

“정확히 알아들었군.”

“허, 이 미친놈이 이제보니 제사상을 차려놨구나!”


윽박과 함께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내가 출수했다.


“소원대로 죽여주마!”


술과 밤과 여자를 다루는 기루에서 중책을 맡으려면 어느 정도의 무력은 필수였다.


사내 역시 무공을 익혔고, 난동을 부리는 손님을 맨손으로 제압하는 일에는 이골이 날 정도였다.


다시 말해, 사내는 이제 막 검을 들고 자신이 대단한 검수라도 된 양 설치는 애송이에게 질 실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숱한 경험이 이번에는 사내를 위기로 몰았다.


섣부르게 내지른 장법이었다.


소일도는 고개를 틀어 허접한 장법을 피하고, 식탁에 놓았던 검을 빠르게 뽑아서 사내의 손목을 벴다.


한 동작인 것처럼 펼쳐진 신기(神技)였다.


“끄아아악!”


승부는 한순간이었다.


새빨간 피가 비산하며 사내의 손목이 날아갔다.


소일도는 잘린 손을 주워서 식탁의 빈 자리에 턱 올려놓았다.


“아직도 값이 부족한가?”


사내는 손목 단면에서 느껴지는 타는 듯한 격통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모든 장면을 지켜본 기녀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과 휘둥그래진 눈만이 그녀들의 심경을 대변했다.


이내 사내의 입이 열렸다.


“......모든 기녀들을 데려오겠습니다.”


다시 말이 길어진 모습.


“잘 생각했다.”


소일도가 겨누었던 칼을 거뒀다.


짜아악!


급작스럽게 소일도가 사내의 뺨을 후려쳤다.


“네가 지금 나가면 위사들을 데려오든가 루주를 데려와서 나를 죽이려고 할 것을 알고 있다.”

“!!”


아주 정확하게 정곡이었다.


사내가 황급히 변명했다.


“아, 아닙니다. 정말로 기녀들을 모아서 데려오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상관없다.”

“......예?”

“상관없다고 했다. 루주를 데려오든, 고수를 데려오든 마음대로 해라. 기왕이면 정보를 하나라도 많이 아는 윗줄이 좋겠지.”


사내는 입이 바짝바짝 탔다.


철방 백치놈이 허장허세를 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방금 보여준 검술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루주를 데려와야 하느냐.

기녀들을 데려와야 하느냐.


사내가 한창 뻘뻘 땀을 흘리며 고민하는데, 한번 더 소일도의 따귀 장법이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짜아악!


맞은 곳을 또 맞았더니 뺨이 화끈거리며 부어올랐다.


“표정관리해라.”

“......”

“고민을 하려면 숨기고 하든가.”


왜일까.


분명 적이 승리한 상황인데, 지켜보는 기녀들은 어딘가 가슴이 시원함을 느꼈다.


“죄, 죄송합니다.”

“됐다, 나가봐.”


소일도는 검을 검집에 넣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곧 사내가 삐질거리며 방을 나갔다.


스물 넷 기녀들도 사내의 뒤를 따랐다.


소일도의 방은 다시금 혼자 남겨진 독실(獨室)이 되었다.


‘시간이 아깝군.’


소일도는 눈을 감고 운기토납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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