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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 소일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5.10 18:40
최근연재일 :
20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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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305

작성
23.05.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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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흑사방(1).

DUMMY

장포현까지 가는 길은 주로 숲길이었다.


소일도가 일부러 잘 닦인 관도를 피해 걸었기 때문이었다.


불편하긴 해도, 자객을 만나서 체력을 소모하느니 이 편이 나았다.


‘아직은 체력이 부족하니까.’


소일도가 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정신력 덕분이었다.


검에 대한 지독한 집념으로 단련된 정신은 며칠의 피로 따위로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걷다가 밤이 되자 소일도는 주변에서 나뭇잎을 그러모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잠자리라고는 해도, 눕지도 못했다.


누워 있는 자세로는 혹시나 자객이 습격했을 때 대처가 어렵다.


대충 나무 근처에 나뭇잎을 깔아놓고 기둥에 기대앉아서 잠시 눈을 붙이는 것이 소일도에게 허락된 유일한 수면이었다.


이윽고 육중한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소일도는 소연에 대해 생각했다.


‘한없이 순했던 아이.’


그녀는 첫눈처럼 때타지 않은 아이였다.


소일도가 거지굴에서 처맞으며 자라 여섯 살이 되던 해, 소연을 처음 만났다. 백치라는 이유로 동년배 다른 거지들에게 동냥금을 빼앗기고 있던 소일도를 구해준 것이 소연이었다.


소연은 돈을 찾아줬을 뿐만 아니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소일도를 치료해주고 따듯한 밥을 먹여줬다.


그렇게 종종 이름도 배운 것도 없던 거지는 소가철방에 놀러 다니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과 이름을 받아 철방의 양자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로도 소연은 백치인 오라비를 지극하게 챙겼다. 유복하진 않아도 콩 한 쪽을 나눠 먹는 사이였다.


‘살아 있으면 좋으련만.’


눈 감으니 소연의 얼굴이 망막에 새겨진 듯이 아른거렸다.


일 다경이나 지났을까.


소일도는 귀신처럼 눈을 번쩍 떴다.


퓩!


방금 전까지 소일도가 머리를 기댔던 나무 기둥에 암기가 날아와 박혔다.


소일도는 고개를 살짝 틀어서 피했지만, 복면이 살짝 찢어지면서 오른뺨에 붉은 선이 생겼다.


소일도는 말 없이 검을 쥐고 일어났다.


자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에서 기척은 느껴졌다.


‘한두 명이 아니군.’


등매루를 무너뜨린 업적을 흑사방에서 꽤 높게 평가했는지, 십수 명의 살수를 보낸 듯했다.


게다가 방금 첫 암기를 던진 자객은 솜씨가 꽤 좋았다.


숲속에 있는 사냥감을 찾을 만도 했다.


긴장을 벼려야 했다.


쉬이이익.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소일도는 반응했다.


나무 줄기 곳곳에 매달린 투명한 실이 당겨진 듯 움직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흡!”


바닥에 뒤통수가 닿을 정도로 소일도가 순식간에 몸을 뒤로 눕혔다.


순간 소일도보다 위로 자라났던 주변의 나무들이 두부처럼 잘려나갔다.


반응하지 못했다면 그 또한 똑같이 마파두부처럼 조각조각 잘렸으리라.


‘철저하다.’


소일도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미리 설치해놓은 암사(暗絲)인 듯했다.


게다가 두 번째 수마저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자객의 위치를 추정할 수 없었다.


노련한 실력자라는 증거였다.


소일도의 머리가 팽팽 회전했다.


‘트인 길로 달리면 죽는다.’


그 길목에 암수를 설치하지 않았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곳에 있자니, 지형상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그때 암기가 또 흩뿌려졌다.


이번에는 사방이었다.


소일도는 기대어 잤던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한쪽에서 날아오는 암기를 검으로 모두 쳐냈다.


카카카카카캉!


한 번의 큰 공격. 그제야 자객들의 위치를 알 것 같았다. 소일도는 그 위치를 모조리 외워버렸다.


죽립을 눌러 쓴 소일도가 검을 검집에 납검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빛나는 부분이라고는 유리알같은 눈동자만 남았다.


소일도는 눈마저 감았다.


이제 그는 완전히 암흑이 되었다.


‘내가 검귀라고 불렸던 이유 중 하나.’


첫째는 검에 한이 맺힌 귀신처럼 집착했기 때문이지만, 둘째는 검을 든 귀신과도 같은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밤은 소일도의 편이었다.


사박.


표적이 사라진 채 발소리만 들렸다.


그 발소리마저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에 묻혀서 사라졌다.


소일도가 다음으로 나타난 곳은, 최대한 귀를 기울이려던 한 자객의 등 뒤였다.


검이 뽑혔다.


“쿠헉!”


갑작스런 단말마가 숲을 울렸다.


달빛에 비춘 검면과 눈동자가 소일도의 위치를 찰나의 시간동안 드러냈지만, 또다시 귀신처럼 사라졌다.


어둠에 잠긴 소일도는 자유롭게 움직였다.


적이 자유로우니 자객들은 한 발짝도 섣불리 뗄 수 없었다.


위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객들 또한 암기를 집어넣고 숨소리를 죽였다.


하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크아악!”


분명 어떤 기척도 보이지 않았던 쪽에서 단말마가 울러퍼졌다.


그 다음 누군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쿵 하고 들렸다.


훈련된 자객, 그것도 나무 위에 숨어서 대기하고 있던 자가 단칼에 죽은 것이다.


나무를 타고 오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건만!


자객들의 등골에서 흐른 식은땀이 서늘하게 식었다.


‘정말 귀신이란 말인가!’


순식간에 전세는 뒤집어졌다.


이제 공포에 질리는 것은 오히려 자객들의 몫이었다.


다음 순간 소일도의 칼이 빛날 때.


파사사사삭!


가까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자객 하나가 빛이 일어난 방향으로 빨려들어가듯 달렸다.


핑!


암기가 날아드는 소리.


소일도는 소리만으로 투척물의 궤도를 짐작해서 검집으로 막았다.


그리고 어느새 발치까지 다가온 자객을 향해 쾌검을 휘둘렀다. 곽 노인에게도 보여줬던 소리 없는 검.


듣고 반응할 수 없는 검이었다.


그러나 자객은 그 공격을 읽었다는 듯이 옆으로 몸을 굴렸다. 알고 피한 것이 아니라 일단 피하고 본 것이다.


‘훌륭한 판단이군.’


목숨을 저당으로 몸을 내던지긴 했지만, 검수의 검을 보고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 더 어리석었다. 그 환경이 어둠 속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아무리 한 수를 피했다고 해도 자객이 검수를 상대로 근접전에서 이길 수는 없는 일.


소일도는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자객이 소리친 그때였다.


“여기다!”


외침과 동시에 자객은 가지고 있던 암기들을 마구잡이로 흩뿌렸다.


쇠붙이들이 달빛을 받으며 순식간에 위치를 드러냈고, 그 빛을 향해 피아식별 없는 무차별적인 암기들이 쇄도했다.


파바바바박!


자객과 소일도가 동시에 물러났다.


그러나 누구에게 이 수가 유리하게 작용했는지는 자명했다.


자객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간신히 재차 거리를 벌리긴 했지만, 무의미한 거리였다.


소일도는 또다시 눈을 감고 흑암으로 침잠했다.


속수무책으로 또 소일도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자객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긴장과 격한 운동으로 인해 심장이 승하강을 빠르게 반복하여 진정할 수가 없었다.


눈동자는 정신없이 떨리며 불안한 듯 사방을 탐색했다.


빛이 명멸했다.


빛은 곧 검이 뽑혔다는 뜻이리라.


“끄아아아!”


아니나 다를까 비명이 들렸다.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이번엔 어디지?’


자신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었다.


자객은 등 뒤가 서늘하여 획 뒤돌았다.


하지만 이번에 소리가 들린 것은 자객이 바라보고 있던 정면이었다.


“커헉!”


자객이 불에 데인 듯이 놀라며 다시 뒤돌았다.


그러나 이미 그곳에는 빛이 없었다.


바람이 불자 나뭇잎들이 검은 파도처럼 파스스 물결쳤다.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침묵과 어둠이 이어진다.


자객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쯤, 거의 바로 옆에서 악다구니가 들렸다.


“으으아아아악!”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서걱!


간결한 휘두름과 함께 번쩍 빛난 검이 그 소리를 뚝 베어버렸다.


‘대체 몇 명이나 죽은 거지?’


적어도 다섯, 아니 여섯?


그것은 열 명인 자객단의 반이 넘는 숫자였다.


‘대체 왜 잡을 수가 없는 것이냐! 어둠은 분명 눈에 익었을 텐데!’


암순응(暗順應).


분명 모든 자객들은 어둠 속에서 눈을 익숙하게 만들어 사리분별이 가능해지는 그 적응 과정을 마쳤다.


헌데 소일도의 움직임만은 형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방금 전부터 주변의 지형지물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또 번쩍이는 검.


반사적으로 반응해서 그 빛을 포착한 자객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일부러 중간중간 빛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어둡다 해도 어슴푸레한 달빛이 저리 밝게 빛날 리가 없었다.


소일도는 일부러 달빛이 잘 보이는 방향으로 검을 비틀어서 자객들의 눈을 어둠에 적응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에 빛을 보면 안 된다고 전음을 하려던 자객은 멈칫했다.


‘그러면 어떻게 상대를 파악한단 말인가?’


및을 보지 말라는 말은 곧 눈을 감으라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그것도 검을 든 검수의 앞에서.


완전히 자살행위였다.


‘언제부터 잘못된 거지?’


검의 빛에 눈이 팔려서 암순응을 잃어버린 순간부터?


첫 번째, 두 번째 암수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부터?


아니었다.


그들의 실수는 감히 소일도를 살행의 목표로 점찍었을 때부터, 이미 그때부터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크아아악!”


또다시 단말마가 울렸다.


손속에 자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절단음과 함께.


틀렸다. 도저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작 철방 아들이라 들었건만!’


운 좋게 등매루주를 죽였다고 들었다.


그것도 직접 싸운 것이 아닌, 등매루 기둥을 은밀하게 무너뜨려서 비겁하게 전부 몰살했다고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전혀 아니었다.


실력으로나 심계(心計)로나, 등매루주 따위가 당할 상대가 아니었다.


비오듯 주륵주륵 흘러대는 땀방울마저 자객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원하는 게 뭐냐!”


자객은 떨지 않으려 노력하며 소리쳤다.


그것은 소일도와의 일전에서 비명과 단말마를 제외한 최초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위치가 완전히 노출되는 일이었지만, 어차피 도망친다고 해서 놓아줄 것 같지도 않았다.


“......원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만큼 소름끼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차분하고 진중하게 내려앉은 중저음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자객의 생각과 달리 흘러갔다.


채채채채채채챙!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자객들이 그 방향으로 암기를 날린 것이다.


“......”


소일도가 침묵하자 식겁한 자객이 손을 내두르며 격노했다.


“오, 오해네. 내 뜻이 아니었어! 공격을 멈춰라 이 우매한 것들아! 목 위에 달린 그것이 장식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그 어떤 견제도 하지 말란 말이야!”


간신히 모든 자객들이 공격을 멈췄다.


정적이 더 길어져서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전에, 자객이 다시 한번 재빠르게 선수를 쳤다.


“자 말해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자 어둠 속에서 소일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는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가?”


죽은 철방주와 설화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것은 불가능하네.”

“그렇다면 너희가 검의 끝을 내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하는지 모르겠군. 이제 현실적인 요구를 말해주게.”


무엇 하나 진심이 아닌 말이 없었지만, 어쨌든 소일도는 마지막 요구를 말했다.


“소연이라는 아이를 찾고 있다.”


그 말에 복면 속 자객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거라면! 사람을 찾는 거라면 우리가 도울 수 있네.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소연이라는 아이를 찾아보도록 하지. 물론 방주님께 알리지 않고 극비리에 진행할 걸세.”

“......찾아보겠다고 했나?”

“그렇네.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함세.”

“그렇군.”


그 목소리를 끝으로 소일도의 기척이 다시 사라졌다.


다음으로 그가 나타난 곳은, 협상을 시도하려던 자객의 눈 앞이었다.


자객의 눈에 보였을 때는 이미 검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자객에게는 소일도가 자신의 목을 거두어 가려고 나타난 저승사자처럼 보였다.


“너희는 역시 소연도 팔아치운 건가.”

“......!”


협상이 결렬되었음을 직감한 자객이 신속한 동작으로 품에서 암기를 꺼내려는 순간.


소일도의 검이 한번 더 번쩍였다.


“끄륵.”


반쯤 잘린 목에서 피가래가 끓는 소리와 함께, 자객은 절명하여 쓰러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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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등매루의 밤(2). +1 23.05.12 1,269 20 13쪽
4 등매루의 밤(1). +3 23.05.11 1,309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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