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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 소일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5.10 18:40
최근연재일 :
20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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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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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02
추천수 :
618
글자수 :
204,305

작성
23.06.0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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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기연이 있을지도 모르고(1).

DUMMY

나무 조각은 작은 개 모양이었다.


아주 조잡한 솜씨로 깍아졌지만, 발 네 개가 달렸고 꼬리와 머리의 형태는 분명했다.


그건 강아지였다.


“석봉이 동물을 좋아했소. 이걸 선물해줄 때는 아직 어렸으니까.”


허겸은 자신이 직접 깎아 만든 개 모형을 끌어안고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의 눈에서는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챙기길 잘 했군.’


소일도가 수혼귀의 눈앞에서 부순 것은 진짜가 아니었다.


죽기 직전 정신이 혼미해져 있는 수혼귀였기에, 근처에 있던 나무 껍질을 떼어내서 떨어뜨려도 순간적으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소일도가 복수하고 싶은 대상은 수혼귀였지,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아니었다.


때문에 수혼귀에게 복수는 하되, 물건은 챙긴 것이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고맙소, 정말 고맙소......”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흐느끼는 허겸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를 깎아 만든 개 모형이다.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했다면 나무는 썪었을 테고, 튀어나온 개의 꼬리나 다리가 뚝 부러졌을 것이다.


그런데 나무 모형은 멀쩡했다.


십 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이나.


그것만으로도 수혼귀가 얼마나 이 물건을 애지중지 했을지 알 수 있었다.


‘챙기길 잘 했고, 또 부수길 잘 했다.’


그렇게 여긴 소일도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이 붉은 단풍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 * *


“우리는 무당산으로 돌아가 보겠소.”


잠시 뒤 허겸이 감정을 추스르고 말했다.


“본산에 이 일을 보고해야겠소. 지금까지는 혹여 달아날까 수혼귀를 극비리에 쫓고 있었으나, 이제는 공표해야겠지.”

“괜찮겠습니까.”


희대의 무림공적이 무당의 제자, 그것도 유망하던 진산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무당의 고고한 명성에 흠이 갈지도 몰랐다.


그러나 허동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추태를 숨기려고만 해서야, 어디 적가장주와 다를 게 무엇인가?”

“맞습니다 사형.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두려워해서야 정도라고 할 수는 없지요.”


허겸이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리고 마공의 위험성도 만천하에 똑똑히 알려야 합니다. 석봉, 아니 수혼귀는 금서에서 스스로 마공을 깨우쳤다고 했지만, 칠 년간의 족적을 샅샅히 뒤져 봐야지요.”


깐깐한 허겸의 성격은 이런 부분에서 도움이 됐다.


소일도가 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헤어지려는 차, 허동이 소일도에게 다가왔다.


“전부 들었네. 우리를 쫓아가자는 의견을 낸 것은 자네였다지.”

“마음이 급해서 그랬소.”

“허나 어찌됐든, 자네는 결과적으로 무당의 장로 둘을 구했네. 오랫동안 무림맹의 골머리를 썩히던 무림공적을 쓰러뜨린 데다가, 삼백 년 만에 두 번째로 나타난 마인을 척살하기도 했지.”


단순히 수혼귀를 죽였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 소일도의 업적은 하나같이 강호 무림이 떠들썩 할만 한 것이었다.


“천하 어디를 가도 자네의 이름이 들릴 거야. 정사를 가리지 않고 자네에게 흥미를 가질 것이고, 개중 위험한 일에도 휘말릴지 모르네.”

“......”

“하지만 자네의 등 뒤에는, 언제나 무당이 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게.”


유사시 무당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 무당 원로원의 장로.

허동과 허겸의 말에는 그만 한 무게가 있었다.


“언젠가 찾아오시게. 자네가 석봉이의 나무 조각을 주었으니, 우리는 비동을 열어서라도 뭔가 뭔가 챙겨주겠네.”


그러자 듣고 있던 왕필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구파일방 중에서도 그 역사가 긴 무당파.

그 무당의 비동이라.


‘무슨 보물이 잠들어 있을지 상상도 안 되는군.’


목숨을 구해줄 구명법기(救命法器).

특별한 능력을 가진 신물(神物).

기화이초(奇花異草)와 그에 버금갈 영약.

문외불출(門外不出)의 절세 신공까지.


모르긴 몰라도 분명 없는 게 없을 터였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이 자리에서 허동에게 넙죽 절을 했을 것이다.


소일도는 잠잠했다.


“언젠가 호북 땅에 가겠소.”


그 말과 태도가 어쩐지 어울렸다.


잠시 뒤 무당파의 장로들이 물러간 자리에는 왕필과 소일도만 덩그러니 남았다.


“우리도 가세.”


그들도 복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아직 무림맹에서 보낸다던 성의 표시도 받지 못했다.

그 밖에 방문하길 원하는 문파들도 세워놓자면 행렬을 만들 수 있을 지경이었고.


‘얼마나 쌓여 있으려나.’


각종 서신, 선물을 가장한 뇌물, 방명록, 무림맹에서 온 포상과 사도련의 반응도 지금쯤 도착했을 것이다.


‘함께 열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하오문 복주 지부장으로서 해결해야 하는 업무도 선물들과 함께 남겨져 있을 터였다.


지부장 대리로는 처리 불가능한 서류들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사실 쌓여 있는 일의 양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앞으로 얼마나 쌓일지.’


수혼귀 소식이 알려지면 강호는 발칵 뒤집힐 것이다.


당연히 별 잡다한 정보들까지 모두 ‘의심 정황’이라는 명목 하에 보고될 것이다.


게다가 화제의 주인공인 소일도가 머무르는 하오문 복주 지부로 쏟아질 서류의 양은?


다른 건 몰라도, 실적 하나는 어마무시하게 챙길 수 있을 것이었다.

어마무시한 수면 부족과 함께 말이다.


“돌아가면 곧장 계약서 두 장 치 일을 이행하겠소.”


왕필의 속도 모르고.


방금 한 건을 끝냈지만 쉴 생각이 없는 소일도가 말했다.


“좀 쉬세.”

“부상이 심하지 않아서 괜찮소.”

“아니, 자네 말고 나 때문에 하는 말이야. 처리할 안건이 쌓였네. 또 마공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겠고, 어쨌든 할 일이 많아.”

“......”

“자네는 수련이나 하고 있게.”


일이 많다면 하는 수 없었다.


소일도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지금까지 전생에 대한 언급은 일부러 자제해왔지만, 이쯤 되면 물어봐도 될 것 같았다.


“혹, 검귀(劍鬼)의 이름을 아시오?”

“검귀? 갑자기 말인가?”

“중요한 일이오.”


소일도가 단호하게 말하자, 왕필이 턱을 문지르며 고민했다.


“드문 별호는 아니다 보니, 검귀라면 몇인가 있었지. 아마 지금도 강호에서 검귀를 찾으라면 수십 명은 나올 걸세.”

“지금 활동하는 무림인들을 제외하면?”

“그래도 많지.”


유별난 별호가 아니라서 이런 식으로 찾는 것은 어려울 듯하다고 생각한 그때.


“하지만 그중 잡졸들을 제하고 유명했던 자들을 추릴 수는 있네.”


왕필이 타개책을 내놓았다.


아무래도 소일도가 얻은 깨달음의 양으로 보아, 이름이 알려진 검귀였을 법했다.


“유명한 검귀는 누가 있지? 특히 삼백 년 정도 전에 활동했던 인물 중에서.”


삼백 년 전?


왕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라면 마교가 발호했던 시대 아닌가. 그럼 한 명뿐인데.”


단숨에 후보가 좁혀졌다.


왕필이 입을 열어서 그 후보의 정체를 말했다.


“흑도제일검(黑道第一劍). 당시에는 그 분의 위명에 눌려서 누구도 감히 검귀라는 별호를 쓰지 않았으니 확실하네.”

“......뭐?”


순간 소일도가 반문했다.


“흑도제일검이라 했소?”

“그렇게만. 뭔가 문제라도 있나?”

“검귀가 흑도제일검이었다?”

“정확히는 삼백 년 전의 검귀가 그랬지. 중마대쟁의 제일렬에서 마교도들을 일만(一萬) 이상 베었다는 전설로 유명하네. 과연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왕필이 어깨를 한 차례 으쓱했다.


‘삼백 년 전, 천마신교가 발호했을 당시.’


소일도가 마공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해박한 데다, 상식의 기준이 적어도 삼백 년 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흑도.


흑사방처럼 부녀자를 납치해다가 팔아먹고, 창기를 굴리고, 도박판을 열어 사기를 치고, 약탈과 강탈을 서슴치 않는 부류.


그런 곳의 제일검이 검귀였다.


하지만 사실,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다.


전생이 어쨌든 소일도는 지금의 삶을 살면 되니까.

그가 얻으려는 것은 검귀의 인격이 아니라 깨달음과 경험, 정보였다.


찝찝한 마음을 한 구석에 몰아넣은 소일도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검귀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아시오? 아니면 유언 같은 걸 남겼다든가. 그가 쓰던검법의 정보라든가. 뭐든 좋소.”


마공의 등장 시기와 소일도가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때가 절묘하게 겹쳤다.


일전에는 흑사방의 출현과 적가장주의 폐관 시키가 겹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기에, 흑막을 알아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같은 실수를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


“으음, 삼백 년 전 흑도제일검에 대한 정보라. 그런 게 있을는지.”


왕필이 침음성을 흘렸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우선 조사해보겠네.”

“고맙소.”

“단.”


왕필은 검지를 추켜올리며 조건을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계약서 이행이 먼저야. 조사는 진행하되, 알려주는 것은 그 다음으로 하지.”


솔직히 대가를 선불로 받아놓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이쯤 되면 약속을 지킬 때도 됐다.


“그러지.”


소일도는 흔쾌히 조건을 승낙했다.


* * *


며칠이 지나 왕필과 소일도가 돌아왔다.


하오문 복주 지부에는 예상한 것보다 많은 선물이 도착해 있었다.


“이게 다......”


아예 수레로 정리되어 있는 궤짝들이 골목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았다.


왕필이 장난스럽게 소일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자네, 앞으로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겠군.”


이해가 안 되는 양은 아니었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고수와 면을 텄다는 사실만으로 막대한 금전적 이득을 굴릴 수 있는 곳은 차고 넘쳤다.


가령 표국에서 소일도의 이름을 팔면 표물 의뢰량이 급증할 것이다.


세가에서 식객으로 소일도를 모시면 주변 권력을 휘어잡을 수 있을 것이며.


문파에 소일도를 들이면, 그 무공을 견식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입소문을 타고 입문 희망자들이 해일처럼 몰려올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방의 고수에게 일찍이 밉보이지 않고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소소한 선물들까지 도착했으니.


“혹시 이것들을 전부 하오문에 넘기면 계약서 하나는 없애줄 수 있나?”

“어림 없는 소리.”


왕필이 씩 웃었다.


“나로서는 그게 편하긴 하지만, 하오문주께서는 이미 자네를 효과적으로 써먹을 자신이 있으신 모양이네.”


이미 찍혔으니 도망은 안 된다는 말.


“그럼 나는 일이 밀려서 갈테니 찬찬히 열어보게. 자네가 금전에 별 관심이 없는 건 이미 안다지만, 혹시 아는가? 귀한 영약 같은 게 들어 있을지.”

“......”

“아니면 예상치 못한 기연이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왕필은 그리 말하고 정말 집무실로 쏙 들어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소일도가 수레들을 살펴보았다.


그중 눈에 띄게 화려한 수레 두 개가 금방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맹(盟)이라 적힌 글자가 커다랗게 음각되어 있는 소박한 수레였고.

하나는 련(聯)이라는 글자가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흑색의 수레였다.


알아보기 좋게 각각 무림맹과 사도련의 물건이었다.


뭔가 쓸만한 물건이 있다면 저 안에 들었을 확률이 높았다.


우선 무림맹의 수레 쪽으로 다가가서 보니, 크기가 제각각인 궤짝이 세 개, 작은 목함이 하나 있었다.


소일도는 그중 작고 고급스러운 목함을 골라 묶여 있는 붉은 실을 풀고 뚜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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