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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 소일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5.10 18:40
최근연재일 :
20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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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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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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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적가장(3).

DUMMY

“쿠헉!”


사내가 피를 토하더니 뒤로 고꾸라졌다.


눈이 탁하게 풀린 채였고, 내상을 입은 듯했다. 정작 소일도는 창대 자루를 쥐었던 손을 쥐었다 폈다 할 뿐이었다. 힘 조절은 아직까지 꽤 어려웠다.


“이보시오, 정신 차리시오!”


쓰러진 사내의 곁으로 시험관들이 몰려와서 그를 들것에 실었다.


결과적으로, 창대는 터지지 않았다. 사내가 처음 말했던 것처럼 창대 안에서 승부가 결정 나려면 어느 정도 비등하게 겨뤄야 했는데, 소일도의 내력이 순식간에 내달려서 창대를 쥔 사내의 몸속으로 침투한 것이다.


터진 것은 창대가 아니라 꼼수를 쓰려던 사내였다.


그나마 운이 좋았으니 다행이었다.


속이 진탕이 됐을 테지만, 그래도 몇 개월 정양하면 금방 기력을 되찾으리라.


“아니......”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순번을 기다리던 참가자들과 감독하던 시험관들은 멍한 얼굴로 소일도를 바라봤다. 시선을 느낀 소일도가 한 마디를 던졌다.


“막 무인을 기준으로 힘을 썼을 뿐이오. 저리 약할 줄은 몰랐군.”


소일도가 대결을 담당하던 시험관에게 물었다.


“창대가 터진 쪽이 가까운 사람이 진 거였는데, 어찌 되는 거요?”

“아......”


결과는 너무 극명했다. 소일도가 물음을 표한 것은 결과를 발표하라는 말이었다.


이를 눈치챈 시험관이 즉시 홍 측의 붉은 깃발을 들어 올렸다.


“소일인, 통!”


그러자 소일도는 별다른 반응 없이 시험장을 걸어 나왔다.


이차 시험은 단판이었다. 소일도는 방금 전의 사내를 이긴 것으로 삼차 시험의 자격을 얻어낸 것이다.


“통을 받은 자는 안쪽 전각으로 들어가서 대기를......”


시험관의 안내가 끝나기도 전에 소일도가 등을 돌렸다.


적가장의 내실이 코앞이었다.


* * *


소일도는 마지막 삼차 시험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참가자도 모르는 내용이었다. 매년 마지막 시험 내용은 바뀌는데, 준비된 바위를 부수라고 할 때도 있고, 통과자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뒤 경공으로 우열을 가리기도 한다.


적가장이 원하는 인재상이 그때그때 변하는 건지, 아니면 뭘 시험할지 모르니 전부 준비하라는 말인지 모호했으나 그랬다.


소일도는 일단 객청처럼 보이는 방에서 기다란 탁상 하나와 대기해야 했다.


이번 삼차 시험은 개인으로 치러지는지, 그 이외에 다른 참가자는 없었다. 덕분에 방은 꽤 스산하고 조용했다.


“......”


하오문 지부에서 왕필이 갈아준 검날처럼, 소일도의 신경도 날카롭게 바짝 벼려졌다.


그는 눈을 감았다.


시험장의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곳은 소일도의 목숨을 거두려고 살수까지 보내온, 적의 아가리 안이었다.


이윽고 정면의 문이 열렸다.


소일도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온 사내를 가만히 노려봤다.


“삼차 시험은 장주와 대면이었나 보군.”


객청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적가장주, 적광이었던 것이다.


적광은 생각했던 것보다 젊었다.


폐관을 깨고 나왔다기에 머리가 희끗한 중년인을 생각했는데, 기껏해야 이립(而立: 서른 살) 초중반쯤 되어 보였다. 붉은색 포(袍)를 걸친 젊고 헌앙한 젊은 장주 느낌이 물씬 났다.


적광은 피식 웃으며 탁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일도의 맞은편에 앉았다.


“가명이 제법 허접하던데.”


소일도는 단호하게 말했다.


“동생을 찾으러 왔다.”


여기서부터는 어차피 가명이고 뭐고 필요 없었다.


애초에 이 사내의 앞에 만전의 상태로 당도하기 위해서 시험을 치른 거니까.


“......”


사실, 적광은 이 방에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심리전을 준비했다. 여인을 거래한 적 없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고, 흑사방과의 관계를 부정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소일도에게 가족을 빌미로 협박할 수도 있었으며, 또 병력을 끌고 들어와서 무력으로 압박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직접 이렇게 소일도를 보고 나니 그럴 마음이 신기하리만치 싹 사라졌다.


‘마치 한 자루의 검을 보는 것 같다.’


너무 올곧고 단단해서, 그런 얕은 거짓말들이 먹힐 것 같지도 않았다. 세 치 혀로 회유하려고 했다가는 검을 뽑아서 입을 잘라버리겠다고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칼 같은 사내.


그것이, 소일도에게서 느껴지는 첫인상이었다.


때문에 적광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적가장의 무사로 들어와라. 무림맹, 오대세가,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급의 대우를 해주겠다.”


순간 소일도의 미간이 좁아졌다.


“살수를 보낸 자가 할 말은 아니군.”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보다 더한 자들도 계속 보낼 수 있어.”


단순무식하지만 양쪽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말들이 오갔다.


“여인들은 왜 사들였지?”

“영웅호색이라고 해두지.”

“색마였군. 영웅은 흑도에게 납치당한 여인들을 거래하지 않아. 그걸 덮으려고 살수를 보내지도 않고.”

“......”

“참고로 적풍단인가 하는 살수들은 사지를 찢어서 죽여줬다.”


사지를 찢어서, 까지 말한 시점에서 적광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리곤 이마에 주름을 드리웠다.


“젊은 친구가 기개가 상당하군.”

“혀가 길다. 동생을 내와. 멀쩡하면 최대한 조용히 돌아가 주마.”


소일도가 칼자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것을 본 적광도 허리춤에 찬 장검의 검파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들어올 때 자유로웠다고 해서 나갈 때도 편히 나갈 수 있으리라 착각하지 마라. 네놈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본 장주의 사람이 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뿐이야.”


적광이 낮게 으르렁댔다.


“골라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무수한 천재 중 한 명으로 이곳에서 죽든가, 아니면 내 밑에서 너른 세상으로 날든가.


이중일택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얌전히 동생을 돌려줄 생각은 없나 보군. 아니면 돌려줄 수 없는 상태이거나. 어느 쪽이든......”


중얼거린 소일도가 칼자루에 올려놓기만 했던 손을 콱 움켜쥐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제삼의 선택지였다.


탓!


소일도가 발을 굴렸다.


그는 순식간에 반쯤 몸을 뉘여서 탁상 밑으로 미끄러지듯 쑥 들어갔다.


적광도 동시에 장검을 뽑아서 탁상 위로 박차고 올라갔다.


상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자 칼을 찔러 넣었다.


거의 동시였다.


소일도의 검은 적광에게 닿지 못했고, 적광의 장검은 소일도의 팔뚝을 살짝 스쳤다.


“어리석은 놈!”


검날에 스치는 감각으로 소일도의 위치를 특정한 적광이 장검을 휘둘러서 상판을 갈랐다.


갈라진 상판 사이로 적광을 노려보고 있는 소일도와 눈이 맞았다.


이미 발검의 자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상판을 갈라 시야를 확보하느라 한 수를 낭비한 적광은, 다음 순간 목에 얕은 칼자국이 남았다.


하지만 그것은 공격을 피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한 호흡 앞선 적광이 똑같이 소일도의 목을 치려는데, 바닥이 옆으로 기우뚱 기울었다.


소일도가 탁상 아래로 들어감과 동시에 상다리를 잘라놓았던 것이다.


적광은 기울어지는 탁상 위에서도 순식간에 균형을 잡았다. 하지만 결정적일 수 있었던 한순간을 놓쳤다.


그렇게 둘의 호흡이 겹쳤다.


다음 순간 일격을 직감한 적광과 소일도가 서로에게 검을 휘둘렀다.


쩌엉-!


거의 완전한 동수(同手)였다.


적광은 반탄력을 받아 탁상의 상판에서 내려왔고, 소일도는 무너지는 상판 뒤로 물러나며 몸을 일으켰다.


적광은 피가 흐르는 목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봤다.


묻어 나온 피를 보며 표정을 굳혔다.


“너, 정체가 뭐냐. 대체 누가 너 같은 괴물을 키웠지?”


소일도가 대답했다.


“나는 철방에서 자랐다.”

“......”


잠시 적광은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장검을 빙글 돌려서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소일도를 향해 돌진하면서 재빠르게 검을 뽑았다.


간 보기는 그만둔 것 같았다.


소일도도 자세를 취했다.


‘저게 적가검법이군.’


하오문 지부장이 경고했던 환검. 그것이 지금 소일도를 덮치고 있었다.


수많은 허초와, 그 속에 섞인 실초(實楚).


기다란 검이 휘황하게 굽어지며 흡사 그믐달 같은 검기를 수십 번 쏘아냈다. 전부 쳐낼 수는 없고, 하나라도 실초를 맞으면 치명적인 공격들.


소일도는 간결하게 두 번 휘둘렀다.


카캉!


내력이 실린 검이 간단히 검기를 쳐냈다. 어느 것이 실초인지 간파한 것이다.


물론 그에 그치지 않고, 적가검법은 이 초식, 삼 초식으로 이어지며 더 많은 허초와 실초를 쏟아냈다.


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소일도보다 객청이 먼저였다.


검기에 부서지고 깨진 벽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쉬지 않고 공격이 이어지니, 버티다 못한 건물이 붕괴한 것이다.


쿠구구구구구궁!


소일도는 떨어지는 서까래며 기와들을 피하며 검기를 쳐냈다.


적광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낙석에 맞아 죽을 고수들은 아니었다.


잔해 가루가 모래바람처럼 휘날렸다.


치열하던 공방이 잠시 멈추었을 무렵, 사방의 시야가 탁 트였다. 객청의 사면이 전부 무너져내린 것이다.


적광은 장검을 한번 휙 털었다.


몇 번이나 절초를 날린 그의 손바닥이 욱신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적광이 소일도의 얼굴을 일별했다.


맨 처음 팔뚝에 생긴 상처께가 살짝 붉게 물들긴 했지만, 그 외에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탐이 나서 미치겠군. 그러나......’


낙하물들을 피하면서 거리가 벌어지자, 둘은 서로를 멀찍이서 경계한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소리를 듣고 적가장의 시험관이며 무사며 할 것 없이 모두가 달려왔다.


“장주님, 괜찮으십니까!”

“모, 목에, 상처가!”


시력 좋은 누군가 적광의 목에 난 상처를 확인하고 소리치자, 무사들이 일제히 칼을 빼들었다. 그들이 모시는 장주의 목에 칼자국이 남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돌진하려는 무사들을 멈춰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적광 본인이었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미소까지 보였다.


“삼차 시험의 일환이니, 가솔들은 동요하지 말라.”

“하, 하지만 장주님, 상처가......”

“합을 나누다 보니 조금 격해졌을 뿐이다.”


다른 부위도 아니고 목의 상처다.


본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만, 조금만 깊었다면 생명이 위태로웠을 상처.


무사들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 주춤하는데, 적광은 소일도를 바라보더니, 마치 당연한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말했다.


“이건 시험이지. 그렇지 않은가?”

“무슨 수작이냐.”


그때 적가장의 무력대가 뒤늦게 도착했다. 총 세 개의 대(隊)였는데, 소일도가 본 적 있는 적풍대의 새까만 의복도 있었다.


한데, 그 안에서 적풍대주의 얼굴을 확인한 적광의 표정이 갑자기 차갑게 식었다. 그리곤 한 마디를 했다.


“살인멸구(殺人滅口)해라.”

“존명!”


명을 받든 적풍대원들이 병장기를 뽑았다.


그리고 펼쳐진 일은, 소일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한 대원이 뒤를 돌더니, 뽑은 검으로 같은 편 적가장 무사의 목을 벴다. 그야말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동작이었다.


툭.


목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소리를 듣고 몰려왔던 적가장 무사들은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 무슨 짓......”


얼음장같이 희게 질린 안색으로 반발하려던 다른 무력대 무사의 목도 똑같이 잘렸다. 뒤에 있던 다른 대원의 검에 의해서.


그 다음은, 학살의 시작이었다.


사방에서 피와 내장 조각이 섞여 비산했다. 적광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덤덤한 투로 말했다.


“약하긴 하나 저들도 병력이다. 복건제일가가 되기 위해서는 손 하나가 아까워. 더 이상 아무도 이곳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도록.”

“존명!”

“존명!”


몇 명의 대원들이 접근을 통제하기 위해 흩어졌다.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가 낭자하는 가운데, 적광이 소일도를 보고 비죽 웃었다.


“자 검객, 이차전 시작이다.”


그렇게 속삭인 적광의 몸에서 시꺼먼 기름 색의 무언가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소일도는 바로 그것의 정체를 알아봤다.


검귀의 기억 속에 존재하되, 현재는 멸종했다고 전해 들었던 마인(魔人)들의 전유물,


그것은, 명명백백한 마기(魔氣)였다.


하늘에 회색 암운이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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