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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 소일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5.10 18:40
최근연재일 :
20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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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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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흑사방(6).

DUMMY

화염공(火焰功).


그것은 이름만큼이나 극단적인 무공이다.


음기를 완전히 배제하고 극양의 기운만을 수련하여, 사용자의 내공마저 불처럼 붉은 빛을 띄게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화염공이다.


그러나 화염공으로 인해 변하는 것은 내공만이 아니다.


이 무공을 오래 익힐 시에는 사용자의 인격마저도 불처럼 화가 많고, 참을성이 없어진다.


왜 그런가 하니, 기초적인 신체의 균형조차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양기만을 축적하도록 설계된 무공이라서 그렇다.


사람의 신체는 결핍한 것이 있으면 신경질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배가 고프면 화가 많아지는 원리와 같다. 양기만을 수련하면 언제나 음기가 부족하게 되어 성정이 뒤틀리고 분별력 없는 악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격마저 침법하는 무공이 곧 화염공이다.


십 성까지 대성하면 결핍에서 해방될 수 있다지만, 어디 무공 하나를 대성하는 일이 쉽던가?


그리하여 화염공은 무인보다 광인을 많이 배출한 악명 높은 사공(肆功)이었다.


‘이렇게 보니 떠오르는군.’


소일도는 검을 휘둘러 경력이 실린 흑사방주의 손을 쳐내며 생각했다.


‘어쩐지 도발에 쉽게 넘어오더라니.’


소일도는 말 몇 마디에 흑사방주가 팔걸이를 바스라트리며 분노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확실히 부작용을 차치하고 보면 제법 매서운 무공이었다.


오직 양기만을 수련하니까 쌓인 내공의 양이 만만치 않았다.


그 내공을 바탕으로 양 손의 불꽃을 무기 삼아 포악하게 달려드는데, 쳐내기가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소일도는 잘 받아냈다.


흑사방주와 그의 경지 차이가 몇 곱절은 날 텐데도, 공격 한 번을 허용하는 법이 없었다.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상대가 거칠수록 연하게 대처하라고.


상대가 빠르면 더 빠르게 베라고.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법한 공격은 먼저 찔러서 원천 차단하라고.


소일도는 흡사 검무를 추는 것처럼 흑사방주와 합을 주고받았다.


그 무렵 흑사방주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한 번도 제대로 응수하지 않는군.’


무인끼리 맞부딪힌다기보다는 공성과 수성의 싸움처럼 느껴졌다.


소일도는 버티고 버티며 틈을 노릴 뿐, 흑사방주와 제대로 힘 겨루기를 하지 않았다.


“......”


몇 번의 공방 끝에, 흑사방주는 잠시 몰아붙이던 손놀림을 거두었다.


양 손의 불꽃도 파스스 사라졌다.


둘은 거리를 벌린 채 대치하듯 자세만 유지했다.


“너, 내공이 없구나.”

“......”

“노림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내공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어찌 된 일이지?”


들키고 싶지 않은 사실을 들켰다.


소일도는 대꾸 없이 검파를 고쳐쥐었다.


그 모습을 보고 흑사방주는 확신했다.


“하하하하! 내공도 없는 놈이 자객 열 명에게서 살아남고, 본 방의 간부를 여섯이나 죽였단 말이지?”


흑사방주는 다시금 손에 불꽃을 피워냈다.


방금 전보다 커다랗고 시뻘건 색의 불꽃이었다.


“애초에 수하로 삼을 놈은 아니었군. 통제할 수 없는 호랑이 새끼를 기르는 건 멍청한 짓이지.”


내공 없이도 이 정도의 신위를 펼치는 자에게 심후한 내공이라도 주어진다면?


그야말로 괴물의 탄생이다.


흑사방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느긋하게 다가왔다.


상대는 괴물이었지만, 아직 새끼였다.


내공에서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구태여 복잡한 치고받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뱀처럼 천천히 휘감아 집어삼키면 그만이었다.


소일도가 돌진했다.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흑사방주를 이대로 놔두면 좁은 지형에서는 내공이 부족한 자신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허나, 방주는 다른 간부들과는 달랐다.


그는 만전의 태세에서 소일도의 단칼을 맞아줄 만큼 무방비하지 않았다.


피잇!


힘껏 내지른 쾌검이 흑사방주의 머리칼을 스쳤다.


방주는 검이 회수되기 전에 금나수를 펼쳐서 소일도의 손목을 붙잡았다.


불길에 손을 집어 넣은 기분이다.


소일도는 손목에서 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손을 빼야 했지만 압도적인 내공 차이에 눌려서 불가능했다.


“끝이다.”


만면에 승리를 확신한 흑사방주가 손목을 비틀기 위해 내공을 끌어올렸을 때.


소일도는 검을 놓았다.


떨어지는 검의 손잡이 끝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려, 공중에서 검이 회전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검끝이 흑사방주를 향한 순간.


한쪽 다리를 들어서 검 손잡이를 힘껏 밀어찼다.


“......!”


피하지 않으면 단전이 꿰뚤려 죽는다.


흑사방주는 순간 판단을 내려야 했다.


검은 이미 그의 복부와 너무 가까웠다.


흑사방주는 소일도의 손목을 놓고, 한참을 뒤로 물러났다.


기껏 좁혀온 거리가 한 순간에 다시 벌어졌다.


흑사방주가 분한 듯 이를 갈았다.


“......검수(劍手)인 줄 알았더니, 발로 검을 밀어? 너는 긍지도 없나?”


몸을 물리는 것이 조금 늦었는지, 흑사방주의 배꼽 부분의 의복이 찢긴 채 피가 번지고 있었다.


게다가 승기를 잡고도 제 발로 물러났다는 점이 심히 거슬리는 듯했다.


“무인이 자신의 병기를 버렸다. 네가 그러고도 무인이냐?”


화염공을 익힌 몸답게 흑사방주는 귀청이 떨어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소일도는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홍기와 눈이 마주쳤다.


소일도의 입술이 열렸다.


“감히 흑도 따위가 긍지를 논할 자격은 없겠다만. 모르는 듯하니 알려주마.”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검을 무심하게 주워들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검에는 반검(半劍)이라는 경지가 있다.”


반검, 즉 반쪽짜리 검이라는 의미였다.


“이 경지에 발을 들이면 날이 뚝 부러진 검을 온전한 검처럼 사용하게 된다. 또 이것이 발전하면 곧 아예 검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형검(無形劍)에 오르게 되지. 무슨 의미인지 알겠나?”

“......”


흑사방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소일도가 자문자답했다.


“검수에게 검은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검을 땅에 떨어뜨린 정도는 소일도에게 아무런 감흥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 말에 흑사방주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더 들어주기가 어려울 정도로 허접한 궤변이군.”


흑사방주는 일축하고 달려들었다.


다시 거리를 천천히 좁힐 수도 있었지만, 화염공으로 인한 급한 성정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전투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어느새 사위가 불바다였다.


뜨거운 불길이 여기저기서 치솟았다.


화염공의 불씨가 여기저기로 흩날린 탓에 방주전 전체가 화마(火魔)에 휩싸인 것이었다.


피부가 벌겋게 익어가며, 눈알이 익는 듯하여 눈을 뜨기조차 어려웠다.


흑사방주는 화염공을 수련하면서 고온에 대한 내성이 어느 정도 생겼음에도 그랬는데, 소일도는 고통스러운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우지끈!


지붕을 이루는 서까래 하나가 무너져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흑사방주와 소일도가 다시 맞붙은 것은 그 순간이었다.


카-앙!


둘의 공방이 다시 시작됐다.


복부를 찔린 타격이 생각 외로 컸는지, 흑사방주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공방이 지속될수록 그랬다.


‘이놈......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그에 반해 흑사방주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하지만 꾸준하게 느려졌다. 싸움이 길어지면 그만큼 상처가 덧나는 것이다.


그렇게 한번 벌어진 차이는 걷찹을 수 없이 커져갔다.


몸에 생채기를 비롯한 꽤 깊은 절상들이 십여 개 늘었을 때, 흑사방주는 이제 무슨 수를 써도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흑사방주가 계속해서 공방을 주고 받으며 말했다.


“이대로면 둘 다 죽는다.”

“......”

“일단 휴전하고 이곳을 벗어나자. 싸움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소일도는 묵묵부답이었다.


흑사방주는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나를 죽인다고 해도, 이 이상 머물렀다가는 너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야.”

“......”

“이놈! 무슨 말이라도 해보아라, 나와 동귀어진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흑사방주는 호통쳤지만, 그 얼굴은 이미 잔뜩 겁먹은 아이의 그것이었다.


소일도의 검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 그래. 동생을 찾고 있다고 했지. 그 일을 도와주마. 내가 가진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서 책임지고 네 동생을 찾아주지. 진짜야, 흑사방 장부를 살펴보면 여동생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 거다.”

“......”

“내가 졌다! 졌다고! 그러니 제발 여기서 나가게만 해다오!”


그러나 흑사방주의 외침은 소일도에게 닿지 않았다.


귓전에서 모두 흩어져, 짐승의 울음소리나 소음으로만 들릴 뿐이었다.


사람답게 대해지고 싶었다면 사람으로 살았어야 했다.


소일도는 철방을 떠올리고 있었다.


철방주인 아버지 옆에서 풀무질을 구경하다 보면 살이 붉게 그을리고 머리칼이 탔다.


쇠를 녹이는 온도에서도 철방주는 묵묵히 망치를 두들겼으며, 소일도는 항상 그 옆에 있었다.


그 이글거리는 공간 안에.


그곳이 소일도의 집이었다.


소일도라는 한 자루의 검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에게 열기는 적이 될 수 없었다.


“검의 완성도는 서로 부딪혀보면 안다.”


불길에 비친 소일도의 안광이 붉게 타오르며 번뜩였다.


“보아하니 너는 실패작이로군.”


그 시점에서 흑사방주는 이미 만신창이로,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상태였다.


소일도는 중(重)과 쾌(快)를 섞어서 간결하게 검을 내리 그었다.


한 점의 기교도 없는 종(縱)베기.


흑사방주는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손에 경력을 둘러 머리를 막았다.


그러나, 결과는 이제까지와 달랐다.


흑사방주의 손 뼈를 마치 종잇장 자르듯 가르고 나아간 검날은.


흑사방주의 두개골을 부수고, 명치의 단중혈을 지나, 양기가 그득하게 쌓인 단전마저 양단(兩斷)했다.


정확히 반으로, 흑사방주는 쪼개졌다.


그가 황망한 눈빛으로 소일도를 올려다보았다.


“내공이, 있었......”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다.


흑사방주의 몸이 하나는 왼쪽으로, 하나는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적의 완전한 죽음을 확인한 소일도는 숨을 몰아쉬었다.


어쩌면 흑사방주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소일도의 내공은, 굳이 따지자면 무림인의 기준으로 봤을 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러나 좁쌀같은 내공이라도, 일점(一點)에 모으면 고밀도의 강력한 공력이 된다.


소일도의 종베기는 그 점을 잡아늘인 것 같은 선이었다.


아주 얇고, 날카로운 선(線).


소일도가 무심하게 흑사방주의 시신을 내려다 보며 중얼거렸다.


“......실패작은 녹여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겠지.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살아라.”


시신에서 눈을 뗀 소일도는 주변을 둘러봤다.


방주전 전체가 화재에 휩싸인 탓에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문이 있다고 해도 도저히 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닐 것이다.


소일도는 아직 작게 불타고 있는 벽면을 찾아서 그 앞에 섰다.


서겅!


검을 휘두르자, 벽면이 갈지(之)자로 쩍 갈라지더니 이내 무너졌다.


구멍이 생기니 시원한 바람이 들이닥쳤다.


불난 데 산소가 대량으로 들어가자, 기름을 들이부운 듯 불길은 한 순간에 몸집을 불렸다.


방주전을 제외한 흑사방 전각들로도 불씨가 흩날렸다. 흑사방의 근처 전각 몇 개가 불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흑사방주는 자신이 지른 불에 자신이 세운 방파를 태워버리고 자신도 타죽는 셈이었다.


“이겼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홍기가 성큼 다가오며 물었다.


소일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납검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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