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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 소일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5.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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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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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305

작성
23.05.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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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칼이나 갈아주시오(1).

DUMMY

소일도는 산을 내려가고 며칠을 가서 복주에 도착했다.


복주는 과연 아름다운 도시였다.


강 하류를 끼고 상업이 발달했으며, 흔치 않은 마천루(摩天樓)가 몇 개나 높게 솟아 있었다.


복건의 중심지라고 칭할 만했다.


그런 와중 사람도 많고 불 켜진 곳도 많아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장관이었다.


시끌벅적한 도회지로 들어가니 여기저기서 음식 냄새가 풍기고 호객 행위가 한창이었다.


소일도는 마차에서 내려 행인 중 한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혹시 이곳의 하오문 지부가 어디 있는지 아시오?”


그런데 행인은 소일도를 보더니 인상을 팍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코를 틀어쥐었다.


“웬 거지새끼가 하오문을 찾는가? 개방도 아니고.”

“......”


사실 소일도의 행색이 추레하기는 했다.


며칠 동안 옷을 갈아입지도 못했고, 몸을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복주로 직행했다.


심지어 며칠 동안은 시체 썩는 냄새와 함께했고, 그나마 곽 노인에게 받은 비단 요대마저 다 헤지고 때가 탔으니.


지금 소일도는 그야말로 꼬질꼬질한 거지꼴이었던 것이다.


냄새도 냄새대로 안 날 수가 없었다.


“......볼 일이 있어서 그렇소.”

“끅, 무슨 볼 일인지는 몰라도 일단 씻고 가시오 씻고. 니미, 하오문에서 해주려던 것도 안 해주겠소.”

“씻고 가겠소.”

“그래, 사람이라면 그래야지. 그게 예의라는 거요. 돼지새끼 우리에서도 이런 냄새는 안 나거늘.”

“......”

“하오문 지부는 멀지 않소. 강줄기를 따라서 한 시진쯤 동쪽으로 걸으면 되오. 그런데, 어휴, 냄새가 그냥 도저히 적응이......”


행인이 또 욕지거리를 하려는 듯해서 소일도가 먼저 그의 입을 멈췄다.


“그만, 알겠소. 안내해 줘서 고맙소이다.”


소일도는 몸을 돌려 행인의 안내대로 말을 몰았다.


“......”


시체 냄새를 배제하더라도,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심하긴 했다.


수영을 할 줄 알았던가?


수공을 쓰는 수적들을 상대로라면 이길 자신이 있었는데, 수영을 할 줄 알았는가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었다.


“음.”


소일도는 고민하다가, 잠시 마차를 세우고 칼을 풀어놓은 뒤 웃옷을 벗었다.


이제 제법 근육들이 촘촘히 박혀 형태가 잡힌 맨몸이 드러났다.


그는 주저 없이 강물에 몸을 던졌다.


첨벙!


물속은 생각보다 더 시원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몸에 댄 물이라고는, 마시는 물을 제외하면 뜨끈한 핏물뿐이었는데 그것들이 전부 씻겨 나가는 듯했다.


눈을 뜨자 민물고기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뿌옇게 보였다.


소일도는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토대로 수영하는 법을 깨우칠 수 있었다.


‘저런 식으로 헤엄치는군.’


물을 밀어내듯이, 혹은 물을 타고 이동하듯이 몸을 유선형으로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금방 물속에서도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었다.


숨을 참기도 하고, 수면 위로 올라가서 내쉬기도 했다. 나중에는 자맥질하는 새들의 움직임도 흉내 내어 물 밑으로 내려갈 수도 있었다.


‘좋구나.’


하다못해 석쇠라도 일단 달구었으면 물에 담궈 식혀야 하는 법.


사람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달구고 몰아붙이기만 하면 단단해지기는커녕 물러지고 녹아내린다. 가끔 차갑게 식혀주기도 해야 단단하게 완성되는 것이다.


소일도는 한동안 몸을 씻는 것인지 수영을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강물 속에서 노닐다가 뭍으로 올라왔다.


“이것도 참.”


물을 한껏 머금어 무거워진 바지 밑단을 쥐어짜며 소일도가 중얼거렸다.


몸을 씻으려던 것인데, 예기치 못하게 검에 대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소일도는 그대로 그곳에 가부좌를 틀었다.


달구었으면 식혀준다.


더없이 유려한 흐름으로.


철연수개검의 첫 번째 층계, 적근산괴를 정복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저절로 감기며 심상세계로 빠져든다.


내공심법의 완성이 가까웠다.


* * *


하오문 복주 지부.


그곳은 하오(下汚)라는 이름에 걸맞게, 명성에 비해 아주 초라한 외관이었다.


기껏해야 거미줄 친 양반집 하나를 싼값에 매입에서 쓰고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수준이 낮다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특히 지부장 왕필.


비록 제대로 무위를 선보인 적은 없지만, 그의 강함은 천하를 오시하는 구파일방이나 흑도련의 원로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가 다루는 정보들도 걸맞을 정도로 폭 넓고 가볍지 않......지는 않았다.


“객잔에서 무림인들이 횡포를 부림, 식기류 및 식탁과 의자 손상, 산적들이 통행세를 올림, 지역 사회 갈등 유발, 반점 식당 차림표에 새로운 이름, 탕조리척 결정......”


마지막은 대체 뭐지?


반점에서 새로운 요리를 선보였다는 내용을 어째서 보고할 필요가 있었는가 말이다.


“끙.”


왕필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하오문에는 문제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너무 사람이 많다는 점인데, 워낙에 속한 상인이나 잡다한 이들이 많으니 보고를 일일이 받고 선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둘째는, 반대로 사람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우리는 낮고 천한 사람들의 편이니, 사치해서는 안 된다는 본문의 지침 때문이다.


덕분에 무려 복주에 있는 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왕필은 좁아터진 집에서 몇 안 되는 인원들과 함께 일했다.


일손이 부족하고 부족해서 머리털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보고서만 대충 훑어보고 필요한 것을 분류하려고 해도 삼일 밤낮이 걸리니, 그의 고뇌는 말하자면 입만 아픈 셈이었다.


“으으으.”


왕필은 머리를 싸맸다.


그러던 와중,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며 기별했다.


“지부장님, 손님입니다.”


손님, 손님, 그놈의 손님!


하루에도 왕필을 찾는 손님은 많으면 수십 명에 달했다.


주된 대화 내용은 신세한탄과 푸념.


어떻게든 자기들 사정을 해결해줄 수 없겠냐는 거였다.


아무리 정신력 강한 고수라도 그런 이야기를 몇날며칠이고 듣고 있으면 머리가 아프다.


왕필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대꾸했다.


“좀 적당히 타일러서 보내라.”

“그것이......”

“뭐.”

“이름이 소일도랍니다.”

“이름? 그게 뭐 어쨌다는...... 뭐라?! 소일도!”


왕필이 보고 있던 서류들은 집어 던지며 일어났다.


최근 항간을 떠들썩하게 한 검객 소일도에 관해서는 물론 파악하고 있었다.


등매루 붕괴! 흑사방주 처단! 흑사방 괴멸! 게다가 이 모든 일을 단신으로!


그 신흥 고수의 정체는? 무려 평범한 철방의 아들이다.


차라리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떠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그냥 지나칠래야 지나칠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드디어 일다운 일이 찾아온 것이다!


‘복주로 올라온다 하여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건만.’


왕필이 서둘러 잡다한 서류들을 한 쪽에 밀어넣고 정좌했다.


괜히 목소리도 한 번 가다듬고 무게를 잡을 준비를 마쳤다.


“들라 하라.”

“예.”


문도가 문을 열자, 과연 헌앙한 검객 하나가 당당히 가슴을 펴고 들어왔다.


‘음?’


왕필의 눈썹이 움찔했다.


‘이제보니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도 물건이구만.’


척 보면 알 수 있다.


소일도에게서 뿜어지는 기백은, 흑사방주를 죽인 수준이 아니었다.


그의 수준은 그보다 아득히 위에 있었다.


왕필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차라도 마시겠는가?”

“괜찮소,”

“그래,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무슨 정보가 필요해서 왔는가.”


소일도가 앉지 않고 문지방에 발을 걸친 채 엄지로 뒤편을 가리켰다. 문 밖에 세워진 마차가 시야에 들어왔다.


“뭘 좀 가져왔는데, 열어보시오.”

“마차가 특이하군.”

“구멍이 좀 많긴 하지.”


왕필이 밖으로 나가서 마차에 다가갔다.


그러자 코를 아찔하게 만들 정도의 냄새가 마차 안에서 풍겨왔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장이라도 옮기나 깊겠지만, 왕필은 숱하게 맡아온 이 냄새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챘다.


시체 냄새였다. 그것도 꽤 많은 양의.


게다가 피 냄새가 유난히 진한 걸로 봐서, 거의 난도질을 해놓은 것 같았다. 절대로 곱게 죽은 시체가 들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본인이 열어보시오.”


왕필은 경계를 끌어올린 채 소일도에게 말했다. 피 냄새로 화약 냄새를 가려놓고 폭굉을 두었을 수도 있었다.


소일도가 고개를 끄덕이고 궤짝을 차례로 열었다.


궤짝은 총 다섯 개였는데, 각각 안에 시신 하나씩이 들어차 있었다.


며칠을 그 안에서 썩었는지 끔찍한 냄새가 났고, 특히 눈알이 잡은 지 오래된 생선마냥 희게 변해서 보기에 역겨웠다.


그러나 왕필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그것들을 들여다 봤다.


“흐음.”

“알아보시겠소?”

“소속이라면 어딘지 알겠군. 옷과 병장기를 함께 가져온 것은 잘한 선택이었네.”

“그걸로 뭔가 알 수 있소?”


소일도의 물음에 왕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옷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전문적으로 만들어지지. 우선 옷감을 보면 인근의 포목점들 중 후보를 추려볼 수 있네. 박음질의 형태나 마감된 선까지 보자면 그 범위는 더욱 줄어들어. 뒤로는 그들이 납품하는 곳을 낱낱이 비교해보면 대강 나오지. 보통 집단에서 옷을 주문할 때는 같은 재질을 대량으로 쓰니까, 소속 정도는 유추할 수 있다네. 병장기도 일맥상통하고.”


유창한 말이었지만, 소일도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은 친구로군. 내가 보기에는 이 죽은 자가 적가장 소속일 것 같네만. 아닌가?”


왕필이 유추한 바를 말하자, 그제야 소일도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정확히는 적가장의 적풍대 소속 살수였소. 흑사방과 적가장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데, 그것이 들킬까봐 내게 살수를 보냈다고 하더군. 아무리 심문해도 이 이상은 정말로 모르는 것 같았소,”

“많이도 알아냈군. 쉽게는 입을 열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이 꼴이 나지 않았소.”

“......”


소일도가 가리킨 궤짝 안에는 유독 심하게 손상된 시신이 들어 있었다.


이런 일에 굳은살이 베긴 왕필조차도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젊은 무인이라 말랑할 줄 알았는데, 만만히 봤다가는 큰 코 다치겠어.’


왕필은 소일도에 대한 평가를 고쳤다.


“그래서, 더 알고 싶은 정보가 뭔가?”


소일도가 손가락 두 개를 펼쳐보였다.


“적가장과 흑사방 사이에 있었던 모종의 거래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적가장이 내 또래의 소녀를 인신매매한 적이 있는지.”

“명확해서 좋군.”


왕필이 소일도를 향해 턱짓했다.


“대가는?”

“돈이라면 충분한데.”


그러자 왕필이 껄껄 웃었다.


“고작 돈으로는 안 되네. 아무리 하오문이 정사를 가리지 않고 정보를 준다지만, 복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세가의 정보를 주는데. 합당한 대가는 받아야지.”

“바가지를 씌우겠다는 말로 들리는군.”

“생각은 자유네.”


왕필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훑어봤던 쓸모없는 서류들 중 하나를 탁상에 뒤집어놓고 지필묵을 꺼내서 돌아왔다.


“언젠가 하오문의 부탁 하나를 들어주겠다는 계약서를 쓰지. 거부권은 없네.”

“......”

“대신 불가능한 일, 자결이나 자해를 요구하는 일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일, 일 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일, 그 외 얼토당토 않은 억지로 계약을 늘리는 일 등은 요구하지않겠다고 약속하지.”


왕필이 말하는 것과 같은 속도로 계약서를 휘갈겨 썼다.


소일도는 잠시 고민했다.


“한 가지 추가하지. 검을 놓아야 하는 일은 안 되오.”

“오히려 칼이 필요한 일일 걸세.”

“훌륭하군.”


왕필과 소일도가 각각 같은 내용의 계약서 두 장을 나누어 가졌다.


완성된 계약서를 검토한 소일도가 그 계약서에 이름을 썼다.


이제 그것은 하오문의 이름으로 공증된 계약이었다.


서로 하나씩 나누어 가졌으니, 이행하지 않는 쪽은 흑도련과 정파 무림맹 모두에게 쫓기게 되리라.


왕필은 보람찬 얼굴로 계약서 한 장을 고이 접어서 품에 넣었다.


“그럼 이제 물음에 대답해주시오.”

“아무렴. 흑사방과 적가장 사이의 거래가 뭔지, 그리고 적가장이 자네 또래의 여자를 인신매매한 적이 있는지 물었지.”


왕필은 잇몸이 드러나도록 씩 웃었다.


“사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야. 적가장은 흑사방으로부터 여인을 사들였고, 그 안에는 물론 자네 또래의 여인도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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