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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 소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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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5.10 18:40
최근연재일 :
20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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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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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수혼귀(5).

DUMMY

공세를 잡은 허겸의 무당검은, 다른 검법처럼 격하지 않되 다만 멈추지도 않았다.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가져야 할 호흡의 빈틈.


공격과 다음 공격 사이의 분절.


그런 것들이 이 순간 허겸에게서는 한없이 희미했다.


그의 검은 한순간의 끊김도 없었고, 수혼귀가 강하게 쳐내면 부드럽게 밀려났다가 한 동작인 것처럼 되돌아왔다.


공방일체(攻防一體).


허겸의 태청검은, 나뉨이 없이 극한의 일치감을 뽐내고 있었다.


어찌 보면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모든 것을 찍어누를 수 있는 힘을 추구하는 마공과, 반대로 극한의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무당의 무공은 상극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허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까아앙!


수혼귀가 내지른 장법에 허겸의 검이 예상했다는 듯이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못 다 흘려낸 충격이 고스란히 찌릿한 통증과 함께 몸에 전해졌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충격은 누적되고 있었다.


허겸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액체를 애써 삼켰다.


‘조금만 더.’


앞으로 약간만 더 몰아붙이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허겸의 검날은 몇 번이고 수혼귀의 몸에 가볍게 스쳤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었다.


‘한 발자국만 더!’


허겸이 한 발 전진했다.


수혼귀가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허겸의 검이 잠시 밀렸다가 파도처럼 되돌아왔을 뿐, 그는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이윽고 허겸과 수혼귀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밀착했을 무렵.


허겸은 마침내 빈틈을 포착했다.


‘지금!’


푸른 검기가 맺힌 무당검이 상대의 옆구리를 향해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한데 그 순간.


텁.


허겸의 검이 막혔다.


정확히는 막힌 게 아니라, 잡혔다.


고작 집게손가락에 의해서.


“어떠셨습니까? 스승님께서 신공의 힘을 더 충격적으로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에 조금 딴청을 피워 보았는데.”

“......날 유린했구나.”


비장의 한 수를 우습다는 듯이 제압 당했다. 처음부터 수혼귀는 허겸을 간단히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일그러지는 허겸의 얼굴을 본 수혼귀가 슬며시 웃었다.


“이제 좀 아시겠습니까?”


허겸이 아무리 빼려고 해도, 손가락 두 개에 끼인 검날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소용없습니다.”


뚜각.


수혼귀가 가볍게 손목을 비틀자, 검기까지 두른 무당검의 검신이 너무나도 쉽게 반으로 부러졌다.


“......!”


허겸은 그제야 뒤로 빠지며 거리를 벌릴 수 있었지만, 공격 범위의 절반을 잃었다.


수혼귀는 몸 곳곳의 옅게 베인 상처들을 이리저리 살폈다.


“으음.”


절정 고수의 검기에 베였건만, 마치 종잇장에 베인 것처럼 따끔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의 몸을 감싼 마기는 그 정도로 질겼다.


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수혼귀가 손에 들린 쇳덩이를 무심하게 버렸다.


“스승님, 이것이 신공입니다. 이미 아시는 듯하니 말씀드리자면, 만약 제가 예정대로 몇 년 뒤에 적가장주의 영기를 온전히 흡수했다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

“무당파 장문인이 와도 두렵지 않았을 겁니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도 대무당파의 장로를 어린아이 데리고 놀 듯 하는데, 여기서 한층 더 높은 경지라 하면 장문인이 왔다고 해도 손을 겨룰 수 있으리라.


수혼귀는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제가 이 힘을 드리겠습니다. 스승님이라면 저보다 강해지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란 말이냐?”

“......”

“허튼소리 집어치워라, 수혼귀.”


그러자 반절이 뚝 떨어져 나간 허겸의 무당검에서 다시 한번 검기가 올라왔다.


비록 검신은 반이었지만, 검기가 사라진 부분을 메우며 곧 온전한 검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반뿐인 검을 온전하게 다를 수 있는 경지.


그것은 언젠가 소일도가 언급했던, 반검(半劍)이었다.


하지만 수혼귀는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런다고 뭔가 달라지겠습니까? 검이 온전할 때에도 별다른 수가 없었는데.”


반검의 경지가 대단한 것은 맞다.


하지만 이미 마공을 통해 막대한 강함을 손에 넣은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저것은 별 볼일 없는 잡기(雜技)에 불과했다.


기본적으로 반검이란 다음 단계인 무형검(無形劍)으로 넘어가기 위한 초석 같은 것.


반검을 사용할 수 있는 고수가 무서운 존재인 것이지, 반검 자체가 대단한 절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포기하시지요 스승님. 그렇지 않으면 지금부터는 다치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그리도 많이 죽여놓고, 이제 와서 다치는 것이 대수더냐?”

“......어쩔 수 없군요.”


순간 수혼귀의 안광이 붉게 물들며, 신형이 흐릿해졌다.


허겸은 직감적으로 검을 들어서 등 뒤를 크게 베었으나, 공격당한 것은 오히려 등 돌린 그의 어깻죽지였다.


손톱으로 내리그은 듯한 상처가 허겸의 등에서 피를 터트렸다.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무당의 무공은 마공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어느샌가 다시 눈앞에 나타난 수혼귀가 마귀처럼 속삭였다.


허겸은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호흡이 꼬이지 않도록 신음을 꾹 참으며 검을 쳐들었다.


“쯧.”


못마땅한 듯이 혀를 찬 수혼귀가 약간 진심을 내서 자신의 스승을 끌고 가려고 마음먹은 그때.


불청객이 나타났다.


쐐애애앵!


꽤 멀리서부터 날아온 검기가 정확히 수혼귀와 허겸의 가운데를 갈라놓았다.


이어서 제운종 특유의 가벼운 움직임으로 나타난 것은, 무당파의 또 다른 장로 허동이었다.


허동은 등장하자마자 수혼귀의 앞에 착지했다.


상처를 크게 입은 허겸을 감싸는 듯했다.


“사제, 일어설 수 있겠나?”

“끄덕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힘겹게 일어난 사제의 등에서는 마그마 같은 피가 멈출 줄 모르고 솟아나고 있었다.


허동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기회는...... 한 번뿐인가.’


허동은 조심스레 목울대를 떨었다.


수혼귀에게 들리지 않도록, 그는 사제에게만 전음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뒤 고개를 끄덕인 사제가 허동의 옆으로 다가와 바투 섰다.


“허동 장로님도 오랜만입니다.”


무당파의 장로급 배분이 둘.


장로라 함은 문파를 이끄는 장문인의 바로 아래. 유사시에는 문파 전체를 대신할 수도 있는 원로격인 인물들이었다.


게다가 무당파는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문파였다.


천하 어디를 가도 칭송받을 만한 무위.


그런 둘을 앞에 두고, 수혼귀는 등을 보이지도, 겁을 먹지도, 하다못해 태세를 바꾸지도 않았다.


칠 년 전이었다면 솔 쓸 수도 없이 당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둘 모두가 멀쩡했다면 승산이 현저히 낮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 명은 중상을 입은 상황.


시간이 지나서 허겸이 무너지면 그다음 혼자 남은 허동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왜냐하면, 무당파 장로들의 무공은 이미 그가 아는 것이었으니까. 직접 가르진 것이 허겸 아니던가?


수혼귀가 입매를 말아 올렸다.


“당신께도 꼭 드리고 싶은 제안이 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유감입니다.”

“마에 잠식 당한 건가.”


허동은 침착하게 물었다.


“금서, 구음결응공과 수양패무공은 어쨌느냐.”

“먹었습니다.”


수혼귀는 목젖이 보이도록 동굴 같은 입을 쩍 벌려 보였다가 다시 닫았다.


“신공을 익히는 데 꽤 도움이 됐지요.”


수혼귀가 노골적인 말을 던지자, 허동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이놈! 무당의 정도가 담신 비급에 어찌 사특한 마가 끼었단 말이냐!”

“당신들은 아무것도 몰라.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테니 그만합시다.”


그러곤 새빨간 혓바닥으로 입술을 한 번 훑었다.


“당신의 머리통 안에 든 것은 꽤 좋을 것 같아. 차라리 적가장주보다 나을 수도 있겠군.”


수혼귀의 발이 강하게 바닥을 굴렀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허동의 앞에 나타난 수혼귀가 손을 곧게 뻗어 내질렀다.


푸욱!


‘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허겸이 나가떨어질 때까지 허동의 체력을 몰아붙일 생각이었던 수혼귀였다. 당연히 방금 내지른 일격도 가벼운 인사차 던진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것이 허동의 어깨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일부러 막지 않았어?’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사제를 깔끔하게 포기하면, 어쩌면 좀 더 높은 확률도 이길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이것이 허동의 선택이었다.


반격은 빨랐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으리라.


슈아아악!


허동과 허겸의 검이 엉키듯 각각 반원을 그리며 수혼귀의 가슴을 향했다.


마치 태극(太極) 같았다.


무당의 진산 제자였던 수혼귀가 이것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해극혜검(太極慧劍)! 어떻게? 분명 장로급 배분에서도 익히지 못하는 비전의 무공이거늘!’


그 순간 수혼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방금 전 허겸의 한 마디였다.


-설마, 칠 년 동안 본도는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한 게냐?


수혼귀를 잡는 데 몇 년씩이나 허겸과 허동이 함께 움직인 이유,


그렇지 않아도 촉망받는 기재였던 석봉이며, 금서를 들고 달아났다. 무림맹의 추격대를 단신으로 물리치기까지 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수혼귀를 얕본 적이 없었다.


“크윽!”


수혼귀가 황급히 반대쪽 손으로 응수했지만, 태극의 두 검은 휘돌며 마기 어린 흉포한 팔에 칼자국을 내고 올라왔다.


마침내 두 검 끝이 수혼귀의 명치에 닿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푸확!


수혼귀의 복부를 관통해서 등을 뚫고 나온 검은 한 자루였다.


나머지 한 자루.


허겸의 검은 멈췄다.


마지막 순간에 허겸의 눈에는 보였다.


수혼귀, 아니 석봉의 앞섶 안에 감춰져 있었던 목걸이 장신구가.


그것은, 비무 이후 명치에 흉이 생긴 제자를 위해 선물이랍시고 나무토막을 깎아 만든, 조잡한 장난감이었다.


제자의 오성이 너무나도 아까워, 무리한 수련과 경험을 시킨 탓에 생긴, 가슴팍의 상처를 가려 주었던 목걸이.


그것을 어찌 제 손으로 찌르겠는가?


물론 허동의 검격으로도 치명상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수혼귀의 목숨을 끊어 놓지는 못했다.


“으아아아아!”


괴성을 지른 수혼귀가 가슴에 박힌 허동의 검을 턱 붙잡았다.


수혼귀의 몸에서는 시꺼먼 마기가 끓어올랐고, 양 팔은 아예 먹을 뒤집어쓴 듯이 검은 근육이 불룩거려서 인간의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뚜각!


수혼귀의 손에 붙잡힌 허동의 무당검이 부러졌다.


“죽여버리겠다!”


수혼귀가 처음으로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달려들었다.


허겸은 마지막에 펼친 태극혜검을 끝으로 힘이 전부 빠져버렸다. 허동은 검을 몇 번 휘두를 힘이 남았지만, 그 역시 팔 성의 공력을 써버렸다.


고작 남은 이 성의 공력으로는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것과 맞섰단 말인가?’


허동은 이 순간, 왜인지 복주에서 봤던 한 검객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수련과 정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거력. 그 힘 앞에서 젊은 검객은 대체 어떻게 살아 돌아온 것일까.


‘대단하구나, 각패를 넘기길 잘했어.’


만약 소일도라는 검객이 늦게나마 무당을 찾아준다면, 언젠가 수혼귀를 잡아주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허동의 머릿속에 스쳤다.


이것이 마지막 순간임을 반증하듯, 수혼귀가 뻗어오는 공격이 느릿하게 보였다.


허동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질끈 눈을 감은 그 순간.


쩌어어어엉!


엄청난 굉음이 터지며, 그 어떤 것도 멈출 수 없을 것 같던 수혼귀의 마수가 그의 코앞에서 멈췄다.


“잘 버텼소.”


그것은 방금 전까지 허동의 눈앞에서 아른거리던 검객의 목소리였다.


“이제 우리가 싸우겠소.”


마지막 순간 나타난 소일도의 검이, 수혼귀의 마수를 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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