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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 소일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5.10 18:40
최근연재일 :
20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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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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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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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 사내가 바로(3).

DUMMY

두 무당파의 장로들.


그들이 뿜어내는 존재감은 정갈하고 잠잠했지만, 작은 파문이라도 일면 해일처럼 덮쳐올 듯이 거대했다.


소일도가 완전히 철로 변모했다고는 하나, 닥쳐오는 해일에 쇳조각 하나가 버틸 수는 없는 법이었다.


‘강호는 정말 넓군.’


소일도는 자신의 실력이 어디쯤인지 다시 한번 정확히 파악했다.


그가 무너뜨린 흑사방은 삼류 흑도 방파였다.


적가장은 복건에서 손에 꼽히는 정도 세가이긴 했지만, 애초에 복건은 사파의 영역이지 정도 세력이 집권하는 지역이 아니었다.


적광만은 논외로, 절정의 완숙에 이른 무인이었으나, 상성과 운이 좋은 편이었다.


무사 시험 덕분에 적가장에 쉽게 침투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공을 어설프게 익혀서 오히려 마공에 대한 이해도가 있던 소일도의 입장에서는 소모전으로 끌고 가 쉽게 쓰러뜨린 셈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래부터 소일도는 검귀의 감각에 의존해서 싸운다.


냉정하게 보자면, 그의 경지는 이제 막 일류에 접어들었다.


적광과 비견되거나 혹은 그에 준수하는 고수들을 상대로 소일도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니 사실 소일도의 공은 적가장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었다.


세인들이 보기에는 어찌 보일지 몰라도, 진짜 고수들이 봤을 때 소일도의 능력은 적가장주를 이긴 것이 아니라, 적가장주가 마인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는 사실에 그 주안이 있었다.


삼백 년 만에 나타난 마(魔)를 단번에 간파하는 능력.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에게는 검귀의 기억이 있으니까.


실제로 소일도는 적가장주의 무공이 마공이라는 것을 즉시 알아봤음은 물론, 하오문조차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흡음마공의 존재를 미연에 의심했다.


천마신교와 마공, 마인이 활개 하던 시절의 산증인이 곧 소일도였다.


무당파에서도 장문과 은퇴한 태상장로들을 제외하면 제일의 실력자들인 장로들이 찾아온 데는 그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무당의 장로분들, 반갑소.”


소일도가 그들에게 포권했다.


왕필처럼 미사여구는 붙이지 않았지만, 예의가 없지도 않은 인사였다.


둘 중 인상이 고지식해 보이는 장로가 이마에 여러 갈래로 퍼진 주름살을 드리운 채 입을 열었다.


“본도는 무당파의 장로, 허겸(虛謙)이라 한다. 옆의 늙은이도 똑같이 장로직에 있는 허동(虛東).”


둘은 같은 배분이라 허(虛)자 돌림을 쓰는 것 같았다. 이에 소일도도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소일도라 하오.”

“그렇군, 역시 네가.”


허겸의 시선과 소일도의 시선이 겹쳤다. 누구 하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기에.


허겸이 먼저 침묵을 깨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적가장주가 마공을 익혔다는 걸 알고 있었나?”

“몰랐소.”


소일도의 대답 또한 빨랐다.


허겸의 미간이 약간 더 좁아졌다.


“그렇다기에는 무사 시험에 참가했다던대. 계획적으로 접근해놓고 마공은 몰랐다? 그럼 적가장에는 왜 쳐들어갔지?”

“동생이 납치를 당했소.”

“마인이 아니더라도 죽일 생각이었군.”

“죽일 놈이었으니까.”


허겸은 속사포로 뭔가를 더 물으려 했는데, 곁에 있던 허동이 그것을 말렸다.


“너무 취조하듯 굴지 말게나. 사정을 어느 정도 듣고 왔지 않은가? 여기 하오문의 지부장께서도 계시니, 재차 검증할 필요는 없어 보이네.”

“뭐든지 확실한 게 좋습니다 사형.”

“깐깐하게 굴어서 좋을 거 없는 자리도 있는 법이네.”


의외로 물러 보이는 허동이라는 장로가 허겸의 사형이었다.


허동은 자리가 민망해지지 않도록 허겸에게 가볍게 면박을 준 후, 소일도과 왕필을 번갈아 보며 웃었다.


“우선, 정도 무림의 일원으로서 감사드리는 바요.”


허동이 뒤늦게 맞포권했다.


“삼백 년 만에 나타난 마인을 발호 이전에 저지해 주셨으니, 큰일을 하셨소이다. 이 건에 대해서는 추후 무림맹에서 성의 표시가 있을 터요.”


소일도는 딱히 협행을 하려고 했다거나, 강호의 대의를 위해 적가장주를 척살한 게 아니었지만 딱히 해명하지는 않았다.


하오문뿐만 아니라 무림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마공의 원흉을 잡는 일도 당겨지리라.


“무림맹에는 최대한 빨리 적가장주가 마공을 익힌 경로를 찾고 알려 달라고 전해주시오. 그것이 내게 가장 큰 포상이라고도.”

“협객이시군. 알겠소. 우리가 책임지고 그리 전달하지.”


허동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이어서 그도 소일도에게 질문했다.


“마공은 어땠소?”


무려 삼백 년이다.


마공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당금의 강호에 마(魔)라는 글자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런데, 마공을 상대하고, 승리한 사내가 있으니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어땠냐라.”


질문의 저의는 알겠지만, 바로 대답하기에는 너무 포괄적인 질문이었다.


그러나 소일도는 잠시 고민했을 뿐, 금방 대답을 내놓았다.


“허접했소.”


그 말을 허세라고 생각했는지, 허겸의 표정이 또 오그라들었다. 하지만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소일도가 먼저 말을 덧붙였다.


“허접하지만, 분명 강함도 공존했소. 무겁고, 빨랐지. 그러나 정교하지는 않았소. 나보다도 무식하게 강한 무인의 몸에, 아이의 혼이 들어가 있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으음.”


소일도의 증언은, 분명 서책에 남아 있는 마공의 부작용과 똑같았다.


강하지만, 강함 이외의 모든 것을 잃는 금단의 무공이 마공인 것이다.


“그 밖에 뭔가 알아낸 사실은 없소? 방금 말했던, 적가장주가 마공을 익힌 경로에 관해서라든가......”

“없소.”

“그렇군.”


아쉽다는 듯이 말한 허동이 다시 한번 포권했다.


“대답해 줘서 고맙소. 이리 빠르게 가버려서 미안하지만, 마인의 출현 소식으로 우리도 어지간히 바쁜 게 아니라오. 당장 어디 있을지도 모르는 마인을 찾아 구주천하를 샅샅이 뒤지게 생겼으니.”

“나 때문에 고생하시는군.”

“때문이라니, 오히려 덕분이오.”


그렇게 웃은 허동이 품에서 목각패 하나를 꺼내서 소일도에게 건넸다.


꽤 세월을 먹은 듯한 각패에는 로원(老元)이라 적힌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그것은 무당 장로원의 이름표 같은 거라오. 그게 있으면 해검지(解劍地)에서 검을 반납하지 않고도 무당에 출입할 수 있지.”


무당의 성역인 해검지에서 무기를 소유할 수 있는 각패.


허동은 ‘이름표’라고 말했지만, 이 물건이 가지는 의미는 절대로 그런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무당에 평생을 바친 뒤, 실력을 입증받고, 또 성과까지 내어 원로의 일석에 들고서야 겨우 받을 수 있는, 무당의 최고 실력자이자 원로라는 증명인 것이다.


“이런 물건을 내게 줘도 되나?”

“상관없소. 뭣하면 초대장 정도로 생각하시오. 이렇게 훌륭한 후학이 무당에 방문하면 우리 후지기수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터이니.”

“호북에 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소만.”

“여유롭게 생각하시오. 어차피 나는 겸 사제가 가진 각패가 있으니 문제없소.”

“그렇다면야.”


호북은 멀다.


평범히 여유롭게 생각하면 호북에 가는 건 십 년 뒤가 될지 이십 년 뒤가 될지 몰랐고, 그중에서도 무당에 들를 일이라 하면 존재하긴 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두 장로는 어째서인지 소일도를 다시 만나리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더는 거절할 명분도 없었기에, 소일도는 로원이라고 적힌 각패를 속주머니에 넣었다.


“잘 생각했소.”


각패를 준 허동이 흐뭇하게 웃고 등을 돌렸다.


“그럼 진짜로 가겠소. 무양하시길, 무량수불(無量壽佛).”

“잘 가시오.”


허동과 허겸은 왔던 것처럼 일정한 보폭으로, 물 위를 걸어도 동심원조차 퍼지지 않을 듯한 걸음으로 하오문을 나갔다.


대화를 마친 왕필은 피곤하다는 듯 집무실로 들아갔다.


소일도는, 마당에서 새로 산 검의 경도를 시험해보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두 여인이 식사를 끝내자, 소연을 묻어주기 위해 오두막으로 향했다.


* * *


복주 어딘가의 객잔.


허동과 허겸 장로는 떠날 준비를 하기 전, 잠시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다. 허동의 첫 마디는 이랬다.


“대단하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저 나이에 그 철혈(鐵血)의 기세라. 현 사문(師門)에 한 명이라도 이에 비견되는 인재가 있던가?”

“......모르겠군요.”

“허어.”


하동이 탄식했다.


고작 약관에 가까운 검수가 마인을, 그것도 적가장주쯤 되는 인물을 척살했다고 들었을 때는 믿기지 않았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해보니, 또 아주 불가능할 것 가지는 않았다.


또, 그 이질적인 느낌.


가끔 괴상한 독문무공을 익힌 기인들에게서 이런 특이한 기분을 느끼긴 하지만, 소일도의 그것은 왠지 한층 더 오묘했다.


“묘합니다, 확실히.”


그리고 그 느낌은 허동만 감지한 것이 아닌 듯싶었다.


“익힌 무공이 특이한 건지, 아니면 개인적인 체질인지 모르겠습니다. 마(魔)의 기색은 확실히 아닌 듯한데.”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군. 역시, 원로패를 주길 잘했다.”


어쨌든 연이 닿으면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저런 규격 외의 인물은 수시로 확인을 해주어야 한다. 언제 흑(黑)이나 사(邪)의 외도로 빠질지 모르니까.


결론을 내린 허동이 이만 이동하기 위해 짐을 꾸렸다.


“사형.”


허겸이 조심스럽게 사형을 불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적가장주에게 마공을 흘렸다는 자, 석봉이가 아닙니까? 탈주할 때 가져갔던 구음결응공(九廕結凝功)이......”


우려스러운 목소리였지만, 허동은 호되게 소리쳤다.


“이놈! 석봉이가 누구더냐? 우리가 쫓고 있는 것은 사문의 금서를 훔쳐 달아난 극악무도한 무림공적(武林公敵)이다. 그놈은 더 수혼귀(收魂鬼)지, 이상 석봉이가 아니야. 그리고 구음결응공을 가지고 그놈이 무슨 수로 마공을 만든단 말이냐? 비록 그 기운이 사이하여 금서가 되긴 하였으나, 구음결응공은 엄연히 무당의 정도 무공일 터!”


그 말에 화들짝 놀란 허겸이 고개를 떨궜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무림공적 수혼귀.


불과 사 년전 출몰하여 온갖 살인과 화마를 일으키고 홀연이 사라지기를 반복. 그 과정에서 발견된 시체들의 모습이 워낙 괴이하여, 사람의 혼을 거두어가는 귀신이라고 붙여진 별호가 수혼귀였다.


몇 년 전에 무림맹의 별동대가 수혼귀를 잡으려고 출두한 적이 있으나, 결과 일개 대대의 칠 할이 역으로 당하고 돌아왔다.


그 이후, 수혼귀의 목 하나에 걸린 현상금은 미친 듯이 치솟았고, 그를 노리는 은거기인들도 늘어났지만 그는 여전히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진실은.

무당파의 탈주한 진산제자 석봉.


이것은 무당파 내에서도 극히 소수들만이 아는 정보였으며, 허동과 허겸은 이 년 전부터 수혼귀를 추살하기 위해 극비리에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이다. 제자를 네 손으로 직접 벌하겠다고 자원한 것은 너 자신이 아니더냐!”


허겸은 마음을 다잡듯이 주먹을 꽉 쥐었다.


석봉은 허겸의 아끼는 애재자이자, 하나뿐인 수제자였기에. 더더욱 그의 손으로 마무리해야 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음.”


곧 허겸도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도사답게 짐이 워낙 간소했던 터라, 그들이 객잔을 나서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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