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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 소일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5.10 18:40
최근연재일 :
20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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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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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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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 사내가 바로(2).

DUMMY

하오문 지부로 들어온 일행은 한창 소개와 용건을 말하고 있었다.


“여가(呂家)의 여만이라 합니다.”


젊은 청년, 여만이 포권지례하자, 왕필은 금만 그를 알아보았다.


“아아, 여가의 대공자인가?”

“하오문의 복주 지부장께서, 이런 무명소졸을 알아봐주니 부끄럽습니다.”

“당연히 알아봐야지. 여가는 복건에서 무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가가 아닌가. 허허허.”


왕필이 지금 너털웃음을 짓고 있긴 했지만, 여만은 적잖히 긴장했다.


별볼일 없는 중년 같아도 하오문 복주의 지부장. 마음만 먹으면 여가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는 실력자인 것이다.


물론 정사 중립을 유지하는 하오문의 특성상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공할 고수라는 사실이 주는 압박감은 만만치 않았다.


이어서 여만은 부학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대동한 몇 명의 부하 중 하나가 목함을 열어서 내용물을 보였다.


“음? 이것이 뭔가?”


왕필이 목함을 들여다보자, 안에는 꽤 화려한 장식이 달린 검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지부장께서 애도가(愛刀家)라 들었기에, 방문하는 차 선물을 준비해봤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왕필은 검을 주 병장기로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예술품으로써 검을 좋아하기로 유명했으니까.


하지만 누가 봐도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들이었음에도,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왕필의 얼굴이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 얼굴을 볼 틈도 없이 실망을 완벽하게 지워버린 왕필이 허허 웃으면서 입에 침을 싹 발랐다.


“아이고, 이런 걸 다 준비했군. 고맙네. 아주 명검인 듯한데, 요긴하게 보관했다가 쓰도록 하겠네.”

“과찬이십니다.”


그렇게 마당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무렵.


소일도가 웬 타다 만 삭정이같은 검을 가지고 복귀한 것은 그때였다.


“아, 마침 오는군.”


소일도를 불러세운 왕필은 웬 일행들에게 그를 소개했다.


“자, 이 사내가 바로 자네들이 그리도 찾던 소일도일세.”


그리곤 영문을 모르는 소일도에게도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 자네는 모르겠군. 이들은 모두 복건의 명가, 여가에서 나온 이들이네. 적가장주를 처단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러 왔다더군. 하마터면 마두(魔頭)에게 복주는 물론 복건 전체가 집어 삼켜질 뻔 했다면서 말이야.”

“......”


별안간 소일도는 침묵했다.


마당을 가득 채운 여가의 무사들은 하나같이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이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 저놈이 어째서 여기!’


소일도는 그 모습을 보고 픽 헛바람 소리를 내며 웃었다.


“감사는 얼어죽을.”


소일도의 급작스런 발언에 마당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일이 전부 끝나니 이제야 집주인 행세를 하러 온 모양인데, 그럴 필요 없다. 나는 이곳에 관심이 없으니까.”


마두를 몰아내주어 감사 표시를 하러 왔다는 말은 즉, 이 복주가 자신들의 영역인 양 생색내는 것이다.


어느 정도 예측했던 꼬임이었기에 소일도는 덤덤히 대처했다.


“적가장주가 복건제일가를 만들겠다고 눈에 핏발이 섰더군. 몇 년 동안 물밑 쟁투가 험악했을 터인데, 그대들은 내 덕에 손 안 대고 코를 푼 게 되었어.”

“그, 그것이 아니옵고......”

“그만.”


소일도는 뒤늦게 해명하는 청년의 말을 싹둑 잘라버렸다.


“너희가 이곳까지 온 이유는 대강 알겠다. 적가장과 경쟁하긴 했지만 마공에 손을 댄 적은 없다는 해명, 그리고 떠오르는 신흥 고수와 안면을 트길 바랐던 모양인데.”


소일도의 말이 무정한 검처럼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이번엔 실패했군.”


그 시점에서 청년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마공을 썼는지 안 썼는지는 조사해보면 나오겠지. 이만 돌아가라.”


꽤 무례한 언행이었지만, 여가에서 나왔다던 이들은 입술만 짓씹을 수밖에 없었다.


무례는 자신들이 먼저 범했으니까.


정확이는, 사절단의 대표격으로 온 여가의 대공자, 여만이.


마지막으로 여가의 인물들이 중재를 바라는 눈빛으로 왕필을 바라봤으나,


“그렇다는군.”


왕필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할 뿐이었다.


소일도가 한 말에 딱히 틀린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일은 주선(周旋)이지, 무리한 강요는 아니었다.


“가져온 선물은 고맙게 받지. 이제 와서 돌려보내는 것이 더 예의가 아닐 터이니.”

“......배려에 감사합니다.”


여만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각각 검이 담긴 목함들이 하오문 안쪽으로 날라졌다.


‘실수했구나.’


여만은 고개를 푹 떨구고 통감했다.


정말 눈 앞의 사내가 마두를 척살한 소일도가 맞다면, 여만의 경지는 그보다 한참 뒤떨어졌다.


필시 소일도가 볼품없는 검을 고른 데는 이유가 있었으리라.


고작 자신의 보는 눈으로는 알 수 없는.


여만은 그 볼품없는 검을 섣불리 판단한 것처럼, 소일도라는 인간 또한 판단해버렸고, 그 결과 상황을 최악의 결과로 이끌었다.


아무리 복건에 정도 세력이 적다고는 해도, 그리고 무사 시험이라는 특수한 상황 덕에 쉽게 침투했다고 해도, 소일도는 적가장을 홀로 멸문 시킨 고수였다.


그와 적대한다는 것은, 여가에게 있어서 사형 선고나 다를 바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여만이 알량한 자신의 시야를 전부라고 믿은 대가였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허리를 굽혔다.


“소 대협.”


여만이 소일도를 불렀다. 실수는 돌이킬 수 없지만, 적어도 해야 할 말은 분명했다.


“방금 전, 철방에서 범했던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제 철없는 행동이 여가의 의지는 아니라는 점을 알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존심 높은 대공자가 허리 숙이는 모습을 본 여가 무사들은 당황했고, 왕필은 가만히 침음성을 흘렸다.


여만의 말은 이어졌다.


“말씀하신 하오문의 조사에는 성실히 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본가는 하늘에 우러러, 맹세코 마도(魔道)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말이 끝나고도 여만은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소일도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뭔가 잘못 생각하는 듯한데.”


소일도의 입이 열렸다.


“철방에서 있었던 일은 왜 나오는 거지? 말투가 좀 거칠고 판단에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그건 네 나름대로 강호 후배를 위하는 말이었음을 안다. 죽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면 말조차 걸지 않았겠지.”

“......!”

“오히려 내가 너희에게 돌아가라고 한 것은, 하오문에 찾아와서 집주인 행세를 하려 들었기 때문인데.”


소일도가 뒤집힌 부분을 다시 정리해주었다.


“반대로군. 나는 여가의 의지는 모르겠으나, 네 성정은 알 것 같다. 성질은 좀 죽이면 좋겠다만.”

“바, 반드시 그리 하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함을 모두 옮긴 여만은 여가의 무사들을 이끌고 떠났다.


소일도는 가만히 서서 그 뒷모습을 보다가 중얼거리듯 왕필에게 물었다.


“앞으로 얼마나 저런 이들이 여기까지 찾아올 예정이지?”

“흐음, 글쎄. 여가는 워낙에 가까워서 일찍 찾아온 편이니. 모르긴 몰라도 몇십 군데에서 오지 않겠는가? 적가장을 단신으로 쳐부수고, 삼백 년 만에 마인을 잡은 영웅호걸이 여기 계신데 말이야.”

“며칠은 자리를 비워야겠군.”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데, 안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두 여인이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음? 일어난 건가?”


왕필과 소일도가 동시에 돌아보자, 안색이 좀 나아졌다 뿐이지 여전히 비쩍 바른 두 여인이 그들의 앞에 몸을 낮추고 엎드렸다.


하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지, 엎드린 채 가만히만 있었다.


“일어나시오.”


소일도가 말하자, 두 여인은 즉각 일어났다.


“이름이 무엇이오?”


여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살짝 읍하며 이름을 고했다.


“소, 소빈이라 합니다.”

“예령이라 합니다.”


소빈은 그나마 괜찮았고, 배가 부른 쪽은 예령이라 하는 여인이었다.


소일도가 넌지시 물었다.


“둘은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소?”


소일도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순수히 질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동생이 생각나셔일까.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빈이라는 여인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저는, 본래 밥벌이를 하던 객잔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가족은 아니나, 갑자기 사라져서 객잔주께서 놀라셨을 겁니다.”

“음.”


고개를 주억거린 소일도가 이번에는 예령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뱉어지지 않는 말을 자꾸만 입 속에서 우물거렸다. 그러더니 기어코 눈물이 터져나왔다.


“흑, 흐흑. 흐, 흑.”

“......”


왕필과 소일도, 그리고 곁에서 지켜보던 소빈도 그 눈물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녀를 받아줄 곳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몸도.


“죄, 죄송합니다. 추태를......”


예령이 가까스로 울음을 그치자, 소일도가 왕필에게 물었다.


“되겠소?”

“내 한번 힘 써 봄세.”


그녀가 지낼 곳을 알아봐달라는 말이었다.


그 일련의 대화를 예령은 어렴풋이 알아들었지만, 확신이 없었다. 저들이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불안한 표정을 짓는 예령의 어깨에, 왕필이 손을 턱 얹었다.


“무리하지 않도록 해주겠네. 그리고, 몇 개월 후에는 일할 자리도 주선해주지. 성실히만 일하면 먹고 살 걱정 정도는 없을 걸세.”


안도감과 함께 긴장이 탁 풀리며, 예령은 또다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은 들어가서 더 쉬게. 조식을 가져다 주라고 해두었네. 일단 며칠 동안은 미음부터 천천히 적응하게나. 굶다시피 하던 속에 갑자기 음식이 들어가면 탈이 나니까.”


그 뒤로도 소빈과 예령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고서야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소일도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자네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네.”

“......”

“이후로는 저들이 알아서 할 일이야. 생계에 관한 것도, 아이에 관한 것도.”

“알고 있소.”


소일도는 못내 울렁이는 심정을 붙들고 신형을 돌렸다.


“그냥, 저 둘에게 무슨 일이 있거든 내게 알려주시오.”

“그렇게 하지.”


왕필은 세상에 홀로 남은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소일도를 지켜보다가, 자신도 집무실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마공의 원흉을 어서 빨리 추적하는 것이, 그가 소일도를 도울 수 있는 길이자, 소일도가 쓴 계약서를 어서 빨리 유효 활용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런데, 막 집무실로 들어가려던 왕필의 발걸음이 얻어맞은 것처럼 멈췄다.


“이런, 이거 생각보다-.”


왕필이 고개를 돌려 하오문의 현판이 걸린 대문 너머를 응시했다.


노인 두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걷는 보폭은 일정하고, 안광에는 현기(玄機)가 깃들었다. 최소한 왕필과 동등한 경지에 오른 두 노고수였다.


소일도도 그것을 느꼈는지, 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이 하오문의 현판을 넘었다.


왕필은 손목을 까딱 풀면서, 소일도를 보호하듯 두 노고수의 앞에 가서 섰다. 그들의 흰 도목 가슴팍에 검고 흰, 태극(太極)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왕필이 그들에게 포권했다.


“왕 모가 현악(玄嶽)의 남존무당(南尊武當), 두 장로님들을 뵙습니다.”


무당파(武當派).


적가장같은 세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드높은 이름이자, 명실상부한 구파일방(九派一幇)의 일좌.


그들이 고작 검객 하나를 보기 위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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