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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최근연재일 :
2023.02.08 15:45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20,387
추천수 :
443
글자수 :
176,916

작성
23.01.16 05:51
조회
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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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
11쪽

제5장 A.D 1580년

DUMMY

하림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바로 코앞에 푸르른 지구의 전경이 펼쳐졌던 것이다.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호흡곤란으로 가슴을 옥죄어오는 고통은 현실이었다. 뿌연 시야로 정신없이 깜빡이는 경고등이 보였다.


우주선이 동력을 되찾은 걸까?


하림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헬멧을 벗었다. 어느새 생명유지장치가 가동되고 있었다. 폐 속 깊이 산소를 흡입하자 정신이 맑아지면서 손발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윌리엄과 미츠키의 헬멧도 벗겼다. 미츠키는 생명 반응이 있었으나 윌리엄에게서는 어떤 생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미츠키에게 호흡기를 달고 윌리엄에게는 몸에 부착된 패드를 통해 전기자극을 가했다.


생체 신호를 탐지하기 위해 몸에 부착된 패드에는 제세동기 기능이 내장돼 있었다. 하림은 윌리엄에게 전기충격을 주는 한편 의료용 상자에서 주사기를 꺼내 에피네프린을 주사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경고음은 계속 울려댔다.


놀랍게도 타이푼 3호는 지구 대기권에 진입 중이었다. 전자기 폭풍에 휘말린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하나 그 뒤로는 반쯤 정신을 잃어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지 못했다.


하림이 응급처치를 하는 중에 미츠키가 깨어났다. 미츠키는 방금 정신을 차렸음에도 금방 돌아가는 상황을 인식했다.


“윌리엄은 내게 맡기고 하림은 자리로 돌아가.”

“윌리엄을 부탁해.”


하림은 미츠키에게 응급키트를 넘기고 조종석에 앉았다. 항법장치를 조작하는 그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지구로 귀환한 거지? 소행성은 어떻게 됐고?’


어찌 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당장 컴퓨터의 로그 파일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하나 지금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이 먼저였다.


타이푼 3호가 아폴로 급의 구식 우주선이었다면 시간 안에 대기권 진입 각을 변경하지 못했을 것이다.


타이푼 3호는 1,500℃가 넘는 표면 온도에도 끄떡없는 선체를 지녔고 내장된 기기 모두 컴퓨터로 작동됐다. 조종사는 그저 간단한 명령만 내리면 나머지는 컴퓨터가 알아서 수행했다.


대기권 진입 각도가 수정되고 선체가 안정을 되찾자 하림이 급히 윌리엄을 쳐다봤다.


미츠키가 망연자실, 넋 나간 꼴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미츠키!”

“하림, 윌리엄이, 윌리엄이······.”

“알았으니까 자리로 가서 안전벨트 착용해.”


하림은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마저 정신줄을 놓으면 미츠키뿐 아니라 우주선 추락으로 민간인까지 피해를 볼 수 있었다.


무사히 대기권을 통과한 타이푼 3호가 반덴버그 기지와 교신을 시도했다.


“반덴버그, 여기는 타이푼 3호. 반덴버그 응답하라!”


무슨 일인지 반덴버그 기지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전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것이 깨끗했다.


하림은 즉시 관측장비를 가동하여 지상을 탐색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하림, 왜 그래?”

“없어. 우리가 알던 세상이 사라졌어.”


이곳이 지구인 것은 확실했다. 한데 하림이 알고 있던 세상과는 전혀 달랐다.


미츠키가 하림 곁으로 다가와서 관측장비가 촬영한 정지영상을 확인했다. 관측장비 중에는 초정밀 광학카메라가 포함돼 있었다. 이 정도 거리에서는 차량의 번호판도 식별할 수 있었다.


“도대체······.”


광학카메라가 촬영한 정지영상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았다. 바다에는 나무 범선이 떠다녔고 뭍에서는 당나귀가 짐을 옮기고 있었다. 사람들의 행색도 이상했다. 사극에서나 볼 법한 차림으로 비포장 길을 돌아다녔고 건물도 고풍스럽다 못해 영화 세트장을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하림, 일단 반덴버그 기지로 귀환하자.”

“불가능해. 여길 봐.”


하림이 제일 먼저 관측한 곳이 반덴버그 기지였다. 반덴버그 기지가 있는 산타바바라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흔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 다른 행성에 온 건 아닐까?”

“아니, 지구 맞아. 미츠키 이것도 봐봐.”


하림이 다른 사진을 보여줬다. 지리상으로 멕시코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여긴?”

“맞아, 멕시코 시티야. 컴퓨터는 16세기의 전경이라고 분석했어. 여기 이 건물 보이지?”


하림이 가리킨 건물 정면에 떡하니 스페인의 국기가 걸려 있었다.


“말도 안 돼!”

“아시아로 가보자.”


낯선 아메리카보다는 아시아를 관측하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 같았다. 지구까지 공짜로 온 덕에 연료는 충분했다. 그렇다고 해도 대기권 아래로 운항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왜 고도를 높이는 거야?”

“우주선이 우주를 날아야지.”


하림이 고도를 높여 그대로 대기권을 돌파했다. 대기권을 통과할 때 많은 연료가 소모됐으나 일단 우주로 나가면 관성 비행이 가능해서 연료 소모 없이 지구를 탐색할 수 있었다.


우주로 나온 타이푼 3호는 지구 궤도를 돌며 지구를 관측했다. 일단 착륙하고 나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전에 충분히 조사하고 대비하는 것이 현명했다.


타이푼 3호는 빠르게 지구 궤도를 돌며 자료를 수집했고 메인 컴퓨터가 그것을 받아 분석했다. 그동안 하림과 미츠키는 윌리엄의 장례를 치렀다.


하림은 윌리엄을 지구에 묻기를 원했으나 미츠키는 낯선 곳에 윌리엄을 장사지내느니 우주 장례식을 치르자고 했다.


지금의 지구는 윌리엄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생소한 이곳보다는 익숙한 우주가 나을지도 모른다고 하림도 생각했다.


텅!


윌리엄의 시신이 우주선에서 방출됐다. 윌리엄은 생전 모습 그대로 우주복을 착용하고 선체에서 멀어져갔다. 그의 손에는 시가 상자가 테이프로 고정돼 있었다.


미츠키가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하림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내색을 안 해 몰랐는데 미츠키가 그를 동료 이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얼음공주의 마음을 녹인 걸 보니 넌 지구에서 제일가는 불꽃 남자였구나. 잘 가라, 내 친구.’


티엔 이에 이어 윌리엄마저 떠나보내는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저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랐다.


* * *


윌리엄의 장례를 치르고 하림과 미츠키는 하루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보냈다. 벽에 기대어 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가 배가 고프면 먹고 다시 멍하니 상념에 빠져들었다.


“하림, 이제 어떡하지?”


미츠키가 생기 없는 눈동자로 물었다.


“내일쯤이면 컴퓨터가 뭔가 결과를 내놓을 거야. 그걸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아.”

“내 말은······너도 우리가 과거로 왔다고 생각하잖아. 만약 사실이라면······난 자신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그렇다고 영원히 우주를 떠돌 수는 없어.”

“생각해 봤는데 우리가 과거로 온 것과 전자기 폭풍이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면 우리 시간대로 돌아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야. 하지만 아직 그곳에 전자기 폭풍이 남아있다는 보장도 없고 거기까지 갈 연료도 없어.”

“······.”


그때 조종석에서 비프음이 들리며 신호 램프가 깜빡거렸다. 하림과 미츠키는 벼락에 맞은 것처럼 전율을 느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종석으로 달려갔다.


“위치 발신 신호야!”

“우리 말고 다른 우주선이 있다는 거야?”

“기다려봐.”


하림이 신호를 분석하려는 순간 신호가 뚝 끊겼다. 타이푼 3호는 지금 저궤도로 운항 중이라 시속 28,000km의 속도로 지구 둘레를 도는 중이었다. 지상에서 보낸 전파를 송수신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남짓에 불과했다.


다시 신호를 포착하려면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현재 속도라면 약 2시간가량 걸렸다.


하림과 미츠키는 신호를 분석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했다.


이윽고 지구를 한 바퀴 공전한 타이푼 3호에 다시 신호가 잡혔다. 하림은 신호가 발신된 곳의 좌표를 따고 광학 카메라로 정밀 촬영을 시행했다.


“맙소사! 타이푼 1호기야!”


피아식별 프로그램을 돌릴 필요도 없었다. 잡목에 가려있긴 해도 선체의 윤곽이 또렷했다. 게다가 수풀 사이로 듬성듬성 드러난 부분에서 타이푼 1호로 추정할 수 있는 여러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림이 타이푼 1호와 교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통신 장치가 꺼진 듯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미츠키가 물었다.


“위치가 어떻게 돼?”

“잠깐만, 중국 링산(灵山)으로 나오는데?”


링산은 북경의 4대 고산 중 하나로 해발 2,300m가 넘었다. 거리는 북경에서 약 12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생체 반응은?”

“없어. 하지만 선체가 건재한 것으로 봐서 다들 무사할 것 같아.”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미츠키의 얼굴에 모처럼 생기가 돌았다.


하림과 미츠키는 착륙 날짜를 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다. 착륙 위치는 당연히 타이푼 1호기의 옆이었다. 타이푼 우주선은 소행성 착륙까지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 수직 이착륙이 가능했다. 약간의 평지만 있다면 어디든 착륙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착륙에 앞서 지구가 어느 시간대인지부터 확인했다. 컴퓨터는 그간에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현재 지구의 연대를 AD 1575년에서 1585년 이내로 예측했다.


아쉽게도 타이푼 3호에 내장된 컴퓨터에는 역사와 관련된 데이터가 없어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하림과 미츠키가 기억하는 한도에서 16세기 후기는 조선에서는 선조, 일본에서는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에 해당했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는 오다 노부나가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한 시절이었다.


하림은 임진왜란을 떠올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컴퓨터의 분석이 맞는다면 10년 전후로 임진왜란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중국은 명나라일 테고 13대 황제인 신종 주익균이 집권하고 있을 터였다. 주익균은 우리에게 만력제(萬曆帝)로 알려진 황제로 명나라를 망친 4대 암군 중 하나였다.


선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조선과 왜의 전쟁이 임박했다. 그들의 후예인 하림과 미츠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미츠키는 무기 전문가로 이곳의 화약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었다. 지금의 왜(倭)가 그녀의 지식을 흡수한다면 역사가 엉망이 될 수도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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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72 날발
    작성일
    23.01.24 00:25
    No. 1

    ...외국인들이 너무많은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 수어재
    작성일
    23.01.25 10:11
    No. 2

    미츠키 외에는 다 엑스트라로 보시면 됩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keraS.I...
    작성일
    23.01.25 08:27
    No. 3

    솔직히 만력제는 조선에는 잘해줬음.....황제가 좋은맘으로 보내줘도 중간에서 착복하고 조선백성들 털어먹는건 밑에서 했지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 수어재
    작성일
    23.01.26 17:26
    No. 4

    30년간 국정을 나몰라라 하고 내전에서 환락만 즐기던 황제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처음으로 궁문을 넘어 외전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죠.
    그는 왜 조선을 도왔던 걸까요? 참 미스터리인 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영국유학생
    작성일
    23.01.28 11:02
    No. 5

    와... 과거로 가는 작품중에 이런 어마어마한 개연성은 또 처음보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 수어재
    작성일
    23.02.06 01:12
    No. 6

    무림 유학생 화이팅 입니다. 건필 하세요. ^^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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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장 소행성 아포피스(Apophis) +6 23.01.13 1,334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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