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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균형자 님의 서재입니다.

빛의 균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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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빛의균형자
작품등록일 :
2012.03.18 19:00
최근연재일 :
2012.03.18 19:00
연재수 :
3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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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18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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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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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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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69쪽

3rd 03. 투신(2)

DUMMY

“몰랐다니. 아직 어린 신족이구나.“

“......죄송하군요.“

“괜찮아. 어쨌거나 방금 신족이 되어서 정신이 없는데 그 꼬마가 눈을 마구 밟고 지나가는 거야. 그래서 처음엔 가만히 있었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못 참고 꼬마의 앞으로 나왔어.“

털썩.

‘......응? 아직 힘도 안 썼는데?’

그녀가 힘을 쓰기도 전에, 그 꼬마는 이미 죽음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꼬마야?’

꼬마는 유온의 부름에 감겼던 눈을 떴다. 그리고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겨났는지 잔뜩 깨진 목소리로 이 한마디를 유온에게 전했다.

‘엄마를... 살려주세요...’

“......엄마?“

“그래. 엄마가 아프니까 약초를 구하러 이곳까지 온 거야.“

“......“

슈발로이카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목숨을 걸고 올라온다는 말인가? 둘 다 죽으면 그야말로 바보 같은 일이 아닌가?

“너도 부모님이 있지 않니?“

“글쎄요......“

아버지는 항상 바빴고, 어머니는 보지도 못한 슈발로이카에게 저런 것을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실례지만, 유온은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기에 그런 상세한 사정은 모를테니 참고 넘어가야 했다.

“그래...? 너희 부모님도 너무하시는데. 너같이 어린 신족을 이런 곳으로 보내다니.“

“......저도 투신인데요.“

“하지만 그래도 나를 알고있는 빛의 신족들도 몇 명 있는데 그들이 오면 괜찮잖아. 그들은 처음부터 나를 찾아서 깨울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유일신관에 관한 이야기도 유온이 말한 그들에게서 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슈발로이카였다. 그리고 유온의 물음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아직 모르시는군요.“

“뭐를?“

“빛의 신족은... 저를 제외하고 없습니다.“

“......“

담담한 그녀의 목소리에 유온은 할 말을 잃었다.

“어째서?“

“파괴자의 강림 때... 저를 남기고 모두가 나가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유온은 조금 안타까운 듯한 얼굴이었다.

휘이이잉!

“......“

“......“

침묵과 함께, 주변에 몰아치던 눈보라도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슈발로이카는 괜찮다는 듯한 눈짓을 보냈고 유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얘기 계속 할까?“

“그러시죠.“

슈발로이카는 왠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난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유일신관으로 선택했어.“

“......왜요?“

“몰라. 그냥... 기분이 그렇게 시켰다고 해야 할까? 왠지 나도 모르게 선택하게 되더라고. 그런걸 보고 인간들은 ‘운명’이라고 하지?“

“......“

다른 신족들이 들었다면 대충 얼버무리려 하는 것이라고 했겠지만, 슈발로이카는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만 하더라도 그저 약간의 신력만을 주려 했지만, 어찌 하다보니 유일신관으로 선택하고 말았지 뭔가.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녀도 대답할 수 없었다. 다만, 그냥 그러고 싶어서 일 뿐.

“조금 말이 이상하지? 그런데 이 이유밖에 없어.“

“그리고요?“

“음... 나는 이 산을 내려가 그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갔지. 처음에는 이 근처에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멀리에 있었어.“

“어디죠?“

“수도 빈민가.“

“......“

여기서 수도까지는... 말 타고 1달이 넘는 거리다. 그런 자세한 것을 슈발로이카가 알 수는 없지만 어린아이가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그래. 알고 보니까 그 아이도 이곳까지 오는데 반년이 넘게 걸렸더라고.“

“반년이나?“

슈발로이카는 굉장히 놀랐다. 무슨 13살짜리가 반년이나 여행을?

“어쨌거나 그 아이와 같이 갔더니... 이미 그 아이의 어머니는 없었어.“

“죽었...나요?“

“글쎄. 죽은 것인지 다른 곳으로 떠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죽은 것 같아.“

“그 아이는...“

“처음에는 그냥 어디로 떠난 건지 알더라. 자신이 그곳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는 것 같았어.“

“그래서요?“

그 물음에 유온은 자신의 앞에 피어있는 작은 꽃을 바라보았다.

“저 꽃... 그 때는 꽃이 아니라 그냥 풀이었지. 이런 곳에서 자란 것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냥 잡초야. 길을 가다가도 흔히 보이는... 이런 곳에서 자라다 보니까 모양이 많이 다르지만 내용물은 다를게 없어. 하지만 그 아이는 저게 어머니를 고칠 수 있는 약초라고 믿고 있었어.“

“......“

저것은 잡초다. 게다가 아무리 좋은 약초라도, 죽은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몇 년간 그곳에 살다보니까... 그 아이가 아이가 아닌 소녀로 자라게 되니까... 언제부터인지 알아버린 것 같더라고.“

“유온님도 같이 그곳에 계셨나요?“

“응. 나를 많이 따랐어.“

유온은 왠지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때를 생각하고 계신 건가...’

슈발로이카는 왠지 그녀가 부러웠다.

‘나도 언젠가는 과거를 생각할 때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그렇게 그 아이의 17번째 생일날... 그 일이 벌어졌지.“

그 일이라면... 아마도 유일신관의 비극에 대한 일일 것이다. 유온의 얼굴이 굳은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틀림없는 것 같았다.

“빈민가라는 곳은... 인간 중에서도 최고로 하층민들만 모이는 곳이야. 온갖 쓰레기 같은 것들이 다 모여있지. 그래도 그 아이는 그곳에서 살았어.“

“돈이 없었나요?“

“아니.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올 것이라는 미련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

“이성으로는 죽었다고 인정하고 있는데, 마음 한곳에는 그 미련을 가지고 있었나봐. 내가 더 좋은 곳으로 가자고 할 때도, 내가 이곳으로 돌아와 힘을 충전할 때도... 그 아이는 그곳에서 떠나지 않았어.“

“그것 참...“

순간적으로 슈발로이카는 멍청하다고 말할 뻔했다. 다행히 말을 꺼내기 전에 멈출 수 있었지만.

“후훗... 멍청하지?“

“......“

슈발로이카는 속마음이 들킨 것 같은 느낌에 왠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힘을 충전하러 이곳에 온 사이......“

유온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주변에서 다시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괜히 듣는다고 했나?’

하지만 같은 유일신관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듣고 싶었다. 암묵적으로 금지된 유일신관의 끝은 어쩐지...

“집에 돌아가니까... 아니, 집이 있던 자리에 가니까... 없더라.“

“유일신관이요?“

“그 집 자체가.“

“집?“

“그래. 재만 남아 있던데?“

재... 그렇다면 누가 불태웠다는 뜻이다.

“나는 그 아이를 찾았고, 곧 얼마 안 가서 빈민가의 공터에서 그 아이를 찾을 수 있었어.“

“......“

슈발로이카는 점점 거세지는 눈보라를 느꼈다. 그리고 물기가 차 오르는 유온의 눈도...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입도 무언가에 막혀 있었는데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까 아무래도 혀가 잘린 것 같았어. 그리고 팔다리도 거친 밧줄에 묶여서 다 까져있었고...“

“......도대체 누가...“

유온은 허탈하게 보이는, 어떻게 보이면 비웃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은 깊은 슬픔에 잠겨있었다.

“누구긴 누구겠어. 마녀를 죽이라며 소리치는 빈민들이지.“

“......“

“내가 구하려고 했지만... 그 아이가 거부하더라.“

“......“

“눈보라로 사람들을 얼려버리려는 내 시도를 자신의 신력으로 막아내며, 그 아이는 화형대에 올려졌지.“

“그럼...“

“그래... 그렇게 고통스럽게... 불에 타 죽었어.“

슈발로이카는 유온을 데리러 온 것을 후회했다. 이런 그녀에게 인간을 도우려고 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일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유온님은... 인간을 증오하시나요?“

“응?“

유온은 슈발로이카가 묻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거두기 시작했다.

“인간을... 증오하냐고?“

“네.“

“글쎄......“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유온은 조금 난감한 표정이었다.

“증오하지는 않아.“

“왜죠?“

“왜라니? 꼭 증오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유온님의 신관을...“

유온은 슈발로이카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살짝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 아이도 인간인걸.“

“......“

강하다. 슈발로이카는 유온에게서 단순한 힘이 아닌, 또 다른 강함을 느꼈다.

“대단하시군요.“

슈발로이카는 만약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한다면 절대로 인간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다시 한번, 그녀들은 침묵에 휩싸였다.

“그런데 마족이 일방관문을 이용해서 인간계에 나타났다고?“

“아, 네.“

“이거 조금 곤란한 상황인걸... 지휘자는 후작급 마족인가?“

유온은 역시 너무 잠들어 있었다.

“아닙니다.“

“그럼 마계공작?“

“그것도 아닙니다.“

유온은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백작급 이하 마족들로 나까지 깨우러 오지는 않았을 것 같고... 마왕은 원래 이 세계에 오지 못하고...“

“마왕이 오지 못하다니요?“

“이런... 모르고 있었니?“

참고로, 지금까지 슈발로이카는 제대로 된 신족의 지식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기초적인 지식을 배우는 동안 거울에 봉인되었으니.

“마족들이 마왕에게서 힘을 받는 것처럼, 마왕은 마계로부터 힘을 받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왕은 마계로부터 받는 힘을 마족들에게 옮겨주는 중간통로라고 해야 하나? 어쨌던 마왕은 마계를 벗어나면... 죽어.“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전대 마왕. 너무 유명한 일이라 잠자고 있다가 그 얘기는 듣고 다시 잤어.“

“그... 천계를 폐허로 만든 마왕 말인가요?“

유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폐허로 ‘만들었던’이 아니라 ‘만든’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니 아직도 복구가 되지 않았나 보지?“

“네. 너무 많이 망가졌으니까요.“

“아아... 그렇구나.“

유온은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고, 슈발로이카도 그녀를 따라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럼 인간들을 도우러 가는 거지?“

“네? 그걸 어떻게...“

“인간을 증오 하냐고 물어봤을 때 못 알아채면 둔한 거지.“

지금만 해도 충분히 둔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슈발로이카였지만 멍청하게 그것을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떻게 힘은 찾은 것 같네.“

“도우실... 건가요?”

“응.”

생긋.

만년설의 여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소중한 거지? 네 신관.”

“네? 귀찮기만 하고 매번 일만 저지르고... 지난번에는 용족들의 로드 계승 분쟁에까지 끼어 들어서 얼마나 골치 아팠는데요.”

“그래?”

“그래서, 계속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요.”

“후훗......”

“왜 웃는 거죠?”

“아니. 어쩐지 즐거운 표정이라서.”

“어디가요. 귀찮아하는 것을 잘못 보신 것 아닌가요?”

“응, 그랬을지도 모르겠지.”

그리고 유온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네가 먼저 가서 발쿤을 깨워 줘.“

“네? 그럼 유온님은...“

“난 원래 느리잖아. 모여야 되는 곳만 알려줘. 만약에 장소가 바뀌면 네가 다시 와서 알려주고. 빛의 신족이니까 속도는 빠르지?“

“그렇기는 하지만...“

“조금 수고스럽기는 하겠지만 이것만큼은 신력의 차이라서 어쩔 수 없어. 내 신력은 공격범위는 넓지만 위력도 약하고 평소에 쓸 일은 거의 없는걸.“

“......“

확실히, 신력의 차이다. 하지만... 이대로 떠나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아, 참. 내가...“

“유일신관을 가지셔서 후회하시나요?“

슈발로이카는 정신 없이 질문하느라 유온이 뭔가 말하려는 것을 끊고 말았다.

“아... 죄송. 먼저 말하시죠.“

“아니야. 네 대답먼저 해 줄게.“

유온은 살짝 미소짓고 있었다.

“나에게 다시 한번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다시 그 아이를 유일신관으로 만들 거야.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알더라도.“

“......그러십니까...“

슈발로이카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봤다.

‘만약, 내가 거울에 갇힌 상황이 아니라 그냥 그를 만났더라면... 나는 그 때도 유일신관으로 선택했을까?’

“한가지 얘기해 둘 것이 있어.“

지금 말하는 유온의 시선은 슈발로이카가 아니라 그녀의 꽃에 가 있었다.

“유일신관을 절대로 죽게 내버려두지 마.“

“그거야 당연한...“

유온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려는 슈발로이카의 말을 끊었다.

“유일신관이 죽으면 너도 죽으니까.“

“......네?“

“나도 그래서 꽃의 상태로 억지로 살려둔 것이지... 난 아직 죽을 용기가 없었으니까... 이것도 다른 신족들이 보면, 너무 ‘인간적’으로 물들었다고 하겠지?“

슈발로이카는 더 이상 유온에게 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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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3rd 06. 실론 전투(1) +2 11.11.16 423 7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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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3rd 05. 신살검의 향연(2) +3 11.11.14 411 8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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