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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 이야기.

써드아이(The Third Eye)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백작.
작품등록일 :
2014.03.31 12:51
최근연재일 :
2014.10.21 17:52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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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17
추천수 :
250
글자수 :
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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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3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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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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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글자
9쪽

백조아파트.1

DUMMY

가만히 손에 쥔 핸드폰의 액정을 바라보던 ‘가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술 끊었다. 같이 살자. 의정부 백조아파트 101동. 지하2호. 0129]


열두 살. 그때 부터였다.

두려움을 모르고 자라던 가찬에게 무서운 것이 생겼다.

컹컹 짖어대는 커다란 검정개도 아니었으며, 동네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고등학생 형들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본적도 없는 귀신은 더더욱 아니었고, 딱히 불치병이 걸린 것도 아니어서 병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런 가찬에게 두려운 건 아버지였다.

술만 마시면 느닷없이 날아오는 주먹질과 발길질.

아버지는 하루에 열 시간정도는 무척이나 자상하셨고, 그건 잠들어계신 시간이었다. 그 열 시간을 제외하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아버지였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처음 1년간은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주정은 심해지기만 했고 가찬은, 어쩌면 아버지가 자신을 때려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이 수련회를 떠나던 날이 떠올랐다.

느지막이 일어난 아버지가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가찬은 눈치를 보며 새벽에 만들어 놓은 김치찌개를 상에 얹어 드렸다. 맛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이미 일 년이나 살림을 해온 가찬이었기에 음식에 대한 투정은 하신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김치찌개를 떠드시던 아버지는 갑자기 상을 엎더니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해야 할 놈이 왜 이런 것을 만드느냐는 게 이유였다. 가찬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만 해도 안주거리를 안 만들어 놓았다고 발길질을 했었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그날은 그 반대의 이유로 매질을 했다.

그때 가찬은 결심했다. 아버지에게서 도망가야 하겠다고. 하지만 딱히 갈 데가 없었다. 당시에는 가찬이 아는 사람이라곤 세상에 아버지밖에 없었고, 자신에게도 친척이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열다섯이 되어서야 알았다.

집을 떠난 건 열 다섯이었지만 이미 가찬은 어머니가 죽은 열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큰 아버지.

그때 가찬은 짐을 싸들고 큰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태어나서 처음 만난 큰 아버지는 무척이나 자상하고 인자하셨다. 가찬은 혹여나 자신을 데려가려는 큰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해코지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아버지는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보아왔던 포근한 미소였다. 그때 처음으로 가찬은 잠깐이나마 아버지를 떠나기 싫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술을 드시면 또 어떻게 변하실지 몰랐기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뵌 큰 아버지. 그리고 큰 어머니.

큰 어머니는 가찬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빨래를 시키지도 않았고, 음식이나 청소도 시키지 않았으며 혹여나 당신의 자식들과 차별을 둔다고 생각할까봐 일체의 심부름도 시키지 않으셨다.

하지만 가찬은 계속해서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했다.

왜 인지는 몰랐다. 지금에서 생각하면 어쩌면 그건 자신을 보호하기위한 본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의 가찬은 큰 어머니의 눈 밖에 나면 다시 아버지에게 보내질 수도 있다는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 아버지 집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쳤다.



“... 후.”

핸드폰의 액정을 가만히 바라보던 가찬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큰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와 고시원에 들어온 지 두 달이 가까워졌다.

통장엔 이제 90만원이 남아있었다.

사이버 대 등록금도 학자금 대출을 받아 납부했기에 지출을 줄일 수 있다면 줄여야했다.

이제 며칠 후면 다시 월세를 내야했고 결정은 빠를수록 좋았다.

만약 아버지가 술을 끊었다면 좋은 것이고, 설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젠 예전처럼 두려움에 떨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와 한 달을 살면 17만원을 버는 것이고, 두 달을 살면 34만원을 버는 것이었다.

“정말 술을 끊으셨을까?”

아파트라니, 어쩌면 그 말이(술을 끊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큰 아버지를 따라 나서기 전에는 의정부에 살지도 않았고 아파트는 더더욱 아니었다.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그게 전세든 월세든 일을 열심히 하셨을 거란 생각이었다.

“백조아파트라, 의정부엔 백조아파트가 하나밖에 없는 건가?”

상세주소는 없었기에 백조라는 이름의 아파트가 하나일거라고 생각했다. 가찬은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의정부 신곡동?”

검색된 정보는 하나였다. 부동산에서 제공한 정보였고 단지에 대한 상세설명이 나열되어있었다.

“입주가... 1월이면 새 아파트?”

입주는 두 달 전인 1월로 되어있었고 총880세대, 7개동이라고 나와 있었다.

가찬은 지도검색으로 위치까지 파악했다.

곧게 뻗은 동일로를 타고 일직선으로 가면 산업도로 옆으로 아파트가 있다고 나와 있었다.

자신의 고시원이 있는 중곡동에서 의정부까지는 오토바이로 4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중학교 때부터 자전거로 신문, 녹즙, 우유배달을 하던 가찬은 면허증을 취득하자마자 신문사에서 팔려고 내놓은 오토바이를 싼값에 사들였다. 배기량은 125cc 였으며, 짐받이도 달려있었다. 앞으로 어떤 아르바이트를 할지는 몰랐지만 오토바이가 한 대 있으면 시간도 아낄 수 있고 교통비도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찬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고시원의 짐을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짐은 별로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두 상자가 나왔다. 그것도 꽉꽉 눌러 담았기에 두 상자로 끝날 수 있었다.

대부분이 옷이었고, 재산이라면 노트북과 대여섯 권의 책이 전부였다.

“어머니...”

손바닥 보다 조금 큰 액자엔, 공원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심통이라도 난 듯 잔뜩 볼을 부풀리고 있는 꼬마의 모습이 보였다.

가찬은 액자를 옷과 옷 사이에 조심스레 넣고는 상자를 단단히 밀봉했다.

-짝! 짝!

가찬이 억지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고는 벌떡 일어섰다.

“자. 이제 새로운 세상으로 가자”



백조아파트는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깔끔해 보였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도 행복해보였다.

“101동 지하 2호라고 했지?”

가찬은 101동 앞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는 현관으로 향했다.

아파트는 무인경비 시스템으로 비밀번호를 눌러야했다. 가찬은 아버지가 보낸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주소 옆에 나와 있는 0129가 비밀번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자의 번호를 입력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혹여나 번호를 잘못 입력했나 싶어 정확하게 다시 한 번 눌러보았지만 역시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때 지나가던 경비아저씨가 가찬에게 다가왔다. 가찬은 핸드폰의 문자를 보여주며 이곳이 맞는지를 확인했다.

“맞아. 백조아파트라면 여기밖에 없지. 그런데... 이상하구나. 지하2호? 지하는 모두 주차장이야. 다시 한 번 확인해 봐야겠어. 학생. 여기뿐 아니라 요즘 아파트의 지하는 다 주차장으로 지어진다고. 옛날에 지은 오래된 아파트라면 모를까.”

“오래된 아파트요?”

“그래. 오래된 아파트엔 지하도 있었지, 하지만 그래도 백조아파트라니.. 내가 의정부에서만 이 짓을 십년을 했는데 기억에 없어. 부동산에 한 번 가봐라... 혹여 알지도 모르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아저씨.”

가찬은 단지 내에 있는 중개사 사무실을 보았다. 모두가 공인중개사의 간판을 달고 있었는데 한곳은 ‘백조부동산’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간 가찬이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언뜻 보기에도 팔순은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하다가는 무릎을 쳤다.

“맞아! 녹양동에 있어. 종합운동장의 뒤편으로 5층짜리 아파트가 있었지. 뭐 말이 아파트지 빌라보다도 못해. 지금쯤은 허물어지고 재건축이 되었을 줄 알았는데 아직 안되었나 보지?”

가찬은 다 쓰러져 가는 아파트라는 말에 갈등했다.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온 김에 찾아가 보느냐.

“술을 끊으셨다면야....”

가찬은 녹양동의 ‘빌라보다도 못한 오래된 5층짜리’ 백조아파트를 향해 오토바이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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