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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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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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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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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6화 : 슬픔(Grief) (3-4)

DUMMY

* * * *


다음날, 1988년 2월 2일 화요일 10시 4분.

서울 모처(某處), 국가안전기획부 「제9국」 국장실.


최근 사람들이 이동이 잦아졌다. 어제부로 대공수사실에 파견 나간 정은정 과장과 함성필 대리도 그렇고, 부상에서 회복한 윤민서 대리의 고공 파견 역시 오늘부로 재개되었다. 귀중한 볼리셔니스트들이 흩어지는 건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한강진 국장의 눈앞에는 서창민 대리와 처음 보는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한강진 국장은 간단한 신상명세가 담긴 종이를 읽어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의 끝에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긴장한 표정의 젊은 여자가 있었다.


“박지연... 지연씨라고 부르면 되나요?”


일전 강(江)의 수장부와 맺은 협약 중에 인적 교류 내용이 있었다. 원활한 협력을 위해 서로 연락책을 교환하는 것이었다. 다만 수장부는 재건 중이니 수장부에서 먼저 9국에 사람을 파견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그 파견책으로 온 사람이 바로 이 ‘박지연’이었다.


상어에 대항하기 위해 급하게 모은 강(江)의 사냥꾼이었던 그녀는, 현재 극심한 피해를 입은 수장부 소속 볼리셔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사실은 상어에게 패배한 이후 커뮤니티에서 ‘반 쯤 퇴출된 상태’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지만.


“네. 그렇게 불러주시믄 됩니다.”


영남 사투리가 진하게 묻어났다. 한강진 국장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자리를 마련해 드려야 할 텐데... 서 대리?”


서창민 대리가 대답했다.


“자리는 현장지원과 사무실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좋아.”


잠시 뒤 서창민 대리의 안내를 받은 그녀가 현장지원과 사무실로 이동했다. 박지연은 이동하는 동안 지금까지 봐온 건물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정부 기관이라기에 조금 거창한 모습을 상상했던 그녀였지만, 이러한 예상은 완전히 깨진 상태였다.


‘돈이 없나?’


거칠게 마감된 건물은 거의 짓다 말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국장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기가 조금 더 많았을 뿐, 책상 위 가득한 서류와 정리되지 않은 모습은 이곳이 그 서슬 퍼런 안기부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사람이 만드는 분위기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현장지원과 사무실은 분주했다. 대략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이 들어오자 모두들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딱 봐도 의기력자(볼리셔니스트)인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얼핏 듣기에 최근 전투에서 다수 인력이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건만, 가라앉은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서창민 ‘대리’는 자신을 책상 열(列) 한쪽에 비워놓은 자리로 안내했다. 그리고 반대쪽 열의 빈자리 하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나중에 저 자리에 올 사람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 지금은 일 때문에 잠깐 나가 있거든요.”

“네.”

“그럼 잠깐 쉬시죠.”


그렇게 말을 마친 서창민 대리는 업무의 중간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치 그가 오는 걸 기다렸다는 듯 여러 명이 다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훈련과 정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로 널찍한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책상은 잘 정리되어 있었다. 거기에 기본적인 필기구, 전화, 당장 쓸 수 있는 빈 책철과 노트, 새것으로 보이는 달력까지 놓여 있었다. 열심히 준비한 것이 분명했다. 괜스레 부담이 느껴졌다.


“......”


갑자기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최근 공동체 내에서 칼과 법칙에 매진하는 의기력자는 애물단지 그 자체였다. ‘쓸데없는’ 일을 하면서 공동체 자원만 갉아먹는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하지만 칼과 법칙 그 자체에 매력을 느낀 사람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 부류의 사람이었다.


칼. 법칙. 의기력(意氣力)이라고 부르는 그 두 가지에 매진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갔다. 처음에는 또래 남자 아이들을 꺾는 재미에서, 지금은 외롭지만 그저 파고드는 재미에 수련을 이어갔다. 물론 그때 같이 하던 사람들 중 지금 남은 이는 없었다.


그래도 3년 전, 부모님 등쌀에 대학에 진학했지만 학점과는 담을 쌓았다. 학사 경고를 받지 않을 수준에서 남는 시간을 모두 수련에 쏟아 부었다. (그래도 작년에 어찌어찌 졸업은 한 상태)


자연히 주변에 친구도 없었다. 부모님 역시 지금은 반 쯤 포기한 상태였다. 졸업한 이후 하는 일이라곤 가끔씩 도장에 나가 공동체 꼬마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기 위해 가르침을 받을 사람도 없었다. 공동체 안에 실력자 한 명이 있었지만 현재는 치매로 요양원에 있었다. 따라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비슷한 부류끼리 훈련 아닌 훈련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부산 절해(絶海) 출신의 동갑내기와 가끔씩 만나 수련 했었는데, 그것도 대충 4년 전에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결국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건 일상이었고 눈총 받고 괄시 당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이때 발생한 「사냥꾼」 임무는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였다. 공을 세워 시선을 전환시킬 기회였다. 게다가 적은 북한 빨갱이었다. 명분도 충분했다.


임무를 위해 모인 면면을 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아, 그래도 자신과 비슷한 인간들이 전국에 네다섯은 있었구나.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본 동질감에 가슴이 뛰었다. 만약 임무에 성공하면 이 친구들과 같이 더 큰 무언가를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단 한 번 일어난 상어와의 교전에서 이 모든 꿈은 박살났다. 투입된 다섯 명의 사냥꾼 중 정하진, 서준호 두 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최지훈과 박상훈이 중상을 입었다. 그 중 최지훈은 회복했지만, 박상훈은 여전히 중환자실에 있었다.


“......”


그때의 공포가 떠오르자 양손이 부들거렸다. 상어의 압도적인 전투력에 무기력하게 당했던 기억이었다. 그래도 지수의 개입으로 도망칠 수 있었고, 뒤따라온 북한 측 의기력자의 추격도 뿌리쳤다. 최지훈과 박상훈의 목숨도 건졌다.


하지만 돌아간 공동체에서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얼어붙어 있었다. 부모님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외출을 금지했다. 공동체 역시 금도령(禁刀令)을 내리며 사실상의 가택 연금을 명했다. 젊은 목숨을 아끼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사선을 넘어 싸우고 온 그녀가 느끼기에 이 결정은 징벌과 다름없었다. 만약 이기고 돌아왔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난생 처음 가출을 했다. 무작정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딱히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평생을 믿고 휘둘러온 칼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막연히 아르바이트나 하자는 생각으로 터미널에 내렸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는 그녀를 향해,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박지연씨죠?”

“...??”


엄청난 미모의 여자였다. 곧 알게 되지만, 그녀는 수장부의 예지가인 ‘지애림’이었다. 그렇게 수장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


이때 사무실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사람 한 명이 들어왔다. 박지연은 굳이 시선을 두지 않고 여전히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곧게 이어지던 발걸음이 근처에 오자 약간 복잡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자신이 앉아 있는 정면에서 멈추더니 말했다.


“박지연?!”

“?!”


올려다 본 시선에 놀라운 얼굴이 들어왔다. 조금 바뀌긴 했지만 4년 전까지 같이 가끔씩 같이 수련했던 절해(絶海)의 의기력자, 바로 ‘김휘승’이었다.


잠시 뒤.


둘은 각각 종이컵을 하나씩 들고 건물 뒤편 담벼락 근처에 서 있었다. 이곳에서 만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듯, 서로는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특히 김휘승 대리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볼리셔니스트에게 있어 정부 조직에 투신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저 죄지은 얼굴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어... 그니까...”

“언제부터고?!”


어물거리는 김휘승 대리를 향해 박지연이 강한 어조로 물었다. 그는 시선을 피하고 손가락을 세다가 대답했다.


“한... 4년 됐네...”

“이놈 시키 연락도 없고! 뒤진 줄 알았다 아이가!”

“여 온다고 우째 말하겠노...”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를 보고 박지연은 큰 한숨을 내쉬었다.


“믿을 건 니뿌이 없었는데... 진짜 너무했다 니는! 간다케도 내가 머라 하나!”

“......”


대화가 끊어지고 커피 홀짝이는 소리만이 간간이 울렸다. 눈치를 보던 김휘승 대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말 안하고 간 건 미안타...”

“...아라따.”

“닌 잘 지냈나? 여긴 어쩐 일이고?”

“못 들읏나? 강(江) 수장부에서 파견 나왔다 아이가.”

“수장부에서 나온다는 사람이 니였나?!”

“와, 못 믿겠나?”

"아니 그근 아니고...“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이번에는 박지연이 물었다.


“이번에 큰 일 있었다매? 니는 많이 안 다칬나?”

“나는 개안타. 칼침 한 방 무따 아이가. 무쟈게 아프긴 하드라.”

“아이고야... 안 뒤지고 살았으니 다행이네.”


다시 커피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김휘승 대리는 눈을 조금씩 돌려 박지연을 바라보다가, 조금은 명랑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암튼 이렇게 얼굴 보이 반갑네.”

“......”


어느덧 커피 잔에서 올라오던 수증기도 멈췄다. 둘은 눈이 내릴 것 같은 구름 낀 하늘을 조용히 올려다보다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때 2층의 국장실에서는 한강진 국장과 서창민 대리가 그녀를 두고 얘기하고 있었다. 한강진 국장이 신상명세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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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6화 : 슬픔(Grief) (3-5) 20.10.31 36 0 10쪽
» 6화 : 슬픔(Grief) (3-4) 20.10.29 3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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